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문산문

안정복의 '아기설'과 '파아기설' ( 벙어리저금통 이야기 )

New-Mountain(새뫼) 2018. 3. 1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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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설(啞器說), 파아기설(破啞器說) - 벙어리 저금통 이야기

안정복(安鼎福: 17121791)

 

 

1. 아기설(啞器說)

 

정사년(1737) 가을에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시장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평평하며 속은 텅 비었는데, 이마에는 일자(一字)모양으로 가늘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丁巳秋余赴試入京市上有器上圓下平中空而頂穿細穴如一字形前所未見也

 

내가 종복을 돌아보며,

이게 무슨 물건인가?”

하니, 그는

벙어리입니다.”

하였다. 내가 그 말을 알 수가 없어서 또 묻기를,

이게 무슨 물건이냐?”

하니, 또 다시

벙어리입니다.”

하였다. 나는 그가 농하는 줄 알고 화가 나서

내가 이 물건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벙어리라고만 대답을 하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

하고 꾸짖으니, 그는,

소인이 감히 농한 것이 아닙니다. 이 물건의 이름이 벙어리이기 때문에 벙어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였다.

 

余顧僕夫曰是何器也

曰啞也

余未解其語又問曰

是何器也

復曰啞也

余怒其言之戱也詰之曰

余問是器而答曰啞何也

僕夫對曰小人非敢戱也是器之名啞故對以啞也

 

내가 이상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이 물건은 입이 있으나 말을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름을 벙어리라고 붙였습니다. 민가의 어린 계집아이들이 이것을 사다가 동전이 생기면 그 속에 넣는데, 가득차면 이것을 부수어 동전을 꺼냅니다. 아마 동전을 헤프게 쓰지 않으려 하기 때문일 겁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余怪而問其故對曰

是器也有口而不能言故人命之曰啞閭家小女兒貿是而得錢則投其中滿而後撲而取之盖不欲其妄費也

 

나는,

, 무릇 입을 가지고도 말을 못하는 것이 어찌 이 물건뿐이겠는가. , 동이, 단지, 항아리도 어찌 입이 없겠는가마는 이런 그릇들이 말을 못한다 하여 벙어리라고 부른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다. 그러니 이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였다.

 

余曰

噫嘻凡有口而不能言者奚獨是器也甁罌甕缸獨無口乎未聞甁罌甕缸之以不言而名以啞也是必有以也

 

곁에 있던 여관 주인이 이 말을 듣고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네는 모르는가? 이는 사람이 붙인 이름이 아니고 조물주의 희극일세. 조물주는, 사람에게 말소리와 웃는 얼굴은 보이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입을 통해 동요를 전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물건을 꾸며 각종 그릇들을 만들기도 하니, 이것은 모두가 사람들로 하여금 듣고 모아서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물건이 나온 지 10년이 못 되었는데, 그것이 가진 뜻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람이 벙어리 같음을 비웃는 것이며, 또 하나는 사람이 벙어리 같아야함을 경계한 것이다. 무엇을 비웃는다는 것인가. 말을 해야 마땅한데도 말하지 않는 사람을 비웃는 것이니, 벙어리와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경계한다는 것인가. 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도 말을 해서 화를 자초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니, 이때는 벙어리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임금이 무슨 허물이 있었기에 고요(皐陶)와 익직(益稷)이 말하기를 마지않았으며, 무왕(武王)이 무슨 허물이 있었기에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말하기를 마지않았겠는가. () 나라의 문제(文帝)와 당() 나라의 태종(太宗)은 모두 몸소 태평성대를 이루었으나, 가의(賈誼)는 탄식하기를 마지않아 통곡을 했으며, 위징(魏徵)은 십사소(十思疏)에서 멈추지 않고 십점소(十漸疏)를 올렸다.

대개 신하의 마음가짐은, 우리 임금을 이미 성군이라고 여기지 않고 혹시라도 잘못이 있을까 염려하여 온 힘을 다해 곧은 말 하는 것을 꺼리지 않아서, 임금에게 허물이 있으면 곧장 간쟁하고 다스림에 잘못이 있으면 논하기를 마지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임금은 성군이 될 수가 있고 신하는 그 직분을 저버리지 않게 된다. 지금 성상께서는 요 임금처럼 어질고 순 임금처럼 공순하며 문왕처럼 공경스럽고 무왕처럼 의로워서, 말할 만한 허물이 없으나, 그러나 신하의 의리로는 어찌 이 정도를 만족히 여겨 여기에서 그쳐서야 되겠는가.

비록 어질더라도 그 어진 것을 무궁하도록 하고 비록 공순하더라도 그 공순함을 무궁하도록 하며 그 공경과 의로움도 모두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임금을 위하는 지성스럽고 갸륵한 뜻이다.

그런데, 조정에 있는 신하들은 모두 말하기를, ‘우리 임금은 이미 성군이 되었고 우리나라는 이미 잘 다스려졌다.’고 하여 한 달이 되어도 한 사람도 임금의 덕에 대해 논하는 자가 없고 한 해가 되어도 한 사람도 나라의 정치에 대해 논하는 자가 없으니, 이것이 어찌 벙어리와 다르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비웃는다는 것이다.

말이란 우호를 맺기도 하고 싸움을 일으키기도 한다. 자제들과 말할 적에는 효를 이야기하고 신하들과 말할 적에는 충을 이야기해야 한다. 만약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서 국정의 장점과 단점을 논하거나 그 책임을 가지지 않으면서 조정의 잘잘못을 맡기며, 심한 자는 공론을 저버리고 자기 당파를 위해 죽거나, 눈을 부릅뜨고 논란을 하다가 끝내는 임금을 배반하는 죄과에 빠지면서, 자신이 세화(世禍)에 죽는 것을 깨닫지 못하니, 이것을 이른바 경계한다는 것이다.

이제 만일 그 비웃음을 알아서 반성한다면 장차 조정의 명신이 될 것이며, 경계함을 알아서 본받는다면 반드시 처세에 능통한 자가 될 것이다.

자네는 이런 것을 알겠는가?”

 

傍有逆旅主人聞而笑曰

子不知耶是非人所命也乃造物之戱劇也夫造物之於人雖不以聲音笑貌視而或播於兒童之口而爲謠或形諸什物之間而爲器莫非欲人聞見而覺之也

是器之出未十年其義有二一以譏人之如啞一以戒人之當啞譏者何譏人之當言而不言無異啞者矣戒者何戒人之不當言而言只足以取禍是當如啞者矣

虞舜何嘗有過而皐益言之不已武王何嘗有過而周召言之不已漢之文帝唐之太宗皆身致太平而賈誼大息之不已而痛哭魏徵十思之不已而十漸

盖人臣之心不以吾君之已聖而恐有遺失明目張膽直言不諱過在于君則爭君不暇害在于政則論政不已

是以君不失爲聖而臣不負其職矣今聖上堯仁舜恭文敬武義未嘗有過之可言而然而爲臣之義豈欲以此爲足而止於是耶

雖仁而欲其仁之無窮雖恭而欲其恭之無窮其敬其義莫不如是是其爲君至誠惻怛之意

而在廷之臣皆曰我君已聖矣我國已治矣浹月而不聞一人論君德浹歲而不聞一人論國政是何異於啞者乎是則所謂譏也

惟口出好興戎與人子言依於孝與人臣言依於忠若無其位而論國政之長短非其責而言朝廷之得失甚者背公死黨瞋目語難末乃歸于反君之科而不自覺殞身世禍是則所謂戒也

今若知其譏而反之則將爲朝廷之名臣知其戒而法之則當爲處世之通人子知是耶

 

나는 그 이야기를 기이하게 여겨 이름을 물었으나, 주인은 입을 가리키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의도를 알아차리고 물러나와 이것을 기록하여 스스로 명심하고, 그리고 집권자에게 올리고자 한다.

 

余奇其說問其名主人指其口而不言余解其意退而記之以自警且欲以獻于當路者

 

 

2. 파아기설(破啞器說)

 

무릇 입이 있으면 울고 입이 있으면 말을 하는 것은 천하의 바른 이치이다. 입이 있어도 울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면 정상을 벗어난 요물이다. 이 물건이 나오고부터 조정에서는 해야 할 말도 하지 않고 이 물건이 나오고부터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경계하니, 이는 온 천하를 벙어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요망한 물건이다. 성세에 있을 바가 아니다. 드디어 부수어 버린다.

 

 

凡有口則鳴有口則言天下之正理也有口而不鳴不言則反常而妖矣自是器之出而朝廷之上可言而不言自是器之出而人皆以言相戒是擧天下而啞之也物之妖也非聖世所宜有也遂撞而破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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