聞丐歌(문개가)
宋純(송순, 1493~1582)
신영산 옮김
曉夢初罷驚剝啄 (효몽초파경박탁)
推枕起聽歌聲長 (추침기청가성장)
呼兒走出問所由 (호아주출문소유)
知是老丐謀朝粮 (지시로개모조량)
不憂不哀乞語傲 (불우불애걸어오)
腰下只見垂空囊 (요하지견수공낭)
招來致前詰其由 (초래치전힐기유)
百綻一衣無下裳 (백탄일의무하상)
云我曾爲富家子 (운아증위부가자)
衣餘篋中粟餘場 (의여협중속여장)
膝下兒孫床下妻 (슬하아손상하처)
人生一世無他望 (인생일세무타망)
臠牛行酒聚比隣 (연우행주취비린)
嬉嬉笑語頻開張 (희희소어빈개장)
謂是天公賦命好 (위시천공부명호)
自擬基業傳無疆 (자의기업전무강)
吁嗟人事苦不常 (우차인사고불상)
甲子年間遇狂王 (갑자년간우광왕)
朝生一法如蛇虺 (조생일법여사훼)
暮出一令如虎狼 (모출일령여호랑)
風雷行處不暇避 (풍뢰행처불가피)
無翼奈何高飛翔 (무익내하고비상)
父祖經營百年產 (부조경영백년산)
敗之一日猶莫當 (패지일일유막당)
家破田亡餘赤身 (가파전망여적신)
升天入地無可藏 (승천입지무가장)
妻東子西我復南 (처동자서아부남)
雲分雨散情茫茫 (운분우산정망망)
飄零于今三十年 (표령우금삼십년)
死生憂樂已相忘 (사생우악이상망)
人間何處不可住 (인간하처불가주)
一杖一瓢行四方 (일장일표행사방)
區區形骸知么麽 (구구형해지요마)
求人猶足救死亡 (구인유족구사망)
腹中繼食飢不害 (복중계식기불해)
身上繼衣寒不傷 (신상계의한불상)
更無餘憂來相干 (갱무여우래상간)
優遊卒歲於康莊 (우유졸세어강장)
公侯將相縱有榮 (공후장상종유영)
君看前後紛罹殃 (군간전후분리앙)
出門揮杖歌復高 (출문휘장가부고)
白首意氣何軒昂 (백수의기하헌앙)
得喪已知不關我 (득상이지불관아)
莫言丐者皆尋常 (막언개자개심상)
새벽에 찾아온 늙은 거지
새벽에 꿈 깰 무렵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베개를 밀쳐두고 들어보니 노랫소리 길기만 하다.
아이 불러 밖으로 내보내서 연유를 물어보니,
알겠구나. 늙은 거지 아침밥 빌러 왔다 하는구나.
그 거지 근심 없고 슬픔 없어 구걸하기 건방지고
허리 아래 빈 자루만 다만 늘어져 보이더라.
연유나 묻자 하고 불러서 앞으로 오게 하니
백 번 기운 옷 한 벌을 겨우 걸쳐, 바지조차 없었어라.
말하기를, “내 일찍이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나서
궤짝에는 옷이 가득 마당에는 곡식이 남았다오.
슬하에는 아들과 손자가, 침상 밑엔 아내 있어
내 인생 한 평생에 달리 바라는 게 없었지요.
소고기 안주에다 술잔 돌려 이웃들을 모아 두고
웃으며 떠들면서 자주 잔치를 벌였지요.
이를 보고 다른 이들 좋은 팔자 타고났다 부러워했고
스스로도 가업이 끝없이 전하리라 생각했지요.
아아, 사람의 일이란 게 언제나 고통스러워
지난 갑자년에 미친 왕*을 갑자기 만났구려.
아침에 법이 하나 생겨나니 독사와도 같았고,
저녁에 법이 하나 내려지니 호랑이나 승냥이라.
바람 불고 우레가 몰아치니 피할 겨를 없는 데도
마땅히 날개가 없으려니 어찌 높이 날아가겠소?
부친과 조부께서 경영하신 백 년의 가업인데
무너지니 하루도 감당하지 못할 형편이 되었지요.
깨진 집과 황폐해진 논밭에 남겨진 건 몸뚱이라.
하늘로 오를까요, 땅으로 들까요, 감출 수 없었으니
아내는 동쪽으로, 자식은 서쪽으로, 이내 몸은 남쪽으로
구름이 나뉘듯이 빗물이 흩어지듯 정은 아득 멀어지고
머물지 못하고 떠돈 지가 이제 어언 서른 해
죽고 살고 근심하고 즐거움은 이미 서로 잊었지요.
이 세상 어디인들 어찌 머물지 못하리까.
지팡이와 표주박 하나로 사방을 떠돌다가
구차한 이 형체가 별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니,
남에게 빌어먹어도 죽음이나 구제하면 족하지요.
배 속에 넣는 음식, 주림을 면하면 그만이고,
몸에다 걸친 옷에 추위에나 상하지 그만이라오.
서로에게 간여할 근심이야 더는 없으려니
한가로이 노닐면서 평안히 한 해를 마치겠지요.
정승이나 장군이나 보기에는 영화롭기는 하더라도
그대도 보셨지요, 앞뒤에서 재앙에 걸려듦을.”
문을 나서 지팡이를 흔들면서 노랫소리 다시 높이니
흰 머리에 의기는 어찌도 저렇게 당당한가.
얻고 잃기 자기와 상관없음을 이미 아는구나,
말하지 말지어다, 거지라고 모두 보잘것없다 하고.
* 미친왕은 연산군을, 갑자년은 갑자사화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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