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시; 14년 이후

산책길에서 - 아내의 말에 이어

New-Mountain(새뫼) 2019. 7. 1. 11:42
728x90

산책길에서

 - 아내의 말에 이어


- 허리 펴고 멀리 보며 걸어 가지.

내 정말 그러하였나 보다.

세월에 움추러들어 나를 구부정히 말아두고 

발끝만을 내려보고만 있었나 보다.

저 멀리에 뭐가 있는지 보다는

나를 근심하며 시간을 조심하며

세월과 함께 점점 작아졌나 보다.


- 날이 많이 길어졌어. 아직도 환해.

해 길어진 하지 무렵의 공원에서

내 그림자와 아내 그림자는 나란히

길게 길게 앞서서 나아간다.

곧 어둠으로 사라질 추억처럼

화려함이 사라진 단색의 인생처럼

저 끝이 저끝까지 같이 걸어갈 셈으로.


- 이 근처 오면 나무에서 좋은 냄새가 나.

꽃 향기인가. 향기를 품은 나무 냄새인가.

감춘 것도 아닌데 굳이 드러내지도 않고

그런그런 존재로 특별하지 않게

나무의 꽃들은 녹음에 묻혀 있다.

우리도 녹음에 우리를 묻어 두었다.

살아온 향기가 어떤 것일지를 궁금해하며.


- 같이 25년을 살았으니, 그만큼 더 살라나.

정말로 그러하다면 고마운 일이다.

올해의 절반쯤 지난 어느 저녁인데

이제 돌아가기로 한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이만큼 온 만큼만 돌아간다면 

그것으로 고마울 것이다.

우리 남긴 자취는 그림자로 뒤에 남았다.


- 어깨 좀 펴고 주변도 보면서 걸어 가지.

728x90

'자작시와 자작소설 > 시; 14년 이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 가을, 철조망 - 파주 반구정에서  (0) 2019.10.04
유린의 이유  (0) 2019.07.03
자전거 출근길에  (0) 2019.05.14
바람에게 -다시 4월에  (0) 2019.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