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텍스트/옮겨온 고전

지석영의 한글 사용을 청하는 상소

New-Mountain(새뫼) 2018. 5. 2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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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영의 한글 사용을 청하는 상소


의학교장(醫學校長) 지석영이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문명의 근본은 진실로 교육에 있고 교육하는 도구는 백성이 쉽게 알고 쉽게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 도구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국문(國文)입니다. 우리나라의 국문은 우리 세종대왕(世宗大王)께서 나라에 예전부터 문자가 없었던 것을 걱정하여 신묘한 지혜를 발휘함으로써 상형(象形)하고 절음(切音)하여 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원칙이 간결하면서도 쓰임이 무궁하여 형용하기 어려운 언어와 드러내지 못하는 뜻도 모두 말로 담아 낼 수 있는데다 배우기가 매우 쉬워서 비록 아녀자나 어린아이같이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며칠만 공부하면 모두 성취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황실의 보배로운 문자이며 가르치는 도구 가운데 지남(指南)이라 하겠습니다.

삼가 살펴보건대, 어제정음(御製正音) 28자는 초(初), 중(中), 종(終) 3성을 병합하여 글자를 이루고 또 고저(高低)의 정식(正式)을 갖추고 있어 조금도 변경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교육이 해이해져 참된 이치를 잃어버리고 또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연구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소홀히 버려 두었습니다. 이에 민간에서 어린이를 가르칠 때에 글자가 이루어지고 난 뒤의 음만을 가지고 어지럽게 읽었으므로 점차 잘못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현재 사용하는 언문(諺文) 14행(行) 154자(字) 가운데 첩음(疊音)이 36개나 되고 잃은 음이 또한 36개나 됩니다. 또 고저의 정식이 전부 실전(失傳)되어 이 때문에 눈[雪]과 눈[目]은 의미를 분간하기 어렵고 동(東)과 동(動)은 음이 같아 말과 일을 기록하는 데에 구애되는 점이 많으니 신이 이를 늘 한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각 나라가 모두 자국(自國)의 문자를 자국에 사용하니, 자주(自主)의 의리가 그 안에 들어 있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에 타국의 각종 문학(文學)을 모두 자국의 문자로 번역 출판하여 자국의 백성을 가르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주(五洲)의 모든 백성이 문자를 알고 시국에 통달하여 무럭무럭 날마다 문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만이 통상(通商) 후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어물어물하여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한문에만 매달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국문을 숭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감히 외람함을 피하지 않고 함부로 미천한 말을 아룁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교육을 담당한 신하로 하여금 우선 국문을 참고하여 정리하는 한편 편리한 방법을 사용하여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경전 가운데 성인들의 가르침 몇 편을 번역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을 가르침으로써 먼저 심지(心志)를 정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뒤에 최근의 실용적인 신학문(新學問)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을 번역하여 민간에 널리 배포한다면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두 충성하고 애국하는 일과, 경제(經濟)와 관련하여 마땅히 행해야 할 것들을 알게 되어 점차 부강해지는 것을 확실하게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교육이 진보하는 기초가 될 뿐 아니라 또한 황조(皇朝)를 계승하는 아름다운 일이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굽어 살피소서……” 하였다. 답변에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진술한 말은 참으로 백성을 교육하는 요점이다. 상소 내용을 학부(學部)로 하여금 자세히 의논하여 시행하도록 하겠다”라고 하였다.

승정원일기』, 고종 42년 6월 6


醫學校長池錫永疏略. 我東國文, 猗, 我世宗大王, 憂國音之無文, 開發神智, 象形切音而授民者也. 其義也簡, 其用也無窮, 凡言語之難形者, 旨意之未暢者, 亦能得盡其辭, 而其學也甚易, 雖以婦孺至愚, 費了數日之工, 則皆能成就. 實皇室之寶文, 而敎具中指南也. 謹按御製正音二十八字, 以初中終三聲, 倂合而爲字, 且有高低之正式, 有不得毫髮移易者. 惜乎, 世遠敎弛, 有失眞諦, 且學文家不思硏究, 一任鹵莽, 民間訓蒙, 但以成字後音, 混淪讀去, 轉轉訛誤. 由是而現用諺文十四行一百五十四字中, 疊音居三十六, 失音亦居三十六. 且高低之定式, 全失其傳, 所以雪目混義, 東動同音, 凡紀言事, 多有窒礙, 臣常恨焉. 現今天下各國, 悉以自國之文, 行乎自國, 蓋自主之義, 未始不存乎其間, 而他國之各種文學, 莫不以自國之文, 對譯飜謄, 以敎其民. 故五洲橫目之民, 無不識字, 通達時局, 蒸蒸日進於文明之域. 獨我國, 通商幾十年, 委靡不進者. 但狃於難解之漢文, 不尙易曉之國文故也. 伏願陛下, 命敎育之臣, 爲先參互, 整釐國文, 且設方便, 使民了解, 譯經傳中幾篇聖訓, 授之愚民, 先定心志. 次譯近日務實新學中最要者, 廣布世間, 則不幾年, 人人皆知忠愛及經濟之所當爲, 而富强之漸, 可執契而竢也. 批曰, 所陳誠爲敎育齊民之要. 疏辭, 令學部商確施行.

『高宗實錄』卷46, 42年 7月 8日(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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