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문산문

성현의 '타농설(게으른 농부이야기)'

New-Mountain(새뫼) 2019. 8. 1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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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농설(惰農說)

- 게으른 농부 이야기

 

성현(成俔, 1439~1504)

 

 

歲庚寅 大旱自正月不雨 至于秋七月

春不得犂 夏不得鋤草之在野者無不黃 禾之在畝者無不萎

 

경인년(1470)에 큰 가뭄이 들었다. 정월에서부터 비가 오지 않더니, 가을 7월까지 가뭄이 계속되었다. 이 때문에 봄에는 쟁기질을 못 했고, 여름이 되어서도 김맬 것이 없었다. 들판의 풀들은 누렇게 마르지 않은 것이 없었고, 논밭의 곡식들은 시들지 않은 것이 없었다.

 

其有勤者則曰;

耘之亦死也 不耘亦死也與其安坐而待焉 孰若殫力而求焉萬一得雨 豈盡無益

故田已柝而耨不止 苖已槁而芟不休終歲勤動 要死而後已也

 

이때 부지런한 농부가 있어 말하기를,

김을 매주어도 곡식들은 죽을 것이고, 김을 매주지 않아도 역시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편안히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있는 힘을 다해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에 하나라도 비가 온다면, 어찌 이익이 없겠는가?”

하고는, 갈라진 밭에서 김매기를 멈추지 않고, 마르고 시든 곡식 싹들을 쉬지 않고 돌보았다. 그렇게 한 해를 마치도록 열심히 일하며, 곡식들이 죽은 다음에야 그만두려 하였다.

 

其有怠者則曰;

耘之亦死也 不耘亦死也與其奔走而勞焉 孰若無事而息焉萬一無雨是皆無益

故見田夫而笑不已 見饁婦而譏不止終歲退坐 待天命而已也

 

한편 게으른 농부가 있어 말하기를,

김을 매주어도 곡식들은 죽을 것이고, 김을 매주지 않아도 역시 죽을 것이다. 그러하니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고생을 하기보다는, 일하지 않고 편히 지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만약 비가 전혀 오지 않으면, 전혀 이익이 없으리라.”

하고는, 그래서 밭에서 일하는 농부를 보고 비웃기를 그치지 않았고, 들밥을 내가는 아낙들을 보고 조롱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해가 마치도록 물러나 앉아, 하늘에서 비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余嘗秋穫 至坡山之野

其田半荒半理 半疏半密或有疆項而仰者 或有醉噎而垂者

問諸父老則

彼荒而疏 疆項而仰者 以爲無益而不耘者也

理而密 醉噎而垂者 盡心盡力以求之者也

 

가을걷이를 할 무렵에 내가 파주(坡州) 들녘에 나가 보았다.

밭 한쪽은 황량했지만, 다른 쪽은 잘 다스려져, 한쪽은 곡식이 드문드문했으나, 다른 쪽은 가득했다. 또 한쪽은 곡식들은 하늘 향해 앙상하게 서 있었지만, 다른 쪽은 잘 익어 취한 듯이 숙이고 있었다.

그렇게 된 이유를 마을 노인에게 물었다.

곡식이 드문드문 황량하고 앙상하게 서 있는 곳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며 농사일을 하지 않은 자의 것이었고, 곡식이 가득하게 잘 다스려져 숙이고 있는 곳은 마음과 힘을 다하여 구하려 했던 자의 것이었다.

 

偸一時之安 而受終年之飢 忍一時之苦 而受終年之飽

勤而得 逸而失者 非獨農也

 

한때의 편안함을 훔치려다 일 년 내내 굶주리게 되었고, 한때의 고통을 참아내어 한해를 배불리 지낼 수 있게 되었다.

! 열심히 일하면 뜻한 바를 얻게 되고, 즐기려고만 하면 잃게 되는데, 이는 농사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今世之學詩書媒仕進者 何以異於是

士方少時 有志於學 無晝無夜 孶孶矻矻 六經百史 無不探也文章詞華 無不習也

懷才蘊奇 進而戰藝於場

一不得志則歉 再不得志則惛 三不得志則缺然自失曰;

功名有分 非學所能致也富貴有命 非學所能致也

 

오늘날 시서(詩書)를 공부하여 벼슬길에 나아가려 하는 사람들도 어찌 이것과 다르겠는가. 선비들이 젊었을 적에는 학문에 뜻을 두고 밤낮없이 부지런히 경전과 역사책을 가리지 않음이 없이 읽는다. 또 훌륭한 문장을 익히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렇게 재주를 품고 기이함을 쌓아, 과장에 나아가 솜씨를 겨루게 된다. 한 번 뜻을 얻지 못하면 실망하고, 두 번째에는 번민하며, 세 번째에는 서운해하며 스스로를 버리면서 이렇게 말을 한다.

공명(功名)은 분수가 있어야 이루는 것이어서, 학문을 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부귀를 누리는 것도 운명이 있는 것이어서 학문을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舍其所學 並棄前績

或半塗而廢 或至門而復爲山九仞之高 不盡一簣之力

得無與惰而不耘苖者類也

 

그리고는, 학문을 팽개쳐 버리고, 지금까지 해놓았던 공부도 모두 포기한다. 어떤 사람은 절반쯤 학문이 이루어졌는데 내던져버리고, 어떤 사람은 성공의 문턱까지 갔다가 주저앉아 버린다. 마치 아홉 길 높은 산을 쌓는데,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산을 완성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게으름을 피우며 농사일을 제쳐놓은 농부와 같은 무리가 아니겠는가?

 

學問之勞 非若三農之苦學問之功 奚啻三農之利

農而養口腹則其利少 學以取聲名則其利大

小者猶不可以不勤 而況大而不勤乎

勞心之君子 反不知勞力之小人故作斯說以喩之

 

학문을 하는 고생은 삼농(봄에 논밭 갈고, 여름에 김 매고, 가을에 추수하는 세 가지 농사)에 비하면 고생도 아니다. 그러나 학문을 해서 얻는 공은 어찌 삼농의 이익에 그치겠는가?

농사를 짓는 일은 겨우 배나 채울 수 있을 뿐이니 그 이익이 아주 하찮은 것이지만, 학문을 하면 명성을 얻게 되니 그 이익이 엄청난 것이다. 이익이 적고 고생스럽기만 한 농사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안 되는데, 더구나 큰 이익을 얻는 학문에서 노력하지 않음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머리로만 애를 쓰는 선비들은 몸으로 일하는 농부들의 고생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를 지어 그들을 깨우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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