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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태림, '종옥전' 원문과 전문

New-Mountain(새뫼) 2018. 2. 2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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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옥전(鍾玉傳)

목태림(睦台林)

 

 

1. 愛侄別起書樓 耽讀固辭婚禮 ( 조카를 사랑해 따로 서루를 지어주니, 독서에 탐닉하여 혼례를 고사하다. )

 

옹정 연간 양주의 사인 김공은 잠영지족으로 이름은 성진(聲振)이고 자는 이원(而遠)인데 시에 능함으로써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형의 아들 종옥은 나이 겨우 16세로 용모가 수려하고 재예가 공교 민첩하여 장단구의 지음으로 또한 향리에서 칭송되었고 절묘한 문장과 아름다운 구절은 인구에 전파되었다. 김공은 그를 사랑하여 가르침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돌보기를 자기 자식 같이 했다.

병자년 19년 봄에 공이 원주 고을에 출사하여 종옥이 시종했다. 공은 원주에 이른 이듬해 농잠을 일삼게 하고 부역을 가볍게 하고, 아랫사람에 임하기를 간소히 하고 백성들 거느리기를 관대히 하니, 고을 백성들이 모두 기뻐했다. 김공은 정당의 북쪽에 정자를 짓고 종옥을 위한 강습소로 하여, 꽃이 핀 계단에다 연꽃을 심은 연못에 극히 운치 있고 깨끗했다.

 

雍正間, 楊州士人有金公者, 簪纓族也. 名聲振, 字而遠, 以能詩鳴於世.

兄之子鍾玉, 年纔二八, 容貌秀麗, 才藝工敏, 以長短之製, 亦稱於鄕, 妙章佳句, 傳播人口.

公鍾愛之, 敎勸不懈, 視同己子.

丙子十九年春, 公仕原州, 鍾玉從之.

公至州之明年, 課農桑, 輕徭賦, 臨下以簡, 御衆以寬, 州民旣皆悅喜.

公於堂之北爲亭焉, 以爲鍾玉講習之所, 花階蓮潭, 極爲簫酒.

 

이듬해 종옥의 가서가 서울에서 이르렀다고 아전이 공에게 알렸다. 김공은 퇴청 후 한가한 때에 종옥을 불러 편지를 꺼내어 보였다.

네가 결혼할 나이가 되어 가서가 다시 이르러 모처에 결혼하라고 하니 너는 서울로 감이 마땅하다.”

종옥은 자리를 피하며 재배했다.

가서가 자주 오고 아버님의 가르침이 비록 엄할지라도 소자의 나이 약관에 미치지 못했고, 미리 성혼하여 인륜의 시작이 비록 중요하다 말할지라도 요절의 싹이 됨도 또한 두렵습니다. 나이 들어 장성하고 학문이 성취하기를 기다려 합환 초례해도 늦지 않을까 합니다.”

 

奧越明年, 鍾玉家書自京師至, 吏以時告公.

公於退之暇, 召鍾玉出示曰:

汝當束髮之歲, 而家書再至, 以爲結婚於某處, 汝往可也.”

鍾玉避席再拜曰:

家書頻到, 父敎雖嚴, 小子年未及冠, 預欲成婚, 人倫之始, 雖云重矣, 夭札之萌, 亦可畏也.

佇待年壯而學就, 合巹行醮, 恐未晩也.”

 

김공은 책상을 치며 큰 소리로 웃었다.

너는 앞으로 오너라. 내 너에게 말하겠다. 부모는 사람에겐 천지와 같고 혼인은 예절의 강령이다. 부모님이 명하시면 가합니다.’ 해야지 응낙하는 것이 아니며, 혼인은 때가 있으니 행해야지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어버이 연세 이미 높고 해가 집 주위 뽕나무와 느릅나무에 바짝 다가왔으니[돌아가실 날이 머지않으시니], 너는 외아들로 일찍 혼인함이 더욱 마땅하다. 예쁜 아이와 아리따운 며느리로 하여금 슬하에 두고 함께 기뻐한다면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효로 무엇이 이보다 낫겠는가?”

 

公拍案大笑曰:

汝來前, 吾語汝. 父母, 人之天地也, 婚姻, 禮之綱領也.

父母有命, 則可唯而無諾, 婚姻有時, 則可行而勿失.

且親年已高, 日迫桑楡, 汝以獨子, 尤宜早娶, 使佳兒佳婦, 共歡於膝下, 則悅親之孝, 孰過於此!”

 

종옥이 일어나 큰절을 올렸다.

부모는 천지와 같다고 하셨지만 <서경>에서는 부모에게 잘못이 있으면 간하라.’고 했으며, 혼인은 강령이라지만 <예기>에는 나이 서른이 되면 아내를 맞이하라.’고 했습니다. 공자님께서는 세 가지 경계[여색, 다툼, 탐욕]를 두셨는데 소자는 혈기 미정의 아이지만 어찌 성현의 경계를 알지 못하겠습니까? 이런 구구한 일로 감히 명을 따르지 못하겠나이다.”

공은 이와 같이 하기를 세 번이나 하였지만 끝내 더 권유할 수 없었고, 평소 그의 재주를 아끼는지라 차마 그의 뜻을 빼앗지 못하고 이런 말들을 적어 서울 본가에 편지를 보냈다.

이때 종옥은 홀로 연당에서 손에 백가의 책을 놓지 않았고 입으로는 육예의 글 읊조림이 끊어지지 않았다. 새벽까지 등불을 밝히고 독서에 잠심하여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바늘을 만들려고) 광산에서 십 년간 절구를 갈고, (용맹정진하여) 광천에서 삼 년간 장막을 치고 지낸 것도 그의 부지런함에 비유하기에는 부족했다. 이웃사람들도 서로 말했다.

비록 절대가인이 있더라도 종옥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어려울 게야.”

 

鍾玉乃起而拜曰:

父母, 天地也, 而傳曰 父母有非則諫.’ 婚姻, 綱領也,

而記曰 年當三十則娶.’ 且孔子有三戒, 小子以血氣未定之兒, 豈不知聖師之戒乎?

是以區區恐不敢從命.”

公若是者三, 終不可誘, 而素愛其才, 不忍奪其志, 乃以此言書于京第.

是時鍾玉獨在蓮堂, 手不停披百家之編, 口不絶吟六藝之文,

焚油繼晷, 潛心靡懈, 匡山之十載磨杵, 廣川之三年下帷, 不足以喩其勤也.

鄕人相謂曰:

雖有絶代女, 難移鍾玉心.”

 

춘삼월 초여드렛날은 김공의 생일이었다. 술과 안주를 갖추고 기악을 배설하여 종옥과 망월루에 올랐다. 산천을 가리키고 풍물을 두루 구경하다가 김공이 먼저 사운시를 지었다.

 

복사꽃 피는 청명절에

망월루 일층에 오르니

오늘도 지난 해와 같아서

오늘 아침도 이렇게 노니네.

머리 들어 북쪽 궁궐 우러르고

눈독 들여 남쪽고을 내려다본다.

꽃과 버들이 피어난 동쪽 시내에는 봄비 내리고

목동은 피리 불며 노래한다.

 

春三月初八日, 公之誕日也.

備酒殽, 設妓樂, 與鍾玉登望月樓, 指點山川, 歷覽風物.

公先口占四韻詩曰:

 

淸明桃李節, 望月一層樓.

且日如前歲, 今朝又此遊.

擧頭瞻北關, 矚目俯南州.

花柳東溪雨, 牧童弄笛謳.

 

종옥이 일어나 절하고는 고풍 장단구 일장을 지었다.

 

하늘이 빌어준 백년에 길일에 땅이 열렸네.

기악 베풀고 술을 들고 망월루에 오르니

천리 밖 승지 유람은 영도성문 시절을 만난 듯.

처음 원주길을 지나 돌 틈에 물이 쏟아지는 명소에 나서니

맑은 시냇가의 백옥 같은 꽃은 춘심을 머금은 붉은 구슬일레라.

해질 녘 길에서 술집을 묻는 자 누구인가?

가는 비 내리는 시냇가엔 풀잎으로 피리 부는 초동들.

노을 속 방초는 푸른 비단 같고, 바람에 하늘거리는 가는 버들은 푸른 실을 드리운 듯.

붓을 먹물에 적셔 아름다운 문장 짓네.

복사꽃 오얏꽃 대문에 가득하니 오늘 밤은 어떤 밤인고?

뽕나무와 삼대가 들을 가리우니 보이는 건 천가만호.

사계절의 아름다운 풍경은 한 폭의 비단주머니[시의 원고가 가득한 주머니]

오늘의 즐거움, 즐겁고도 끝이 없어라.

 

鍾玉起而拜謝, 走製古風長短句 一章曰:

 

張樂携酒, 望月登樓.

天借百年間, 吉日地開.

千里外勝, 郢門時逢.

初度交趾路, 出名區石瀉

淸流白玉花, 含春意紅珠.

斜陽路上, 問酒家何客.

細雨溪邊, 吹葉樵童.

煙沉芳草靑羅織, 風簸細柳碧絲濃.

抽毫濡墨, 含英咀華.

桃李盈門, 今夕何夕.

桑麻翳野, 千家萬家.

四時佳景, 一幅錦囊.

今日之樂, 樂且無央.

 

김공은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기특하도다, 너의 문장이여!”

한 번 읊조리고 세 번 칭찬하며 즐거워서 돌아가는 것도 잊을 지경이었다.

문득 한 동기가 녹의금을 안고 자주 앞으로 나아가 가끔 현을 켜며 몰래 종옥을 주목했다. 종옥은 그 뜻을 알고 발끈하여 얼굴빛을 바꾸었다.

김공은 웃으며 종옥에게 말했다.

오늘 너의 마음속에 새겨 둔 기녀가 없는가? 너는 다만 책 속의 미인만 알지 거문고를 안은 기녀는 모르는구나.”

 

公撫掌而笑曰: “奇哉! 汝之文章也.”

一詠三贊, 樂而忘返.

忽有一童妓, 抱綠綺琴, 故故進前, 時時拂絃, 暗中注目於鍾玉.

鍾玉知其意, 艴然變容.

公笑謂鍾玉曰:

今日汝心中得無妓乎? 汝但知書中之女, 不識琴中之妓也.”

 

종옥은 머리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달그림자 섬돌에 비치고 이슬이 연잎에 맺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누각을 내려와 각기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

김공은 종옥이 경전에 잠심하여 주색을 멀리하는 그 뜻을 가상히 여기면서도 그의 나이가 어려서 또한 중매하는 말을 억지로 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창기 가운데 빼어나게 아름다운 아이로 하여금 몰래 그의 마음이 그렇지 않은 걸 시험하게 했다.

동기 옥랑은 성이 옥이고 이름이 향란인데, 나이 열여섯에 재주와 미색이 모두 절묘하고 노래에 뛰어나고 시에 뛰어나 기녀들 사이에서 이름을 떨쳤다. 풍류를 즐기는 사내들과 호방한 선비들이 한 번 만나보기를 원하면, 그녀는 요염한 태도와 교태 떠는 말로 천금도 가볍게 여겼다.

김공이 불러보니 눈 같은 피부와 꽃 같은 얼굴은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았다. 김공이 부른 사유를 갖춰 설명하니 향란은 부끄러움을 머금고 아미를 숙이고 있다가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鍾玉低頭不答. 已而, 陰移階面, 露生荷心, 相隨下樓, 各歸其處.

公觀鍾玉, 潛心經傳, 不慕酒色, 嘉尙其志, 而以其年淺, 亦不强勸媒妁之說.

然欲使娼妓中絶妙者, 暗較其心未果.

有童妓玉娘者, 姓玉, 名香蘭, 年甫十六. 才色俱妙, 以工於歌, 工於詩, 鳴於妓流.

遊人豪士, 願一見贈, 而艶態嬌言, 千金猶輕.

公命召而視, 雪膚花容, 果若人言. 公備述厥由, 香蘭含羞底眉, 微笑而退矣.



2. 妓兒乘夜借緣 書童弄花偸香 ( 기생 아이가 밤을 타서 인연을 빌고자 하니 서생이 꽃을 희롱하며 향기를 훔치다. )

 

이에, 향란은 얼굴을 매만지고 화장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빗질하고 푸른 구슬을 장식한 신을 신었다. 뽀얀 손으로 붉은 치맛자락을 거머잡고 야심하여 통금 후에 연당을 향해 가니 연꽃 같은 가벼운 걸음걸이에는 티끌도 일지 않았다.

이때, 은하수는 하늘에 걸려 있고 북두칠성은 기울고 달은 하늘에 비꼈으며 온갖 소리는 모두 잠들어 사방에 인기척은 없었고 처마의 풍경도 울리지 않았다. 동각성에서는 딱따기 소리조차 나지 않았고 남쪽 누각 연못의 연꽃은 이슬을 머금었다. 섬돌의 버드나무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외로운 등불이 창문에 비치고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於是香蘭治其容, 飾其粧, 梳綠雲髮, 躡碧珠履,

以白茅手挾紅羅裳, 於夜深人定後, 向蓮堂而去, 輕輕蓮步, 塵猶不揚.

是時也, 銀河在天, 斗轉月斜, 萬籟俱寂, 四顧無人, 簷鈴不動.

於東閣城析無響, 於南樓塘蓮含露. 階柳凝烟, 孤燈照窓, 人影婆娑.

 

향란이 문을 열고 들어가 벽을 향해 앉았다. 종옥은 조금도 놀라는 기색없이 태연히 책을 읽었다. 잠시 후 그는 등불을 돋우고 책을 덮고는 물었다.

너는 귀신인가, 사람인가? 귀신이라면 저승과 이승이 길이 다른데 어떻게 소통하는가? 사람이라면 남녀 내외하는 법이 현격히 다른데 어찌 몰래 들어왔는가?”

그는 손으로 사역점을 치고 입으로는 수주문을 외었다. 향란은 옷깃을 여미고 몸을 돌려 앵두 같은 입술을 반만 열어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香蘭開戶而入, 面壁而坐, 鍾玉少無驚駭, 讀書自若.

有頃桃燈掩券而問曰:

汝鬼耶? 人耶? 鬼也, 則幽顯路異, 何以通涉? 人也, 則內外懸殊, 安能闖入?

因手點砂易, 口誦水呪.

香蘭斂袂回身, 端跪而坐, 半啓櫻唇, 以細聲答曰:

 

나는 사람이지 귀신이 아닌데 어찌 역술이나 주술을 쓰십니까? 다행히 놀라지 마시고 나의 정회를 들으소서. 정자 동쪽 첫째 골목길 대나무숲 속 띠집이 곧 소녀의 집입니다. 망월루 잔치 자리서 거문고를 안고 나아갔던 자 또한 소녀이옵니다.

소녀는 본디 양가집 여자로 일직 의지할 곳을 잃고 몸을 맡길 곳이 없어 퇴기의 집에 기식하고 있습니다. 재주는 있어 박덕하고 미색은 도리어 원수가 되어 창가에 팔렸습니다. 신분은 기녀 딱지를 얹었지만 마음은 스스로를 지켰습니다. 노래와 시를 좀 알고 나이 또한 어리므로, 벼슬아치와 부잣집에서 소녀에게 뜻을 둔 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하지만 소녀는 억지웃음과 싸늘한 말로 대꾸할 뿐입니다.

낭군님의 독서하는 소리를 듣고 낭군님의 풍채를 보고 회오리바람이 영혼을 휩쓸어 스스로를 드러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담장을 넘는 것이 추하고 바지를 걷는 것이 혐오스러운 줄 모르지는 않고 화류의 이름이 비록 교방에서도 미천하지만 댕댕이풀의 소원은 교목에 의탁하고자 합입니다. 월로의 노끈이 발을 묶어 인연 맺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감히 털로 만든 붓의 자천을 본받아 몰래 송옥의 담장을 넘고 몰래 가녀의 향을 훔쳤으니 마음에도 부끄럽고 행동도 비루합니다.

하지만 낭군님도 이미 옛 사람들의 책을 읽으셔서 응당 옛 사람들의 일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비단 임금만 신하를 고를 뿐만 아니라 또한 신하도 임금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홍불 낭자는 여관으로 이정을 찾아갔고, 탁문군은 사마상여를 따라 성도에 갔으며, 구준에게는 천도가, 한유에게는 유기가, 원진에게는 설도가, 소동파에게는 조운이, 한기에게는 애경이, 진관에게는 의창이 있었으니,

예로부터 문장지사가 기첩을 두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나뭇가지를 택한 새를 불쌍히 여기시고 잠시 집을 빌린 개개비새를 허락하신다면 수건과 빗을 받드는[정실부인이 되는] 외람됨은 감히 바라지 않지만 키질이나 비질하는 (첩의) 소임을 나눠주신다면 진실로 감수하겠나이다.”

 

我人非鬼, 何用易呪?

幸勿驚訝, 聽我情懷, 亭之東第一巷, 竹裡茅屋, 卽少女之家也.

望月樓宴席, 抱琴前進者, 亦少女也.

少女本以良家女早失怙恃, 托身無處, 奇食於退妓之家.

才乃薄德, 色反爲讎, 因爲娼家所賣, 身雖忝妓, 心能自持.

粗解歌詩, 年又妙齒, 故繁華之家, 豪富之族, 注意於少女者, 不知幾箇人?

而少女只以强笑冷談, 應口酬答而已.

聞君讀書, 見君風采, 飄蕩心魂, 不覺自露.

非不知踰牆之可醜, 褰裳之可嫌, 而花柳之名, 雖賤於敎妨, 絲蘿之願, 欲托喬木.

不待月繩之繫足, 敢效毛錐之自薦.

暗窺宋玉之牆, 潛偸賈女之香, 於心愧矣, 於行陋矣.

然而郞君旣讀古人書, 應知古人事, 非但君擇臣, 亦有臣擇君.

是故紅拂娘訪李靖於旅舍, 卓文君從相如於城都, 寇萊公之蒨桃, 韓文公之柳妓, 元縝之薛濤, 東波之朝雲, 韓魏公之愛卿, 秦學士之義娼, 自古文章之士, 未有妓妾者也.

幸憐擇木之禽, 暫許借巢之鷯, 則巾櫛之奉濫矣, 不敢望矣.

箕箒之任, 分也, 固所甘也.”

 

종옥은 묵묵히 아무 대꾸도 없이 책을 펴고는 독서할 뿐이었다. 얼마 후 마을에서 닭 울음소리 세 번 나니, 동창이 이미 밝았다. 향란은 무료히 물러나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철석같은 심장으로 치면 당신과 짝할 이는 없으리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황혼에 들어가 새벽에 물러나기를 여러 번 되풀이했으나 끝내 그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 즈음에 종옥도 또한 혼자서 생각했다.

그녀의 용모가 저처럼 아름답고 그녀의 언어가 저처럼 온순한데, 내가 만일 굳게 거절하고 물리친다면 들러오는 복을 차버린다는 꾸지람을 듣게 될 것이다. 성산의 항아가 단단히 원한을 품을 분만 아니라 장차 회강의 여인도 만나게 되리라. 그녀가 다시 오면 내 반드시 저버리지 않으리라.”

이리저리 뒤척이며 생각하니 자연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鍾玉黙然不答, 披卷讀書而已. 俄而村鷄三唱, 東窓旣白.

香蘭無聊而退, 自語曰:

鐵石心腸, 有汝無雙.”

自是以後, 昏入晨退, 如是者數, 終莫能回其心.

於斯之際, 鍾玉亦爲自念曰:

渠之容貌, 如彼其美也, 渠之言語, 如彼其溫也.

我若堅拒牢斥, 則寡福之罵, 不獨星山之俄, 結帶之怨, 將見淮江之女.

渠若更來, 吾必不負.”

輾轉心懷, 自然耿耿.

 

어느 날 저녁, 향란은 술과 안주를 자지고 밤에 그의 처소에 갔다. 종옥은 막 난간에 기대어 달을 쳐다보고 읊조리고 앉았다가 향란이 오는 걸 보고 갑자기 물었다.

밤이 이미 깊었는데 무슨 속셈으로 오느냐?”

향란은 그의 의향을 약간 알고는 그와 말을 나누게 된 걸 속으로 기뻐했다.

그러나 다만 그의 정을 탐지하고 그의 마음을 시험코자하여 억지로 연 이빨을 보이며 비창한 생각을 머금은 듯이 대꾸했다.

소녀는 비록 떠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처럼 발아기질은 있으나, 어린 오리 같은 음탕한 기질은 없사온데 보잘것없는 몸을 의탁하려 하였다가, 끝내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습니다. 십 년 동안 청루에서 이 한 몸은 더럽힌 적이 없습니다. 경솔하게 꼬리치는 추태를 지었다가 도리어 배꼽을 씹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오늘 이후로는 맹세코 다시는 구차한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비단치마 자락을 부여잡고 마악 계단을 내려서려 했다.

 

一日之夕, 香蘭手持酒肴, 夜往其處.

鍾玉方凭欄向月, 哦咏而坐, 見香蘭之來, 卒然問曰:

夜已深矣, 來何意也?”

香蘭微知其向意, 暗喜其接語.

然而第欲探其情, 試其心, 强開的齒, 如含悲愴之心而答曰:

少女雖有雲水之性, 本非稚鶩之質, 而欲托微身, 竟爲靳許.

反而思之, 誠合可笑, 十載靑樓, 一身無疵,

而謾作搖尾之態, 還値噬臍之悔, 自今以後, 誓不復作區區之行矣.”

因拂羅裳, 將欲下階.

 

종옥이 일어나 향란의 손을 잡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향란아, 향란아. 내 말 들어라, 내 말 들어라. 내가 어찌 무정한 사람이겠느냐? 지난날 밤의 일은 나 또한 너를 시험코자 그리하였느니라.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하늘의 듯이 아니겠느냐? 내 너를 저버리지 않을 테니 너는 속상해하지 말아라.”

향란은 짐짓 부끄러운 기색을 지으며 대꾸했다.

낭군님의 뜻이 이와 같으시니 첩의 마음도 조금 풀립니다.”

그녀는 파려잔에 포도주를 부어 종옥에게 바쳤다.

이것은 합환주입니다.”

 

鍾玉起把香蘭之手, 笑而謂之曰:

香娘香娘, 聽我聽我, 我豈無情之儂哉! 前夜之事, 我亦欲試汝而然也.

事旣至此, 非天耶! 我不負汝, 汝勿傷懷.”

香娘故含羞容而對曰:

郞意如是, 妾心稍解.”

乃以玻瓈盞酌葡萄酒以獻於鍾玉曰:

此乃合歡酒也.”

 

그녀는 심춘사 한 곡조를 지어 부르며 술을 권했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옥이 돌에 박혀 있어

산이 보석 기운을 품으니 누군들 사모하지 않으랴.

난초가 골짜기에서 자라니

골짜기가 유란향을 토해 쉽게 탄로 난다.

 

옥이여 사람이여

난초인가 사람인가.

옥중에는 티 없는 옥도 있고

꽃 중에는 말하는 꽃도 있네.

 

높은 누각에서 거문고 타니

현을 당김은 주랑의 돌아봄을 얻고자 함일레라.

기이한 만남도 때가 있거늘

황혼을 틈타 몇 번이나 험한 길을 찾았던고?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곷 속에 소식 있음을.

나룻배는 무릉을 향하네.

또 봄의 무정함을 보지 못했는가?

호주에서 녹음이 짙어지기를 기다리지 마오.

 

술 한 잔에 노래 한곡 하노라니

밝은 반달이 동녘 하늘에 걸려 있네.

맹세도 정했고 마음도 허락했는데

어찌 앵무새로 하여금 황금새장을 잠그려 하는고?

 

作尋春詞一闋, 歌之而勸之.

其詞曰:

 

玉在石兮, 山含寶氣孰無慕.

蘭生壑兮, 谷吐幽香易自露.

 

玉兮人兮, 蘭耶人耶.

玉裡無瑕玉, 花中解語花.

 

高樓彈琴兮, 拂絃欲得周郎顧.

奇遇有期兮, 乘昏幾訪瞿塘路.

 

君不見花有信, 扁舟可向武陵.

尋又不見春無情, 莫待湖州綠葉陰.

 

酒一盃歌一曲, 半輪明月在天東.

盟已定心已許, 寧敎鸚鵡銷金籠.

 

종옥은 기뻐서 미소 짓고 연달아 몇 잔을 기울였다. 술기운에 얼굴에 올랐고 취흥이 그의 마음을 자극했다. 그는 향란의 사체를 본받아 운에 맞춰 화답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남자의 풍정을 지녔다면 소녀를 사랑해야지.

하늘이 소식 전하니

비단치마인들 어찌 길가 이슬에 젖는다고 걱정하랴?

 

희롱하고 기뻐함이여

신선인가 이간인가?

몸은 연리지 같고

정회는 병대화 같아라.

 

한 시대의 미인이

한 번 돌아봄에 천금인들 어찌 아끼랴?

삼생의 좋은 인연

옷소매 가득한 선풍은 낙포의 길이어라

 

너는 하늘의 직녀가 아닌가?

가을밤 오작교에서 굳게 맹세했었지

또 아니면 진공주인가?

달 아래 누각에서 봉황소를 부네

 

은하수는 만 곡의 물결로

똑똑 물시계 떨어지는 물을 더하고자 하네.

나삼을 부여잡으니 춘정이 동하는데

옥난간 밖엔 안개 자욱하여라.

 

鍾玉喜而笑, 連傾數盞,

酒暈上面, 醉興挑心.

乃效香娘之體, 足基韻而和之曰:

 

人生世兮, 男子風情少艾慕.

天借梗兮, 錦裳何妨浥行露.

 

謔兮歡兮, 仙耶人耶?

身同連理樹, 情若幷蔕花.

 

一代佳人兮, 千金何惜一回顧.

三生好緣兮, 滿袖仙風洛浦路.

 

汝無乃天織女, 鵲橋秋夜宿盟.

尋又無乃秦公主, 鳳蕭吹月下樓陰.

 

銀河水萬斛波, 欲添花漏落丁東.

把羅衫春興發, 玉蘭干外霧葱籠.

 

종옥은 향란의 손을 잡고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초당으로 동방을 삼고 독서하는 등불로 화촉을 삼고 서로 포옹하고 즐기니 그 마음이 어떠하였겠는가? 원아이 물을 만나고 봉접이 꽃을 만나도 그들의 즐거움을 비유하기에는 부족했다. 향란은 잠자리에서 사운시를 한 작품 지었다.

 

동쪽 동산의 복사꽃과 오얏꽃은

짧은 봄을 아쉬워하네.

낭군의 뜻이 금석 같지 않으니

첩의 몸이 어찌 귀신일 수 있으리오?

 

앵무새는 새장에 갇힘을 싫어하고

난새는 거울 속의 자기 모습도 기뻐하네.

서재에서 화촉 밝힌 밤에

삼태성 문에 비치니 새로워라.

 

鍾玉携香娘之手, 乃與就寢,

以草堂爲洞房, 以書燈爲花燭, 相抱相樂, 其心若何.

鴛鴦之水, 蜂蝶之花, 不足以喩其喜也.

香娘於枕上作四韻一詩曰:

 

東園桃李樹, 可惜片時春.

郎意非金石, 妾身豈鬼神?

 

鸚嫌籠裡鎖, 鸞喜鏡中親.

花燭書床夜, 三星在戶新.

 

향란은 웃으며 화답을 청했다. 종옥은 그녀의 가사를 깊이 칭찬하고 장단구로 화답했다.

 

어제 둘이 서로 만나보니

그대도 어리고 나도 어리네.

오늘밤 둘이 서로 즐기니

나이도 같고 뜻도 같아라.

 

땅과 하늘이 노쇠할지라도

우리 이 마음 잊힐 수 없으리.

돌이 문드러지고 뽕나무밭이 바다 되어도

오늘밤과 이 인연, 어느 것이 길고 짧은고

 

모난 베개 찬연하고 비단이불 향기로운데

달은 서녘으로 기울려 하나 밤은 다하지 않앗네.

반쯤 짓는 미소는 천금이 가볍고

한 번 찡그림에 온갖 교태 새로워라

 

두 사람의 만남은 참으로 우연이 아니니

오늘 밤 만남 또한 좋은 인연이어라.

 

香娘笑而請和,

鍾玉深讚其辭, 以長短句答之曰:

 

昨日兩相逢, 汝是童我是童.

今夜兩相樂, 年亦同志亦同.

 

地可老天可老, 此人此情不可忘.

石可爛海可桑, 此夜此緣孰短長.

 

角枕粲錦衾香, 月欲西傾夜未央.

半笑千金輕, 一嚬百態新.

 

兩人誠不偶, 此會亦佳因.

 

짓기를 마치고 두 사람이 서로 화답하여 함께 읊조리니 그 즐거움은 알 수 있다.

이튿날 향란은 김공에게 가서 그 사연을 고하니 김공은 웃을 따름이었다.

 

製畢, 兩人相和幷咏, 其樂可知.

明日, 香蘭往告所以于公, 公笑而已.



3. 江上牽衣惜別 月下作文祭魂 ( 강가에서 옷깃을 잡으며 이별한 후, 달 아래서 제문을 지어 영혼을 제사지내다 .)

 

이에 김공은 거짓으로 편지를 써서 종옥을 불러 보이며 말했다.

형님의 숙환은 너도 아는 바이다. 이 달 초부터 숙환이 다시 재발하여 점점 더해가니, 천 리 밖이라고 자식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겠느냐? 너는 지금 귀가하여 탕약을 받듦이 옳다. 내 마땅히 너와 함께 가야 하나 적은 녹봉에 몸이 매여 있으니 자리를 비울 수가 없구나. 다만 자사에게 말미를 얻을 수가 있다면 뒤따라 갈 것이다.”

또 말했다.

너는 도중에 어버이의 변환에 차도가 있어 소생하신다는 기별이 있으면 구태여 상경할 필요는 없으니 되돌아옴이 옳다. 옛사람이 독서는 삼 년이면 족하다고 했으니 어찌 까닭 없이 일시라도 공부를 그만둘 수 있겠느냐?”

 

於是公乃詐爲書, 召鍾玉而示之曰:

兄之宿疴, 汝所知也.

自今月初, 宿症更發, 痛勢漸, 千里之外, 得無望子之懷耶? 汝今歸家侍湯可也.

吾當與汝偕往, 而斗祿摩身, 未能曠職, 第可得由於刺史, 從後逝矣.”

且曰:

汝於中路, 若聞親患差蘇之報, 則苟不必上京而回還可矣.

古人云 讀書三冬足矣.’ 豈可無故一時廢工耶?”

 

종옥이 절하고 물러나와 여장을 챙겨 떠나려 했다. 향란이 슬피 울면서 말했다.

좋은 일에 마가 낀다더니 병환의 기별이 문득 와서 새로운 정이 흡족하지 못한데 갑자기 이별하게 되었군요. 낭군, 낭군이시여. 첩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 만나지 못하니 박명한 저만 불쌍하게 되었습니다.”

종옥은 향란의 손을 잡고 탄식했다.

푸르고 푸른 하늘이여, 이러고도 어찌 사람입니까? 구차히 사사로운 정을 좇고자하니 어버이의 병환이 날로 위독해가고, 명을 받들어 말을 달려가고자 하니 이별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지금 내 한 몸은 진퇴를 어찌해야 하나요? 향란아, 향란아. 네 몸을 잘 보전하여 나를 기다려 후일 다시 보기를 기약하자.”

 

鍾玉拜辭而退, 遂啓行李.

香娘悲泣而言曰:

好事多魔, 病報忽至. 新情未洽, 遽當相離,

郞君郎君, 妾寧不悲! 從此契濶, 薄命可憐!”

 

鍾玉把手歔欷曰:

蒼蒼者天, 此何人哉!

欲苟循私情, 則以親患日篤, 欲承命驅馳, 則別離最難.

今我一身, 進退何爲?

香娘香娘! 善保汝軀, 以待我後日相見之期也.”

 

드디어 종옥은 이별의 시를 지어 주었다.

 

동락하며 몇 밤을 지냈던고?

상봉한 지 반년도 못 되었네.

오늘 와 천 리길 이별하니

부질없이 백년기약 저버렸네.

 

강가 기러기는 짝을 잃고 슬퍼하고

상자의 누에는 실을 다 토하지 못했네.

이별에 임하여 줄 게 무언가?

오열하는 시 한 편뿐이네.

 

遂製別詩以贈曰:

 

同樂幾經夜, 相逢未半朞.

今來千里別, 虛負百年期.

 

江雁失侶悲, 箱蠶未吐絲.

臨離何所贈, 嗚咽一章詩.

 

향란은 눈물을 거두고 옷깃을 잡고 즉석에서 시 한 편을 지어 붉은 치마에 써서 그에게 주었다.

 

장안에 조각달 뜨면

천 리 밖에서 다행히 서로를 그리워할까

인연은 기박하나 새론 자태 머금고

인정은 많으니 뒷날을 기약할 밖에.

 

한식절에 이별이라니

석양에 방초는 꽃다운데.

어느 날 돌아와 서로 만날꼬.

가련하다 우리 이별.

 

香娘收淚摻袂, 口占一詩, 書於紅羅衫以獻曰:

 

長安一片月, 千里幸相思.

緣薄含新態. 情多問後期.

 

落花寒食節, 芳草夕陽時.

何日還相見, 可憐此別離.

 

종옥은 향란과 서강 가에서 작별하였다. 떠나려 해도 떠나기 어렵고, 말하려 해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서로를 엿보며 오호만 연발했다.

향란은 옥잔을 잡고 소리를 삼키듯이 노래했다.

 

첩첩한 남산 봉우리여

어이하여 소첩이 보내야만 하나요?

낭군을 그리는 정이 깊고 깊은 건

동해물도 미치지 못할 겁니다.

 

낭군께서 첩을 이별하는 연정도

산이라도 모자라고 물이라도 모라랄 겁니다.

눈물도 끝이 없고 길도 끝이 없는데

낭군께선 언제 다시 돌아옵니까?

 

망월루에서 저와 함께

훨훨 비취이불 속으로 날아가요.

 

鍾玉與香娘作別於西江之上,

欲行而難行, 欲語而無語, 脉脉相視曰: “鳴呼而已.”

香娘手把玉盃, 呑聲作歌曰:

 

疊疊南山峰, 何如少妾送?

送君情深深, 東海水不及.

 

郎君別妾情, 山不盡水不盡

淚無窮路無窮 問君何日更到?

 

望月樓上與我 翶翔乎翡翠衾中.

 

종옥은 눈물을 훔치며 탄식했다.

세상일 알 수 없구나. 내가 너와 아까는 합환주를 마셨건만 그 잔을 돌려 이별주잔을 잡다니. 귀신이 시기함인가? 사람이 희롱함인가?”

드디어 잠깐 사이 시를 지어 이별했다.

 

부러워라, 저 쌍쌍이 노는 백구

서로 가까이하며 물 위에 떠노네.

서강물 줄기 미워라

가버리면 오지 않고 밤낮으로 흘러가네.

 

참담한 강 위 구름, 강은 일모인데

아득한 천지는 가는 듯 머무는 듯.

붉은 여뀌 시오 리에 뻗어 잇고

푸른 실버들엔 온갖 시름 드리운 듯.

 

흔들리는 마음은 진정키 어렵고

봄바람에 물결이 넘실거려 배를 맬 수 없네.

하늘은 어찌하여 너를 함께 하게 하여

일생에 오늘의 이 시름을 만나게 하는고?

 

鍾玉揮淚而歎曰:

世上事不可知. 吾與汝俄飮合歡酒, 旋把離別盃, 鬼乃猜耶? 人或戱耶?”

遂哦詩以別曰:

 

羨彼雙雙水上鷗, 相親相近浪浮.

生憎一帶西江水, 有去無還日夜流.

 

江雲慘憺江日暮, 天地蒼茫此去留.

紅蓼雨十里五里, 綠楊絲千愁萬愁.

 

心事搖搖難可定, 春風蕩漾不繫舟.

天胡爲乎使汝幷, 一生此日罹此憂.

 

이즈음에 어둠이 강가 나무에 드리우니 마부가 갈 길을 재촉하여 종옥은 떠나갔다. 향란은 강가에 우두커니 서서 다만 길 위 먼지만 바라보았다. 두 눈을 허공을 응시하니 가슴은 갈가리 찢어졌다. 날이 저물고 길도 멀어지니 소식은 점점 멀어지고, 강물은 넓어지고 산허리가 막혀서 그의 형체와 그림자는 뵈지 않았다.

이때 종옥은 경성을 향해 갔다. 지나는 길에 만나는 경치가 슬픔을 자아내지 않는 것이 없었고, 들판의 역사와 삼의 점사들은 홀로 등불을 짝했다. 고을 떠난 지 여러 날 만에 문득 중도에서 관복을 만났다. 경사에서 왔다며 앞에 와 절을 올렸다. 종옥이 이상히 여겨 물었더니 관속의 종이 대답했다.

지난달에 사또의 서간문을 가지고 본댁에 갔더니만, ‘본댁의 병환이 지금은 이미 쾌차하니 도령님을 경성으로 올려보내지 말라는 뜻을 답하는 서간에 말했다.’고 합니다. 또 구전으로 분부하시기를, ‘나의 병은 이미 나았으니 도령님이 출발했더라도 구태여 올라오지 말고 도로 내려가서 학업에 부지런히 닦아 늙은 애비의 바라는 소망을 저버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본댁의 말씀은 이와 같았습니다.”

 

於斯之際, 瞑生江樹, 僕夫催行, 鍾玉乃發行而去.

香娘佇立江頭, 只望行塵, 雙眸空穿, 寸腸欲斷.

日暮路隔, 消息漸遠, 水濶山長, 形影難通.

是時鍾玉方向京城,

歷路物色, 無非助愁, 野驛山店, 獨伴旅燈.

登程數日, 忽逢官僕於中途, 自京而來拜於前.

鍾玉怪而問之, 對曰:

前月中, 持使道書簡往于本宅, 而本宅病患, 今已快差, 以道令主勿爲上送之意, 言于答簡中云矣.

且口傳吩咐曰: ‘吾之病旣蘇, 道令主雖或發程, 苟勿上來, 還爲下去, 勸事學業, 不負老爺戀戀之望也.’

本宅之言, 如斯如斯.”

 

종옥은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본댁의 가르침이 이와 같을 뿐만 아니라 이미 전일 길을 떠날 때에 숙부도 명하신 바이므로 부득이 수레를 돌리며 스스로 생각했다.

가군의 숙환이 평소처럼 회복되셨으니 나에겐 다행한 일이야. 이제 돌아가면 다시 향란을 만날 수 있으니 나에겐 또한 다행한 일이고말고.”

그는 말머리를 돌려 돌아갔다. 원주 서문 밖에 다다랐는데 길가 소나무 정자 아래 새로 쓴 흙무덤이 보였다. 종옥은 마음속으로 깜짝 놀라 마부에게 물었으나 모른다고 했다. 길가는 이에게 물었다.

이 고을 동기 향란의 무덤입니다. 수일 전 향란이 우연히 알 수 없는 병으로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죽었다오. 혹 귀신이 내린 재앙으로 그리했을까요? 아니면 한을 품은 것이 있어서 그리했을까요? 여관 같은 이 세상, 풀잎 위의 이슬 같은 인생이란 말은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로군요. 어찌 불쌍하지 않으리오.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

종옥은 듣고서 깜짝 놀랐다. 내심으로 마음 아프고 슬펐지만, 겉으로는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다만 귀로 듣기만 할 뿐이었다.

 

鍾玉思之於心, 非但親庭之敎若是, 已有前日發程時, 叔父之所命, 故不得已回驂.

自量曰:

家君宿患今已平復, 於我幸矣. 自此而歸, 可復見香娘, 於我亦幸矣.”

乃返駕而還, 馳到原州西門外, 路旁松亭下有新土苗.

鍾玉心忽驚動, 問僕夫, 則僕夫不知. 問在路, 則曰:

本州童妓香蘭之所殯也. 數日前, 香蘭偶以無何之症, 奄逝於一夜之間,

其或因鬼崇而然歟! 又或有飮恨而然歟!

逆旅乾坤, 草露人生, 此所謂也. 豈不憐哉! 豈不惜哉!”

鍾玉聞而心駭, 雖內自傷悲, 而外不敢言露, 只爲耳聞而已.

 

종옥이 성에 들어가 김공에게 배례하니 김공이 말했다.

형님 건강이 평안하시다니 기쁘기 그지없구나. 너는 수일간 먼 길에 피로함이 없겠느냐? 너는 서재에 가서 글을 외고 읽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라.”

종옥이 물러나와 연정으로 가니 눈에 띠는 것마다 쓸쓸하여 상심하고 슬프지 않는 것이 없었다. 맑은 연잎은 님의 얼굴이요, 가는 버들은 님의 눈썹 같았다. 나긋나긋한 말과 고운 음성은 귀에 쟁쟁하고 고운 자태와 꽃 같은 얼굴은 눈에 아른거려 눈을 감아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생각에 잊히지 않았다.

난간 끝에 지저귀는 제비 소리는 가끔 수틀을 놀라게 하는 소리 같았고, 창가의 매화가지는 님의 그림자 같았다. 그녀의 기친 향기는 옷에 남았고 침 자국은 베개에 남았는데 심회가 슬퍼져 홀로 외론 등불을 짝하였다. 그는 시를 지어 그의 회포를 펴냈다.

 

말똥말똥 잠을 못 이루어

차가운 날씨에 베갯머리에 앉았네.

밤 깊어 이웃의 말소리도 그쳤고

희미한 등불에 빗소리 슬퍼라.

 

나뭇가지 울리는 바람소리에 애가 끊어지고

누각에 가득한 달빛에 마음만 아프네.

님이 지금 곁에 없으니

하룻밤이 삼 년 같아라.

 

鍾玉入城而拜於公. 公曰:

兄候萬康, 不勝欣喜, 而汝於數日遠程, 得無困憊乎? 汝往書樓, 勿惰誦讀之工也.”

鍾玉退而出, 往于蓮亭, 滿目蕭然, 無不傷心而悲者矣.

淡荷如面, 細柳若眉, 嫩語嬌音, 怳惚於耳, 艶態芳容, 眩亂於眼, 眠不可寢, 思不可諼.

欄頭燕語, 時驚繡板之音, 窓間梅梢, 幾疑玉人之影.

遺香在衣, 唾痕留枕, 心懷悄悵, 獨伴孤燈.

乃述其詩叙其懷曰:

 

耿耿還無寢, 天寒倚枕頭.

更深隣語息, 燈暗雨聲愁.

 

腸斷風嗚樹, 心傷月滿樓.

佳人今不在, 一夜若三秋.

 

종옥은 혼자서 읊조리고 탄식하며 정원을 배회하니 정신이 자못 혼란스러웠다. 잠시 책상에 의지하려다가 문득 책상에서 한 폭의 화전지를 발견했다. 종옥이 펼쳐보니 사운시가 적혀 있었다.

 

천둥처럼 만났다가 번개처럼 이별하니

서로 친밀하지 않았던 것만 못하네.

굳은 약속은 헛된 약속 되었고

좋은 인연은 나쁜 인연 되었네.

 

살아생전엔 천 리 밖에 이별하고

죽은 후엔 구천(九泉)의 몸이어라.

소원은 남으로 나는 기러기 되어

함께 한강 가에 돌아가는 것.

 

鍾玉自詠自歎, 徘徊於庭上, 精神頗惱.

暫欲憑倚於書案, 忽見案上有一幅華牋.

鍾玉開而視之, 有四韻詩曰:

 

雷逢又電別, 不若不相親.

直約惟虛約, 好因是惡因.

 

生前千里別, 死後九原身.

願化南飛鴈, 同歸漢水濱.

 

이것은 향란이 지은 것이었다. 종옥은 보고서 더욱 비감해져 마음 속으로 축원했다.

향란이 살아서 총명하더니 죽어서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제 그녀의 시를 보니 그녀가 죽은 건 진짜로구나.”

드디어 그녀의 시에 차운하여 그의 비애를 붙였다.

 

인간 세상에 이런 이별이라니

너밖에 뉘와 친하랴?

땅에 묻힐 땐 원한 응당 맺혔으리니

몸을 버림이 어찌 병이 원인이었겠는가?

 

거울 나눠 훗날 기약 남겨 놓고

땅 속에 묻혀서는 이승 안부 묻는구나.

옛날 이별했던 곳엔

외론 배 물가에 매어 있네.

 

此乃香娘之所作也.

鍾玉見益悲感, 乃自心祝曰:

香娘生而聰悟, 死何昏愚! 今見其詩, 其死也眞矣.”

遂次其韻寓其哀曰:

 

人間惟此別, 汝外有誰親.

入地寃應結, 捐軀病豈因.

 

鏡分留後約, 石化問前身.

昔日相離處, 孤舟繫水濱.

 

종옥은 이후로 마음을 잃어버린 듯했다.

그녀가 젊은 나이에 문득 저승으로 간 것은 그녀의 운명 때문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은 까닭이다. 내가 한 곡조 애사를 지어 그녀의 외로운 혼을 위로함이 옳다.”

관속 아이를 시켜 약간의 술과 안주를 가져오게 하여 밤에 서문 밖으로 나갔다. 이 시각은 여러 동물들이 이제 휴식을 취하느라 사방을 돌아봐도 고요하기만 하고, 나루에서 화류에 빠져 술잔을 세며 마시던 술자리도 파하여 객들은 흩어지고 안개가 산촌을 감싸고 베 짜느라 켠 등불도 꺼지고 인경을 칠 때였다.

거친 사초와 어지러운 풀들 사이에 석 자 되는 작은 무덤이 있었다. 달빛은 처량하고 바람소리는 썰렁했다. 종옥은 근심하고 슬퍼하며 유연히 느꺼워져 눈물 콧물이 쏟아짐도 깨닫지 못했다. 그는 술잔을 가시고 잔에 붓고는 글을 지어 제사했다.

 

鍾玉自是以後, 心若有失, 乃曰:

渠以靑娥, 奄歸黃壤, 非渠之命, 由我之故也. 吾以一章哀詞慰其孤魂可也.”

使一官僮持略干酒肴, 夜出西門外,

時則群動初息, 四顧寂寥, 花沈水驛, 觥籌罷而客散, 烟鎖山村, 績燈滅而人定.

荒莎亂草之間, 有三尺土苗, 月色凄凉, 風響蕭颯.

鍾玉愀然而悲, 悠然而感, 不覺涕泗之滂沱. 乃澆酒而酹之, 作文而祭之曰:

 

오호 오호라. 향란, 향란이여. 너는 죽었느냐? 죽지 않았느냐? 내가 꿈을 꾸는 것이냐? 꿈이 아니냐? 네가 죽어서 지각이 있느냐? 네가 죽어서 지각이 없느냐? 네가 지각이 있다면 내가 온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네가 지각이 없다면 나 또한 그만이다. 내가 너에게 일렀거니와 너와 나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했었지. 너는 지금 나보다 먼저 죽었으니 나는 장차 누구를 의지하겠느냐?

네가 죽은 것은 너의 운명을 말미암은 것인가? 나는 살았어도 또한 나의 마음에 즐거움이 없도다. 내가 수레를 돌릴 때는 마음이 너에게만 있어 나의 기쁨은 그지없었다. 너는 죽음에 임하여 생각이 나에게 간절했으리니 네가 어찌 너의 원한이 없었겠느냐? 전일에 내가 시를 읊으면 네가 화답했고, 네가 권하면 나는 마셨지. 지금 나는 시를 짓지 않을 수 없으나 누가 화답하며 내가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으나 누가 권하겠느냐?

너의 자태는 저 달과 같았고 너의 아리따움은 꽃과 같았었다. 너는 어찌 한 번 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느냐? 어찌하여 달이 서쪽으로 져도 동쪽으로 떠오르고 꽃잎은 떨어져도 거듭 피듯이 하지 못하느냐? 나의 마음속엔 네가 죽었다는 것이 항상 믿으면서도 의심했었다. 오늘 애가 여기 와서 너의 형용이 적막하고 너의 종적이 아득하니 나는 이후 처음으로 너의 죽음이 진짜라는 걸 알겠구나.

향란, 향란이여. 내 어찌 생각하지 않으며 내 어찌 슬퍼하지 않겠는가? 내 지금 너를 위하여 글로 위로하고 술로 제사하여 내 슬픔을 부치노니, 너는 돌아와 내 글을 듣고 내 술을 흠향하라. 내가 너의 뜻을 잊지 못하는 것을 잊지 말라. 오호 애재라.

 

嗚呼嗚呼! 香娘香娘, 汝其死耶? 不死耶?

吾其夢耶? 非夢耶? 汝死而有知耶? 汝死而無知耶?

汝有知也, 可知吾之來. 汝無知也, 吾亦已矣.

吾謂汝, 汝與吾, 生可同, 死可同, 汝今先吾而死, 吾將誰依?

汝之死其或緣之命歟! 吾之生, 亦無樂於吾之心.

吾之返駕也, 心存於汝, 吾不勝吾之喜. 汝之臨逝也, 念切於吾, 汝豈無汝之恨耶!

前者吾哦詩而汝和之, 汝勸之而吾欽之.

今也非我無詩, 而誰和之? 非我無酒, 而誰勸之?

汝之態如月, 汝之美如花, 汝何一去不復還?

胡不如月西而復東, 花落而重開也.

吾之心, 汝之死也, 常在疑信中矣.

今我來斯, 汝之形容寂寞, 汝之蹤跡蒼茫, 吾以後始知汝之死也眞矣.

香娘香娘! 吾何不思? 吾何不悲?

吾今爲汝, 慰以文酹以酒, 寓吾一哀, 汝可歸來. 聽吾文, 饗吾酒, 不忘吾之不忘汝之意也. 嗚呼哀哉!



4. 蘭娥或死或生 玉童爲人爲鬼 ( 향란은 죽은 듯도 하고 산 듯도 하며, 종옥은 사람이었다가 귀신이었다가 하다. )

 

종옥은 제사를 마치고 시름없이 방황하는데, 눈물이 흘려내려 옷깃을 적셨다. 이때는 단지 벌레가 우는 소리만 들리고 반딧불만 반짝일 따름이었다. 종옥은 혹시 사단이 탄로 나서 숙부로부터 책망을 들을까 염려하여 돌아오면서도 스스로 탄식함을 마지않았다.

얼핏 잠이 들어 앉았는데, 홀연히 우는 소리가 화원으로부터 처음에는 멀리서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한 동녀가 벽련등을 들고 백옥병을 가지고서 앞을 인도하고, 뒤에 한 미인이 따라오더니 창 밑에 서서 물었다.

낭군 주무십니까, 안 주무십니까?”

 

鍾玉祭畢, 悄悄彷徨, 淚下霑衿, 但聞蟲聲喞文, 螢影耿耿而已.

鍾玉或恐事露而見責於叔父, 乃返而歸, 自嘆不已.

假寐而坐, 忽聞哭聲自花園而來. 初遠漸近,

有童女持碧蓮燈, 携白玉甁前導, 後有一佳人隨之, 立於窓下而問曰:

郎君宿耶? 否耶?”

 

종옥은 마음에 자못 의아하고 괴이하여 일어나 대답했다.

누구인가?”

미인이 대답했다.

저는 곧 향란입니다. 낭군이 비천한 저를 잊지 않으시고, 적막한 넋을 유달리 불쌍히 여기시어, 쓸쓸하고 아득한 밤에 저를 생각해 주시고, 그윽히 깊숙한 무덤을 찾아 주셨습니다. 정이 넘치는 술로 제사를 지내 주시고, 슬픈 사연의 제문으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비록 저승과 이승의 길이 멀고 달라도, 성대한 은혜에 감사하고자 왔습니다.”

종옥은 한편으로 기쁘고 다른 한편으로 슬펐으나 문을 열어서 들어오게 하여 그 곡절을 물었다. 향란은 목이 메여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잠시 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을 닦고 대답했다.

 

鍾玉心頗疑怪, 起而答曰:

誰也?”

對曰:

妾乃香蘭也. 郎君不忘賤陋之質, 特燐寂莫之魂, 思之於莽蒼之夜, 訪之於幽暗之地, 奠之以情醪, 慰之以哀詞.

故小妾雖幽顯逈殊, 欲謝盛恩而來也.”

鍾玉一喜一悲, 開戶請入, 備問厥由.

香娘哽咽不能言, 須臾, 呑聲拭淚而答曰:

 

만약 지나간 일을 말씀드리면 한갓 아픈 회포만 더할 뿐입니다. 전날에 저는 교방의 지극히 미천한 몸으로 분수에 넘치게도 낭군의 과분한 사랑을 받아서 낭군에게 몸을 허락하던 날에 변치 말자는 약속을 했고, 또 다정하고 화목한 즐거움도 홑이불을 덮고 자던 날에 깊었습니다. 앉으나 누우나 함께 늙기를 기약하고, 죽으나 사나 같이 묻히기를 맹세하며, 비록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잠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물주가 시기함이 많아 우리들의 아름다운 기약이 잘못되기가 쉬웠던 것인지, 아버님의 건강이 평안치 못하다는 본댁의 편지가 마침 도착했습니다. 낭군이 천리 먼 길을 떠나자 저는 괴이한 병을 만났는데, 이별하는 고통스런 마음이 빌미가 되고 정한이 병세를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헌원씨와 기백의 인삼과 백출로도 저의 병을 치료할 수가 없고, 하차의 약 뜨는 숟가락으로도 저의 병을 다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하룻밤이 지나서 제가 갑자기 죽자, 사또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저의 시신을 거두어 묻어주었습니다. 낭군도 산 저를 그리워하다가 죽은 저를 위로하고 제사를 지내주시니, 살아서도 은혜를 입었고 죽어서도 감사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매양 한번이라도 낭군을 만나 저를 돌보아 주시고 사랑해주신 정의를 사례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 미천한 몸을 스스로 돌아보니, 다만 썩다 만 뼈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 혼은 있으나 그 형체는 없으므로 지장보살에게 슬프게 아뢰고 후토부인에게 진정하고 호소했습니다. 그랬더니 다행스럽게도 끝없는 자비의 마음을 입어서, 지옥의 독풍(毒風)을 날려 보내고 신령스런 물로써 씻어 임시로 몸을 만들어서 몇 달의 여가를 주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의 뼈는 비록 저승에 있더라도 저의 영혼만은 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비루한 저의 자취를 돌아보지 않고, 감히 존귀한 낭군의 몸을 욕되게 하는 것이더라도 평생 동안 다하지 못한 인연을 펴고자 합니다. 원컨대 낭군은 요사스런 마귀라 해서 물리치지 마시고 용서하시어 억울한 사연을 들어 주십시오.”

 

若陳往事, 徒增傷懷.

曩者小妾以紅坊至微之姿, 猥荷郞君過愛之情, 金石之盟結於執帨之日, 琴瑟之歡, 深於抱稠之夜.

坐臥必偕, 死生同穴, 雖一時半刻, 未嘗肯暫離.

造物多猜, 佳期易誤, 親候靡寧, 家書適到.

郎君作千里之遠, 小妾遘一病之怪, 離懷作祟, 情恨添症.

軒岐蔘木, 不能治吾病, 夏且刀圭, 不能攻吾疾.

纔經一宵, 微褸菴絶, 使道燐之, 斂我而殯.

郎君戀之, 慰我而酹我, 生前恩德, 死後感佩.

是以每欲一拜郎君, 謝其眷愛之誼, 而觀此微質, 只餘殘骸,

有其魂而無其形, 故哀控于地藏菩薩, 陣訴于后土夫人.

幸蒙無量慈悲之心, 假以業風神水之軀, 給暇數月.

以是之故, 穢骨雖在泉壤, 靈魂得出塵寰,

不顧鄙陋之蹤, 敢瀆尊貴之軆, 欲叙平生未盡之緣.

願郎君勿以妖魔而斥之. 恕以寃業而聽之.”

 

이에 향란은 동녀에게 명하여 홍주 한 잔을 따르고, 벽도 세 개를 올리게 하고는, <회춘사> 한 곡을 불렀다.

 

간혹 구름도 되고 간혹 비도 되는,

초나라의 천신녀가 양대에 내려왔네.

신선도 될 수 있고 귀신도 될 수 있는,

가랑자가 종남산에 달이 기울 때 왔네.

 

단정히 일지묵을 요행히 면하고,

진정코 백가회에서 잠시 하네.

만약 추자에게 음률이 없었던들,

그늘진 언덕이 어찌 햇빛 얻었으리오?

 

봄이 성도의 거울에 돌아오니,

연평 나루의 검이 합해져서 돌아왔네.

하늘도 우리를 알고 땅도 우리를 아나니,

능히 우리 두 사람이 인간세계의 즐거움을 몽땅 누리게 해주리라.

 

乃命童女酌紅酒一觴, 獻碧桃三枚, 歌以回春詞一闋曰:

 

或爲雲或爲雨, 楚天神女下陽臺.

能爲仙能爲鬼, 終南月隱賈娘來.

 

端端幸免一池墨, 眞眞暫醉百家灰.

若無鄒子律, 陰崖豈得陽?

 

春回城都鏡, 合延津劍還.

天知我地知我, 能使我兩人盡歡此人間.

 

종옥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괴이히 여겨 물었다.

너는 이미 귀신인데 어찌 술과 과일을 구할 수 있었느냐?”

향란은 용모를 단정히 하고 대답했다.

이 술과 과일은 인간세계의 물건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곧 허공에 떠다니는 혼백인데, 먼지 일으키며 수레 달리고 빠른 바람을 타고 배를 몰 수 있어 하늘에도 오르고 땅에도 들어갈 수 있으니, 눈 깜짝하는 사이에 천리라도 가지 못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술은 군산에 가서 얻어 왔고, 복숭아는 요지에 가서 따 왔습니다.

옛날 동방삭은 이 술을 훔쳐 마시고 삼천 살까 연장하여 살았고, 팽조는 이 복숭아를 따서 먹고 팔백 살이나 장수하였습니다. 이 술과 이 과일은 어찌 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이겠습니까? 마시면 곧 얼근히 취하고, 씹으면 곧 향기롭습니다.”

 

鍾玉喜而悲, 怪而問曰:

汝旣鬼也, 安得酒果乎?”

香娘斂容而對曰:

此酒此果, 非人間之物, 而少妾乃空中之魂也.

駕塵彉風, 升天入地, 一瞬千里, 無處不往.

故得酒於君山, 摘桃於瑤池.

昔者方朔竊飮此酒而延紀三千, 彭祖摘食此桃而遐壽八百.

此酒此果, 豈可易得之物乎! 飮之卽醺, 啖之便香.”

 

종옥이 마셔보고 맛을 보니 세속의 맛과는 맛이 서로 달랐다. 이에 종옥은 시를 지어 화답했다.

 

오늘 님의 소식이 있더니,

달 뜬 어둑한 밤에 찾아왔네.

모산의 약 빌리지 않고도,

능히 님의 혼을 돌아오게 했네.

 

요지의 복숭아 옥저로 나누고,

맛있는 술 금동이에 쏟아 붓노라.

지난 일은 한갓 슬픔을 더할 뿐이니,

사랑의 회포만 이 밤에 이야기하자꾸나.

 

鍾玉飮而嘗之, 與世俗之味, 味相萬也.

乃作詩而和之曰:

 

佳人今有信, 來訪月黃昏.

不借茅山藥, 能還倩女魂.

 

瑤桃分玉箸, 瓊液瀉金樽.

往事徒悲愴, 情懷此夜論.

 

종옥이 이에 향란의 손을 잡고 동침하려고 했다. 향란은 마치 기쁘지 않은 체하며 말했다.

저는 귀신이온데 낭군은 어찌하여 이러십니까?”

종옥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고 귀신이 변화하여 사람이 되나니, 그 귀신과 그 사람은 근본이 하나이니라. 내가 죽으면 또한 귀신이고, 네가 변화하면 또한 사람일 것이다. 어찌 사람과 귀신의 차이가 그 사이에 있겠느냐? 형체가 없는 것을 귀신이라 하고, 형체가 있는 것을 사람이라 하니, 이런 까닭에 귀신은 곧 형체가 없는 사람이요, 사람은 곧 형체가 있는 귀신이다. 그러니 어찌 의심하겠느냐?”

드디어 종옥은 향란의 소매를 이끌어 잠자리에 나아가니, 두 사람의 즐거움을 탐닉하는 정은 완연히 지난날과 같고, 사사로이 가까이하는 마음은 전날보다 배나 더했다.

 

鍾玉乃把香娘之手, 欲爲同寢. 香娘如有不懌延者, :

妾是鬼也, 郞何然乎?”

鍾玉笑曰:

人死爲鬼, 鬼化爲人, 其鬼其人, 其本則一.

吾死則亦鬼也, 汝化則亦人也. 豈有人與鬼之間於其間哉!

無形曰: , 有形曰: , 是以鬼者乃無形之人, 而人者乃有形之鬼也.

則烏乎疑乎!”

遂牽裙就寢, 其耽樂之情, 宛如平昔, 而私昵之心, 有倍於前日矣.

 

잠시 후에 나팔이 새벽을 알리고, 마을의 닭도 울기 시작했다. 향란이 일어나 절하며 말했다.

날이 이미 밝았으니, 저는 가야겠습니다. 저는 저승의 몸인 까닭에 이승에다 형체를 드러낼 수는 없고, 또 음양의 질서를 잃으면 반드시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월이 서로 붙으면 가리게 되고, 쇠붙이와 불이 서로 섞이면 녹게 되는 것입니다.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낮은 사람의 달이요, 밤은 귀신의 해라 했습니다. 또 초사에 이르기를, ‘황혼으로 기약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저의 돌아다님은 낮에는 이롭지 않기에 다만 밤에만 하기로 정했습니다.”

종옥은 서로의 정이 비록 흡족하지 않았으나, 향란이 한 말의 이치가 그럴듯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종옥은 강제로 만류하지는 않았으나 위로하며 유혹했다.

너의 말이 그와 같다면 내 잠시 허락할 것이니, 오늘밤에 다시 와서 이 약속을 저버리지 말고, 나로 하여금 중도에서 길을 바꾼 것에 대해 탄식을 짓게 하지 말아다오.”

향란이 미소 지으며 답하였다.

낭군께서 비록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제가 어찌 무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치마를 걷어 올리고 섬돌을 내려가 곧바로 동산의 온갖 꽃들이 피어있는 으슥한 곳으로 갔다. 종옥이 문을 열고 보니, 이미 향란의 모습과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俄而, 官角報曉, 村鷄已鳴. 香娘起而拜辭曰:

日已曙矣, 妾可去矣.

妾以幽陰之質, 不可露形於陽明之界, 而陰陽失序, 必致災異.

是故日月相薄則蝕, 金火相交則爍.

古人云 晝者人之月也, 夜者鬼之日也.’,

楚辭云曰: ‘黃昏以爲期.’ 少妾之行, 不利於晝, 只卜於夜.”

鍾玉情雖未洽, 理或固然. 遂不强挽, 慰而誘之曰:

汝言如斯, 吾姑許之, 來夜復來, 勿負佳期, 使我毋作中途改路之歎也.”

香娘半笑而答曰:

郞君雖不語, 小妾豈無情?”

乃褰裳下階, 直向東園百花深處而去. 鍾玉開戶視之, 已無形影矣.

 

이후로는 밤이면 오고 낮이면 돌아가니 말없는 사랑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더욱더 깊어만 갔다. 한낮에도 여전히 병에 물시계의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싫었고, 눈길은 서산에 지는 해에 머물러 있었다. 어두워지려는 기색이 숲에서 생겨나는 것을 기뻐했고, 화원에 향란의 발자국 소리가 나는가 귀를 기울였다. 이렇게 하기를 여러 날이 지나갔다.

어느 날 저녁, 향란이 자리 앞으로 나와서 꿇어앉았는데, 모양이 매우 슬픈 듯이 말했다.

사람과 귀신이 같지 않다는 이치와, 저승과 이승이 판이하다는 말씀은 낭군께서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낭군이 출입함에 있어서 저라는 귀신과 반드시 같이 하고, 낭군이 기거함에 있어서도 저라는 귀신과 같이 거처한 날이 적지 아니하니, 사람과 귀신이 얽히게 되었습니다. 낭군의 마음은 비록 그 사람이 그 사람인 줄로 알고 계시지만, 낭군이 변화하여 귀신이 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귀신이로서 사람으로 변화되었음은 저에게는 다행이나, 사람으로서 귀신이 되었음은 낭군에게는 불행입니다.”

 

自此之後, 夜則來, 晝則去, 黙黙之情, 一日而加一層矣.

厭午漏之滴壺, 掛眼於西山落日, 喜瞑色之生樹, 側耳於花園跫音, 如是者於玆有時矣.

一夕香娘前席而跪, 貌若甚慽者而言曰:

人鬼不 同之理, 幽顯辦異之道, 郎君非不知.

而出入也, 與鬼必偕, 起居也, 與鬼同處, 其日不淺, 形神雜糅.

郎君之心, 雖自知其人自人也, 郎君之化而爲鬼者久矣. 以鬼而化人, 於小妾幸矣.

以人而化鬼, 於郎君不幸矣.”

 

종옥은 두려운 듯이 웃고, 놀란 듯이 당황하며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망령된 말을 하느냐? 사람과 귀신의 근본이 비록 일치한다손 치더라도, 죽어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살아서 귀신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살아서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죽어서는 귀신이 되는 법인데, 어찌 죽지 않고도 귀신이 될 수 있는 이치가 있겠느냐? 만약 같이 거처했다고 하여 사람이 귀신이 될 수 있는 이치가 있겠느냐? 만약 같이 거처했다고 하여 사람이 귀신이 되는 것이라면, 설령 미록(麋鹿)의 무리에 들어갔다고 해서 미록의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단 말이냐?

가령 소나 말 가운데에 거처한다고 하면 또한 소나 말의 무리가 되는 것이냐? 살아서도 귀신이 된다는 설은 전혀 그렇게 될 이치가 없는 것이니라. 또한 내가 들으니, 나는 작은 벌은 콩나비가 될 수 없고, 나다니는 작은 닭은 큰 고니의 알을 품을 수 없다고 했느니라.

봉황이 닭 무리에 들어가면, 그 색깔이 비록 근사하다고는 하나 이라고 이르지 않고 봉황이라고 이른다. 사슴이 노루 곁에 서면, 그 모양은 비록 같다고는 하나 노루가 되지 못하고 사슴이 된다. 너는 너고 나는 나요. 사람은 사람이고 귀신은 귀신이니, 그 어찌 네가 말한 그러한 이치가 있을 수 있단 말이냐?”

 

鍾玉瞿然而笑, 愕然而驚曰:

汝何忘言! 人鬼之本, 雖云一致, 死爲人乎? 生爲鬼乎?

生而爲人, 死而爲鬼, 則豈有不死而爲鬼之理哉!

若以同處, 而人能爲鬼, 設使入於糜鹿之間, 而能爲糜鹿之君乎?

假令處於牛馬之中, 亦爲牛馬之類乎?

生而爲鬼之說, 萬萬無此理. 且吾聞之, 奔蜂不能化藿蠋, 越鷄不能伏鵠卵.

鳳入君鷄, 其色雖近, 不曰 鷄而曰 鳳.

鹿立獐邊, 厥樣雖同, 不爲獐而爲鹿.

汝爲汝我爲我, 人則人, 鬼則鬼, 豈焉能有是理哉?”

 

향란이 은밀히 웃으며 대답했다.

낭군의 말씀에도 이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비록 살아서는 사람이 되고 죽어서는 귀신이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옛말에 이르지 않던가요? 공자 맹자의 옷을 입고 공맹의 행동을 행하면 누군들 공맹이 되지 않겠으며, 도척과 걸왕의 옷을 입고 도척과 걸왕의 말을 하면 사람들은 모두 도척과 걸왕이 된다.’라고 합니다.

지금 낭군은 저와 같은 말을 하고, 저와 같은 몸을 하고 있으니, 뜻이 비록 사람과 다르지 않으나 빛깔소리향기감촉의 법은 이미 귀신이 하는 그것으로 변하였습니다. 그것들을 견주어 본다 하더라도 그럴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도 낭군의 의혹이 더 심해진다면, 예기<월령>편에 매가 변하여 비둘기가 되고, 꿩이 바다로 들어가서 이무기가 된다.’고 했는데, 이것은 모두 살아 있으면서도 변화한 것입니다. 참새가 바다에 들어가서 대합조개가 되고, 들쥐가 변하여 종달새가 된다.’고 했는데, 이것이 어찌 죽어서 되는 것이겠습니까?

회남자닭과 개의 울음소리가 천제(天帝)가 거처하는 백운향에서 들린다.’고 했는데, 그곳으로 쫓아간 동물도 또한 신선인 것입니다. 예의 아내 항아가 전설상의 월궁으로 달아났는데, 그렇게 달아난 항아도 본래 사람이었습니다. 낭군이 비록 스스로 귀신이 아니라 하더라도 귀신인 저와 함께 거처했으니, 어찌 귀신이 되지 않았다고 하겠습니까?”

 

香娘笑而答曰:

郎君之言, 如有理哉! 然而知其一, 未知其二. 雖曰 生爲人, 死爲鬼,

而古不云乎 衣孔孟之衣, 行孔孟之行, 誰不爲孔孟? 服跖桀之服, 言跖桀之言, 人皆爲跖桀.’

今郎君同我之言, 同我之身, 則眼耳鼻舌身意, 雖不離於人, 色聲香味觸法, 已是變於鬼, 其較然矣.

如是而郎君之感滋甚, 禮記月令曰: ‘雁化爲鳩, 雉化爲蜃, 是皆生而化之者也.’

雀於水而成蛤, 鼠於田而成鴽, 此豈死而成之者耶?

淮南鷄犬響於白雲, 其從之者, 亦仙也.

羿妻姮娥, 奔於月殿, 其化之者, 本人也. 郎君雖自謂非鬼, 而與鬼同處, 豈不爲鬼哉!”

 

종옥은 이에 탄식하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너의 말이 옳은 것이냐? 그릇된 것이냐? 나의 언어가 이와 같고, 나의 행보가 이와 같고 나의 음식이 이와 같거늘, 어찌 귀신이야 되겠느냐?”

향란이 대답했다.

낭군은 저를 사람이라 이르겠습니까? 귀신이라 이르겠습니까? 무릇 언어행보음식에 관한 것은 저도 또한 능히 할 수 있거늘, 어찌 유독 반드시 사람인 이후에만 능히 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제가 귀신임을 만약 믿지 못하시겠다면 사람들에게 징험해 봄이 옳겠습니다.”

 

이때 김공이 좌우에 관속 종을 모아놓고 알렸다.

도련님과 향란이 모처에 가서 놀 것이니, 보아도 못 본 체하고 들어도 못 들은 체하며, 눈빛으로 끌어들이지도 말고, 손으로 가리키지도 말아라. 나의 말을 쫓지 않으면 반드시 너희들을 죄주리라.”

이로 말미암아 한 고을 안이 모두 김공의 명령을 두려워하여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鍾玉乃噓晞大笑曰:

果是耶? 非耶? 吾之言語如此, 吾之行步如此, 吾之飮食如此, 而尙且爲鬼哉?”

香娘曰:

郎君以小妾, 謂人耶? 謂鬼耶? 凡此言語行步飮食之事, 妾亦能之, 何獨必人而後能此哉? 鬼若不信驗於人, 可也.”

 

是時, 公率籲左右官僕, 告之曰:

道令與香娘行某處, 遊某地, 見之如不覩, 聽之如不聞, 毋指目牽引, 毋揮手指點. 不從吾言, 必罪汝等.”

由是一府中皆畏令, 無敢言其言者.

 

종옥이 향란에게 말했다.

너의 말을 듣고 나의 마음을 헤아려 보니 내가 귀신에 멀지 아니함을 점차 알게 되었으나, 그래도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니 시험한 뒤에 그만두겠다.”

향란이 말했다.

매우 좋습니다. 그렇지만 귀신에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두 사람은 옷을 끌어올리고 팔짱을 끼고는 발걸음을 맞추어서 혹은 연정의 동쪽으로 가기도 하고 혹은 매헌의 서쪽으로 가 장난질하며 왕래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여러 곳을 놀러 다니며 서로 노래하기도 하고 거닐며 시를 읊조리기도 했다.

 

鍾玉謂香娘曰:

聞汝之言, 而度吾之心, 漸知其於鬼不遠, 而猶有疑端, 吾可試可後乃已.

香娘曰: “甚善! 其則不遠.”

乃攝衣聯臂, 幷硅同步, 或行蓮亭之東, 或戱梅軒之西, 往來不止, 游傲多方. 相與作歌, 行且哦之曰:

 

그대의 고운 손 잡고,

서쪽으로 다시 동쪽으로 가고 또 가는데,

문 앞의 버들 나부끼며 푸르고,

못 속의 연꽃 흐드러지게 붉구나.

 

그대와 더불어 함께 노닐다 보니,

한 조각 가을 달 하늘 높이 떴네.

나는 사람들 보건만 사람들 나를 보지 못하니,

나만 이곳에서 방황할 수밖에.

 

나는 귀신이 아니건만 세상 사람들 모두 귀신이라 하니,

그대와 함께 노니며 내 생애를 마치리라.

 

摻執子之玉手兮, 行且行兮西復東.

門柳兮梟娜翠, 池蓮兮爛熳紅.

 

與子兮同戱, 一片秋月, 在天之中.

我見人, 人不能我見兮, 我獨於此彷徨.

 

我非鬼, 世皆謂我鬼兮 與佳人終吾生而倘佯.

 

종옥이 혹은 시를 읊기도 하고, 혹은 거닐기도 했다. 사방을 바라보며 살펴보고, 손을 비비며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왼쪽으로 돌다가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간 곳을 다시 돌아와도 어느 한 사람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종옥이 말했다.

내 오늘에야 비로소 귀신이 되었음을 정녕코 알겠구나. 열 사람의 눈이 보는 땅에 서고, 열 사람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걸었으나, 어느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니 사람에서 멀어졌도다. 슬프고도 괴이하다. 내가 듣건데 희악질하는 미성(尾星)이 나가자 마음의 괴로움이 없어졌고, 활의 그림자가 사라지자 의심하는 병이 나았다고 하더니, 오늘 내가 사람들에게 시험해 보고서야 비로소 귀신임을 알았구나.”

 

鍾玉或詠或行, 四望瞻眺, 抵掌騁目, 左旋右步,

旣去復來, 無一人知之者.

鍾玉曰:

吾今日始知爲鬼也, 丁寧矣.

立於十目所視之地, 行於十手所指之處, 而人莫我知, 其於人遠矣.

嗟乎怪哉! 吾聞戱升出而心痛除, 弓影去而起病愈, 今吾試於人, 而始知其鬼也.”

 

드디어 종옥은 으로 돌아와서는 향란의 손을 잡고 슬픈 듯이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남의 자식이 되어 슬하를 멀리 떠나 죽었으니, 아침저녁으로 부모님께 드리는 맛있는 음식을 누가 맛보겠는가? 또 아침저녁으로 부모의 안부를 보살피는 물음은 누가 하겠는가? 어머니로 하여금 자식을 사랑했던 마음에 공연히 슬픔을 더하게 하고, 아버지로 하여금 자식을 먹었던 정을 날마다 생각하게 하니 마음이 아프구나.

사람이고서 이 세상에 누구인들 부모가 없겠는가? 그렇지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은 강보에 있을 때부터 비롯하여 팔에 안고 등에 업으며, 추우면 옷을 입히고 주리면 젖을 먹이고, 자식이 혹 죽지 않을까 걱정한다. 또 자식이 장성함에 미쳐서는 그를 혼인시켜서, 손자에게 엿을 먹이며 데리고 노는 즐거움을 보고자 하리라.

그런데 이제 나는 불효하여 멀리 당상의 백발 양친을 저버리고서 문득 젊은 나이로 한 귀신이 되었으니, 사람 중의 죄인이요. 귀신 중의 죄지은 귀신이라. 꽃 같은 미인을 찾은 정이야 비록 즐거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다만 자식이 어버이를 섬기려는 정성에는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遂還歸蓮堂, 把香娘之手, 喟然歎息曰:

我爲人子, 遠離膝下, 朝夕甘旨, 誰爲嘗之? 晨昏定省, 誰爲問之?

使慈孃空添舐犢之悲, 令老爺日思哺烏之情, 傷心哉!

人於天地, 孰無父母? 父母之愛子也, 自在襁褓, 提携捧負, 寒則衣之, 飢則乳之, 畏其不壽.

及其年長, 使之成婚, 期欲見含飴弄孫之慶,

而今我不孝, 遠辭堂上白髮雙親, 奄作人間靑年一鬼, 人中罪人, 鬼中罪鬼,

探花之情, 縱有樂只, 愛日之誠, 寧不悲哉!”

 

향란이 자리를 옮겨 꿇어앉으며 말했다.

낭군의 슬픈 마음이 이에 이르렀으니 저는 황송하고 부끄럽기가 그지없습니다. 저로 말미암은 연고가 아니었다면 낭군이 어찌 귀신이 되었겠습니까? 그러하지만 이렇게 된 것은 오랜 인연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새로운 정에 대해 느껴야 할 바를 낭군은 헤아려 알지 못하고 슬픈 생각만 하는군요. 이는 진실로 졸장부나 모자란 사람이나 하는 일이니, 부디 낭군은 그것들을 취하지 마십시오.”

종옥은 꼿꼿하게 앉아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후 미소지으며 말했다.

일이 이미 이와 같거늘 다른 마음이 어찌 있으리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래 산들 그 얼마이겠는가? 한번 나고 한번 죽는 것은 고금에 늘 있는 이치이니, 오래 살고 일찍 죽은들 그 죽음은 한가지인데 또한 무엇을 하겠는가!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주사를 가까이하면 붉게 되고, 먹을 가까이하면 검게 된다고 하였건만, 갈매기는 날마다 목욕을 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검게 하지 않아도 검도다.

지금 나는 살지도, 멸하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았으면서 얼떨결에 변화하여 귀신이 된 것은, 마치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능히 이목(耳目)의 하고자 하는 바를 다하고, 또 능히 마음과 뜻이 즐기고자 하는 바를 쫓은 것과 같아서, 노래와 시를 지어 스스로 즐거워하고, 미인을 데리고 오래도록 놀게 되었으니, 어찌 남들이 병들거나 죽어서 귀신이 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

 

香娘避席跪曰:

郎君之傷感至此, 少妾之悚愧無地. 非妾之故, 郎何爲鬼?

然而此莫非宿緣所由, 新情所感, 郎君不知量此, 及爲傷懷,

是直小丈夫缺缺者之事也, 切爲郎君不取也.”

鍾玉凝坐頷首, 俄而微笑而言曰:

事旣如此, 心何有他. 夫人生世間, 其久幾何?

一生一死, 古今堂理, 而彭殤之間, 其死一也, 抑又何恨!

古人云 近朱者赤, 近墨者黑. 鷗不日浴而白, 烏不日黔而黑.’

今我則不生不滅不病不死, 而籧籧然化爲鬼,

如莊周之夢裡蝴蝶, 能窮耳目所欲, 能從心志所樂, 作歌詩而自娛, 携佳人而永遊,

豈不愈於他人之病且死而爲鬼者哉!”

 

조금 있다가, 향란이 종옥에게 조용히 말했다.

낭군은 너무 사소한 것까지 생각하여 쓸쓸한 정화를 두지 마십시오. 이미 귀신이 된 것을 후회한들 한갓 슬픔만을 더할 뿐 아무런 쓸데가 없습니다.”

종옥이 말했다.

이제 그것에 대해서는 그만하고, 다른 것을 말해 보아라.”

향란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귀신인 우리를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그들을 의심하겠습니까? 우리들의 행동거지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니, 오직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노는 곳도 임의로 할 수 있습니다. 경치 좋은 곳에서 근심도 씻고 좋은 계절에 정()도 펼치기 위해, 보고 듣는 즐거움을 지극히 누리고 산으로 돌아다니며 감상하는 즐거움을 같이하는 것이 어떠십니까?”

종옥은 본래 풍류 남자인지라 웃으며 말했다.

진실로 즐길 만한 것이로구나.”

 

居無何, 香娘溫言於鍾玉曰:

郎君勿以細瑣之念, 有介然於懷也? 旣已爲鬼而有悔, 徒增傷悲而無益.”

鍾玉曰:

姑舍是, 第言之.”

香娘曰:

人不見我, 我何疑人? 我之行止, 非人所知.

則惟意所適, 任其所遊, 寫憂於名區, 騁懷於佳節,

以極視聽之娛, 同作遊賞之樂, 何如?”

鍾玉本是風流男子, 笑而答曰:

信可樂也.”

 

향란이 술병을 들고 종옥과 함께 성의 동쪽으로 나와 산을 따라 남쪽으로 가서 동계(桐溪)의 물가에 다다랐다. 동계는 옛날부터 명승지로 일컫던 바인지라, 동서(東西)의 시인과 문사가 이곳을 지나가게 되면, 시를 지어 이곳에다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산은 병풍처럼 사방으로 벌어져 있고, 물은 띠처럼 온갖 곳을 둘러 있었는데, 때는 바야흐로 늦가을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을 소리없이 떨어뜨리고, 물안개가 비껴 있어 장마가 끝난 뒤의 시내는 맑기만 했다. 단풍잎은 서리를 맞아 붉게 물들었고, 국화는 이슬을 머금은 채 누런 꽃이 피어 있었다.

종옥이 향란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철의 아름다운 경치가 계절에 따라 같지 아니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천지 사이에서 돌아다니도록 하니, 다시 무슨 즐거움이 있어 이 즐거움을 대신하겠는가?”

술병을 집고 스스로 잔실하여 술 마시기를 서로 권하니 그 즐거움이 화평했다. <추유사>를 지어 시냇가 반석 위에다 썼다.

 

香娘乃挈榼提壺, 與鍾玉出城之東, 循山而南, 往于桐溪之崖.

桐溪古稱勝地, 騷人墨客之東西行過是溪者, 無不題詩而題名焉.

山屛四列, 水帶百圍, 時則季秋也,

凉颷颯起, 木葉微下, 烟橫霧斜, 潦盡潭淸, 楓葉着霜而染丹, 菊花凝露而綻黃.

鍾玉顧謂香娘曰:

四時佳景, 隨時不同, 假我以逍遙天壤之間, 復有何樂可以代此樂也?”

乃引壺自酌, 擧盃相勸, 其樂陶陶. 作秋遊辭, 題于澗水邊盤石上曰:

 

가을의 찬바람 밤에 일어나니

흰 이슬이 서리가 되네.

나뭇잎이 섞여 떨어지는데.

국화엔 꽃내음이 있네.

 

님과 함께 유람하니,

서로 따르고 서로 즐김을 잊을 수 없네.

연 풍광이 사람을 머물게 하니,

택은 어디에 있는고.

 

곡수에서 술잔을 보내니,

난정이 이곳이로구나.

녹수는 천년의 소리요.

청산은 만고의 뜻을 품었어라.

 

물은 넘실거리고 산은 우뚝한데,

백년의 세월이 흐르는 화살 같구나.

반석에 앉아 맑은 물로 양치함엔,

오늘 즐기지 않고 다시 무엇을 하랴.

 

金風夕起兮, 白露爲霜.

木葉交墜兮, 菊有芳.

 

與佳人遊覽兮, 相隨相樂不相忘.

泉石留人兮, 梓澤何處是?

 

曲水送盃兮, 蘭亭此地矣.

綠水千年聲, 靑山萬古意.

 

水洋洋山峨峨兮, 百年光陰若流矢.

坐盤石兮嗽淸流, 今吾不樂復何矣?

 

향란이 술잔을 멈추며 자리를 옮기고는, 또한 그에 화답했다.

 

아름다운 경치는 계절에 따라 다른데,

봄에는 비, 가을에는 서리로다.

낭군도 꽃다운 나이,

나도 꽃다운 나이라.

 

아침이면 아침마다 저녁이면 저녁마다,

서로를 따르네.

낭군이 나를 잊지 않으니,

나도 낭군의 안부 잊을 수 없어라.

 

옛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풍류는 이 같아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의 인생을 한탄하나,

이 유람만은 만족스럽구나.

 

절경은 차라리 무심하건만,

소요함 스스로 뜻을 지녔어라.

 

내 즐거움을 다하고 사랑도 펴리니.

인간의 세월 재촉함을 기다리지 않으리라.

술 깨면 시를 읊고 취하면 즐기리니,

무정한 세월일랑 우리 기다리지 말아요.

 

香娘停盃移席, 亦以其體和之曰:

 

佳景隨節兮, 春雨秋霜.

郎君妙齒兮, 妾年芳.

 

朝朝暮暮兮, 相隨.

郎君不忘我兮, 我不忘.

 

古人安在兮, 風流不若是.

悵今世人生兮, 此遊亦足矣.

 

勝景寧無心, 逍遙自有意.

 

盡吾歡叙吾情兮, 不待人間促年矣.

醒可詠醉可樂兮, 無情日月不相俟.

 

이러한 때에 새들은 시냇가 나무로 돌아가고, 기러기는 강가 구름 속에서 부르짖고 있었다. 드디어 서로 더불어 달뜨기를 기다려 돌아오니, 하늘빛은 맑아 깨끗하고 산의 모습은 어두침침하여 보이지 아니하였다. 종옥에게 슬픈 기색이 있는 듯했다.

향란이 물었다.

낭군은 조금 전에는 경치를 보고 기뻐하다가 도리어 지금 슬퍼함은 무슨 일입니까?”

종옥이 대답했다.

이것이 이른바 여자는 봄을 그리워하고, 남자는 가을을 슬퍼한다는 것이며, 또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온다는 것이로다.”

 

於斯之時, 鳥還溪樹, 鴈呌江雲. 遂相與待月而歸, 天光皎潔, 山容慘憺.

鍾玉若有悽悵之態,

香娘曰:

郎君俄以物喜, 而反以已悲者, 何也?”

鍾玉曰:

此所謂女懷春, 士悲秋, 而興盡而悲來者也.”

 


5. 稠坐蹤跡畢露 芳年妻妾俱歡 ( 많은 사람들이 앉은자리에서 발자취가 죄다 드러나니 꽃다운 나이의 처첩들이 함께 기뻐하다. )

 

종옥이 연정으로 돌아오니, 촛불은 깜빡이고 물시계는 물방울은 아직도 떨어지고 있었다. 이달에, 김공은 구일의 중양절 놀이를 준비하고자 하여, 빈객 관료들과 함께 동산 위에 모여 잔치를 하는데, 온 고을 사람과 관내 원근의 사람이 와서 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향란이 종옥에게 물었다.

오늘 같이 좋은 날, 사또께서 동산에 잔치를 베풀어, 관현의 연주가 요란하고 술과 안주가 낭자한 것이 전에는 없던 것입니다. 원컨대 낭군과 제가 함께 가서 잔치에 참여하여 그 광경을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鍾玉還歸蓮亭, 金燭欲穗, 玉漏猶滴.

是月也, 公欲作九日之遊, 與賓僚會宴于東山之山, 擧州人內外遠近, 罔不從之而遊焉.

香娘謂鍾玉曰:

今日吉辰良, 使道設宴於東山, 管絃之嘔啞, 酒肉之狼藉, 前所未有.

願郞與余偕往, 參其宴觀其光如何?”

 

종옥이 대답했다.

동산이 잔치는 즐겁고도 즐거울 것이고, 너의 말은 아름답고도 아름답구나. 그러나 나는 귀신이지 사람이 아닌데, 어찌 능히 화려한 잔치자리에 발로 걸어갈 수 있으며, 입으로 진수성찬을 먹을 수 있겠느냐?”

향란이 말했다.

낭군은 어찌 그리도 구차하십니까! 사람들은 우리들이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또 사람들은 우리들이 입으로 먹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이미 귀신인데 사람들이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鍾玉曰:

東山之宴, 樂則樂矣. 香娘之言, 美則美矣. 我鬼非人, 安能足躡華筵, 口喫珍饌?”

香娘曰:

郎君何走隶 走束哉! 人不知吾之足之行之, 人不知吾之口之喫之,

吾旣鬼也, 人何疑乎?”

 

드디어 향란은 종옥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걸어서 동산 위의 잔치에 갔다. 온갖 풍악을 한꺼번에 연주하고, 수많은 관원과 고을사람들이 좌우에 도열하여 섰는데, 어른과 아이들이 구름같이 모였고, 남녀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시냇가의 그림 같은 따오기와 들 골짜기의 검은 소들은 왔다갔다하며 서로 이은 것이 호응되어 끊어지지 않았다.

바다와 육지에서 나는 물품을 다 갖추었고, 현악과 관악이 어지럽게 연주되었다. 술잔이 무수히 돌아 반은 취하고 반은 깨어 있고, 혹은 노래를 부르고 혹은 춤을 추고 있었다.

 

遂與鍾玉騈肩聯步, 往東山之上.

百千種樂, 同時俱作, 稻麻吏民, 左右堵立, 老少雲集, 男女驂奔.

溪濱之畫鵠, 野谷之烏牛, 往來相續, 呼應不絶.

水陸之品具備, 絲竹之音雜奏, 盃酌無巡, 觥籌交錯, 半醉半醒, 或歌或舞.

 

이에 향란은 종옥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좌우를 돌아보다가, 종옥에게 말했다.

오늘의 놀음이 어떠합니까? 이러한 때에 시 한번 읊조림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향란이 먼저 시 한 수를 읊었다.

 

기녀들이 동산의 잔치에 참여하니,

모자가 떨어졌다는 맹가의 주연이로고.

이날 누구인들 모이지 않았겠는가.

이 놀이야 하늘이 베푸심이라.

 

於是香娘與鍾玉或先或後, 左瞻右顧, 謂鍾玉曰:

今日之遊何如? 此間不可無一詠也.”

香娘先吟一章詩曰:

 

妓參安石會, 帽落孟公筵.

此日誰無會? 玆遊莫非天.

 

종옥이 화답했다.

 

수유를 꽃고 꼭대기에 올라,

국화를 술잔에 띄우고 화려한 잔치에서 취하네.

인간 잔치의 좋은 절기는

중양절 비 갠 뒤의 날씨라네.

 

鍾玉和之曰:

 

挿茱登絶頂, 泛菊醉華筵.

佳節人間宴, 重陽霽後天.

 

향란이 종옥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즐거움만 알지 우리 귀신들의 즐거운 장난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 귀신도 우리들의 놀음만 기뻐하지 인간들의 마음껏 취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잔치에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형체가 없어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니, 몰래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서 배를 채우는 맛을 아는 것이 어떠합니까?”

종옥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무방하나, 숙부가 자리에 계시고 여러 이 참여하고 있는 판에 만약 자취가 드러나고 일이 누설되면 두렵고도 두렵지 않겠느냐?”

향란이 말했다.

제가 이미 잘 살펴 놓았으니, 낭군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香娘謂鍾玉曰:

人知人之樂, 而不知吾之嬉戱之樂, 吾喜吾之遊, 而未參之醉飽之筵.

吾今無形, 人旣不知, 則暗搜適口之物, 俾作充腸之味何如.”

鍾玉曰:

雖然, 叔父在座, 諸賓參旁, 若或跡露而事泄, 則得不恐而畏乎?”

香娘曰: “妾已料之審矣, 郎君勿慮也.”

 

이에 향란은 종옥과 함께 남북으로 왔다갔다 하고 동서로 기웃거리면서, 혹은 앞에 있는 소반의 안주를 거두어 담기도 하고 혹은 앞에 있는 술그릇의 술을 부어 맛보기도 하며, 서로 웃기도 하고 서로 희롱도 하니, 곁에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묵묵히 보고도 보지 못하는 듯이 했다. 종옥은 귀신이 된 줄로 믿고 마음속으로 전혀 의심하지 않으면서 오직 마음대로 돌아디니, 가보지 않는 곳이 없었다.

향란이 말했다.

제가 사또 앞에 놓여 있는 맛있는 안주와 좋은 술을 보니, 향기롭고 깨끗해서 먹을 만했습니다. 낭군과 함께 가서 같이 먹고 싶습니다.”

종옥이 대답했다.

숙부가 비록 내 마음을 보거나 알지는 못하시겠지만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겠느냐?”

이에 종옥은 향란을 따라 김공 앞에 나란히 앉아서, 혹은 고기를 끓여 서로 먹여주고 혹은 과일을 집어 서로 주기도 하였다.

 

乃鍾玉彷徨乎南北, 逗遛乎東北, 或撤張三之盤肴, 或斟李四之樽醪, 相笑相戱, 旁若無人,

然而人皆黙黙, 視若不見.

鍾玉信其爲鬼, 心乃無疑, 惟意周行, 無處不到.

香娘曰:

吾觀使道之前, 嘉肴美酒, 香潔可口. 欲與郎君偕往而偕食也.”

鍾玉曰:

叔父雖不見知於我心, 獨不愧乎?”

乃隨香娘幷坐於公之前, 或切肉而相啗, 或投果而相贈.

 

이때 김공이 갑자기 일어나 종옥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는 종옥이 아니냐! 어찌하여 여기에 왔느냐? 네가 미쳤느냐? 미치지 아니하였느냐? 많은 사람들이 빽빽이 벌여 앉은 잔치에 어찌하여 이와 같이 제멋대로이고 무례하느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종옥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향란을 돌아보니 향란은 이미 간 곳이 없었다. 조금 있으니 서쪽에는 해가 장차 저물고 사람의 그림자도 어지러이 흩어지니, 김공도 드디어 잔치를 파하고 돌아갔다.

이날, 종옥은 홀로 연정에 돌아와 스스로 탄식하고 스스로 책망하며 말했다.

내가 성숙하지 못한 아이로서 에게 속은 바가 되어, 여러 사람으로부터 웃음을 샀고, 숙부로부터 노여움을 만났으니 내 무슨 면목으로 다시 세상에 용납되겠는가?”

종옥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니, 황당하기가 남가일몽(南柯一夢)과 같고, 한단의 베게 위에서 꿈을 깬 것과 같았으나,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여 밤이 새도록 자지 못했다.

 

公忽起而把鍾玉之手曰:

汝非鍾玉乎! 胡爲乎來此? 汝狂耶? 非狂耶? 稠人列坐之宴, 何如是放縱無禮也.”

一座皆大笑. 鍾玉不勝愧赧, 顧見香娘, 香娘已無去處.

已而西日將暮, 人影散亂, 公遂罷宴而歸.

是日鍾玉獨還蓮亭, 自嘆自責曰:

吾以未成之兒, 爲妖鬼所欺, 貽笑於衆人, 逢怒於叔父. 吾何面目復容於世乎?”

思之又思, 悅若南柯一夢, 而如從邯鄲枕中而來矣. 且憤且愧, 達宵不寐.

 

다음날 김공은 에서 물러나온 후에, 종옥을 불러 조용히 일렀다.

내가 너의 어제 행동거지를 보고, 너의 오늘 용모를 살피니, 한 기색이 얼굴에 어려 있고, 더러운 기운이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어 보이는데, 너는 요사이 요귀(妖鬼)를 가까이하지 않았느냐?

지금 만약 사실을 말한다면 살기를 바랄 수 있지만, 만약 말하지 않는다면 죽기를 각오해야 하리라. 아뢰지 않고 죽기보다는 차라리 아뢰고서 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나는 마귀를 항복시키는 술법을 알고 있고, 또한 혼백을 불러내는 부적도 갖고 있으니, 너는 너의 마음을 숨기지 말고, 또 너는 네가 해야 할 말을 꺼리지 말아라.”

 

明日, 公於衙退之後, 召鍾玉, 從容謂之曰:

吾觀汝之昨日行止, 吾觀汝之今日容貌, 邪色浮於天堂, 穢氣藏於膏肓, 汝無乃近昵鬼妖者耶?

今若告實, 生可望矣, 如不吐情, 死可必矣.

與其不告而死, 孰若告之而生乎! 吾知降魔之術, 亦有招魂之符, 汝毋隱汝心, 汝毋諱汝言.”

 

종옥이 스스로 헤아려 보아도 죄를 면할 수 없을 것 같아, 자리를 옮겨 단정히 꿇어앉아 그 곡절을 다 말했다.

이에 김공이 말했다.

괴이하고 괴이하며, 위태하고도 위태하다. 내 이제 귀신을 불러낼 터이니, 너는 그것을 보도록 해라.”

김공이 옥으로 만든 먼지떨이 끝을 휘둘러 병풍을 치면서 부르니, 한 미인이 병풍 뒤로부터 나와서 교태를 머금고 수줍어하며 김공 앞에 와서 절을 하였다. 종옥이 보니 곧 향란이었다.

 

鍾玉自度不得免, 避席端跪, 悉陳厥由.

公曰:

怪哉怪哉! 殆哉殆哉! 我今招鬼, 汝第視之.”

以玉麈麾打屛風而呼之, 有一美姝自屛後而出, 含嬌含羞, 拜於公之前.

鍾玉視之, 乃香蘭也.

 

김공이 향란을 가리키며, 종옥에게 말했다.

이것이 귀신이냐? 사람이냐? 이것은 귀신이 아니라 바로 나의 향란이란다.”

김공이 웃이나 향란도 또한 웃었다. 김공이 말했다.

옛부터 비록 색계상에는 영웅 절사가 없다고는 하나, 어찌 너처럼 심한 사람이 있겠느냐! 너는 향란이 죽어서 귀신이 되었음을 알고서도 그 미혹됨이 이와 같으니, 향란이 살아서 사람으로 있을 때에는 너의 빠져듦을 알 만하구나. 내가 지난봄에 너에게 성혼하기를 권했는데도 네가 한사코 사양하고 듣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향란을 시켜 너의 마음을 시험해 보고자 하였다.

너는 지금 이후로도 다시 혼인을 사양하는 마음이 있느냐? 향란이 죽지 않고서도 죽었다고 한 것은 내가 시켜서 그런 것이다. 네가 귀신이 아닌데도 귀신이라 한 것은 향란의 꼬임에 넘어가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향란의 성품이 온화하고, 재주 또한 정교하고 민첩하다. 너는 한때에 너를 속였다고 해서 혐의를 두지 말고 가련하게 여겨 그녀를 거두어, 아내를 취한 후에도 버리지 말아라.”

또 말했다.

술은 성품을 헤치고, 은 반드시 몸을 망치게 하니, 경계하고 또 경계하여라. 염교풀이 불어 노는 찬바람에 쉽게 쓰러지고, 굽은 나무에 앉은 새가 놀라는 마음을 늘 생각하여라.”

 

公指香蘭而謂鍾玉曰: “此鬼耶? 人耶? 此非鬼也, 乃吾之妓香蘭也.”

公笑, 香蘭亦笑. 公曰:

古雖有色界上英雄節士之言, 豈有汝之甚者哉!

汝知香蘭之死而爲鬼, 而其蠱惑如此, 其在香蘭之生而爲人之時, 基沈溺可知也.

吾前春勸汝成婚, 而汝固辭不聽, 故吾使香蘭欲試汝心.

汝自今以後, 更有辭婚之心耶! 香蘭之不死而死, 吾之所嗾而然也.

汝之非鬼而鬼者, 香蘭之所囮而然也.

然而香蘭性旣溫和, 才又精敏, 汝勿以一時欺汝爲嫌, 憐而率之, 勿棄於有妻之後也.”

且曰:

酒乃伐性, 色必敗身, 戒之戒之! 恒思基吹冷虀驚曲木之心也.”

 

이때 본댁의 편지가 서울 집으로부터 왔는데, ‘모처에 혼처가 정해졌다고 씌여 있었다.

김공이 이러한 뜻을 타일러 알리니, 종옥은 감히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바야흐로 상경하려고 하는데, 향란이 종옥에게 말했다.

제가 비록 사도의 명을 받들어서 그랬다 하더라도, 낭군을 기만한 저의 죄는 큽니다. 그러나 숙부님 잔치 때의 일일랑 가슴에 품어두지 마시고, 신혼한 후에도 저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종옥이 대답했다.

오늘 내가 빨리 결혼할 수 있게 됨은 너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니, 너는 바로 나의 좋은 중매인이로구나.”

드디어 서로 웃으며 작별하였다.

 

是時, 家書復自京第而來. :

結婚於某處.”

公以此意諭之, 種玉不敢出一言. 方爲上京, 香蘭謂種玉曰:

小妾雖奉使道之命而欺謾郎君, 小妾之罪大矣. 然勿爲槪懷宴爾, 新婚之後, 毋忘舊人也.”

種玉曰:

今吾之速婚, 因汝而成之, 汝乃吾之良媒也.”

遂相笑而別.

 

종옥이 상격한 후에 길일을 택하여 노종의 딸과 결혼하였다. 노종은 당시에 이름 있는 재상이며, 권세가 조정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종옥이 향란을 총애하는 첩으로 삼아서 한 집에 거느리고 살았다. 문에서는 서로 질투하여 큰 소리 나는 일도 없고, 집안에는 하는 경사가 이어지며, 안채에는 맑고 정숙하니, 상하가 서로 화락했다.

다음해에 종옥은 서울에서 재주를 다투었는데, 진사가 되었다. 이년 후에 급제하고, 십삼 년 후에 한림학사가 되었다. 어질면서도 문장을 짓는 재능이 있었으며, 팔남 이녀를 두었다. 오남 일녀는 노씨가 낳았고, 삼남 일녀는 향란이 낳았다. 그 자손들은 모두 조정에 나아가 벼슬을 하고 덕망이 높았고 빛났다. 그리고 가문의 명예도 일세에 찬란하게 빛나서 세상 사람들은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이에 기록하여 후세에 전한다.

 

種玉上京後, 擇日成禮於魯琮之女. 魯琮者, 爲時名卿, 權傾一朝矣.

種玉以香蘭仍以爲寵妾, 率吾一室,

門無河獅之吼, 家有阜螽之慶, 閨門淸肅, 上下和樂,

越明年, 種玉戰藝於京師, 登進士. 後二年, 選及第.

後十三年, 爲翰林學士. 賢而有文章, 有八男二女.

五男一女, 魯氏之所生也. 三男一女, 香娘之所生也.

基子孫皆仕於朝, 光顯矣, 而門名赫赫於一世, 世人皆爲奇之,

而傳之於記云.

<東洋文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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