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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늦은 귀가길
누구에게 물었을까
우리가 사람이라면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요
버스 정류장 한 쪽 구석에서
지금 서 있는 곳으로
긴긴 여정의 모든 기록들이
몇 줄 시처럼 쓰여질 수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그리워하다가
문득 버스 차창에 비추어 보는
헝클어진 머리카락
험하게 돋아나는 거칠은 수염
아름다움 없이 저렇게 저렇게
사위워가는 세상과
모두 파헤쳐지고 아직 덮지 못한
지하철 공사장 그 언저리
이루어짐 없는 삶과
그리고 여정은 벌써 잔을 지나 왔지만
한 줄도 생각해 내지 못한 시
모두들 곤하게 잠이 든
서민 아파트 대문 앞에 이르러서
비로소 하루를 살았다.
하루하루가 이렇게도 길고 어려운데
한달이 일년이 너무도 무참하게
세월을 침식시켜 버림은.
초인종 누르길 포기하고
아파트 계단에 쪼그리고
또 묻는다. 기대하지 않는 대답을 위하여
지금 들어가야 합니까
아직도 몇 자 시를 써내지 못했는데
그러나 버스 정류장 언저리에서
겨우 당겼던 담뱃불이
여태 손가락 끝에서 반짝 울고 있을 때
그 긴 여정 속에
비로소 하루를 살았다는 안도
결국 시는 없었다.
시는 없었다.
없었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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