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운문)/왕조한양가

한양오백년가(사공수) - 20.효종, 21.현종

New-Mountain(새뫼) 2020. 9. 17.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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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효종(孝宗)

 

효종대왕 등극하니

그 왕비는 뉘시던가, 덕수장씨 부인이요.

부원군은 누구던가, 덕수 사람 장유로다.

효종 대왕 등극 후로 대보단을 피워 놓고,

병자년 일 생각하니 한의 일이 어제 같다.

충심이 울적하여 이완을 불러내어,

군신이 서로 앉아 복수하기 의논할 제,

 

글 두 구를 지어내니,

아원장수 십만병은 추풍웅진 구련성을

지휘축답 호노지요 가무귀래 옥경성을

 

용하고도 장하도다 이 글 뜻을 들어 보소.

원하고도 원하나니 십만 대병 거느리고,

구련성 가을 바람같이 진을 굳게 치고 가서,

지휘하여 호조지를 뚜글뚜글 밟아 내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옥경성을 돌아보세.

 

이완이 하는 말이,

기묘 장략 길러내어 정병 예졸 조련하고

장군의 갑주 보검 단단히 단속하여

소생은 대장되고 권상하는 아장되어

백만 병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서서

중원으로 들어가면 한의 머리 어디 갈까.

옥체를 보전하여 근심을 마옵소서.

병자년 깊은 원수 신등이 갚으리다.

삼학사 죽은 충성 혼백인들 무심하리.

군신이 상합하면 못할 일이 없사오니,

선대왕의 욕되심과 인평대군 원통함과

소현세자 억울함과 전하의 분하심을

일조에 설치하면, 국가뿐 아니오라

팔도 창생 춤추리다.

이렇듯이 대답하니,

효종대왕 들으시고 대희하사 하신 말씀.

장하도다 저 신하야, 놀랍도다 내 신하야.

이완의 저 장략은 만고에 짝이 없다.

십사 년 쌓인 회포 아마도 풀까 보다

효종대왕 거동 보소.

이때에 역적 나면 낱낱이 다 잡아서,

전정에 불러들여 행동거지 시험한 후,

역적더러 이른 말이

너의 얼굴 살펴보니 역적질은 꾸몄으나

나의 위는 못하리라.

사람도 죽이지 않고 군관에게 명하여서

욕을 섞어 길러내니, 이러므로 그 때 풍속

역적이 흔히 나니, 역적을 죽이지 않고

양육하여 두는 것은, 효종대왕 마음에는

역적 되는 저놈들이 범인과는 다른지라,

북벌할 때 내 쓸 거니 한 사람도 상하게 마라.

이렇듯이 후대하니 해마다 역적이 나네.

영양이라 일월산은 역적 나기 유명하다.

역적이 났다 하면 일월산 역적이오.

역적이라 잡고 보면 일월산에서 잡는구나.

이상하다, 효종 시절. 역적 놈도 쓸 데 있어

나라에서 양육하니, 전후의 역적 난 게

누구누구 역적인가.

홍술해와 구선복은 역적에도 괴수 되고,

최일천과 홍경래는 역적의 참모 되고,

정희량과 정인홍은 역적에도 장수로다.

우근칙과 김자점은 역적에도 흉노라.

그 많은 역적의 신하 다 어이 기록하리.

효종대왕 등극 후로 십 년을 지내도록

치국치민 생각 없고, 일평생에 분한 마음

북벌하기 위주하여, 조정에 모인 신하

국가 강론 전혀 없고 북벌 의론 너무 하니,

실상으로 생각하면 효종의 망발이라.

분함을 생각하면 당당히 그럴 건데

강약을 생각하면 북벌이 당한 말인가.

대국 조선 비할진대 당랑거철 이 아닌가.

분하고 또 분한들 그 분함을 어이 풀리.

효종대왕 두고 보면 문필은 문장이되

강약 이치 들어서는 무식하신 임금일세.

통감 초권 못 봤으리.

연나라 태자 단이 일시 분을 참지 못해

망녕되이 마음 되어 전광 선생 불러내어

형가를 인도하여, 번오기 머리 베어

함 속에 담아 넣고, 서씨의 비수 얻어

독항도와 함께 싸서 형가를 보낼 적에,

소슬한풍 역수상에 무양은 그림 지고

형가는 뒤를 따라, 함양 저사 깊은 밤에

와념명일 봉도사가,

아방궁 구빈례에 진시황을 죽이고자

아무리 칼을 뺀들 강약이 현수커늘

만승천자 어이 하리.

제 다리 끊어지고 연 태자 저도 죽고

연나라도 망했으니 이로 두고 볼작시면

효종대왕 가진 마음 자취기화 아닐런가.

효종 대왕 등극 후로 십 년을 지내도록,

북벌도 신통치 않고 큰일 나고 말 아니지.

효종이 수 했으면 그때에 이 조정이

씨 없이 다 망했지.

조정을 두고 보면 신하 하나 지각 있어

강약 이치 말하지 않고 북벌하기 위주 했다.

지각 있는 최명길이 혼자 들어 간하시니,

그렇기로 병자란에 간한 공신 명길이다.

국운이 장원키로 효종이 요수하니,

기해년(1659) 오월달에 효종대왕 승하하니,

춘추가 사십일에, 백팔십 리 여주 땅의

영릉이 그 능이요, 왕비 능도 한 능이라.

 

 

21. 현종(顯宗)

 

현종 대왕 등극하니

그 왕비는 뉘시던가, 청풍김씨 부인이요.

부원군은 누구던가, 청풍 사람 우명이라.

현종대왕 등극 후로 환후가 태심하여

정사를 전폐하고, 궁방에 어의 와서

주야로 탕약하니, 어의는 누구던가.

후궁 처남 장만석이 의술이 유명하여

일평생에 약 쓴 법이 세 첩을 넘지 않네.

현종대왕 효성 보소.

효종대왕 국상 나서 용포를 아니 입고

제복을 입으시되,

사간 이조순이 엎드려 주달하되,

자고급금 제왕가의 임금의 옥체에는

흉복이 없사오니 용포를 입으시오.

임금의 복례로는 군례가 아니외다.

국체가 미안하오.

현종대왕 하신 말씀.

임금은 부모 없나, 요순우탕 문무왕도

용포를 벗었으니 임금이 아니던가.

기어이 제복 입어 삼 년을 지낼 적에

옥루가 마르지 않네.

이십팔 왕 제왕 중에 정치는 의논 말고

효성을 말할진대 요순에 가깝도다.

슬프다 세월이여, 십육 년 등극으로

편하실 때 얼마없어 약으로 부지타가,

갑인년(1674) 팔월 달에 삼십사로 승하하니,

양주 땅 삼십 리의 숭릉이 그 능이라.

왕비 능도 한 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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