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지(愁城誌)
임제(林悌)
천군(天君)이 즉위하던 때는 바로 강충(降衷) 원년이었다. 인관(人官), 의관(義官), 예관(禮官) 그리고 지관(智官)이 각각 그 관부를 맡아서 자기 직무에 충실하고 희관(喜官), 노관(怒官), 애관(哀官) 그리고 낙관(樂官)은 모두 중심부를 장악하여 절제 있게 일을 집행하며 시관(視官)과 청관(聽官)과 언관(言官)과 동관(動官)은 모두 예법에 어김이 없도록 모든 행동 범절을 통제하였다.
天君卽位之初, 乃降衷之元年也,
曰仁, 曰義, 曰禮, 曰智, 各充其端, 率職惟勤.
曰喜, 曰怒, 曰哀, 曰樂, 咸總於中,
發皆中節, 曰視, 曰聽, 曰言, 曰動, 俱統於禮, 制以四勿.
실정이 이러한 때 천군이 영대(零臺)에 드높이 앉아 정사 일반을 재결하니 백관이 모두 그 명령을 순종하였다.
하늘에 소리개 날고 연못에 물고기 뛰노는 자연 현상은 평화스러운 기운에 싸였으니 상서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동나무에 걸린 달과 버드나무에 스치는 바람도 그의 경치 아닌 것이 없으니, 어찌 순 임금의 오현금과 요 임금의 삼척토계(三尺土階)만이 반드시 거룩한 것이었으랴.
그리하여 호랑이 같은 사나운 짐승을 구태여 잡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잡히고 산 같은 장애물을 무너뜨리고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만큼 되었다. 임금은 궁궐을 떠나지 않고 오직 단전(丹田)에만 거동을 하니 온 나라 사람들은 그를 임금으로 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維時天君, 高拱靈臺, 百體從令,
鳶飛之天, 漁躍之淵, 莫非其有. 桐梧之月, 楊柳之風, 莫非其勝,
不勞舜琴, 五鉉何順, 堯階三尺,
無欲虎焉. 而可縛無忿山, 而可摧四海之內, 孰不曰其君也哉.
즉위한 지 2년 후에 신수가 훤하고 맑으며 고박한 풍모를 갖춘 한 늙은이가 스스로 주인옹(主人翁)이라고 일컬으며 글을 올렸다.
그 글에 하였으되,
“위태로운 일은 모름지기 안일한 데서 생기며 난리는 그릇된 정치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지 않은 변괴와 뜻밖의 재난은 현명한 임금으로서는 마땅히 삼가야 할 바입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 어는 겨울이 온다.’고 하였으니 비록 적고 미미한 틈새라도 미리 막지 않을 수 없으며 조그만 징조라도 미연에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미연에 밝혀내는 것은 명철한 사람의 통달한 소견이지마는 이미 얻어진 성과에만 매달리는 것은 용렬한 사람의 고루한 생각입니다. 대체 명철한 사람의 높은 의견을 무시하여 버리고 용렬한 사람의 소견을 따른다면 어찌 나라가 위태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전하께서는 나라의 정치가 잘 되고 백성이 편안히 산다고 자처하시나 한 치도 못 되는 싹도 천 길 되는 큰 나무로 자라나며 한 잔도 못되는 물도 모이면 바다를 이룬다는 사실을 짐작하시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지금 나라의 기초가 튼튼하지도 못 하온데 한갓 글 짓는 데만 정신이 팔려 도서로 성을 쌓고 그 속에서 밤낮으로 가까이 하시는 자는 도홍(陶泓), 모영(毛潁) 등 네 사람뿐이오니 이러고서야 정치가 어찌 잘 되겠습니까. 또 개연히 고금의 뛰어난 인물들을 동정하사 항상 마음속에 그들만 생각하고 있으나 그러한 무리들은 자칫하면 환난을 일으키기가 일쑤입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만일 충성스런 신하들의 지성어린 충고를 받아들여 화평한 정치를 힘쓰시면 비록 그 진상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며 귀에 들리지 않더라도 백성들의 소원하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모든 일이 제대로 펴서 별로 심려를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지극히 간절한 심정을 널리 살펴 주시옵소서.”
越二年, 有一翁, 神淸貌古, 自號主人翁,
乃上疏曰:
“竊以危生於安, 亂仍於治, 故不虞之變, 無妄之災, 明君所愼也.
易曰: ‘履霜堅氷至’. 盖徵不可不防, 漸不可不社, 燭於未然者, 哲人之大觀也.
狃於已然者, 庸人之陋見也. 夫昧哲人之觀, 而守庸人之見, 豈不危哉.
今君自謂已治已平矣, 而殊不知寸萌之千尋, 濫觴之滔天.
且根本未固, 而遽遊於翰黑之場, 文史之域, 日夜所親近者, 陶泓, 毛潁輩四人而已, 又慨想古今英雄, 使其憧憧來往於肺腑之間, 如此等輩作亂不難也.
願君上勉從丹衷, 御以和平, 則可謂視於無形, 聽於無聲, 庶免顚倒之思余之剌矣, 無任懇惻之至.”
천군이 이 글을 다 보고 나서 그 충고를 받아들이기만 했을 뿐 끝내 안일하고 방종한 생활을 단념하지 못하고 계속하여 옛 서책에만 재미를 붙여 항상 풍월을 일삼으니,
주인옹이 재차 와서 간하되,
“제가 정의는 형제 지친보다 깊고, 의리는 기쁨과 슬픔을 같이하는 터이온대 어찌 위험한 환난을 앉아서 보고만 있겠습니까. 대체 현실의 제반 정세를 논의하는 정도에만 그치고 지나 간 역사를 탄식이나 하는 것은 결코 마음을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될 수 없으며 벼루나 갈고 글이나 짓는 것은 성품을 기르는 데 아무런 보탬도 되지 못 할 것입니다.
대개 사단(四端) 가운데서 부끄러워하며 미워하는 마음으로 사건을 처리하며, 시시비비를 가르는 지론으로써 사리를 따지기만 하여, 감찰관과 더불어 서로 통정하면서 분에 넘치게 비분강개하며 의기 헌앙한 나머지 조심성 있게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면, 이는 나라를 안정시키는 도리가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일이 전혀 없을 수는 없는 것이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경향이 너무 지나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유하건대 추위와 더위, 바람과 비가 모두 천지의 기운 아닌 것이 없지마는 만일 그것이 질서를 어기면 변괴를 일으키고 시기를 놓치면 재난으로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양기가 퍼지고 음기가 걷히며 바람이 순조롭고 비가 때 맞춰 오도록 하는 것은 바로 정치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데 달렸을 따름입니다.
전하께서는 한 나라의 임금이라는 중요한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만물의 운명을 맡아 쥐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와 중화(中和)의 도리를 깊이 살피어 천지조화에 맞게 하시면 어찌 그 은혜가 크지 않으며 그 공덕이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서경에 이르기를 ‘편벽되지도 않고 기울어지지도 아니하면 임금의 정치는 공평하다’고 했으니 바라건대 이것을 생각하시고 이것을 실행하시와 열성을 발휘하여 조심성 있게 하시면 더없이 다행한 일일 것입니다.“
天君將疏覽訖.
虛懷容受, 而終不能已, 意於優遊竹帛, 嘯詠今古.
主人翁又來諫曰:
“臣情踰骨肉, 義同休戚, 坐視危亂, 其可恝然,
夫論今吊古, 無補於存心, 磨鈆揮翰, 何益於養性.
盖四端之中, 羞惡用事, 是非持論外, 與監察官交通, 越分慷慨, 矯矯亢亢, 甚非所以安靜之道也.
然此固不可無, 而所不可偏者也.
誓若一陰一陽, 曰風曰雨, 無非天地之氣, 而乖序則爲變,
失時則爲災, 可使陽舒陰慘, 風調雨若, 正在變理之如何耳.
願君上念參三之大位, 想萬物之備我, 致中和而參天地,
豈不大哉! 豈不美哉!
書曰: ‘無偏無頗, 王道平平’,
願念玆在玆, 君無怠無荒, 幸甚幸甚.”
천군이 듣기를 마치고 침통한 태도로 주인옹과 함께 반묘당 가에 앉아서 조서를 내리니 하였으되,
“그대들 춘관(春官) 인(仁)과 하관(夏官) 예(禮)와, 추관(秋官) 의(義)와, 동관(冬官) 지(智) 및 오관(五官), 칠정(七正)은 모두 모여 나의 말을 들을지어다. 내가 중한 천명(天命)을 받아 가지고 일을 잘 살피지 못한 탓으로 해서, 그대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제자리를 떠나게 하였으며 혹 예법에 맞지 않는 것이 있어도 그저 옳다고만 하여 두고 지향만 원대하게 가져서 넓고 호탕한 기분에 싸여 있었다. 그리하여 잔치 놀음에만 빠졌었는데 너희들은 어찌 바른 말로 간함이 없었느뇨.
아아, 나 한 사람이 잘못할 때는 너희들에게 허물이 없을 것이지만 너희들에게 허물이 있으면 나 한 사람에게 책임이 돌아 올 것이다. 그러나 바른 이치는 꺼지는 법이 없으니 불원간에 있은 일이 다시 옳은 데로 회복될 것이다. 그대들은 마땅히 나와 함께 부지런히 힘을 써서 다시금 초기의 정치를 계승하여 하늘이 나에게 부여해 준 중요한 직분에 욕됨이 없게 할지어다.”
天君聽罷側然, 引主人翁坐於半畝塘邊,
下詔曰:
“來汝春官仁, 夏官禮, 秋官義, 冬官智, 曁五官七正咸聽予言.
予受天明, 命不能顧, 諟致令爾等久曠厥職,
或有不中規矩, 自以爲是激志高遠, 牽情浩蕩, 將有尊俎之越, 豈無佩觿之刺乎?
噫! 予一人有過, 無以汝等. 汝等有過, 在予一人.
天理未泯, 不遠而復, 宜與黽勉, 更始以續, 初載之治無忝, 予畀負之.”
하니 모든 신하들이 황공하여 혼연히 그의 말을 좇았다. 이에 연호까지 고치어 복초(復初)라 하였다.
重僉曰: “兪.” 乃遂改元曰復初.
원년 추팔월에 천군이 무극옹(無極翁)과 함께 주일당(主一堂)에 앉아서 오묘한 이치를 깊이 연구하고 있는데 갑자기 칠정(七情) 중의 하나인 애공(哀公)이 와서 아뢰므로 감찰관과 채청관이 함께 상소를 올리니 하였으되,
“엎드려 아뢰옵건대 하늘은 끝없이 높고 금풍은 소슬하여 우물가의 오동나무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퍼지고 짙은 이슬은 대떨기에 듣사옵니다. 온갖 풀이 시들어 가니 귀뚜라미는 슬피 울고 기러기 소리에 구름도 한층 더 쌀쌀해 보입니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우수수 설레고 부채는 쓸 데 없어 여름날 수고한 보람도 없이 버림을 받습니다.
반악(潘岳)의 귀밑머리는 덧없이 희어졌고 송옥(宋玉)의 시름은 한결 더 심하여 졌습니다. 장안(長安)의 조각달은 집집이 다듬이질 소리를 재촉하고 옥문관(玉文關)의 의로운 꿈은 여인의 치마 허리를 가늘어지게 합니다. 심양강의 단풍잎과 갈대꽃은 백낙천의 푸른 적삼을 함뿍 적시고 무산의 떨기 국화와 일엽편주는 두공부(杜工部)의 백발을 모지라지게 합니다.
하물며 밤비는 장문궁(長門宮)의 외로운 베개에 돌이 뿌리고 서리 같은 달빛은 연자루(燕子樓)의 외로운 사람을 고요히 비칩니다. 초강의 난초 향기 사라지니 청풍나무의 설레는 소리 쓸쓸하고 상부인(想夫人)의 눈물이 마르니 소상 반죽은 우수수 처량도 합니다.
그러나 전하께서는 근심이 만물 때문에 생기며 만물은 근심 그대로 근심하는 것을 알지 못 하십니다. 이렇게 온 나라가 근심하고 있는데 전하는 근심하는 까닭을 모르시니 근심을 없게 하는 이치를 어이 아시오리까. 또한 백성들이 나라 형편을 보고서 근심하는 것인지, 듣고서 근심하는 것인지 알지 못 하시오니 참으로 영문을 알지 못 하겠습니다. 저희들이 직분을 맡아서 감시 숨기지 못 하겠사옵기에 삼가 번거롭게 아뢰옵니다.”
고 하였다.
元年秋八月, 君與無極翁坐主一堂, 參究精微之餘, 忽七正中有哀公者來奏, 監察官與採聽官,
合䟽曰: “伏以玉宇寥廓, 金風凄冷, 凉生井梧, 露滴叢篁, 蛩吟而草衰, 雁叫而雲寒, 葉落而有聲, 扇棄而無恩,
華藩岳之髮, 撩宋玉之愁, 正是長安片月, 催萬戶之砧聲. 玉關孤夢, 減一圍之裳腰, 潯陽楓葉荻花, 濕盡司馬之靑衫, 巫山䕺菊扁舟, 搔短工部之白髮,
況夜雨便入長門宮, 孤沈霜月, 只爲燕子樓一人, 楚蘭香盡, 靑楓瑟瑟, 湘妃淚乾, 斑竹蕭蕭,
是不知愁, 因物愁物, 因愁愁愁, 而不知所以愁, 又焉知所以不愁也. 且不知見而愁耶? 聽而愁耶? 實不知其故, 臣等俱忝職司, 不敢隱諱, 謹以煩瀆.”
천군이 다 보고 나서 문득 수심에 잠겨 즐겨하지 아니하니 무극옹이 이에 한 마디 말도 없이 가 버렸다.
天君覽了, 便愈然不樂, 無極翁乃不辭而去.
천군은 마침내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여 말에 수레를 매어 가지고 주목왕(周穆王)의 고사를 본받아 천지가 좁다 하고 사방으로 두루 순행하려 하니, 주인옹이 말머리를 잡으면서 애타게 간하므로 할 수 없이 반묘당 가에 말을 멈추었다. 이 때 마침 격현(膈縣)에 사는 어떤 사람이 와서 보고하기를,
“요즈음 흉해(胸海)에서 파도가 크게 일어나 태화산(泰華山)이 바다 가운데로 옮겨 갔사온데 그 곳을 바라본즉 산중에 웬 사람들이 어른어른하는데 무려 수천만이 되었습니다.”
고 하였다.
이러한 변괴는 고금에 드문 일이므로 천군을 비롯하여 만조백관이 망연실색하며 탄식할 즈음에 아득한 먼 곳으로부터 몇 사람이 시를 읊으면서 오는 듯 하더니 급기야 가까이 온 것을 본즉 다만 두 사람 뿐이었다.
君命賀意馬, 周流八極, 欲效周穆王故事, 被主人翁, 叩馬苦諫, 而駐於半畝塘邊. 有鬳縣人,
來報曰: “近日胸海波動, 泰華山移來海中, 望見山中, 隱隱有人, 無慮千萬, 此等變怪, 甚是非常.”
正嗟訝之間, 遙望數人行吟而來, 看看漸近, 只是兩箇人,
그중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은 얼굴이 초췌하고 몸이 수척하였는데 절운관을 쓰고 장검을 짚었는데, 지하의를 입고 초란(椒蘭)의 패물을 찼으며 눈썹은 나라를 걱정하는 시름으로 찡그러졌고 눈에는 임금을 생각하는 눈물이 글썽거리니 이는 분명히 초희왕을 슬퍼하고 상관대부를 원망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뒤에 따라 오는 사람은 정신이 가을 물처럼 맑고 얼굴은 구슬인 양 빛나는데, 초나라 옷을 입었으며 초나라 갓을 쓰고 초나라 소리로 읊는 것이 틀림없이 일생동안 오직 초양왕만을 섬기던 사람이 분명하였다.
那先行的人, 顔色憔悴, 形容枯槁, 冠切雲帶, 長劍芰荷, 衣楸蘭佩眉攢, 憂國之愁眼, 滿思君之淚, 無乃痛懷王而恨上官者耶?
尾來的人, 神凝秋水, 面如冠玉, 楚衣楚冠, 楚聲楚吟, 莫是一生唯事楚襄王者耶?
두 사람은 함께 천군 앞에 와서 절을 하고 아뢰기를,
“전하의 의리와 인정이 높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찾아뵈옵니다. 천지가 비록 넓으오나 저희들은 용납될 곳이 전혀 없사와 이처럼 떠도는 신세가 되었삽더니, 이제 저희들은 전하의 심지(心地)가 자못 넓으심을 보옵고 저 돌 무더기 한 모퉁이를 빌어서 거기 성을 쌓고 살고자 하오니 전하께서는 기꺼이 이 소원을 들어 주시 올는지 황송하옵니다.”
俱來拜於君曰:
“聞君高義, 特來相訪, 但天雖寬, 而君蜚自不能容焉. 今見君, 心地頗寬, 願借磊磈一隅, 築城爰處, 不知君肯容接否?”
천군이 이에 옷깃을 여미고 슬픈 기색으로 말하기를,
“사내 대장부의 회포는 예나 지금이나 매 한 가지라, 내가 어찌 한 치의 땅을 아껴서 그대들의 살 곳을 마련해 주지 못 하리오.”
하고 드디어 조서를 내려 분부하되,
“그들이 와서 살기를 원하니 감찰관은 그리 알고 처리할 것이며 또한 성을 쌓겠다고 청하니 뇌외공(磊磈公)은 그리 알고 도울지어다.”
두 사람은 공손히 절을 하고 흉해를 향해 떠나갔다.
그 후로부터 천군은 항상 두 사람의 충성스러운 언행을 잊지 못하여 출납관으로 하여금 초사를 높이 읊게 할 뿐, 다른 일에는 관계하지 아니하였다.
君乃斂袵愀然曰:
“男兒襟袍, 古今一也. 吾何惜尺寸之地, 而不爲之所乎?”
遂下詔曰:
“任他來投, 監察官知道, 任他築城, 磊磈公知道.”
二人拜謝, 向胸海邊去了.
自是之後, 君思想二人, 不能忘懷, 長使出納官高詠楚辭, 更不管攝他事.
그해 추구월에 천군이 친히 바닷가에 나가 성 쌓는 것을 바라보니 몇 만 갈래의 원통스러운 기운과 몇 천 겹의 근심스러운 구름이 떠도는 가운데 만고의 충신 의사들과 억울하게 화를 입은 사람들이 모두 쓸쓸하고 비참한 얼굴로 웅성거리며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진시황의 태자 부소(扶蘇)도 한 몫 끼어 성 쌓는 것을 감역하고 있는데 그는 몽념(蒙恬)과 함께 형곡 흙구덩이 속에 생매장 당한 선비 사백여 명을 부려 역사를 시켰기 때문에 일을 서두르지 않고도 한나절이 되기 전에 성을 다 쌓았다.
秋九月, 君親臨海上, 觀望築城, 只見萬樓寃氣, 千疊愁雲.
前古忠臣義士及無辜逢殘之人, 零零落落, 往來於其間.
中有秦太子扶蘇, 曾監築長城, 故與蒙恬役硎谷坑儒四百餘人, 勿亟經始, 不日有成.
그 성을 쌓는 데는 흙과 돌을 그렇게 많이 쓰지 않았기 때문에 흙을 운반하며 돌을 굴려오는 괴로움이 별로 없었다. 성의 규모를 크게 만들자면 성 쌓을 땅이 좁고, 작게 만들자면 그 안에 포괄할 것이 많으므로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고, 형체가 나타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나타나게 하였다.
성은 북으로 태산에 의거하고 남으로 창해에 있었으니 당 줄기는 바로 아미산으로부터 시작하였는데 우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하여 시름과 원한이 서리여 있는 까닭으로 수성(愁城)이라 이름하였다.
성 안에는 조고대(吊古臺)가 있으며 성에는 네 개의 문이 있으니 하나는 충의문(忠義門)이요, 하나는 장렬문(壯烈門)이요, 하나는 무고문(無辜門)이요, 하나는 별리문(別離門)이다.
其爲城也, 積不煩於土石役, 何勞於轉輸以爲大也, 則所奇之窄, 以爲小也, 則所包之多, 若無而有, 不形而形.
北據泰山, 南連滄海, 地脈正自峨眉山來, 碖碅磊落, 愁恨所聚, 故名之曰愁城.
城中有吊古臺, 城有四門, 一日忠義門, 一日壯烈門, 一日無辜門, 一日別離門.
천군이 단전(丹田)으로부터 바다를 건너 와서 수성의 네 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조고대에 오르니 이때에 구슬픈 바람이 소슬하게 불고 처량한 달빛이 싸늘하게 비치는데 여러 문에 있는 사람들이 원망과 울분을 가득 품고 함께 두레를 지어 들어왔다.
천군이 슬픈 얼굴로 자리에 앉아서 관성자로 하여금 수성의 모습을 만분지일(萬分之一)이라도 기록하라 하니 관성자(管城子)가 명령을 듣고 물러나서 눈물을 머금고 서 있었다.
於是天君自丹田渡海, 洞開四門, 御于吊古臺上.
干時, 悲風颯颯, 苦月凄凄. 各門之人, 含怨抱憤, 一擁而入,
天君慘然而坐, 命管城子, 記其萬一. 管城子受命而退, 含淚而立.
먼저 충의문 안을 바라보니 서리같이 맵짠 기운이 서리었는데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 안에는 죽어간 수많은 충성스러운 신하들이며 기개 있는 영웅들이 있었다.
그 중에 으뜸 되는 두 사람이 있는데 한사람은 결의 폭정을 간하다가 경궁에서 머리가 달아 난 관룡방이요, 한 사람은 주(周)의 나쁜 정치를 간하다가 포락형을 받고 염통까지 잘리운 비간이었다.
또한 그 가운데는 한고조처럼 변장을 한 후 황옥거를 바꿔 타고 좌독을 초패왕 항우에게 주면서 거짓 항복을 하던 기신 장군과, 윤건을 쓰고 학창의를 입고 손에 백우선을 들고 있는 제갈량도 있었다.
先見忠義門中, 秋霜凜凜, 烈日下臨,
爲首兩人, 一則殞首於瓊官之發, 一則剖心於炮烙之受, 非龍逢比干而誰?
中有黃屋左纛, 貌類漠高者, 應是紀將軍. 綸巾鶴氅, 手待白羽者, 豈非諸葛武候.
그 밖에 웅치를 제후로 봉한 사실과 조비를 황제라 일컬은 사실과 관련된 의분에 들끓는 열사와 원한에 사무친 영웅들은 또한 얼마나 많으랴.
홍문 잔치에서 충성스런 의분이 격동되어 한나라가 주는 옥두를 눈가루처럼 산산이 부셔 버리면서 죽어도 두 마음을 먹지 않을 기개를 보여 준 범아부며, 녹색 도포에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청룡도를 비껴들고 적토마 위에 높이 앉은 풍채 좋은 영웅으로서 여몽의 꾀에 빠져 한스럽게도 강동을 평정하지 못한 관운장도 있다.
그리고 길게 휘파람을 부는 월석이며 돛대를 치면서 맹세하던 조적 등이 크나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 버렸으니, 천지가 어찌 이다지도 무정하단 말이냐.
그 뒤에 장순, 허원, 뇌만춘, 남제운 등이 서 있으니 모두 다 충성스러운 장사들이며, 개개가 의로운 열사들이다.
雍齒封候, 曹丕稱帝, 義士之憤, 英雄之恨, 當復如何.
鴻門宴罷, 玉斗如雪, 忠憤激烈, 至死不二者, 范亞父也.
騎赤兎馬, 提靑龍刀, 綠袍長髮, 橋橋雄風, 一陷阿蒙之手, 恨不得呑江東者, 關雲長也.
長嘯越石, 擊楫士雅, 齎志而逝, 天地無情.
其後, 有張巡, 許遠, 雷萬春, 南霽雲, 人人忠壯, 箇箇義烈,
자욱하게 쳐들어오는 오랑캐의 티끌이 햇빛을 가리우고 여러 고을이 바람 앞의 풀잎마냥 쓰러지건만 수양성의 이 대장부들만이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화살도 오히려 견고한 돌부처에 들어 박히거늘, 남제운이 손가락을 끊는 결연한 태도는 어찌 하란의 야속한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였는가.
아아, 원통하구나, 정이 있는 사람이 굳은 돌덩이보다도 더 완고하단 말이 웬 말이냐. 거기에는 또한 정성스럽고 충직한 인물이건만 애매하게 역적이라는 누명을 쓰고 죽어버린 악비도 있다.
종류수 같은 충성된 사람은 왕에게 황하를 건너오라고 거듭 권하다가 그만 하릴없이 죽어 버리니 출정한 군사가 이기지 못하고 말았다. 하늘은 어찌 이를 알아 못보고 잠잠해 있단 말인가.
胡塵蔽日, 列郡風靡, 睢陽城中, 一何多男子也.
指血不能動賀蘭, 而箭羽能沒於浮屠, 是何誠實於石, 而不感於人也?
寃哉! 痛哉! 人又有頑. 甚於石者乎?
岳武穆, 精忠旗偃, 空負背字,
宗留守, 過河聲殘, 出師未捷, 天何黙黙,
옷이며 허리띠에 자기의 굳은 지조를 써놓고 태연히 죽음에로 나갔던 문천상이며 왕을 등에 업고 산 같은 파도 속에 뛰어들어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한 불쌍한 육수부도 있다.
맨 뒤에는 중국과는 다른 우리나라의 의관을 차린 난파 학사와 호두장군(유응부) 등 대여섯 사람들이 떼를 지어 기상도 늠름하게 오고 있으니 이들이 바로 우리나라 오백 년 역사에서 빛나는 의리와 절조를 훌륭하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이 밖에 아득한 지난 역사에서 자기의 한 몸을 오직 나라에 바친 사람들과 의로운 일에 나 아가서 거룩한 공로를 이룬 인물들을 일일이 다 기록하기 어려웠다.
衣帶有贊, 從容就死.
可燐! 文天祥, 背負六尺, 與國偕亡, 哀哉!
陸秀夫 最後有衣冠, 似異於華制者. 或以一身, 任五百年綱常. 鸞坡學士, 虎頭將軍, 五六爲群, 昻昻而來,
此外悠悠今古, 忘身循國, 就義成仁者, 難以悉記.
다음엔 장렬문 안을 바라보니 질풍 같은 한 마디 우레 소리에 음산한 바람이 휘도는데, 그 안에는 원통하게 죽어 간 만고의 의로운 열사들이 웅기중기 모여 있었다. 맨 앞에 생전에 충성과 효도로 이름을 날린 오자서가 섰는데 그는 백마를 타고 촉루검을 가로 짚고 절강 조수물 마냥 노기가 등등하였다.
그 다음에는 기운이 무지개처럼 뻗치고 자기의 죽음으로써 연태자에게 보답하기 위해 척팔비수를 어루만지면서 장사의 노래를 태연히 부르던 형가며, 오추마 한 필을 타고 온 천하를 주름잡다가 한고조와 싸운 지 여덟 해 만에 해하에서 참패를 당하고 원대한 꿈이 오강의 드높은 물결에 휩싸여 버린 초패왕이며, 옷을 벗어 준 은혜에 감동하여 백만 군중을 모아 가지고 싸우면 이기고 치면 빼앗아 큰 공을 세우다가 천하가 평정되자 하릴없이 버림이 되어 마침내는 한 개의 아녀자인 여후의 손에 목숨을 잃은 회음 땅의 장부 한신도 있다.
次見壯烈門中, 疾雷一聲, 陰風慘慘,
當先一人, 乘白馬, 橫屬鏤, 怒氣如浙江潮急, 乃是生全忠孝伍子胥也.
更有氣作長虹, 死酬知己. 撫尺八七首, 吟壯士之歌者, 荊卿也.
西楚覇王, 以烏騅一騎, 橫行天下, 八年干戈, 夢斷烏江之波.
淮陰男子, 感解衣之恩, 連百萬之衆, 戰勝攻取, 烏盡弓藏, 竟死兒女之手,
그 중에 아까운 것은 사람들이 작은 패왕이라고 부르는 손백부이다. 강동에 웅거하여 범같은 형세로 천하를 노리더니 보잘것없는 졸부의 화살에 혼백이 떨어져서 남긴 한이 속절없이 동쪽으로 흘렀다.
부견은 백만 용병을 거느리고 채찍을 던져 강을 막으려 하더니 팔공산 초목에 마음을 놀랬으며 마침내는 제 아들의 칼을 맞아 깊은 한을 남겼으니 아아 슬프구나, 천하의 영웅들이 벌떼처럼 일어나는 때를 당하여 성공하면 제왕의 자리를 차지를 차지할 수 있으나 실패하면 역적으로 지목이 되니 소를 타고 한서를 읽는 그러한 자도 한때의 호걸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可借. 孫伯符, 人稱小覇王, 雄據江東,
虎視天下, 而落魄唐人之穀, 遺恨東流, 符堅, 以雄師百萬, 稅意投鞭而心驚八公之草木, 卒遺養虎之患,
鳴呼! 當群雄蜂起之秋, 成則帝王, 敗則盜賊. 若騎牛讀漢書者, 亦一時豪傑也.
당나라 이씨의 왕은이 쇠약해지니 옥좌 밖에는 모두 독사 마냥 흉악하고 멧돼지 마냥 탐욕한 오랑캐들이 횡행하는데, 오직 돌궐의 종족이면서도 일편단심 당나라 왕실을 위하여 오랑캐 무리들을 쓸어버리기에 힘을 다했건만, 주온이 당나라 왕조를 찬탈하자 우울하게 근심하면서 죽은 이극용도 있었다.
그밖에 수다한 사람들은 대부분 생전에 웅대한 계획을 실현하지 못하고 공로와 업적이 죄다 인멸되어 도저히 성패로서 논의할 것이 못 되는 바, 이런 것들은 이루다 기록할 수 없었다.
仙李春暮, 一榻之外, 都是長蛇封豕.
李克用, 以沙陀之種, 心存王室, 志切除殘.
而失溫御宅, 悒悒而卒, 其餘雄圖未遂, 功業墜虛, 而亦不可以成敗論者,
不可盡錄.
다만 문 밖에 두 사람이 있어 감히 들어오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면서 서로 마주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한 사람은 한나라에서 별장을 지낸 이릉으로서 일찍이 오천 명 보병을 거느리고 사십만의 오랑캐 기병을 꺾으려다가 형세가 불리하게 되자 오랑캐에게 항복하여 장차 무슨 일을 해 보려고 하더니, 한나라가 그 일족을 다 죽였으므로 그만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또 한 사람은 현양 도둑을 지낸 환온이다. 그가 북쪽을 바라보고 탄식하던 때에는 흡사히 영웅의 지기가 있는 듯하더니, 더러운 이름이라도 만대에 남기겠다는 생각과 공적을 높이 평가해 준다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후에는 어쩌면 그렇게도 신하답지 않은 마음을 품게 되었는가. 그러면 적에게 항복한 장군과 임금을 배반한 도둑이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영특하여 자기 잘못을 뉘우친 나머지 온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但門外有兩人, 趑租不敢入, 相對泣下.
一人乃漢別將李陵也. 曾以半萬步卒, 崔四十萬虜騎, 勢窮降虜, 將欲有爲, 而漢滅其族, 陸不得歸.
一人乃荊梁都督桓溫也.
平乘北望之歎, 似若有英雄地志, 而遺臭之言, 九錫之請, 何其畜不臣之心也.
降將軍, 反都督, 何爲於此也?
無乃靈靈之追悔乎?
다음으로 무고문 안을 바라보니 우중충한 구름이 떠돌며 조심스러운 안개가 자욱하고 찬비가 휘뿌리며 싸늘한 봄이 몰아치고 있었다. 거기에는 수없이 많은 원통한 심정을 안고 천추에 씻지 못할 원한에 잠긴 영혼들이, 더러는 귀한 출신으로 더러는 천한 신분으로 혹은 무리를 지어 혹은 적은 떼를 지어 웅기중기 모여 섰다.
다음은 진을 치고 오던 사십만 대군이 모두 장평에서 구덩이에 생매장 당한 조나라 병졸들이다. 또 삼십만 대군이 예두장군 백기의 지휘 하에 진을 치고 둘러섰는데, 그들은 신안에서 항우와 싸우다가 구덩이에 묻힌 진나라 병졸들로서 백기가 본디 진나라 장군이기 때문에 자기 나라 장수의 지휘 하에서 부대를 편성한 것이다.
고양의 술사는 세 치 밖에 안 되는 혀를 놀려서 칠십여 개성을 함락시키더니 일이 낭패되어 죄 없이 가마 속에 삶아 내는 극형을 당했고, 여태자는 조나라에서 넘어온 강충의 간악한 짓을 격분해 하다가 억울하게 죽었으니, 호수 위에 우뚝 솟은 망사대는 헛되이 후회하는 슬픈 눈물을 뿌리게 할 따름이다.
次見無喜門中, 雲愁霧慘, 雨冷風凄,
無數寃精, 或貴或賤, 或多或小, 上聚而來,
有四十萬, 爲屯而至者, 長平趙卒也.
有三十萬爲屯, 而稅頭將軍爲首者者, 親安泰卒也. 蓋白起, 原來秦將, 故依舊爲帥,
高陽酒徒, 憑三寸之舌, 下七十之城, 事勢蹉跎, 無罪鼎鑊, 戾園前星,
憤趙虜之奸, 犯當答之罪, 湖上高臺, 空灑望思之淚而已.
술을 마시면 귀는 더워지기 마련이거니 장고를 두드리며 노래함이 세상에 무슨 애매하고 좋지 못한 폐단을 주기에 허리를 베이는 참변에까지 이르렀는가, 슬프다.
통후 평양은이 이런 참변에 죽었던 깃이다. 하물며 악하고 흐린 것을 제거해 버리고 착하고 맑은 것을 드러내며 많은 선비가 무리 지어 나오는 사실은 시대에 무슨 해됨이 있기에 그들을 죽여 버리게 되었는가.
원통하구나, 범맹박(汎孟博) 이하 여러 사람들이 바로 이렇게 되었던 것이다.
또 이경업(李敬業)과 낙빈왕(駱賓王)은 의분을 품고 한 몸을 돌보지 않으면서 옛 임금을 복위시키려고 무한한 애를 썼다. 그들의 하늘을 꿰뚫은 의리와 역사를 빛내는 충성은 마침내 일이 글러지면서 죽게 되었으니 아아, 신명이여, 이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선비의 몸으로 자기의 직분을 다하다가 죽어 버렸으니 죽음이 어찌 한스러우리마는 생각할수록 원통하구나.
酒後耳熱, 拊岳而歌, 何預於世, 而至於腰斬, 慘哉!
平痛候楊惲, 況激濁揚淸, 多士濟濟, 何害於時?
而置於廢死, 怨哉! 范孟傅諸人,
且李敬業, 駱賓王, 憤不顧身, 謀復故主,
通天之義, 貫古之忠, 而事誤捐軀, 神乎? 鬼乎? 此人何辜?
噫噫悲哉! 士君子一身盡職而已, 死何憾焉.
이 가운데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원한과 살아서나 죽어서나 잊지 못 할 절절한 울분이 너무 괴롭고 너무 슬퍼서 차마 말할 수도 없는 것인 제(齊)나라 왕이 송백(松栢)에서 나그네가 되고 초나라 의제(義帝)가 강 속에서 죽은 것이니, 나라를 빼앗으면 그만인데 어찌 또한 죽이기까지 하였단 말인가. 충신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열사의 원한은 다함이 없다.
관성자가 여기까지 이르러서는 너무도 마음이 산란하여 여러 가지 사실을 한 조목씩 열거하지도 못하였다.
此中最有恨, 同古今, 憤切幽明, 苦苦哀哀, 不忍言, 不人言者, 齊王客於松柏. 楚帝死於江中, 移國亦足置死, 郡忍忠臣之淚, 不盡烈士之恨.
有槪管城子, 到此心亂, 不能一一條列.
다음에 별리문(別離門)을 바라보니 저물어 가는 수풀에 석양이 비꼈는데 가고 오고, 오고 가며 생사간에 떠나고 갈라지는 사이에 속절없이 넋이 빠진 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가장 한스러운 것은 한(漢)나라 임금이 오랑캐를 막아 낼 수단이 없어서 공주와 소군(昭君)이 연이어 정든 고국을 떠나 낯선 먼 나라로 시집을 간 것이니, 한나라 공주로서 오랑캐 땅의 첩이 된 그 기박한 운명이야 오죽하였겠는가. 비파 줄을 퉁기며 홍곡가(鴻曲歌)를 부르던 사무친 원한은 지금도 오히려 새로우며 초승달이 쓸쓸한 왕소군의 푸른 무덤에 비치고 변방의 기러기는 그리운 고국의 소식조차 끊어 버렸던 것이다.
次見別離門中, 斜陽暮草, 去去來來, 生離死別, 黯然鎖魂,
最可恨者, 漢家天子禦戎御無策, 公主照君相機遠嫁, 漢宮粧胡地, 妾薄命幾何?
琵琶鉉鴻鵠歌, 遺恨到今, 關月留靑塚之鏡, 邊鴻斷故國之信.
자경(子卿)은 바닷가에서 양을 보면서 십 년 동안 절개를 굽히지 않다가, 머리가 백발이 되어서야 돌아오니 무릉(武陵)에 쓸쓸한 가을비가 휘뿌릴 따름이었고,
영위(令威)는 구름 속의 학 두루미처럼 떠돌다가 천년 만에 집에 돌아오니 산천은 예와 같으나 사람은 간 데 없고 거친 무덤 위에 외로운 달만이 싸늘히 걸려 있었다. 비록 속세와 선계의 구별이 있을 것이나 이별의 애틋한 정회는 매일반일 것이다.
죽궁(竹宮) 연기 속에서 말도 않고 웃지도 않으니 가을바람에 애끊는 나그네와 마외(馬嵬)언덕 밑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구슬처럼 부서지고 꽃처럼 날아가니 중천에 뜬 밝은 달 아래서 가슴이 미어지는 사나이도 있었다.
子卿看羊海上, 十年持節白首, 言旋茂陵秋雨令威,
化鶴雲中, 千載歸家, 物是人非, 塚上苦月, 雖仙凡有殊, 而別意一也,
竹宮煙中, 不言不笑, 腸斷秋風之客, 馬嵬坡下, 玉碎花飛, 傷心遊月之郞.
또 깊은 규방에서 자라 연나라 아이에게 시집 간 여인이 공명을 중히 여기고 이별을 가볍게 생각하여 백우전(白愚箭)을 지고 청해(靑海)에 출정할 줄 어찌 짐작이나 하였으랴. 지루한 여름날과 기나긴 겨울밤에 아리따움은 차츰 시들어 가는 데 누구와 함께 청춘을 즐기겠는가. 수심은 맑은 볼에서 떠나지 않고 원한은 꽃 같은 얼굴을 초췌하게 하였다. 비록 차디찬 매화 가지를 꺾어도 그리운 임의 편지는 받아 보기 어려웠으며 간절한 사연을 비단 폭에 썼으나 멀리 있는 그대에게 보낼 길이 없으므로 청루에 주렴을 걸고 애꿎은 꾀꼬리만 쫓아 버릴 뿐이었다.
乃有生長深閨, 娘與燕兒, 豈料重功名輕離別, 負白羽, 征靑海.
夏之日, 冬之夜, 余美亡, 誰與處.
愁銷玉頰, 恨悴花容, 塞梅雖折, 驛使難逢, 錦字已成, 琴高無便, 靑樓捲簾, 打起橫鸎而已.
또 임금의 총애를 잃고 장신궁(長信宮)에 오래 동안 홀로 살던 그 여자를 두고 보면 임을 멀리 이별함은 어찌 할 수 없거니와, 지척에 임을 두고 어떻게 떨어져 살 수 있었으랴. 텅 빈 섬들에는 이끼만 무성하고 임금의 수레는 맞을 길이 전혀 없는데 쓸쓸한 창 밑에 반딧불만 지나가며 허전한 궁전에는 사람의 자취조차 끊어졌으니, 어찌 임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이야 없으리마는 끊어진 인연을 다시 이을 길이 없었으니 참말로 가련한 신세였구나.
또 초패왕의 장막에서 밤마다 향기로운 넋이 칼빛을 좇아 날던 우미인이며 살아서 이별함 보다는 차라리 죽어 떠남을 달게 여기고 금곡의 누대에서 떨어져 죽은 녹주(綠珠)도 보였다.
又有君王寵歇, 久閉長信, 遠別離, 無奈何. 近別離, 當苦爲.
空階苔長, 玉輦不來, 半窓螢度, 金殿無人, 寧乏買賊之金, 徒羨塞鴉之色而已, 悶悶哉.
香魂夜逐, 劍光飛, 楚帳之虞姬也. 甘心死別, 不生離, 金谷之綠珠也,
무성한 망초는 왕손이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한탄하고 아득하게 날아가는 구름은 효자의 어버이 생각을 간절케 한다.
친구의 의리가 절절하니 운수(雲樹)에 생각이 간절하고 형제간 우애가 지중하니 할미새 소리 견디기 어려워라.
이 때 관성자는 눈물이 마르고 머리가 벗어져서 더는 글쓰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인간을 그만 이별한다.’는 시구를 읊고 하늘 위로 피하고자 하더니 마침 견우직녀를 만나서 할 수 없이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때 성 밖에서 한 사람이 그의 팔소매를 붙잡고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옛날을 따르고 현재를 버리며 귀신의 명부만 들추고 이 세상 사람은 본 체 만 체 하는가. 나는 곧 이 세상의 호걸이라, 여기 시 한 편이 있으니 번거롭겠지만 그대는 이 시를 베낄지어다.”
하고 높은 소리로 낭랑히 읊는 것이었다.
萋萋芳草, 恨王孫之不歸, 杳杳飛雲, 起孝子之遐思,
朋友義切, 雲樹相思, 鶺鴒情苦, 瓊雷相望.
管城子, 淚乾頭禿. 勢難備書.
乃吟人間足別離之句, 欲避之於天上, 遇牽牛織女而返.
城外一人, 執管城子曰:
“子何追古而遺今, 點鬼薄而蔑陽人也? 我乃當世之人豪, 有詩一章, 煩君寫之.”
乃高聲浪吟曰:
열다섯 젊은 나이 육도(六道)를 통했거니
만 사람이 일컫는다. 기이한 사내라고,
녹이 쓴 푸른 칼날 그 언제 써 볼거나
아득한 변방에는 가을 기운 높았건만
중년이 다되어서 경서를 읽은 뜻은
부귀(富貴)에 탐을 내어 저만 위함이 아니노라
야속하다, 이내 심정 임에게 못 전함이,
덧없는 세월에 백발(白髮)이 다 되누나
관성자는 이 시를 들은 대로 네 문에서 쓴 것과 함께 천군 앞에 바쳤더니 천군이 겨우 한 번 읽어보고는 스스로 수심을 이기지 못하여 우울한 심정으로 그 해를 보냈다.
若人足稱奇男子,
十五年前通六韜,
塵生古匣劍未試,
目極關河秋氣高.
中年好讀孔氏書,
向來所耻非縕袍,
牛歌不入齊王耳,
髮上光陰昏又朝.
管城子聞這詩, 慨然而寫. 幷將四門標榜, 陣於天君前, 君纔一覽, 愁不自勝, 袖手悶黙, 鬱鬱終歲.
2년 봄 2월에 주인옹이 계(啓)를 올려 이르되,
“세월이 바뀌어 새 봄이 되고 만물이 모두 새롭게 되었습니다. 모든 풀과 나무들까지도 저절로 생기를 띠거늘 이제 전하께서는 가장 영험한 품성을 타고나시고 지극히 고상한 기운을 가지고서도 수성 안에 유폐되어 오래도록 불안스럽게 지내시니 어찌 눈물 흘릴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수성의 뿌리가 깊이 박혀서 창졸간에는 어찌 하기 어려운가하옵니다. 제가 가만히 듣자오니 행화촌(杏花村)에 한 장군이 있어 성현이라는 명성이 있는 데다가 용맹한 기운을 겸하였으며 깊고 넓은 도량은 저 큰 바다와 같아서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합니다. 그 가계를 따져 보면 곡성(穀城) 출생으로 국생(麴生)의 아들이며 이름은 양(襄)이요, 자는 태화(太和)입니다. 체모는 부친을 닮았으며 그 선조는 일찍이 굴원(掘原)과는 사이가 좋지 못하였으나 완적(阮籍) 완함(阮咸) 해강(楷康) 유령(劉伶)과 함께 죽림에서 노닐었으며, 혹은 백의로 심양(尋陽)에서 도연명(陶淵明)을 방문하였으며, 이태백(李太白)은 금거북을 저당 잡혀 가지고 끝내 죽자 사자 하는 친구로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매작한 일로 맑은 이름을 약간 더럽혔으나 결코 그 본심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양은 다만 청렴하고 허심하며 의로움을 드러내기를 좋아하여 청탁(淸濁) 간에 실수하는 일이 없습니다. 흔히 여인들을 가까이 하지마는 술을 마시는 사이에서 적을 제압하는 용기가 있습니다. 생각하건대 사람의 장점을 취하는 것은 명철한 임금의 인재를 등용하는 방법이니,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겸손한 태도와 두터운 기백으로 그를 모셔 좌상에 앉히고 존대하여 벼슬을 시키시면, 곧 수성을 평정하여 옛날의 순후한 정치로 돌아 갈 것이니, 이 일은 실상 어렵지 않사옵기로 삼가 아뢰는 바입니다.”
二年春二月, 主人翁啓曰:
“靑陽換歲, 萬物或新, 凡在草木, 尙自忻忻,
今君稟最靈之性, 有至大之氣, 而迫於愁城, 久不安處, 豈非可謂流涕者乎?
但愁城, 植根之固, 難以卒拔.
竊聞杏花村邊, 有一將軍, 得聖賢之名, 兼猛烈之氣, 汪汪若千頃波, 未可量也.
其漢係出穀城麴生之子, 名襄, 字太和, 深有乃父風味.
其先曾與屈原有隙, 或有與兩阮嵇劉爲竹林之遊者或有以白衣, 訪元亮於潯陽者.
李白一金龜爲質, 卒與爲死生之交.
其後買爵事, 小累淸名, 而亦非其本心也.
今襄但尙淸虛好浮義, 於淸獨無所失, 多近婦人.
然有折衝尊俎之氣, 伏念取其所長, 明君用人之方.
願君卑辭厚幣致之座上, 尊之爵之, 則平愁城而回淳古,
實不難也. 謹以聞.”
장계(狀啓)를 보고 천군이 전지를 내리고,
“내 비록 덕은 없으나 간하는 말은 물 흐르듯이 순순히 좇으리니 국(麴)장군을 맞아들이는 일은 주인옹이 맡아서 처리할지어다.”
하니 주인옹이 아뢰되,
“공방(孔方)이 국장군과 가까이 지내는 사이오니 능히 오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군이 공방을 불러,
“그대가 국장군을 찾아가서 나의 요청을 잘 전하여 내가 목마르게 바라는 대로 즉시 데려 오라”
고 하였다.
書上, 天君答曰:
“予雖否德, 只能從諫如流, 麴將軍迎接之事, 悉委主人翁, 勉哉!”
翁曰:
“孔方與彼有素, 可以致之.”
君乃招孔方曰:
“汝往哉. 善爲我辭焉, 以副如渴之望!”
공방이 명령을 듣고 그의 동료 백문(白文)으로 더불어 지팡이를 짚고 국장군을 찾아 떠났다.
그들은 시냇가에 한가한 마을들과 산 위의 성곽들을 돌아다니면서 샅샅이 찾았으나 아무데서도 장군을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목동이 도롱이를 걸친 채 소를 타고 오는 것을 만나서 공방이 그에게 물었다.
“국양 장군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아느냐.‘
목동이 웃으며 대답하되,
“여기서 멀지 않은 저기 바라보이는 곳입니다.‘
라고 하면서 손을 들어 실실이 휘늘어진 수양버들 안마을에 살구꽃이 붉게 덮인 담장머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공방이 향기로운 풀 우거진 시냇가에 뻗어 있는 한 가닥 오솔길을 따라서 담장머리에 이르니 과연 푸른 깃발 그늘 아래서 술파는 풍채 좋은 사람이 앉아 있는데, 공방이 오는 것을 보고도 앉은 채 아니꼬운 눈매로 쳐다보면서,
“멀리서 찾아오느라고 수고했고. 무엇으로 술을 사려고 하오.”
孔方領命. 與其徒百文, 扶杖而往,
遍訪於水村山郭, 都不見了, 但有牧童騎牛荷蓑而來,
孔方問曰:
“將軍麴襄見居何處.”
牧童笑曰:
“此去不遠只在.”
望中卽指綠楊村裏紅杏墻頭,
孔方乃綠芳草溪邊一條細路而去, 行到墻頭, 果見曲襤當路, 中有麴襄, 布巾白衫, 飄然靑旗影下, 携當壚美人而坐, 見孔方來,
以白眼待之曰:
“勞兄遠訪, 何以相酬?”
공방이 대꾸하여,
“금초(金貂)를 가지고 술을 바꾸란 말인가. 나라를 팔아서 술을 마시란 말인가. 나를 어찌 가볍게 보는 것이오. 지금 어진 정치를 하려던 임금이 수성의 제압을 받고 있는데, 장군이 의리로써 세상의 공평치 못한 일을 제거함을 자기 의무로 여긴다는 말을 들으시고, 아침저녁으로 장군을 기다리고 계시오. 이제 나라에 충성을 다하라는 명령을 내리고자 하여 우선 내가 장군으로 더불어 대대로 한 집안 식구처럼 허물없이 지내기 때문에 특별히 나를 보내어 그대를 맞이하도록 하는 것인데 어찌 이처럼 무례한가.”
하고 그를 책망하였다.
그 때에야 국양이 처음의 아니꼬운 눈매를 고쳐 온순하게 볼 뿐 아니라 투호(投壺) 놀음을 하면서,
“시름이 있고 없는 것은 오직 나에게 달렸을 뿐이다.”
하고 이미 천금(千金) 갖옷에 오화마(五花馬)를 타고, 군병을 일으켜 뇌주(雷州)에 와 닿으니 때는 3월 15일이었다.
孔方責之曰:
“欲使金貂來換耶? 欲以西凉相要耶? 何輕視我也.
復初之君, 逼於愁城, 聞將軍之義,
以徐世上不平之使爲己任, 朝夕望將軍,
而欲授啓沃之命, 以方與將軍世世通家,
故特使相邀, 何無禮若是乎?“
襄乃藏白開靑, 遂作蔡尊遵投壺之戱, 曰:
“有愁無愁, 唯我在.”
乃著千金裘騎五花馬, 起兵而來爰到雷州,
時三月十五日也.
천군이 곧 모영을 보내어 위로하며 말하기를,
“나를 외롭게 하지 않으려고 군병을 거느리고 왔으니 기쁜 마음을 어찌 측량할 수 있으리오. 경(卿)같은 큰 인재는 정히 국가의 귀중한 그릇이라. 아직 경을 임명하여 옹(雍), 병(幷), 뢰(雷) 삼주 대도독(大度督)과 수대장군을 삼나니 서울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내가 통제할 것이고 그 밖의 지방들은 장군이 주관하되 진퇴를 짐작해서 때를 따라 병력을 기울여 적을 토벌하라. 이제 중서령 모영을 보내어 한편으로 나의 뜻을 알리며 한편으로 장군에게 머물러 있어 장서기(掌書記)를 맡아보게 하나니 그리 알지어다.”
天君乃遺毛穎往勞曰:
“不遺孤主, 持兵來到, 喜倒之心, 那可斗哉?
如卿大器, 方托喉舌,
姑拜爲雍幷雷三州大都督, 驅愁大將軍, 閫以內寡人制之.
閫以外將軍主之, 進退斟酌, 傾兵而討之.
今遣中書郞毛穎, 一以兪予意, 一以留與將軍作掌書記知悉.”
국장군이 곧 모영을 시켜 사례하는 표문을 지어 올렸는데 하였으되,
“복초 2년 3월 일에 옹, 병, 뇌, 삼주 대도둑 구수 대장군 국양은 아뢰옵기 황공하와 돈수 백배하옵니다.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저는 곡식을 먹지 않고 신선같이 지내면서 깊이 즐거운 나날을 보내며 어서 난을 평정할 성인을 기다리옵더니, 드디어 벼슬을 주시는 은혜를 입사오니 몸을 어루만지며 스스로 개탄할 뿐 아니라, 저의 신분을 헤아릴수록 실로 외람스럽기만 합니다.
저는 원래 곡성(穀城)의 종류요, 조계(曹係)의 무리로써 왕탄지(王坦之)요, 사안(謝安)을 따라 강좌(江左)에서 풍류를 일삼았고 해강, 유령 등과 취미를 같이하여 죽림에서 한가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의 반평생 행장은 오직 유리그릇과 앵무잔이며 백세의 교유는 다만 습가지의 고양도들입니다.
그런데 그만 가혹한 예법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오래 동안 강호에 유랑하는 생활을 하였더니 전하께서 더러운 저를 멀리 버리시지 않으시고 저에게 수성 공격을 전임하시니 돌아보건대 미천한 이 몸으로 어찌 저런 큰 책임을 감당하오리까.
저는 다행히 전하께서 인재를 등용하는데 방해하는 자들을 없이 하고 수성을 치는 좋은 방도를 알리도록 하라는 위촉을 받았을 뿐 아니라, 때를 따라 적중하게 행동하며 맡아 행하는 일에 의심을 두지 말라고 하시었습니다.
또한 신에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심중에서 혼자 결단하도록 하라고 이르시어 아무 쓸모없는 저를 바다 같은 도량으로 용납하시니 어찌 더욱 청렴한 충성으로 힘쓰지 않겠습니까.
꽃다운 향기를 퍼뜨리며 술로써 병권을 폐기하게 하는 것은 비록 조보의 계책에 미치지 못하오나 가슴속에 수많은 용사를 감추었으니, 거의 중엄의 위엄을 본받을 수 있을까 하옵니다.”
太和卽使毛穎, 修謝表以上曰:
“復初二年三月日, 雍幷雷大都督驅愁大將軍麴襄, 惶恐百拜,
竊以辟穀鍊精, 長保壺中之日月, 治亂待聖,
遂有爵命之沾濡, 撫躬自傷, 量分實濫.
伏念襄穀城之種, 曹溪之流, 王謝相隋, 壇風流於江左, 嵇劉得趣, 寄閑情於竹林.
半歲行藏, 唯是琉璃鐘, 鸚鵡盞, 百歲交契, 只有習家池.
高陽徒, 只錄禮法之矛盾, 久作江湖之漫退.
何圖不我遐棄, 迺曰:
“命爾專征, 顧此狂生, 何堪大爵.”
玆盖伏遇用賢無適, 攻愁有方, 許臣時一中之不疑於用, 謂臣招衆, 口爾獨斷於心.
遂令薄才, 得容海量, 敢不勉增, 淸烈, 益播芳芬, 杯酒釋兵權,
綜不及趙普之策, 胸中藏萬甲, 庶可效仲淹之威.”
천군이 표문을 읽고 나서 크게 기뻐하면서 곧 서주를 역사를 임명하여 영적 장군을 삼아 도독의 휘하에 있게 하였다.
이때 날이 저물고 저녁연기가 자욱히 괴여 오르는데 가벼운 바람이 솔솔 불고 제비들이 분주히 지저귀고 있었다. 격문은 날아오고 날아가며 북소리 피리 소리는 사람의 흥을 돋우었다.
天君覽表大悅, 則拜西州力士爲迎敵將軍, 受都督節制使.
是時也日暮, 烟生風輕, 燕語羽檄交飛, 鼓笛催興,
장군이 드디어 조구대에 올라가서 주허후 유장에게 명령하기를,
“군령이 지극히 엄하니 그대가 맡아서 거문고를 함부로 치는 교만한 장수가 없게 하고 도망치는 병사들이 없게 하라.”
고 하였다.
이에 군사들은 감히 떠들썩하지 못하여 전진과 퇴각에 질서가 있고, 전투에서는 법도가 잡히었다. 진을 치는 모양은 육화법을 모방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해바라기를 형상한 것으로 옛날 이정(李靖)이 고구려를 칠 때에 산협(山峽)이 기구(崎嶇)하여 팔진(八陣)을 펼 수가 없었던 까닭에 대신한 것이다.
장군이, 배를 타고 주지를 건너가는데 놋대를 두드리면서 맹세하기를,
“만약 수성을 쳐 없애지 못하고 강을 건너는 자가 있으면 저 물과 같으리라.”
고 하였다.
將軍遂登糟丘, 命朱虛候劉章曰:
“軍令至嚴, 爾其掌之, 母使有擘柱之驕將, 母使有逃酒之老兵.”
於是軍中肅肅, 無敢喧嘩, 進退有序, 攻戰有法,
陣形效六法, 而此則像葵花.
盖昔李靖伐高麗, 以山峽岐嶇不得布八陣, 故代六花陣, 此其制也.
將軍乘玉舟, 濟酒池, 擊楫而誓曰:
“所不如盪愁城, 而復濟老, 有如水.”
이어 바다 어귀에 배를 대고 곧장 기 모영을 불러서 그 자리에서 격문을 짓게 하였다. 격문에 쓰기를,
“모월, 모일에 옹, 병, 뇌, 삼주 대도독 구수 대장군은 수성에 격문을 보내노라. 무릇 천지는 만물의 역려요, 광음은 백대의 과객이니 늙도록 오래 삶과 젊어서 일찍 죽음도 한때의 꿈이요, 천한 이와 귀한 이도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살아서 근심하고 한탄하는 것은 오히려 죽은 사람의 즐거움에 미칠 바가 못 되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저 수성은 사람들이 통탄하며 원한에 잠긴 지 이미 오래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쫓겨 난 신하들과 외로운 아낙네들, 의로운 열사들과 근심하는 선비들을 찾아 그들의 얼굴이 너무 쉽게 얼어지며 귀밑머리와 수염이 때 아닌 서리를 맞게 되는 이런 통탄할 사실들을 더는 없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지나 간 일은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지금 내가 신풍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으니 선봉은 서주 역사요, 좌막은 합리해오라 비록 제갈량의 진법이 풍운진보다 더 깨웠다 하고, 초패왕의 용맹이 고금에 으뜸이라고 하나 어린애들의 놀음과 같을 뿐이니 어찌 능히 나를 당해 내겠는가.
하물며 ‘세상이 다 취해도 나 혼자 깬다’고 하던 초나라 굴원의 말은 마음에 개의하지도 않노라. 격문이 닿는 날에는 즉시 항복하는 깃발을 세우라.”
乃泊於海口, 卽喚掌書記毛穎立成檄文曰:
“月日, 雍幷雷大都督驅愁大將軍, 移檄干愁城.
夫以逆旅天地之間過客, 光陰之中, 彭殤同夢, 凡楚一轍, 生而愁恨, 尙不及髑髏之樂, 豈不哀哉?
惟爾愁城爲患久矣.
偏尋放臣, 思歸烈士, 騷人,
易週鏡中之顔, 先想鬢邊之髮, 不可使蔓蔓難圖也.
今我受天君之命, 統新豊之兵, 先鋒則西州力士, 佐幕則合利蟹螯.
雖諸葛公, 陣烈風雲, 項覇王, 勇冠合古, 如兒戱耳, 安能當乎?
況楚澤獨醒, 寧足介意.”
출납관으로 하여금 목소리를 가다듬고 성안에 들리도록 격문을 읽게 하니 온 성안의 모든 사람들이 항복할 생각뿐이었다. 다만 굴원 혼자만이 굴하지 않고 수염을 흩날리면서 어디로 인지 사라져 버렸다.
장군이 바다 어귀로부터 파죽지세로 내달으니 치기도 전에 성문이 저절로 열리며 접전도 하지 않고 성안이 모두 항복하는 것이었다. 장군은 이에 무력을 빛내고 위세를 떨쳐 혹은 군사를 흩어 밖을 포위하고, 혹은 군사를 모아 성안에 진을 치니 그 기세는 바다에 조숫물이 오름 같고 비가 내려 강성에 넘쳐 나는 것 같았다.
檄文到日, 早竪降旗, 使出納官, 厲聲讀檄,
聞於城中, 滿城之人, 皆有降心,
而獨屈原不屈, 披髮而走, 不知其處. 將軍自海口, 如建瓴而下, 勢若破竹, 不攻而城門自開不戰而城中已降.
將軍乃耀武揚威, 或散而圍於外, 或聚而陣於內, 勢如湖生海國, 兩漲江城.
천군이 영대에 올라서 바라보니 우중충하던 구름이 사라지고 자욱하던 안개가 걷히며 훈훈한 봄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따스한 태양이 내려 쪼이는데 전에 슬퍼하고, 괴로워하던 자들은 더없이 즐거워하고, 원망하며 한탄하던 자들은 씻은 듯이 원한을 잊고, 울분하고 노여워하던 자들은 가신 듯이 풀리고, 안타까워 고민하던 자들은 흔연히 기뻐하며, 격분하여 팔을 걷어붙이던 자들도 좋아서 춤을 추는 것이었다.
유령은 그 덕을 칭송하고 완적은 가슴을 풀어 헤치며 도연명은 갈건을 쓰고 거문고를 타면서 뜰에 서 있는 나뭇가지를 비껴 보는데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고 이태백은 비단 도포에 흰 갓을 쓰고 술잔을 높이 들면서 밝은 달에 취해 있었다.
天君登靈臺望見, 雲消霧捲, 惠風遲日, 向之悲者懽, 苦者樂, 怨者忘, 恨者消, 憤者洩, 怒者喜, 悒悒者怡怡, 鬱鬱者忻忻, 呻吟者謳歌, 扼腕者蹈舞.
伯倫頌其德, 嗣宗澆其胸, 淵明葛巾素琴, 眄庭柯而怡顔. 太白接罹錦袍, 飛羽觴而醉月,
모두가 함뿍 취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는 벌써 촛불을 밝혀야 할 저녁이었다. 눈앞에는 꽃잎이 날고 장막 안에는 달빛이 비쳐 드는데 장군이 미인을 옆에 앉히고 파진악을 연주케 하며 군사를 돌려보내니 천군이 대단히 기뻐하여 즉시 관성자를 불러 교지를 내리었다.
“나는 경에게 아무 은덕도 베풀지 못하였거늘 경은 나의 먹은 마음을 짐작하고 충성을 다했으니 경이야말로 나에게 큰 은덕을 베풀었다. 내가 장차 경의 공덕을 무엇으로 보답할꼬. 경에게 벼슬을 한 번 주고 두 번 주고 다시 한 번 주더라도 경의 커다란 공적에 비하면 그것은 한갓 얼굴이 더욱 붉어질 뿐이라, 이제 곧 수성 옛터에 새로 성을 쌓아서 경의 탕목읍을 만드노라. 그리고 삼주 도독은 그대로 두노라. 또 환에 봉하고, 3등의 작위를 주어 환백작을 명하며 거창주 한 주전자를 주고 성대한 풍악을 베풀게 하나니 모든 사람은 그리 알지어다.”
玉山將倒. 時已秉燭, 花飛眼前, 月入帳中.
將軍使佳人秦罷陣樂而班師. 天君大悅, 卽招管城子, 下敎曰:
“予無恩於卿, 而卿推心置予之腹中, 卿有德於予, 而予將何報卿之功.
一拜一拜復一拜, 徒曾赧顔.
今乃築城於愁城, 舊址爲卿湯沐邑, 其都督三州事如故,
又封於灌錫, 以三等爵爲懽伯, 賜而秬鬯一卣, 寵以前後, 鼓吹知悉.”
'고전 풀어 읽기 > 한문소설,가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덕무 한문소설 '김은애전' (0) | 2018.02.25 |
---|---|
신광한의 소설, 기재기이 '최생우진기' 풀이 (0) | 2018.02.23 |
신광한의 소설, 기재기이 '안빙몽유록' 풀이 (0) | 2018.02.18 |
최척전 (0) | 2015.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