자작시와 자작소설/시; 98년 즈음

세상살기1

New-Mountain(새뫼) 2013. 2. 19.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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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늦은 귀가길

누구에게 물었을까

우리가 사람이라면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요

버스 정류장 한 쪽 구석에서

지금 서 있는 곳으로

긴긴 여정의 모든 기록들이

몇 줄 시처럼 쓰여질 수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그리워하다가

문득 버스 차창에 비추어 보는

헝클어진 머리카락

험하게 돋아나는 거칠은 수염

아름다움 없이 저렇게 저렇게

사위워가는 세상과

모두 파헤쳐지고 아직 덮지 못한

지하철 공사장 그 언저리

이루어짐 없는 삶과

그리고 여정은 벌써 잔을 지나 왔지만

한 줄도 생각해 내지 못한 시

모두들 곤하게 잠이 든

서민 아파트 대문 앞에 이르러서

비로소 하루를 살았다.

하루하루가 이렇게도 길고 어려운데

한달이 일년이 너무도 무참하게

세월을 침식시켜 버림은.

초인종 누르길 포기하고

아파트 계단에 쪼그리고

또 묻는다. 기대하지 않는 대답을 위하여

지금 들어가야 합니까

아직도 몇 자 시를 써내지 못했는데

그러나 버스 정류장 언저리에서

겨우 당겼던 담뱃불이

여태 손가락 끝에서 반짝 울고 있을 때

그 긴 여정 속에

비로소 하루를 살았다는 안도

결국 시는 없었다.

시는 없었다.

없었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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