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에서 살기/섬마을의 단상

세평숲의 소찬

New-Mountain(새뫼) 2014. 4. 6.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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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 잠깐 소래포구를 다녀왔다. 가려고 작정한 것이 아니라, 가다가 표지판이 있어 그리로 차를 돌린 것이다.

예전 그러니까 몇 십년전의 소래포구를 기억하고는 그 추억을 좇은 것이다.

 

하지만, 아, 

그곳은 많은 차들, 그 보다 더 많은 사람들, 더더 많은 세상 냄새와 세상 소리들로 가득차 있었다.

아내는 쭈꾸미를 원했지만, 마땅히 쭈꾸미를 구할 만한 곳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시장과 해물집이 지천인데도 말이다.

칼국수 두 그릇으로 부족한 공복을 달래었다. 그닥 감동적이지도 않은 맛. 그닥 싸지도 않은 가격.

결국 소래포구에서는 붕어빵을 닮은 대게빵을 몇 개 사는 것으로 모처럼의 나들이를 대신하고 만다. 

 

그리고 다시 인천대교를 건너 영종도로.

바람이 뭍보다 차다. 뭍에서는 벌써 벚꽃이 바람에 꽃잎들을 떨구도 있지만, 여기는 아직 피지도 않았다.

덕분에 몇 일 차가운 바람에도 아직 봄 꽃잎들이 건재하다. 여전히 봄은 멀었다.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대로 돌아가지 않고 두세 호흡 늦은 게 좋다.  꿈뜬 내가 적응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

 

결국 쭈꾸미는 집 근처 슈퍼에서 사온 칠레산 홍어로 대신한다. 막걸리 한 병과 묵은 김치 한 소박이와 그리고 끈끈한 말로의 음악.

그렇게 장만하고 집 옆 세평숲으로 소풍을 갔다. 여전히 바람은 차지만, 숲 안 작은 벤치에 자리를 만들고 아내와 막걸리 잔을 주고 받는다.

딱히 할 얘기도 없다. 세상 얘기 잠깐 하다 끊어지고, 애들 얘기 잠깐 하다 술마시고, 오늘 소래포구와 영종도 날씨 얘기하다 알싸한 홍어 냄새에 취한다. 

그러다 막걸리 얘기에 홍어 얘기를 하려다가 급하게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얘기 자체가 중단된다. 아니 술이 다 떨어져서 그런 것일 게다.

 

찰랑거리는 빈 술병을 들고 세평숲을 거닐기로 했다.

끝까지 가려다가 추워서 발걸음을 돌리고, 바닷가로 나서서 문득 오후 햇살을 보니 해넘이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잠시 서성거리다가 바람불어 그냥 돌아온다.

아내는 가진자의 여유라 한다. 언제든 다시 편히 볼 거 아니냐고. 참, 말은... 영종도니까 그 말이 그럴싸하다.  

 

나도 멋있는 말을 하나 만들어내고 싶었다.

국산 쭈꾸미와 칠레산 홍어는 맛의 차이가 아니라 멋의 차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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