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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드 보통 "철학의 위안- 불안안 존재들을 위하여"

New-Mountain(새뫼) 2019. 4. 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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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기 없는 존재들을 위하여 (소크라테스)

-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진실과 동의어로 보는 것은, 인기가 없는 것을 오류와 동의어로 믿는 것만큼 고지식한 짓일 것이다. 하나의 관념이나 행동이 유효하느냐 않느냐는 그것이 폭넓게 믿어지느냐 아니면 매도당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논리의 법칙을 지키느냐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다.


2. 가난한 존재들을 위하여 (에피쿠로스)

- 값비싼 물건들이 크나큰 기쁨을 안겨주지 못하는데도 위가 그런 것들에 그렇게 강하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 말하자면 값비싼 물건들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따로 있는데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에 그럴 듯한 해결택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건들은 우리가 심리적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어떤 것들을 마치 물질적 차원에서 확보하는 듯한 환상을 준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는 않고, 새로운 물건이 진열된 선반으로 끊임없이 이끌린다.


3. 좌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세네카)

- 우리 인간은 평소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또 납득할 수 있는 좌절에 봉찰할 경우에는 잘 참아넘기는 반면, 예상하지 못한 좌절을 겪으면 엄청난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철학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세계의 진정한 모습과 조화를 이루게 하고, 좌절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런 좌절에 수반되는 유해한 것들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어야 한다. ----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포기하기만 하면 우리가 그렇게 분노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4. 부적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몽테뉴)

- 몽테뉴는 야만과 문명 사이의 구분을 없애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각 나라의 관습에는 가치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문화 상대주의는 국수주의만큼 조잡하다.) 그는 단지 야만과 문명을 구분하는 방식을 수정한 것이다. 자기 나라가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오직 자기 나라의 것이기 때문이어서는 안된다. 외국도 많은 결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낯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런 관습들이 결점으로 받아들여져서는 곤란하다. 국적과 친숙함을 선(善)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사는 것은 불합리하다.


5. 상심한 존재들을 위하여 (쇼펜하우어)

- 예술과 철학 작품들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들은 객곽적으로 옮겨놓은, 이를테면 소리와 언어 혹은 이미지로 재현되고 정의된 우리 자신의 고통과 투쟁이다.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느꼈던 것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경험까지도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석보다 훨씬 더 지적으로, 그리고 더 통렬하게 드러내준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자신의 것으로 알고는 있지만, 결코 명쾌하게 이해하지는 못하는 삶의 모습들에 형태를 부여한다. 그들은 우리가 처한 조건을 설명해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그런 조건에서도 조금이라도 덜 외로워하고 혼란을 겪지 않도록 도와준다.


6.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위하여 (니체)

- 모든 삶은 다 힘겹다. 그리고 그들 중 몇 명을 완성된 삶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 모든 고통은 어렴풍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신호이다. 그런 고통도 당하는 사람의 정신력과 현명함의 정도에 따라서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고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고뇌는 정신적 공황상태를 야기할 수도 있지만,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본석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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