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와 자작소설/시; 14년 이후

강, 가을, 철조망 - 파주 반구정에서

New-Mountain(새뫼) 2019. 10. 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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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가을, 철조망

 - 파주 반구정에서


1. 강

아직도 뜻밖에도 강물은 야위지 않았다.

흘러가고 또 흘려보냈어도 

처절하게 쏟아졌던 여름의 흔적을 담아 

지난 시간을 밀어가며 혹은 당겨가며 흘러갔다.

앞서더라도 잠시 뒤로 물러서다

뒤쳐져도 곧 앞지르는 그러한 당당함으로 

저 먼 끝에 무엇이 있는지 머뭇거림도 없이 

발밑을 조심하는 것은 그대의 몫이라고 힐책하면서.  


2. 가을

반구정의 낮은 언덕을 오르면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문득  

풍경인듯 아닌듯 묻혀버린 나를 발견한다.   

그러다가 푸른 나뭇잎보다 누렇게 물든 나뭇잎이

가을이기에 더 흔해졌다고 

그렇게 나도 나이를 먹었다고 중얼거리려다 

황희의 초상보다 훨씬 나이듦을 힘겨워하던

함께 올랐던 장인이 옆에 있음을 외람되게 발견한다.


3. 철조망

바로 앞이어도 강물에 발을 담글 수는 없었다..

강도 나를 위로하지 않는다.

강물 앞의 철조망은 통속적으로 녹슬어서

강까지의 거리를 심각하게 먼 시간으로 치환하였다. 

탕탕하게 흘러가는 강물들을 거슬러 

느릿하게 초병들은 역설처럼 걸어가는데

나와 반구정은 함께 한가하게 서거나 앉아서

더께의 아픔을 안고 흘러가는 임진강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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