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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득강전' 전문 현대어풀이

New-Mountain(새뫼) 2018. 2. 2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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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득강전(魚得江傳)

 

 

동국(東國) 세종조(世宗朝)에 한 명사(名士) 있으니, ()은 어(), ()은 득강이요, 별호(別號)는 관포이니,

일찍 진사(進士) 급제(及第)하여, 본디 재조 특출(特出)하여 문학이 유여(有餘) ()하여 구변(口辯)이 또한 미칠 자 없어, 일세 중의 통현(通玄)하여 옥당(玉堂)과 양사(兩司) 아장(亞長)을 차례로 다하고 명망(名望)이 거룩하더니,

걸군(乞郡) 사여(賜與)하여 관서(關西) 삼화(三和) 부사(府使)를 제수(除授)하였으니, 이때의 관서 방백(方伯)은 일품(一品) 재상(宰相)이로되, 득강과 더불어 본래 교분이 친하더니, 동도(同道) ()됨을 치하(致賀)하는지라.

관서는 번화지지(繁華之地). 득강이 부임하여 방백을 뵈오니, 방백 호승(好勝)을 다투고자 하여 득강 있는 고을에 사람을 보내어, 허물을 보아 조롱하고자 할새, 막하(幕下)를 불러 이르기를,

뉘 삼화의 가서 어공(魚公)을 속이고 올 자 있느냐?”

한 비장(裨將)이 여쭈되,

소인이 가면 어찌 속이지 못하리까? 명사 속이기 또 쉬우니이다.”

또 이르기를,

네 이제 가서 잘 속이고 오면 중상(重賞)하리라.”

비장이 즉시 답하고 삼화에 나아가니, 어공이 감영(監營) 비장 온다는 말을 듣고 친히 맞아 후대(厚待)하고, ()하여 불영사 절에 올라가 놀더니, 어공이 술을 많이 권하니, 비장이 감격하여 사양치 아니하고 주는 대로 먹고 취하여 방중(房中)에 거꾸러졌더니, 점점 인사(人事)를 모르거늘,

어공이 중을 불러 머리 깎는 칼을 가져오라 하여 비장의 머리를 밭게 깎고, 인하여 고깔을 씌우고 장삼(長衫)을 입혀 도로 두었더니, 또 한 중을 불러 이르기를,

술이 깨거든 노승이라 하여, 선사(禪師) 있은 뒷절에 재()를 올리오니, 바삐 올라가사이다.”

어공은 본관(本館)으로 돌아오더라.

비장이 밤중이나 되어 술을 깨어 머리를 들어보니 가벼웁고, 고깔이 씌어졌으며 중의 장삼이 입혔거늘, 놀라 고이 의심하여 이르기를,

나는 감영 비장이라. 본관과 함께 술 먹고 놀았더니, 본관과 비장은 어디 가고 어인 중이 여기 있느뇨?”

모든 중들이 답하기를,

감영 비장님은 어제 본관 원님과 함께 내려가 계시거늘, 어찌 군말을 하느뇨. 윗절에서 재 올리니 어서 가사이다.”

재촉하니, 비장이 정신을 진정치 못하여 하더니, 홀연 깨달아 어공에게 속은 줄을 알고 망극하여 뒹굴며 울다가 절문 밖에 나와 살펴보니, 역마(驛馬)도 간 데 없고 초로(焦勞)도 붙일 데 없어, 걸어 촌촌(村村) 전전(輾轉)하여 감영을 들어가니, 영문(營門) 하인들과 기생들과 통인(通引)이 일반(一半) 웃고 수상히 여기며 속은 줄을 보고 웃더라.

 

일모(日暮)한 후에 들어가 현신(現身)하니, 방백이 웃으며 이르기를,

속이노라고 자원하여 가더니 속이는 것은 커니와, 저렇게 속고 얼굴이 수상히 되었으니 다시 내 안전(案前)에 보오지 말라.”

하고,

저 비장이 저렇게 욕을 보았으니, 뉘가 능히 가서 설치(雪恥)하고 올 자 없느냐?”

비장 중에 나이 많은 자 여쭈되,

소인이 가면 속이지 못할지니, 저를 어찌 속이오리까? 설치나 하고 오리오다.”

방백이 답하기를,

네 가서 잘 다녀오면, 중상(重賞)하리라.”

즉시 하직하고 삼화로 가니, 어공이 군영(軍營) 비장 온다는 말을 듣고 웃더라.

그 비장 와서 어공의 허물을 잡아 설치하고자 하여, 가가(家家) 고을을 적간(摘奸)하니 탈 잡을 곳이 없더라.

아뢰었다가 속을까 두려워, 새벽에 일찍 가리라 하더라. 본관이 분부하기를,

군영 비장 갈 새벽에 여차여차 하라.”

() 요령(要領)을 듣고 꼭두서니를 진하게 다려 세숫물을 내왔더니, 세수하고 횃불 잡히고 갈 제, 보니 어제 백염()이 금일 적염()이 되었더라.

비장이 돌아와 내중(內中)에 어공을 속이지는 못하여도 속지는 아니한가 싶어서 순영(巡營)에 곧 들어가 뵈오니, 방백이 추찰(推察) 갔다는 비장 왔음을 듣고 아래로 바삐 나와 반겨 묻기를,

설치는 어찌하고 속지나 아니하였는가?”

비장이 여쭈되,

어찌 속으리까? 속이진 못하여도 속지 아니하기도 쉽더이다.”

방백 다시 눈을 들어보고 방성(放聲)으로 탄식하기를,

너도 아니 속노라 하더니, 이것이 어찌된 일인고. 네 갈 때에 백수(白鬚)러니 어찌 발갛게 되어가 상모(相貌) 되었느뇨?”

비장이 놀래어 수염을 보니, 과연 적수 되었더라. 비장이 참괴(慙愧)하여 깎고자하나 그리도 못하고 문을 닫고 사람을 보지 아니하더라.

방백이 두 번 욕을 보고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여 가로되,

군관 중의 뉘 능히 나를 위하여 한번 어공을 속길 자 없느냐?”

이때에 방백에 아뢰어 가기를 원하는 자 없는지라. 자제(子弟) 진사(進士) 곁에 앉았다가 청하기를,

당당히 가서 속이고 오리다.”

하니, 본디 구변과 지략이 어공과 더불어 상적(相敵)한지라. 부친이 분해함을 보고 여쭈되,

소자가 비록 지략이 없사오나, 한 번 가서 즉일(卽日) 두 비장의 참괴 순 설치(雪恥)하리이다. 저 무식한 비장 배()의 속음이 되리오.”

방백이 이르기를,

네 평일에 득강을 지혜 없다 말하더니, 너 곧 가면 설치도 못하고 욕됨이 더하리라.”

하노라.

진사 하직하고 선문(先文) 없이 가니라. 고을에 다다라 어공에게 통하되,

순사또(巡使道) 자제 향산(香山) 구경 가던 길에 잠깐 뵈오러 왔노라.’

하니, 일변(一邊) 감사하여 맞아 드리고, 일변 예방(禮房)을 불러 분부하기를,

여차여차 하라.”

하니, 진지와 반찬(飯饌)을 특별(特別)로 하여 잡수게 하니, 진사 오는 길은 전처럼 어공을 속이러 오는 길이라. 정색(正色) 단좌(端坐)하여 계교를 생각하더니, 이윽하여 하인이 진지를 올리고, 좌우의 기생들이 녹상(祿床) 객상(客床)을 쌍쌍이 받들어 차리니 찬물(饌物)이며 대접이 찬란하더라.

어공이 홀연 묻기를,

이것이 복() 생선이냐?”

감상(監床)이 답하기를,

이때 봉미(鋒味)오되, 처음으로 이 사이에 복()이 들어 왔기에, 하여 진지에 올리나이다.”

어공이 이르기를,

이 생선이 세상의 일미(一味)로되, 독함이 심하여 잘못하면 사람이 죽는다 하니 위태할까 하노라.”

진사 이르기를,

복 생선은 남들이 다 먹는 것이오. 공수(公需) 하인들이 어련히 다루었을까. 장부가 좋은 음식을 죽을까 하여 아니 먹으리오.”

하고, 장담하여 먹더니, 공수에서 급한 울음소리가 나거늘, 어공이 놀래어 하인으로 하여금 물으라 하니, 예방 들어 이르되 실색하여 황공하여 머뭇거려 주저하다가 여쭈되,

죽을 때인지라. 복 생선을 아침에 들여왔더니, 실수로 진지에 올리자고 하여, 그 생선 다루던 비자(婢子)의 자식이 생선 뜨다 먹더니 죽사오니, 공수 하인이 달아나며 혹 죽을 지이다.”

어공 변색(變色)하며 이르기를,

내 평일에 이 생선을 좋아하여 의심이 없다 하더니, 오늘은 손님도 원하여 차마 꺾지 못하였더니, 오늘 죽게 되니 대장부의 죽음 한이 있도다.”

분부하여 급히 똥물을 들여오라 하니, 진사 망극하여 황황(遑遑)히 받아먹으니 한 사발을 다 먹으니, 구린내가 코를 거슬러 진정치 못할 적에, 어공이 내게도 바삐 가져 오라 하니 하인이 이미 말 맞춤이라.

밀수(蜜水)를 풀어오니 어공이 오래 마시다가 남은 것을 진사를 주며 이르기를,

()은 많이 자셨으니 더 먹으리까?”

진사 사양치 아니하고 받아먹으니 이는 밀수로다. 그제야 속은 줄을 알고 도로하여 죽고자 하나 어찌 하리오. 즉시 순영으로 돌아와 그 부친을 뵈오니, 묻기를,

네 나가서 잘 다녀왔느냐?”

겨우 답하지 못하여 주저하니 방백이 짐작하고, 어공의 답서를 보고 분분(忿憤)하여 다시 보니, 하였으되,

고을이 빈한(貧寒)하여 대접할 것이 없어 똥물을 대접하여 보내나이다.’

하였거늘, 방백이 대경(大驚) 대노(大怒)하여 그 아들을 대책(大責)하기를,

똥물을 먹으려 하면, 여기는 없어 그리 멀리 가서 어가(魚家)의 똥물을 먹으리오.”

진사 답하기를,

어공이 무상(無狀)하여 사람 속이기를 일삼아 그리 죽일 줄을 알았으리요.”

전후(前後) 수말(首末)과 천연히 대접하던 말을 낱낱이 고하니, 방백이 대노하며 이르기를,

불과 희롱이거늘, 제 이같이 참혹(慘酷)한 욕을 뵈리오. 내가 친히 가서 번고(反庫)하고 그 고을에 집탈(執頉)하여 파직(罷職)을 하리라. 제 지략과 구변이 좋은들 방백과 어찌 겨루리오.”

 

이튿날 순력(巡歷) 관문(觀文)을 삼화로 먼저 놓으니, 어공이 선문(先文)을 듣고 방백 속일 계교를 하더라.

일일(一日)은 방백이 삼화 객사(客舍)에 좌정(坐定)하고 군기(軍器)와 각 고을 낱낱이 번고하고, 여러 날 될새, 수청 기생과 풍악을 다 가까이 아니하고 음식과 범사(凡事)를 간략히 하고, 위의(威儀)를 엄숙히 하여 잡인(雜人)을 금하니, 주관(主官) 어공도 자주 보지 못하고, 어공의 지혜로도 속이기 가히 어려울러라.

기생 중에 홍장이란 기생이 있으니, 인물이 비상하고 재조가 혜일(慧日)한지라. 통인 중에 인물과 언변이 초출(超出)한 놈을 택하여 홍장을 맡겨 방백을 속이려 모책(謀策)을 정한 후 분부하되,

만일 누설하거나 하면 죽일 것이니 그리 알라.”

하고,

객사 남() 밖에 삼간(三間) 초당(草堂)을 정결히 설()이고, 전후 주렴(珠簾)을 드리우고, 방백 있는 객사에서 보이게 하고, 객사 담을 초당 쪽으로 터지게 하고, 홍장으로 하여금 소복(素服)을 입히고, 객사를 향하여 달 같은 얼굴과 옥 같은 팔로 발속에 비치게 빨래질을 하고, 혹간 눈으로 홀리게 하라.”

 

이때는 춘삼월 망간(望間)이라. 방백이 여러 날 자리를 떠난지라. 통인만 데리고 요적(寥寂)하여 앉았더니, 홀연 무너진 담 사이로 초당에 계집을 보이니 짐짓 월선(月仙)이라. 심신이 표탕(飄蕩)하여 통인에게 묻기를,

저 담밖에 서답질하는 계집이 어떤 사람이며, 입은 거상(居喪)은 뉘 거상이뇨?”

통인이 답하기를,

소인의 누이 집에서 서답질 하나이다.”

방백 당기어 유유(幽幽)히 다시 보며 생각하되,

일정 기생을 가까이 한즉 일전(日前) 속을 듯한 일도 있거니와, 저런 계집을 가까이 하면 말도 샐 것이 없을 뿐더러, 그리하여 첩을 정하리라.’

하고, 가만히 통인에게 묻기를,

너희가 양인(良人)인가, 천인(賤人)인가?”

통인이 답하기를,

양인이어이다. 구실만 물러가면 과거도 보고자 하나이다.”

네 누이는 어떤 거상을 입었느뇨?”

통인이 슬픔을 먹여 답하기를,

소인의 누이 홍안(紅顔) 박명(薄命)이라. 거춘(去春)에 지아비를 얻어 살더니 수월 간에 죽사옵고 혼자 있나이다.”

방백이 생각하되,

통인을 달래어 이 깊은 밤에 얻으면 뉘가 알리오?’

() 묻기를,

네 누이 사족(士族) 부녀(婦女) 아니라. 젊은 계집이 어찌 혼자 늙으리오.”

소인의 누이 어려서부터 마음이 고집하옵더니, 또한 혼자된 후로 절()을 지키려 하나이다.”

방백이 이르기를,

내 간밤 사시(巳時)에 일몽(一夢)을 얻으니, 월궁(月宮) 선녀(仙女)를 만나 희롱하다, 입던 가입 치마를 벗어 쓰고 다니며 보던 선녀로다. 반드시 천정배필(天定配匹)이니 한 번 보매 정신이 황홀하여 진정치 못하노라. 네 나를 위하여 인연을 잇게 하면, 너의 일가는 양반이 되게 하고, 너를 갓 씌워 군관에 부쳐 데려다가, 내 병판(兵判) 곧 하면 천만호(千萬戶)를 주마.”

하고, 또 술을 부어 먹이면서 보물을 주며 간절히 달래니 통인이 이르기를,

사또 소인의 위의(威儀)를 덜려 아니하시고, 이렇듯이 분부하시니 지극 황송하여이다. 소인의 누이 마음이 철석(鐵石) 같사오니, 이 말을 듣사오면 죽을까 염려하나이다.”

방백이 이르기를,

사람이 죽기는 하나 출연(怵然)하랴. 아무렇거나 나를 위하여 제 말을 중()()하라.”

통인이 여러 번 청탁하니, 방백이 짐짓 성내는 체하여 이르기를,

내 말을 좇지 아니하면 다른 탈로 너를 죽이리라.”

통인이 거짓 황공하여 하제(下第)하는 체하다가 담 밖에 섰다가 들어와 여쭈되,

사또의 사연을 이리이리 누이에게 이르니, 누이 정히 아무 말도 못하더니, 웃고 있으니 다만 돌아 왔나이다.”

방백이 기뻐 이르기를,

그리하면 가망 있도다.”

하고 다시 통인에게 이르기를,

네가 허락을 받아오라.”

하니, 통인 거짓 가는 체하고, 담 밖에 섰다가 들어와 여쭈되,

이번은 심()히 달래오니 허락하고 이르되, ‘방백 영감이 나 같이 절리는 것을 저러하시니 어찌 하리오. 내 죽지 못한 탓이 새로이 이렇듯 하니, 방백이 대상(大相)이라. 한 때 인연을 지어 내통이 없으면 속절없이 지키던 절()을 잃고 도장(堵牆)의 박명(薄命)이 될까 하노라.’ 하더이다.”

방백이 이 말을 듣고,

난 다 된 일이니, 다시 가서 내 사연을 이리이리 전하라.”

하고,

오늘 반야(半夜)에 들여 오라.”

이렇듯 하기 여러 번 한 후, 통인이,

누이 출입 가장 어려우니, ()의 혹 관속들이 보면 또 말씀이 나기 쉬오니 사또가 돌아오시기를 청하더이다.”

방백이 허락하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이르기를,

네 누이 일이 매우 주밀(周密)하도다. 내 어찌 초당에 가기를 사양하리오.”

밤들기에 통인을 데리고 무너진 담 사이로 은밀히 넘어 가니 그 경상(景狀)을 어찌 차마 보리오.

이때는 삼춘 망간(望間)이라. 월색은 낮같은데 조용한 중야(中夜). 달개들이 또 처지고, 삼간 초당이 가장 정결하고, 기이(奇異)한 화초의 향내 진동하니, 방백 더욱 흥을 이기지 못하여 얼인 듯 취한 듯 문에 다다르니 홍장이 이복(異服)을 소담이 입고 나와 맞이하되, 방백 아리따운 태도를 보고 기운이 어질하여 홍장의 손을 잡고 방에 들어가니 향내가 진동하고 포진(鋪陳)이 정결하더라.

방백이 좌정 후에 홍장이 촉하(燭下)에 나아가 자기(自起) 사례하며 이르기를,

사또 천인을 더러워 아니 여기사, 높으신 몸이 더러운데 임하시니 지극 황공하여이다.”

하고 잔상(盞床)을 들이니 음식이 가장 소담하더라. 유리잔에 오향주(五香酒)를 가득히 부어 연()하여 삼 잔을 드리니, 방백이 주는 대로 받아 마시고 반취하여 취하매, 홍장이 오래 교태를 보이다가 원앙(鴛鴦) 금침(衾枕)에 나아가 운우(雲雨)의 정을 이루니 탕음(蕩淫)함이 비할 데 없더라.

이윽하여 동방이 장차 밝고자 하여 통인이 와 여쭈오되,

창 밖에 본관과 각 청 문안(文案)들이 대령(待令)하였사오매, 아직 기침(起寢) 아니 계시니, 기침 후 문안(問安)하기를 지취(志趣)하옵고 가만히 오사이다.”

방백이 비록 신명(晨明) 미흡하나 통인의 말을 듣고, 바삐 객사에 돌아가기를 정히 민망하더니 홍장이 가로되,

사또 남모르게 들어가시기 쉽지 아니하오니, 이제 통인을 먼저 보내어 객사 대청(大廳)의 담을 다 치우고, 첩의 사촌의 애비 상복이 있사오니 상복을 입고, 거짓 소지(所志)를 들고 의송(議訟) 청하는 백성인 체하고 큰 문에 들어가 발로 객사 대청에 들러 상복을 벗어 통인에게 보내시고, 방으로 들어가시면 뉘 알 이 있으리오.”

방백이 이 말을 듣고 가장 기뻐하여 이르기를,

네 모책은 진실로 남자 되었던들 천하병마대원수(天下兵馬大元帥)할 재조로다. 즉시 상복을 들여오라.”

하여, 홍장의 계교대로 하니 그 경상을 차마 보지 못할러라.

어공이 관속(官屬)하여 들어가 문안하고 모르는 체 하더라.

이튿날 방백이 다른 고을로 순력(巡歷)할 제, 어공이 홍장과 통인을 불러 이르되,

너희 방백을 잘 속였거니와 홍장을 못 잊어져 돌아 올 게라. 다시 들러올 것이니 이리이리 하라.”

방백이 홍장을 잊지 못하여 조용히 홍장을 부르려 하고, 어공의 고을로 선문(先文)하니, 어공이 분부하여,

조용히 홍장을 부르라.”

하고, 어공이 분부하여 순력하는 길에 무덤을 새로이 크게 만들 방백 돌아오기를 기다리더니, 이윽고 과연 방백이 들러 와 어공으로 더불어 이르기를,

군기는 금가(今街)의 대사(大事)이라. 다시 볼 것 있어 또 왔더니, 하여 본관에게 큰 폐 될까 염려하노라.”

어공 이르기를,

사또 정도(正道) 맑으시고, ()이 엄숙하사 하인 하나로 작폐(作弊)를 일으킬까 기생과 풍악을 다 물리치시니, 어찌 추호나 본관에게 해 있으오리까? 다시 뵈오니 그 영행(榮幸)하여이다.”

하고 서로 술을 먹으며 전일 피차 불변(不變)한 정회(情懷)을 이르며 즐기더라. 방백이 목전(目前)에 속은 일이 없고, 주인의 은근한 정화(情話)가 조금도 속일 기색이 없는지라. 가장 기뻐하여, 홍장을 보려 바삐 날 저물기를 기다리더니,

객사에 돌아와 급히 담 무너진 데로 바라보니, 초당은 완연한데, 인적이 끊어졌으니, 적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밤이 깊고 땀이 공수(空手)하거늘, 통인을 불러 홍장의 안부를 물으니, 통인이 거짓 한숨지고 눈물을 흘리며 사색(死色)으로 목이 메어 답하기를,

소인 누이 사또 행차하신 십여 일 후에, 홀연 병을 얻어 망일(望日) 만에 세상을 버리오니, 박명한 홍장이 사또께 인연을 맺어 떠나실 적에 내게 하시는 말씀이 없사오나 사또 회환하실 때에 다시 뵈옵기든 길가에 묻어주면 혼백이라도 다시 보겠노라.’ 하옵기로 하 잔잉하여 제 원대로 대로변에 묻삽고 설워하나이다.”

방백이 이 말을 들으매 거의 실절(失節)할 듯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어 옷 적시는 줄을 깨닫지 못하는지라.

이때는 망간이라. 월색은 초당 가득하니, 안색을 본 거 같아 반만치 정신이 없어 헛말로 통인을 데리고 담 터진 데로 초당만 바라보니, 짝 잃은 기러기 천산(天山)을 대하니라.

방중에 들어가 혹 불 밝히고 침석을 의지하여 전전불매(輾轉不寐)하더니 홀연 신() 소리가 나며 방문이 열리거든, 눈을 들어 보니 홍장이 치마를 걷어 안고 촉하에 완연히 들어와 앉아 나직하게 문안할 제, 옥 같은 두 귀 밑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기를,

사또 이별하온 지 수월이라. 유명(幽明)이 타이(他移)하나, 이미 인연을 지은 고로 상제(上帝)께 여쭈어 한 때 말미를 얻어 사또께 뵈오러 왔사오니, 사또 유명 다름을 이르지 마소서.”

방백이 이 말을 듣고 얼인 듯 꿈인 듯 생시인 듯 취한 듯 미친 듯 정신을 진정치 못하다가, 양구(良久)에 겨우 살아나서 홍장의 손을 잡고,

()이 나를 잊겠느냐? 아무리 유명이 다른들 어찌 너를 잊으리오.”

인하여 생각하던 회포를 이르며 너를 위하여 다시 온 사연을 이르고, 인하여 상상(牀上)에 나아가니 홍장이 산 사람이라 어찌 귀신과 동침(同寢)함과 같으리오.

홍장이 이르기를,

박명 홍장은 한 때 인연을 맺고 다시 이별하오니, 어찌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리오. 다만 사또님은 지나시는 길에 소첩의 무덤이 있사오니 일배주로 위로하시오면 혼백이라도 즐거울까 하나이다.”

방백이 허락하거늘, 또 가로되,

그리하여 영월정에 올라가시면, 저 종빈(從賓) 시녀(侍女)들과 함께 올라갈 제, 강물가 사람 못 보는데 사또를 다시 뵈옵고 가리이다. 그러나 어찌 다시 만나기를 바라리오. 이 말을 조금도 허수히 아시지 마소서.”

하니 방백이 허락하거늘 홍장이 나오니라.

 

이튿날 방백이 홍장을 위하여 군영으로 돌아갈 제, 과연 길가에 새 무덤이 있거늘 하인을 불러 묻기를,

저 어인 무덤이뇨?”

하인 답하기를,

이 고을 통인의 누이 죽어 여기에 묻었다 하더이다.”

방백 이르기를,

내도 또한 짐작하리로다. 내게 열 팔촌 누이 무덤이니, 허배(虛拜)나 하고 가리라.”

하고 제물을 차려 제() 지내니, 어공이 방백의 하는 거동을 보고 한심이 여기더라. 제를 필()한 후에 어공에게 묻기를,

영월정이 자고로 명경(明景)이라 하되, 공사(公事) 분골(奔汨)하여 못 보았으니 구경하고자 하노라.”

답하기를,

여기서 가깝나이다.”

방백 이르기를,

강산 풍경이 동국의 제일이라 신선이 왕왕 논다 하니 그러한가?”

즉시 영월정에 올라가니 각색 풍악과 경취(景趣) 지약(只若) 찬란하니 모든 수령들과 대소 하인들이 아니 즐거워하는 이 없으되, 홀로 방백이 강산 바라보고, 경이(驚異) 없어 홍장만 기다리더니, 홀연 소선(小船)이 강중(江中)에 떠서 청포(靑布) 돛을 비껴 달고, 한 노인이 청의(靑衣) 화관(花冠)을 쓰고 군홍상(裙紅裳)한 선녀를 데리고 동자로 옥저를 불리고 들어오니, 진시(眞是) 선관(仙官)이라.

방백이 바라보매 펼친 돛에 누런 글자로 썼으되, ‘일엽주(一葉舟)에 홍장을 실었노라.’ 하였더라.

방백이 가장 기뻐하더니, 그 배 영월정에 대이고 노인이 방백에게 이르기를,

나는 여동빈(呂洞賓)이라. 홍장을 데리고 상제께 올라가더니, 그대로 하여금 다시 보게 하노라.”

홍장이 방백을 보고 절하며 이르기를,

첩이 상제께 명을 밧자와 사또를 뵈오러 왔나이다.”

하고 똥물 한 그릇과 환약 세 개를 주며 이르기를,

이를 먹으면 일이 있을 것이니 먹으라.”

하니, 방백이 받아먹으려 하니 구린 냄새 코를 거슬려, 또 마시지 못하여 반만 먹고 정신을 진정치 못하거늘, 선관이 이르기를,

홍장으로 더불어 천상으로 올라가 말년을 기약하였더니, 선약 먹기를 반을 하니 정성이 부족한지라. 어찌 선산(仙山篹)을 더럽게 여기리오.”

하고 방백을 내려다 놓고 배를 저어 빨리 가니, 방백이 망극함을 이기지 못하여 강상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거늘, 어공이 못 보는 체하고

사또 어찌 이처럼 하시니까?”

방백이 흐느끼며 이르기를,

내 선비 적에 이곳에 와 놀더니 다시 이곳에 오니, 옛 벗은 다 없고 다만 나뿐이라. 그러한 고로 자연 상감(傷感)하여이다.”

어공이 받들기를 간비(奸非)살이 하였는지라.

 

그 아들이 마침 와 다녀가더니, 방백이 어공에게 절절이 속음을 듣고 분하여 돌아가 그 부친께 가서 사연을 이리이리 고하니, 그 대간(臺諫)이 즉시 제사(題辭)글에

관서 방백은 국가 중임(重任)이라. 수령 어득강과 더불어 호승(好勝)을 겨루다가 절절이 속을 뿐 아니라, 기중(其中) 방백이 촌간(村間)에 가 상복을 입고 객사에 출입하여 아전의 무덤에 치제(致祭)하고, 영월정의 가 똥물을 먹고 눈물짓던 말씀이 있사오니 나문(拿問) 하여 지이다.’

상달(上達)하니, 상이 이르기를,

방백의 소회(所懷)가 무상하거니와, 수령이 가장 그르니 어사를 택출(擇出)하여 득강 소회를 탐지한 후처치(後處置)하라.” 저장

하시니, 조정(朝廷)에서 어사를 내리시라 상달(上達)하고 어공 고을로 보내매, 어사 고을에 이르러 어공을 속이던 절차와 방백의 해악한 거동을 절절이 세기(細記)하여 지이에 넣어 장()하고, 그날 저물어 근처에서 머물더니,

어공이 또 어사 속일 계교를 생각하고, 가장 고운 기생 아이를 가르쳐 보내어 어사 자는 맞은 방에 있다가 기책(奇策)을 일으키고, 늙은 그 할미로 하여금 좋은 술과 석식지물을 들여 먹게 하니, 어사 오래 주렸는지라. 반겨 할미에게 묻기를,

촌가에 어찌 이런 좋은 음식과 좋은 술이 있느뇨?”

할미 답하기를,

마침 제 아비 죽은 날이옵기로 제수(祭需)을 약간 하였삽더니, 귀하신 행차 이 같은 음식을 맛없다 마시고 잡수소서.”

() 문하기를,

저 방에서 책 보는 아이는 어떤 아이인가?”

할미 답하기를,

소인의 자식이오나, 제 아비 죽사온 날로 형세(形勢) 없사와 혼인도 못하고 설워하나이다.”

어사 이르기를,

내 길손이 오래니, 좋은 음식을 먹어도 기쁘지 않고, 잠도 없고, 새날이 멀었으니, 그 아이 책을 가지고 와 읽으면 객회(客懷)를 잊을까 하노라.”

할미 답하기를,

그 무엇이 어려우리까 마는, 이 아이가 행차 계신 곳에 오기를 두려워 하나이다.”

어사 간절히 청하기를,

내 이 고을에 하거든 할미를 크게 상급(賞給)하리라.”

할미 물러와 아이를 달래어 손을 이끌고, ()() 고와 하오는 술()이 비할 데 없으니, 어사 혹애(惑愛)하여 책이 마음이 없어 심신 황홀하여 나아가 옥수(玉手)를 잡고 희롱하니, 아이 아미를 숙이고 만연(漫然) 교태(嬌態)하며 이르기를,

아무리 천인(賤人)이온들 예() 없이 못할 것이오니, 한 잔 술로 인연을 결단(決斷)하사이다.”

어사 답하기를,

내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으니 허물을 말라.”

하고 술을 받아 마시고 상()요에 나아가니 여()()()(). 술이 취하고 곤하여 잠을 깊이 들거늘, 그 아이 가만히 일어나 어사의 허리띠의 열쇠를 내어 문서 지이를 열고 문서 다 내고, 아이 적삼을 넣었더니, 어사 이튿날 그 아이와 이별하고 경성에 올라가니라.

그 아이 문서를 내어 제원(諸員)에게 들일지라.

 

어사 경성 올라가서 대간께 뵈오니, 만조(滿朝) 모두 어사 문서를 들어 보니 문서는 없고 계집의 적삼 하나가 있더라. 만조 다 괴이 여기고, 어사또 대경 무안하여 청죄(請罪)하며 이르기를,

소인 혼암(昏暗) 불측(不測)하여, 또한 어득강에 속은 바가 되오니 사조(辭朝)를 청하나이다.”

상이 가로되,

너를 보냄은 방백의 속은 일과 어득강이 속인 일을 낱낱이 알고자 함이러니, 너도 속음이라. 아직 물러 있으라. 내 사핵(査核)하여 득강을 다스리리라.”

하고, 즉시 어득강을 빨리 올리라 하더라. 득강 잡히어 올 제, 벗들이 길가의 섰다가 묻되,

어찌 죽으려 가느냐?”

하니, 어공 이르기를,

현수(懸首)할 곳에 목들이러 가노라.”

이는 즉 한 재담이라.

말을 잘 대답하여 놀다 돌아오마.”

하여 계시매 바로 궐하에 들어가니 상이 전좌하시고 전교하시기를,

득강을 빨리 잡아들이라.”

하시니, 득강이 기웃거리며 뛰어 놀거늘,

어찌 절며 걷느뇨?”

득강이 답하기를,

문이 하 많사오니 어느 문으로 들어옴을 모르나이다.”

상이 내관으로 하여금,

사모를 벗기고 치라.”

하니, 득강이 섬에 내려 앉아 웃거늘, 상이 연고를 물으시니, 득강이 답하기를,

전일 벼슬 많이 올랐삽더니 오늘에서 많이 내렸사오다.”

상이 식견과 재담을 기특히 여기시고, 만조 입을 가리고 웃더라.

상이 조신들에게 내종(乃終)에 하사(下使)하여 닭의 알 하나씩 가져오라 하시니, 각각 하나씩 가져 왔거늘, 상이 득강을 불러 이르기를,

네가 재조가 있으니 이걸로 성을 쌓으라.”

하시니, 답하기를

한 길 성은 쌓으나 반 길은 못하나이다.”

하고 한 길을 쌓으니 만조의 상하 다 칭찬하더라. 이후부터 닭을 알로 성을 쌓는다는 말이 있으나 실로 보기는 어렵도다.

상이 그 재조를 기특히 여겨 동돈령(同敦寧)을 제수하시니라.

아까 조관이 각각 닭의 알을 가져오거늘, 득강이 문득 수탁의 소리를 하니 상이 물으시니, 답하기를,

암탉이 알을 낳으면 수탁이 우나이다.”

하니 제신들이 다 욕을 보았는지라.

 

이때에 또 능행이 있으매

득강을 물에 밀쳐 넣었다 꺼내라.”

하시니 득강을 물에 밀어 넣고 급히 건져내니, 상이 불러 묻기를,

무슨 연고로 물에 빠졌던가?”

답하기를,

굴원이를 보러 가나이다.”

상 이르기를,

굴원이 무엇이라 하던고?”

답하기를,

굴원이 글 한 귀 지여주더이다.”

상 이르기를,

글귀를 외워라.”

답하기를,

그 글에 하였으되, 나같은 이는 암주(暗主)를 만나 이 물에 던졌거니와, 자네 같은 이는 명주(名主)를 만나 무슨 일로 물에 던지는고? 빨리 나가라.”

하더라. 상이 만조를 돌아보시고 칭찬하시기를,

이련 재조와 구변은 없도다.”

하고 즉시 예관(禮官)을 불러 승품(陞品)하라.”

하시니 예관 여쭈되,

공을 올림이 어떠하오니까?”

상 이르기를

그리하라.”

하시니 조야(朝野) 모두 어공이라 하더라.

 

병술(丙戌) 정월(正月) 염 이일(二日) 필교신서언(畢校新書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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