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총람/왕조한양가

한양오백년가(사공수) - 32.고종(1)

New-Mountain(새뫼) 2020. 9. 2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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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고종(高宗) (1)

 

흥덕궁의 우리 상감 갑자년(1864)에 등극하니

어리고도 장할씨고. 열두 살에 나신 임금

지각도 놀라우시고 외양도 넉넉하네.

대신의 정사 말을 임의로 못한다오.

그 왕비는 뉘시더냐, 여주민씨 부인이오.

부원군은 누구더냐 여주 사람 치록이라.

상감 부친 대원군이 대원군 안 될 적에

궁곤함도 궁곤하고, 대원군 백씨장도

흥인군 안 될 적에 가난하기 유명터니,

상감님 등극 후에 대원군 봉하시고

흥인군 되신 후에 부귀영화 극진하다.

을축년(1865)을 지내고서 뜻밖에 난리나니,

병인년(1866) 추구월에 양난이 대단하다.

화륜선 수십 척이 인천 제일 항구에서

대완구 놓는 소리, 천지가 진동하고

하해가 뒤눕는 듯.

장안이 경동하여 피란 가는 사람들과

재상가 부인들이 가마 타고 달아날 제

임자 없는 저 가마가 오강에 들끓는다.

밤낮으로 나온 가마 건너기를 쟁투하니

선가가 어떻던가,

그때 정승 누구던가, 김병국이 정승이라.

달아나기 한창이네.

그때 판에 서울 양반,

아내 잃고 못 찾는 이 몇 백 명이 되었던가.

한양 사는 황오 불러 격서 지어 보낼 적에,

대장군 한성근이 군사 얼마 안 데리고

장담하고 나가더니 서양국서 기별 나와

대진을 거느리고 급히 오라 하였기로,

그러므로 양인들이 수십 척 배를 굴려

양국으로 들어간 걸, 그 속 모른 사람들은

한성근이 승전했다, 황오의 격서 보고

양인이 놀라 갔다. 이때에 웃던 소리

곳곳에 흩어지고 처처에 편만하다.

무식하여 모를수록 어름하여 생각하오.

양인같이 강한 군사 몇 만 명이 나왔다가,

한성근이 하나 보고 진을 피해 어이 가며,

황오의 격서 보고 천병만마 달아날까?

실없는 대원군이 한성근이 사랑하고,

승전했다 북을 울려 잔치 끝에 벼슬 주니,

이때부터 대원군이 오정하기 시초로다.

한성근이 공신이요, 황오가 일신이라.

이걸 두고 생각하면 국운이 비색하다.

대원군이 세도하기 무진년(1868)에 시초하네.

상감님은 어리시어 시동으로 앉혀놓고,

비신비군 이 양반이 삼천리 이 강산의

내삼천 외팔백을, 장중에 넣어두고

기탄없이 놀려낸들 어느 누가 말을 하며

거기 누가 금단할까.

과거를 보이자면

오천 냥에 진사 내고 오만 냥에 급제 내네.

진사 급제뿐이런가?

십만 냥에 현감 주고 백만 냥에 부사 내니

현감 부사뿐이런가?

감사 부윤 내는 값은 몇만 냥에 결가하며,

팔도 감사 내는 값은 천만 냥을 의논하리.

국정이 이러하니 백성 되는 그 목숨이

도탄 중에 아니 들까.

팔도의 수령 방백 이 벼슬을 사 가지고

큰 고을 골라 큰 고을 주고,

소읍 갈이 소읍가고

본 밑천을 빼려 하니 빼노라니 죽어난다.

그것 누가 죽어나나, 백성이 죽어난다.

백성에서도 누구던가, 부자 백성 걸려 죽고

빈자 백성 끼어 죽고, 죽은 것이 백성이요

다치는 게 부자로다.

대원군이 하신 일이,

허다한 많은 궁궐 궁궐이 부족하던가.

있는 궁궐 하신대도 넉넉하고 많건마는

경복궁을 또 왜 짓나. 경복궁 지을 적에

원납령이 오죽할까.

대원군이 하는 말씀 원할 원자 원납이요,

백성들이 하는 말이 원망 원자 원납이라.

백 석 하면 천 냥이라 천 석 하면 만 냥일세.

만 석 하면 십만 냥이.

가사 짓는 이 사람도 탕패하여 가는 살림

부명에 그릇 걸려, 농우 팔아 원납하니

그해 농사 폐농했소.

경복궁의 원납 돈을 모아 놓고 볼 터이면

삼각산과 비등일세.

허명무실 잡힌 부자 이전 부자 이름 듣고,

몇천 냥, 몇만 냥을 시각 내로 바치어라.

저 부자의 거동 보소. 돈이 있어 바치지요?

그 한정에 안 바치면

어느 날에 죽을는지 귀신도 모르도다.

이러하기 몇 해던가.

대원군의 거동 보소. 대원군 곤궁할 때

곳곳에 다닐 적에, 화양동 서원에서

무슨 설움 크게 본지, 몇 해를 품었다가

대원군 되온 후에, 팔도에 행관하여

서원 훼철 하는구나.

그것이 될 것인가. 서원에 드신 명현

역력히 요량한들 대원군에 비할쏜가.

서원을 생각하면 뉘 집 조상 안 모셨나.

충신열사 몇몇이며 도덕군자 얼마신가.

우리 조선 장한 이름 소중화라 하는 말이

추노국이 정녕커늘, ,

원통할 사 대원군이 서원을 훼철하니

내 문안만 생각하고 후세 이름 지쳤으니

천추에 내려가도

훼철하신 그 양반은 명현 자손 원망되어,

전자전손 내려가도 각골지통 아니 되리.

어떤 비기 어떠하고 살만인은 무슨 일인가.

만인을 죽인다니 만인이 무엇인가.

중놈의 정만인이.

대장경 이만 권을 배에 싣고 남해 간 놈

이 중놈을 잡으려고 사방으로 추종한들,

만경창해 너른 물의 묘창해지일속이라.

어디 가서 찾으리오.

이놈을 못 잡아서 제살한다 하옵시고

일만 사람 죽어날 제, 날마다 죽는 인명

몇만 명 되었는고.

살인명을 이리하고 국가가 장원하리.

옛적의 진시황도 제 혼자 잘난 채로,

아방궁 지을 적에 진나라 백성 목숨,

장성 아래 죽었으니 반이나마 죽었으니,

아방궁을 지은 후에 몇 해 안가 항우가

불 질러서 다 탔으니 삼월불소 이 아닌가.

아방궁도 지은 것이 준민고택 지은 집을

자자손손 전할쏘냐.

백성의 원망 말이 구천에 사무쳤다.

백성은 못 갚아도 하늘이 진노하사,

항우 같은 영웅 내어 백성 설치 씻겨주니,

그 아니 상쾌하며 그 아니 이상하리.

문왕 같은 성군님은 착한 정사 하시다가,

영대를 지으려 하니 만백성이 그 말 듣고,

서민자래 급히 와서 불일성지 지어 노니,

우록 탁탁 놀아 있고 백조 학학 날았던가.

어이하여 그렇던가.

문왕의 착한 성덕

금수들도 알아보고 곤충 어별 화했나니,

문왕같이 못 하나마 진시황은 면하시오.

세상 이치 이러하니 경복궁이 장구할까.

한양 도읍 생각하면 태조 대왕 이후로서

정조 현종 그때까지 문치가 놀랄씨고.

과거를 보일 때도 문필로 보였으니,

팔도의 장한 선비 글공부 하였다가,

문필이 부족하면 과거 져도 한이 없고,

문필만 유여하면 과거 정녕 하였으니,

그러므로 글공부가 불꽃같이 일어나서,

사서삼경 통달하고 시서백가 많은 글을

밤낮으로 숙독하여, 시부에 책문 글을

모두 다 지어낼 제 모르는 것 없었으니,

처처마다 문장이요 집집마다 거유로다.

그러므로 그 법이 이렇듯이 좋았었네.

중대신도 글 못하면 충신 노릇 못하였고,

수령 방백 관장들도 글 못하고 무식하면,

지체가 쓸데없고 가문이 생광 없고,

우리 조선 대신들도 글 못하는 대신 없고,

어느 수령 어느 방백 무식하게 다니던가.

이렇듯이 하는 게니 다른 연고 아니로다.

어느 임금 글 못하리.

이십팔 왕 제왕 중에 무식 임금 뉘시던가.

상감님네 삼부자라.

그러므로 한양 말년 가엾고 한심하여,

문필은 녹아지고 재물은 앞에 서고,

과거에도 재물이요, 송사에도 재물이요,

혼인에도 재물이요, 영문에도 재물이요,

불정에도 재물이요, 유치에도 재물이요,

천사만사 온갖 일에 재물로 위주함은

위에서 불치하니 만백성이 본을 받아

악속이 행세하니

법지불행 못하기는 자상범지 이 아닌가?

대원군의 거동 보소. 임금의 부모로다

무엇이 부족하여, 찬위함을 생각하여

갑신년(1884) 난을 꾸며, 무죄한 중대신을

역률로 죽였으니 그것인들 할 것인가?

과거라 보인다 하면

진사 금과 급제 값을, 의심 없이 미리 알아

부자는 돈 장만하고, 빈자는 생각 없어

글공부만 전폐하니, 이러므로 돈 바치면

사령배도 진사하고, 시정배도 급제하고

풍헌놈도 찰방하니,

아전 수령 몇몇이며 백정 승지 몇몇인가.

길영수 호강하여 상주 목사 내려와서

정치가 어떠한가, 본읍 사부 욕보이네.

감역 참봉 사령이요, 도사 감찰 급창이라.

가가급제 이 아니면 인인진사 이거로다.

허무하다 우리 한양, 이렇고야 안 망할까.

슬프다 예의국도 예의 소리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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