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의 술 마시는 것을 연하여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더할 수 없는 독음(毒飮)이었으나, 그 소위 술집이란 모두 항아리 구멍처럼 생긴 들창에 새끼로 얽은 문에 지나지 못하였으며, 흔히들 길 왼편 소각문(小角門)에 새끼로 발을 늘이고 체바퀴로 등롱(燈籠)을 만들어서 단 것이 반드시 술집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시인(詩人)들의 시중에 나타난 파란 기(旗)는 모두 실상이 아니었으니, 나는 여태까지 술집 등마루에 나부끼는 깃발 하나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술잔은는 너무나 커서 반드시 커다란 사발에 술을 따라 이맛살을 찌푸리며 한꺼번에 기울이곤 한다. 이는 무작정 술을 뱃속에 따르는 것이요, 마시는 것은 아닐 것이며 배 불리기 위함이요, 취미를 돋우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 번 술을 마시면 반드시 취하게 되고, 취하면 문득 주정을 하게 되고 주정이 나면 문득 서로 격투를 시작하여, 술집의 항아리와 사발들을 남김없이 차 깨뜨려 버린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소위 풍류(風流)ㆍ문아(文雅)의 모임이라는 참된 취지가 아랑곳없을뿐더러 도리어 중국의 술 마심이야 아무런 배불릴 것이 없음을 비난하는 것이 일쑤이다. 이제 이런 술집을 압록강 동편에 옮겨 본다 하더라도 하루저녁을 참지 못하여 벌써 그 보배로운 그릇과 골동을 두들겨 깨고, 아름다운 화초를 꺾고 밟아 버릴 것이 가장 아까운 일이리라 생각된다.
기분을 즐기는 것도 여유를 부리는 것도 아니리라.
그러면
원통한 일이 많아서일까?
이렇게 우리 민족의 술붓기는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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