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텍스트/옮겨온 고전

가족을 생각하며 - 다산의 농아광지

New-Mountain(새뫼) 2014. 3. 3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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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양지에서 막내 아들의 죽음을 듣고 쓴 다산의 글

가슴이 먹먹하도록 서늘한 글이다. 

여기 무슨 사족을 달랴?

 



농아광지 

정약용

 

  네가 세상에 들어왔다가 세상을 나간 것은 겨우 세 해뿐인데, 그 두 해를 나와 떨어져 살았구나. 사람이 60년을 산다면 40년을 그 아비와 떨어져 산 것이니 슬프구나. 

  네가 태어났을 때 내 근심이 깊어 너의 이름을 '농'이라 하였지. 얼마 후 집안 형편이 좋아지면 너로 하여금 농사나 짓게 할 뿐이었던 것이니 그것이 죽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었단디. 그런데 나로 하여금 죽게 한다면 장차 기꺼이 황령을 넘고 열수를 건널 것이니, 이는 내가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지. 나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데도 살아 있고, 너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은데도 죽었으니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로구나. 내가 네 곁에 있었다 해도 꼭 너를 살릴 수는 없었겠지만 네 어미의 편지에 네가,

 " 아빠가 돌아오셔도 내가 홍역을 앓고 아빠가 돌아오셔도 내가 마마를 앓아요?"

했다고 하니 네가 헤아리는 바가 있어서 이 말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너는 내가 물어오는 것을 의지할 것으로 삼았는데 너의 원을 끝내 이루지 못했으니 슬프구나.

 

  신유년 겨울, 과천의 가게에서 네 어미가 너를 안고 나를 보냈지. 네 어미가 나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분이 네 아빠야."

하면 너는 따라서 나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 저분이 우리 아빠."

라고 했으나 아비의 아비됨을 너는 진실로 알지 못했을 것이니 슬프구나!

 

  이웃 사람이 서울 가는 길에 소라껍질 두 개를 부쳐 네게 전해 주게 했었다. 네 어미의 편지에 이르기를, 네가 매번 강진에서 사람이 올 때마다 소라껍질을 찾고, 얻지 못하면 마음속으로 몹시 침울해졌다고 하였지. 네가 죽고서야 소라껍질이 도착했으니 슬프구나. 네 모습은 깎은 듯 빼어났고 코 왼쪽에는 작은 점이 있었으며 네가 웃을 땐 양쪽 송곳니가 뾰족이 드러났지. 

아아, 나는 다만 네 모습을 생각하고 거짓 없이 너에게 고한다.

(집에서 온 편지를 보니, 네 생일에 너를 묻었다고 하는구나.)

[출처] 농아광지 - 정약용|작성자 브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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