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애가 카톡을 보내왔다.
이 시의 주제가 뭐고, 분위기가 뭐냐고?
왜 그러느냐고 하니,
대학 교양 과제란다.
매일 EBS 교재에 있는 시만 수능 대비용으로 읽다가
시를 시답게 읽으려니까 갑갑했고,
문득 옛 담임이 떠오른 게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느낌을 일러 주었는데,
고맙다는 말 대신에
"시는 어려워요." 하더라.
여전히 EBS 문법으로 무장되어 있을 거라.
이게
수능 탓이고
뜐(EBS) 탓이고
국어 선생들 탓이고
내 탓이다.
산속에서 버터플라이 수영하는 아버지
함민복
아버지 무덤가에 향나무 한 그루 있네
아버지가 죽기 전에 꺾꽂이해놓은 향나무
봄 햇살에 심어놓고 고향을 떠났네
이젠 나보다 키가 훨씬 큰 향나무
자주 고향에 들르지 않는 나보다 효자네
향나무 기르기는 아버지의 주특기
경로당에도 초등학교에도 면사무소에도
우리 밭둑에서 캐어간 향나무가 자라고 있었네
그러나 지금 그 향나무들 없네
그냥 그 나무들 자라던 자리만
내 마음속에 단정히 서 있을 뿐
산속에서 머리를 땅에 박고 양팔 벌려
버터플라이 수영 포즈를 취한 아버지 산소에서
향나무 열매를 하나 따 보았네
향나무 열매에서 향나무 향기가 나네
향나무 열매 속에 향나무의 來世가,
향나무에 대한 기억이 가득 차 있네
산에서 흙 속을 수영하며
아버지 어디로 나아가는 걸까 배영으로
누워서도 힘찬 버터플라이 자세를 보여주시며
너도 消滅로 수영해 나아가려면
아버지가 되어보라고
향나무 열매 많이 매달아놓으셨네
아버지 죽어서도 나를 키우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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