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구운몽 한문본

권지일 - 2. 성진과 팔선녀가 처음으로 연화봉 석교 위에서 만나다

New-Mountain(새뫼) 2020. 11. 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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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진과 팔선녀가 처음으로 연화봉 석교 위에서 만나다

 

至山底, 頗覺酒暈上面 昏花詰眼, 自訟自曰 :

“師父若見滿面紅潮, 則豈不驚怪而切責乎?”

卽臨溪而坐脫其上服, 攝置於睛沙之上, 手掬淸波沃其醉面, 忽有異香捩鼻而辿.

지산저 파각주훈상면 혼화힐안 자송자왈

사부약견만면홍조 즉기불경괴이절책호

즉임계이좌탈기상복 섭치어청사지상 수국청파옥기취면 홀유이향렬비이천

 

산 밑에 이르자, 자못 취기가 얼굴에 올라 정신이 아득해지고 ,가물가물 꽃이 눈앞에 어른거려 어지러움을 느껴 혼자 중얼거리기를,

“사부께서 만일 뺨에 붉은빛을 띤 것을 보시면, 어찌 깜짝 놀라 꾸짖지 않으리오?”

곧 시냇가에 앉으며 웃옷을 벗어 깨끗한 모래 위에 놓고 두 손으로 깨끗한 물을 움켜 취한 얼굴을 씻는데, 홀연 기이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旣非蘭麝之薰亦非花卉之馥, 而精神自然震蕩,

鄙吝焂爾消鑠, 悠揚荏弱不可形喩. 乃自語曰 :

“此溪上流, 有何奇花郁烈之氣, 泛水而來耶? 吾當往而尋之.”

기비란사지훈역비화훼지복 이정신자연진탕

비린숙이소삭 유양임약불가형유 내자어왈

차계상류 유하기화욱렬지기 범수이래야 오당왕이심지

 

이는 난초와 사향의 향내도 아니요, 화초의 향기 또한 아니로되, 정신이 자연히 몹시 흔들리며 더럽고 지저분한 기운이 갑자기 없어졌다가 살아나고, 그윽하게 풍겨 오는 기운이 점차 약해지니 형언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에 성진이 스스로 이르기를,

“이 계곡의 상류에 어떤 모양의 기이한 꽃이 있기에, 이처럼 짙은 향기가 물을 따라 어리어 온단 말인가? 내 마땅히 가서 그것을 찾아보리라.”

 

更整衣服沿流而上, 此時八仙女尙在石橋之上, 正與性眞相遇.

性眞捨其錫杖, 上手而禮曰 :

“僉女菩薩俯聽貧僧之言. 貧僧卽蓮花道場六觀大師弟子也, 奉師之命下山而去, 方還歸寺中矣.

石橋甚俠菩薩齊坐, 男女恐不得分路. 惟願僉菩薩暫移蓮步 特借歸路.

갱정의복연류이상 차시팔선녀상재석교지상 정여성진상우

성진사기석장 상수이례왈

첨녀보살부청빈승지언 빈승즉련화도장육관대사제자야

봉사지명하산이거 방환귀사중의 석교심협보살제좌 남녀공부득분로

유원첨보살잠이연보 특차귀로

 

다시 의복을 정제하고 물길을 따라 올라갔는데, 이때 팔선녀가 석교 위에 아직도 있다가 성진과 정면으로 마주치니, 성진이 석장(錫杖)을 놓고 손을 들어 예를 갖추어 이르기를,

“여러 보살(菩薩)님, 빈승(貧僧)의 말을 굽어들어 주사이다. 빈승은 곧 연화도량(蓮花道場) 육관대사의 제자로서, 사부님의 명을 받아 산에서 내려갔다가 이제 막 절로 돌아가는 중이외다. 석교는 매우 좁고 보살님들이 단정히 앉아 있으니, 남녀가 서로 길을 분변치 못하게 되어 두렵나이다. 오직 바라옵기는 보살님들이 잠깐 연꽃 같은 걸음을 옮기시어, 특별히 돌아갈 길을 빌리고자 하나이다.”

 

八仙女答拜曰 :

“妾等卽衛夫人娘娘侍女也, 承命於夫人問候於大師, 歸路適少留於此矣.

妾等聞之禮云於, ‘行路男子由左而行, 婦女由右而行’,

此橋本來偏窄妾等且已先坐, 今道人從橋而去於禮不可, 請別尋他路而行.”

팔선녀답배왈

첩등즉위부인낭낭시녀야승명어부인문후어대사 귀로적소류어차의

첩등문지예운어 행로남자유좌이행 부녀유우이행

차교본래편착첩등치이선좌 금도인종교이거어례불가 청별심타로이행

 

팔선녀가 답례하고 답하기를,

“저희는 곧 위부인(衛夫人) 낭낭의 시녀들이온데, 부인의 명을 받아 대사께 문안하고 돌아가는 길에 마침 이곳에서 잠깐 쉬고 있사옵이다. 저희가 듣기로는 예에 이르기를, ‘길을 갈 때에는 남자는 왼쪽으로 걸어가고 부녀자는 오른쪽으로 걸어가라.’라고 하였사옵니다. 이 다리는 본래 심히 좁고 저희가 또한 이미 먼저 앉아 있었으니, 이제 도인께서는 다리를 좇아가는 것은 예에 어긋나옵니다. 청하거니 따로이 다른 길로 찾아가소서.”

 

性眞曰 :

“溪水旣深且無他路, 欲使貧僧從何處而行乎?”

仙女等曰 :

“昔達磨尊者乘蘆葉涉大海, 和尙若學道於六觀大師, 則必有神通之術,

涉此小川何難之有而, 乃與兒女子爭道乎?”

 

성진왈

계수기심차무타로 욕사빈승종하처이행호

선녀등왈

석달마존자승로기섭대해 화상약학도어육관대사 즉필유신통지술

섭차소천하난지유이 내여아녀자쟁도호

 

성진이 이르기를,

“냇물은 무척 깊고 다른 길이 또한 없는데, 빈승으로 하여금 어느 길을 좇아가라 하시옵니까?”

선녀들이 이르기를,

“옛날에 달마존자(達磨尊者)는 갈댓잎을 타고 대해를 건넜다 하옵니다. 화상(和尙)이 만일 육관대사에게 도를 배웠으면, 반드시 신통력이 있을 것이옵니다. 이런 자그마한 내를 건너기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기에, 아녀자와 더불어 길을 다투려 하시나이까?”

 

性眞笑而答曰 : “試觀諸娘之意, 必欲索行人買路之錢也.

貧寒之僧本無金錢,適有八顆明珠, 請奉獻於諸娘買一線之路.”

說罷手持桃花一枝, 以擲於仙女之前,

四雙絳萼卽化爲明珠, 祥光滿地瑞彩燭天, 若出於海蚌懷胎.

성진소이답왈 시관제낭지의 필욕색행인매로지전야

빈한지승본무금전적유팔과명주 청봉헌어제낭매일선지로

설파수지도화일지 이척어선녀지전

사쌍강악즉화위명주 상광만지서채촉천 약출어해방회태

 

성진이 웃으며 답하기를,

“여러 낭자의 뜻을 살피니 반드시 행인한테서 길 값을 받으려 하도다. 가난한 중에게는 본래 금전이 없으나, 마침 여덟 개의 고운 구슬이 있소이다. 이제 여러 낭자에게 이를 바쳐 한쪽의 길을 사기를 청하나이다.”

말을 마치고, 손에 든 복숭아꽃 한 가지를 선녀 앞에 던지니, 네 쌍의 짙은 붉은 꽃봉오리가 곧 고운 구슬이 되어 상서로운 빛이 땅에 가득하고, 상서로운 채색이 하늘을 밝히는데, 꼭 바닷조개의 태 속에서 막 나온 것과 같았다.

 

八仙女各拾取一介, 顧向性眞粲然一笑, 竦身乘風騰空而去.

性眞佇立橋頭撑首遠望, 良久雲影始滅香風盡散.

惘然如失怊悵而歸, 以龍王之言復於大師, 大師詰其晩歸

曰 : “龍王待之甚款挽之甚懇, 情禮所在, 不敢拂衣而卽出矣.”

大師不答使之退休, 性眞來到禪房 日已曛黑.

팔선녀각습취일개 고향성짐찬연일소 송신승풍등공이거

성진저립교두장수원망 양구운영시멸향풍진산

망연여실초창이귀 이룡왕지언복어대사 대사힐기만귀

왈 용왕대지심관만지심간 정례소재 불감불의이즉출의

대사부답사지퇴휴 성진내도선방 일이훈흑

 

팔선녀들은 각각 한 개씩 주워, 성진을 향해 돌아보며 찬연히 한 번 웃더니, 몸을 솟구쳐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높이 올라가 버렸다.

성진은 석교 근처에 우두커니 서서 머리를 든 채 멀리 바라보았지만, 얼마 안 되어 구름 그림자가 서서히 사라지고 향기로운 바람도 흩어져 버렸다. 성진은 어안이 벙벙한 듯 섭섭한 심정으로 돌아와 용왕의 말씀을 대사에게 아뢰자, 대사는 그가 늦게 돌아왔음을 책하였다.

성진이 아뢰기를,

“용왕의 환대함이 극히 정성스럽고 만류하는 것이 지극히 간절하여, 정리와 예의가 있어서 감히 떨쳐 일어나 곧 나올 수가 없었사옵니다.”

대사는 대답하지 않고 곧 물러가 쉬라 하니, 성진이 선방에 와서 이르니 날은 이미 황혼 무렵이 되어 어두워졌다.

 

自見仙女之後, 嫩語嬌聲尙有耳邊, 艶態姸姿猶在眼前, 神魂況惚悠悠蕩蕩,

亢然端坐默念於心曰 :

“男兒在世, 幼而讀孔孟之書, 壯而逢堯舜之君, 出則作三軍之帥, 入則爲百揆之長,

着錦袍於身, 結紫綬於腰, 揖讓人主 澤利百姓,

目見嬌艶之色, 耳聽幼妙之音, 榮輝極於當代, 功名垂於後世, 此固大丈夫之事也.

자견선녀지후 눈어교성상유이변 염태연자유재안전 신혼황홀유유탕탕

항연단좌묵념어심왈

남아재세 유이독공맹지서 장이봉요순지군 출즉작삼군지수 입즉위백규지장

착금포어신 결자수어요 읍양인주 택리백성

목견교염지색 이청유묘지음 영휘극어당대 공명수어후세 차고대장부지사야

 

팔선녀들을 본 후로 고운 말과 교태로운 소리가 아직까지 귓가에 쟁쟁하고, 곱고 예쁜 자태가 오히려 눈에 선하여, 정신과 혼백이 황홀하고 근심스러워 마음이 편치 못하겠는지라. 움직이지 않고 단정히 앉아 마음속으로 빌며 일컫기를,

“남아가 세상에 태어나서 어려서는 공맹(孔孟)의 글을 읽고, 자라서는 요순(堯舜) 같은 임금을 만나, 나가면 삼군(三軍)의 장수가 되고, 들어오면 모든 벼슬아치의 으뜸이 되어, 몸에는 비단 두루마기를 입고 허리에는 자줏빛 인끈을 매고는, 임금에게 예를 다해 사양하고, 백성에게 은택을 이롭게 하며, 눈으로 교태와 요염한 빛을 보고, 귀로는 오묘한 소리를 들으며, 당대의 영화가 찬란함이 극에 이르고, 공명을 후세에 드리우는 것이 진실로 대장부의 일이로다.

 

哀我 佛家之道, 不過一孟飯, 一甁水, 數三卷之經文, 百八顆之念珠而已.

其德雖高其道雖玄, 寂寞太甚矣, 枯淡而止矣.

假令悟上乘之法, 傳祖師之統, 直坐於蓮花臺上,

三魂九魄, 一散於烟焰之中 則夫孰知一介性眞, 生於天地間乎?”

애아불가지도 불과일맹반 일병수 수삼권지경문 백팔과지념주이이

기덕수고기도수현 적막태심의 고담이지의

가령오상승지법 전조사지통 직좌어연화대상

삼혼구백 일산어연염지중 즉부숙지일개성진 생어천지간호

 

아아, 우리 불가의 도는 불과 한 바리의 밥과 한 병의 물, 몇 권의 경문, 백팔 개의 염주뿐이로다. 비록 그 덕이 높고 도가 깊다 할지라도 적막함이 아주 심하기에, 메마르고 담담하게 끝날 뿐이로다.

설령 부처님의 높은 가르침을 깨달아 조사(祖師)의 도를 받아 전하여, 바로 연화대(蓮花臺) 위에 앉을지라도, 내 모든 혼이 한 번 불꽃 속에 흩어지면, 누가 한낱 성진이 천지간에 살았음을 알겠는가?”

 

思之如此念之如彼, 欲眠不眠夜已深矣, 霎然合眼則八仙女忽羅列於前矣, 驚悟開睫已不可見矣.

遂大悟曰 : "釋敎工夫正心志, 斯爲上行矣.

我出家十年, 曾無半點苟且之心, 邪心忽發今乃如此, 豈不有妨於我之前程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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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대오왈 석교공부정심지 사위상행의

아출가십년 증무반점구차지심 사심홀발금내여차 기불유방어아지전정호

 

이리저리 생각하면서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을 못 이루고 밤은 이미 깊어 가는데, 잠깐 눈을 감으면 팔선녀들이 홀연히 앞에 늘어서 있었다. 놀라 깨어나 감은 눈을 떠보면 이미 볼 수 없는지라, 마침내 크게 뉘우쳐 이르기를,

“부처의 가르침이란 마음과 뜻을 바르게 하는 것, 이것이 으뜸가는 행위이리라. 내가 출가한 지 십 년 동안 일찍이 구차한 마음이 조금도 없었는데, 이제 간사한 마음이 문득 일어남이 이와 같으니, 어찌 나의 앞길에 방해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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