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텍스트/옮겨온 고전

정신적 양식의 배고픔 - 이덕무가 이서구에게

New-Mountain(새뫼) 2014. 4. 2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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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 좋은 물건이라곤 단지 《맹자》 일곱 편뿐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딜 길 없어 2백 전에 팔아 밥을 지어 배불리 먹었소. 희희낙낙하며 영재 유득공에게 달려가 크게 뽐내었구려. 영재의 굶주림도 또한 하마 오래였던지라, 내 말을 듣더니 그 자리에서 《좌씨전》을 팔아서는 남은 돈으로 술을 받아 나를 마시게 하지 뭐요. 이 어찌 맹자가 몸소 밥을 지어 나를 먹여주고, 좌씨가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하는 것과 무에 다르겠소. 이에 맹자와 좌씨를 한없이 찬송하였더라오. 그렇지만 우리들이 만약 해를 마치도록 이 두 책을 읽기만 했더라면 어찌 일찍이 조금의 굶주림인들 구할 수 있었겠소. 그래서 나는 겨우 알았소. 책 읽어 부귀를 구한다는 것은 모두 요행의 꾀일 뿐이니, 곧장 팔아치워 한 번 거나히 취하고 배불리 먹기를 도모하는 것이 박실(樸實)함이 될 뿐 거짓 꾸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오. 아아!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맥락에 숨어 있는 뜻이야 다른 것이겠지만,

나는 이렇게 읽힐 뿐이다.

"정신적 양식이 육체적인 양식을 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인가?"

그러고 보니 이들은 모두 서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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