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감자밭에서
버려진 감자밭은 언제나 쓸쓸하다.
흙이 씻기어나간 알감자 위로
퍼렇게 묻은 이 땅의 근심.
대지는 거짓을 모른다던데
잡풀만이 우거진 밭 가운데 홀로 서면
처음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은
몇 평의 작은 땅은 말없이 보낸다.
마구 자란 골마다 이랑마다
어느새 나를 속이며도 떳떳해하는
거짓의 육신을 파묻어
한 올 한 올 흩어지는 머리칼에
그릇된 시각을 잠재우고 있다.
그러면 아련하게 인광의 환각
편히 가지 못한 누구의 주검이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는 듯
애타게 떠돌고 있는 모양이다.
잡풀만이 무성한 감자밭에서
알지 못하는 인연의 뿌리
그렇게 한 세월이 얽혀져 있다.
(1987)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