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시; 14년 이후

떠나보냄과 떠나감에 대하여

New-Mountain(새뫼) 2021. 1. 26.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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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보냄과 떠나감에 대하여

 

막내녀석이 짐 꾸리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서툰 몸짓에 갑갑하여 밀쳐내고 대신 꾸려줍니다

제 살림 하나 건사하는 것도 저리도 미욱하기만 한데

이제 혼자 살아보겠다던 녀석의 선언은 먹먹합니다

짐을 싸 보내면 혼자서 짐을 풀 수나 있을까요

 

문득 핸드폰에 문자가 들어옵니다

일상처럼 읽어보는데

가슴이 무너집니다

아내를 멀리 떠나보냈다는 

벗의 궂긴 몇 줄의 글입니다

 

여전히 앞에 쌓여 있는 막내녀석의 짐을 그저 두고

잠시 시간을 등지고 잠시 집 밖으로 나섭니다 

하늘은 뿌옇고 그런 하늘을 꽤 오래 올려다 봅니다

마음을 쉬 정리하지 못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너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떠나보내는 것일까요 떠난 것일까요

떠나보내는 것일까요 떠나는 것일까요 

떠나보내는 것과 떠나는 것이

떠나보내는 것과 떠나려는 것이

그저 다르지 않은 것일까요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적지는 않았다고 하였지만

감정의 다독임과 언어의 절제는 여전히 익숙지 않습니다

아니 다독이며 절제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지요

하늘은 더 뿌옇게 되다가 빛을 잃고 어두워집니다

오늘 하루는 떠나갑니다 내가 떠나보내지도 않았는데   

 

들어와보니 이미 짐은 꾸려져 있습니다

떠나보내지 않아도 떠나가겠지요

시간이 그런 것이라면 

살아가는 이치가 그런 것이라면

떠나보내지 않아도 떠나가려 하겠지요

 

핸드폰을 열어 벗을 찾고 마지막으로 통화를 누르려다

누르려다가 도로 닫습니다 지금은 떠나보내는 이와

떠나는 이가 서로 함께 지나온 긴 시간을 보듬도록

그들만의 마지막 시간을 방해하지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떠나려는 막내녀석을 어깨를 보듬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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