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문산문

성현의 '뇌물 먹은 소(흑우설)'

New-Mountain(새뫼) 2019. 8. 1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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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우설(黑牛說)

뇌물 먹은 소

 

성현(成俔, 1439~1504)

 

 

廟社用黑牲 古也其中牲者鮮矣 而純毛黑色者尤爲鮮

朝廷設典牲署主之 苟有納一牛者 價給三馬

由是人愛其理 高價而買之 爭趨權勢而請之

契券雲集 官門如市其得納者 萬分中之一耳

 

종묘사직의 제사에 검은 소를 희생으로 바치는 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제도이다. 그런데 제사에 맞은 소가 드물고, 완전하게 털이 검은 소를 구하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조정에서는 전생서(典牲書)를 설치하여 그 일을 주관하게 하고, 만일 제사에 맞은 소를 한 마리 바치는 자가 있으면 말 세 마리로 소값을 쳐주었다.

이 때문에 그 이득을 노리고 비싼 값으로 검은 소를 사서는 권세 있는 집에 붙어 청탁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사에 쓸 소를 계약하는 날이 되면 자신의 소를 바치려고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관청의 문 앞은 시장처럼 북적거렸다. 그렇지만 필요한 소는 한 마리뿐이므로 한 사람만이 소를 바칠 수 있었다.

 

龍山里有一達官 患無馬 以布二十疋買一牛

遍體如漆 高又一丈求善畜者而傭寓之 不計蒭葭之費

勤飼三冬 魁然肥腯示諸署人則署人稱美達官欣然 自爲得計

 

용산(龍山) 땅의 어느 높은 벼슬아치는 말이 없어 늘 근심하다가 베 20필로 소를 한 마리 샀다. 온몸이 칠흑처럼 검고 키가 한 길이나 되었다. 소를 잘 기르는 사람에게 맡겨서 기르게 하였지만, 사육하는 데에 드는 비용은 계산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해 겨울을 부지런히 먹이고 나니, 크고 살이 찐 소가 되었다. 그 소를 전생서 관원에게 보였더니, 아주 훌륭하다고 하였다. 달관은 기뻐하며, 이제 뜻한 바를 얻게 되었다고 여겼다.

 

一日 署提調坐司擇牛有白衣少年呈簡附耳語退又持酒與典牛者相酬於牛囤中

署員入謁 先進達官之牛提調顧問典牛者 典牛者曰

牛雖大 有病不可用

提調頷之而已 少年持牛而進牛小且瘦 典牛者曰

牛雖小若養月餘則可用

提調笑而納之 書于牛籍

 

어느 날 전생서 제조(提調)가 관사에 앉아서 소를 고를 때였다. 흰옷을 입은 한 소년이 편지를 올리며 제조에게 귓속말로 하고는 물러갔다가 술을 갖고 와서 소를 맡은 담당자와 소 우리 안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이윽고 전생서 관원이 들어와서 먼저 달관의 소를 들여오게 하였다. 제조가 전생서 관원에게 물으니 관원이 답하였다.

소가 크기는 해도 병이 들었으니 제사에는 쓰지 못하겠습니다.”

제조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이 다른 소를 몰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소는 작고 비쩍 말랐는데, 관원이 말하였다.

소가 비록 작아도 달포쯤 잘 먹이면 제사로 쓸 만합니다.”

제조가 웃으며 그 소를 받기로 하고, 장부에다 적었다.

 

署員爭之 不能得達官大悵 欲還賣於人則皆曰

牛以病而退 旣不中於牲 又不合於耕 買之何用

遂累日不得售卒收半價而與人

 

관원이 항의를 하였으나 소용없었다. 달관이 크게 실망하여 소를 도로 팔려고 하니, 사람들이 모두 말하였다.

소가 병이 들어서 퇴짜를 맞았으니 제사에도 쓰지 못하며, 농사에도 적합하지 않으니, 사서 어디에 쓰겠는가.”

여러 날 지나도록 팔지를 못하다가 결국 반값에 다른 이에게 넘기고 말았다.

 

夫廟社之牲 臣子所當留意者

且提調與達官 比肩同列 共爲朝臣 今聽細人之請 而不從同列之語

納所不當納 退所不當退非徒長貪戾之風 其慢神失敬 亦已甚矣

 

무릇 종묘와 사직의 제사에 쓰이는 소는 신하된 자라면 반드시 유의를 해야 한다. 그리고 제조는 조정에서 함께 벼슬하는 처지로서 간사한 사람의 청탁은 따르고 달관의 말은 듣지 않았다.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소를 받아들이고 물리쳐서는 안 되는 소를 물리쳤다. 그러한 짓은 나쁜 풍습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하늘을 업신여기며 경건한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夫君子與小人訟也 君子理直而多不伸 小人理曲而卒得志以其有貨財也

王孫賈曰與其媚奧寧媚於竈

孟獻子曰與其有聚斂之臣寧有盜臣

古人之言豈徒然歟

 

대체로 군자와 소인이 송사를 하면, 군자가 사리에 맞아도 대부분 지고 소인이 사리에 맞지 않아도 오히려 뜻을 이룬다.

이것은 모두가 뇌물 탓이다.

왕손가(王孫賈, 춘추시대 위나라의 정치가)가 말하였다.

(, 아랫목의 신)에게 잘 보이기보다 조(, 부엌의 신)에게 잘 보여라.”

맹헌자(孟獻子, 춘추시대 노나라의 대부)도 말하였다.

취렴(지위를 이용하고 윗사람의 권세에 기대어 백성을 가혹하게 다루고, 세금을 멋대로 쓰며 뇌물을 긁어모으는 신하)하는 신하를 두기보다는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두는 편이 낫다.”

 

옛사람의 말이 어찌 쓸데없는 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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