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며 배우며/시 더읽기

김수영의 '육법전서와 혁명'

New-Mountain(새뫼) 2016. 10. 2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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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법전서(六法全書)와 혁명(革命)

 

기성(旣成)육법전서(六法全書)를 기준(基準)으로 하고

혁명(革命)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혁명(革命)이란

방법(方法)부터가 혁명적(革命的)이어야 할 터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불쌍한 백성들아

불쌍한 것은 그대들뿐이다

천국(天國)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그대들 뿐이다

최소한도로

자유당(自由黨)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不法)

혁명정부(革命政府)가 구육법전서(舊六法全書)를 떠나서

합법적(合法的)으로 불법(不法)을 해도 될까 말까한

혁명(革命)

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그대들 뿐이다

그 놈들이 배불리 먹고 있을 때도

고생한 것은 그대들이고

그 놈들이 망하고 난 후에도 진짜 곯고 있는 것은

그대들인데

불쌍한 그대들은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다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

보라 항간(巷間)에 금값이 오르고 있는 것을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고 있다

보라 금값이 갑자기 팔천구백(八千九百) 환이다

달걀값은 여전히 영하(零下)이십팔(二八) 환인데

이래도

그대들은 유구(悠久)한 공서양속정신(公序良俗精神)으로

위정자(爲政者)가 다 잘해줄 줄만 알고 있다

순진한 학생들

점잖은 학자님들

체면을 세우는 문인(文人)

너무나 투쟁적(鬪爭的)인 신문(新聞)들의 보좌(補佐)를 받고

 

아아 새까맣게 손때묻은 육법전서(六法全書)

표준(標準)이 되는 한

나의 손등에 장을 지져라

이육혁명(二六革命)은 혁명(革命)이 될 수 없다

차라리

혁명(革命)이란 말을 걷어치워라

허기야

혁명(革命)이란 단자는 학생들의 선언문(宣言文)하고

신문(新聞)하고

열에 뜬 시인(詩人)들이 속이 허해서

쓰는 말밖에는 아니되지만

그보다도 창자가 더 메마른 저들은

더이상 속이지 말아라

혁명의 육법전서(六法全書)`혁명(革命)'밖에는 없으니까

 

자유문학 46,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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