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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 후서

New-Mountain(새뫼) 2018. 6. 1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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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 정인지 후서 (訓民正音 解例 鄭麟趾 後書)

 

 

예조판서 정인지(鄭麟趾, 1396~1478)의 서문에,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이 있게 되니, 옛날 사람이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정()을 통하여서, 삼재(三才)의 도리를 기재하여 뒷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구별되매 성기(聲氣)도 또한 따라 다르게 된다. 대개 외국의 말은 그 소리는 있어도 그 글자는 없으므로, 중국의 글자를 빌려서 그 일용(日用)에 통하게 하니, 이것이 둥근 장부가 네모진 구멍에 들어가 서로 어긋남과 같은데, 어찌 능히 통하여 막힘이 없겠는가. 요컨데 모두 각기 처지에 따라 편안하게 해야만 되고,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 문물이 중국에 견주어졌으나 다만 방언(方言)과 이어(俚語)만이 같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글이 가리키는 뜻을 이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하였다.

 

禮曹判書 鄭麟趾 序曰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字,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蓋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之字, 以通其用, 是猶柄鑿之鉏鋙也, 豈能達而無礙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吾東方禮樂文物, 侔擬華夏, 但方言俚語, 不與之同,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 治獄者病其曲折之難通.

 

옛날에 신라의 설총(薛聰, 655~?)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 관부(官府)와 민간에서 지금까지 이를 행하고 있지만, 그러나 모두 글자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혹은 어려워서 막히고 혹은 질색하여, 다만 비루하여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었다.

 

昔新羅薛聰始作吏讀, 官府民間, 至今行之, 然皆假字而用, 或澁或窒, 非但鄙陋無稽而已, 至於言語之間, 則不能達其萬一焉.

 

계해년(1443, 세종 25)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正音) 28자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은 칠조(七調)1)에 합하여 삼극(三極)의 뜻과 이기(二氣)의 정묘함이 구비되어 포괄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하면 무궁하고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으며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叶七調, 三極之義二氣之妙, 莫不該括.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訟事)를 청단(聽斷)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 있게 된다. 자운(字韻)은 청탁(淸濁)을 능히 분별할 수 있고, 악가(樂歌)는 율려(律呂)가 능히 화합할 수 있으므로 사용하여 구비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비록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 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 있게 되었다.

 

故智者不崇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以是聽訟, 可以得其情. 字韻則淸濁之能卞, 樂歌則律呂之克諧, 無所用而不備, 無所往而不達, 雖風聲鶴唳雞鳴狗吠, 皆可得而書矣.

 

마침내 해석을 상세히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이해하라고 명하시니, 이에 신이 집현전 응교 최항(崔恒), 부교리 박팽년(朴彭年)과 신숙주(申叔舟), 수찬 성삼문(成三問), 돈녕부 주부 강희안(姜希顔), 행 집현전 부수찬 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하였다. 그 연원(淵源)의 정밀한 뜻의 오묘(奧妙)한 것은 신 등이 능히 발휘할 수 없는 바이다.

 

遂命詳加解釋, 以喩諸人, 於是, 臣與集賢殿應敎崔恒副校理朴彭年申叔舟修撰成三問敦寧注簿姜希顔行集賢殿副修撰李塏李善老等謹作諸解及例, 以敍其梗槪, 庶使觀者不師而自悟. 若其淵源精義之妙, 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에서 낳으신 성인(聖人)으로 제도와 시설(施設)이 백대(百代)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정음의 제작은 전대의 것을 본받은 바도 없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졌으니,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인간 행위의 사심(私心)으로 된 것이 아니다. 대체로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오래되지 않은 것이 아니나, 만물의 이치를 깨달아 일을 이루는 큰 지혜는 아마도 오늘을 기다린 것이구나!” 하였다.

세종실록113, 28929(갑오)

 

恭惟我殿下天縱之聖, 制度施爲, 超越百王,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而非人爲之私也? 夫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蓋有待於今日也歟!

世宗實錄113, 28929(甲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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