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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추씨
박몽구
오랜만에 육지에 나가면
사람들은 억대 부자가 왔다고 놀려대고
모주꾼 친구들은 밤새워 술값이나 씌우려고
그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허나 천상 농부인 그에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사실 지금이라도 논밭 몇 평 팔면
번쩍번쩍한 자가용도 사고 아파트도 산다지만
더이상 제비꽃 구경할 수 없고
육지 사람들의 오물만 버려져 악취만 풍기는
개발이 도대체 누구 코에 걸리는 물건인지 몰라
그는 안주도 없는 술을 바닥 보이도록 들이켰다
푹푹 빠지는 개펄이 싫던 판에
땅 팔고 집 팔아 육지로 간 벗들은
벌써 있는 것 다 까먹고
고향에 돌아오려 해도 오두막 한 칸 얻어 들기 어려운데
새마을연수원이 들어선다며 대대로 모셔온 산소까지 파헤치더니
바다가 죽은 자리에는 국제공항이 들어선다는 소문만
사람들의 등을 떠밀어내고 있다.
추씨는 부슬부슬 내리는 안개비 속에
그마저 조상들을 버릴 수는 없다며
고향을 잃은 벗들과 함께
지금은 흉가처럼 버려진 새마을연수원으로 몰려갔다
투기꾼의 자가용으로 그물 한 코 던질 수 없는
포구를 막아섰다
섬을 섬사람들에게 돌려 달라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실천문학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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