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의전(赤聖儀傳)
화설(話說), 강남(江南)의 안평국(安平國)이 있으니, 산천이 수려(秀麗)하고 옥야(沃野) 천 리며, 보화(寶貨) 많은 고로, 국부민강(國富民强)하며 의관문물(衣冠文物)이 번성하여 남방(南方)에 유명(有名)하더라.
국왕의 성(姓)은 적(赤)이니 적문공의 후예라. 치국지도(治國之道)가 요순(堯舜)을 효칙(效則)하매, 인심이 순박하며 국태민안(國泰民安)하여 도불습유(道不拾遺)하고 야불폐문(夜不廢門)이더라. 국왕이 왕비로 동주(同住) 이십여 년에 두 아들을 두었으니, 장자(長子)의 명(名)은 항의(恒義)요, 차자(次子)의 명은 성의(聖儀)라.
성의의 천품(天稟)이 순후(淳厚)하고 기골(奇骨)이 준수(俊秀)하매, 왕 부부가 과애(過愛)하고 일국(一國)이 흠앙(欽仰)하니, 항의 매양(每樣) 불측(不測)한 마음으로 성의의 인(仁)함을 늘 시기하여 음해(陰害)할 뜻을 두더라.
어시(於是)에 성의 점점 자라 재덕(才德)이 겸비(兼備)하여, 요순(堯舜)을 본받으매, 왕이 성의로 세자(世子)를 봉(封)하고자 하니, 공경(公卿)이 간(諫)하기를,
“자고(自古)로 국가는 장자로 세자를 봉하옴이 떳떳하온 일이거늘, 이제 전하께옵서 차자로 세자를 봉하여, 윤기(倫紀)를 상(傷)하고자 하심이 불가(不可)하나이다.”
고하니, 왕이 침음양구(沈吟良久)에 항의로 세자를 봉하니라.
차시, 왕비 우연 득병(得病)하사 점점 침중(沈重)하여 십분(十分) 위태하매 일국(一國)이 황황(遑遑)하나, 마침내 백약(百藥)이 무효(無效)한지라. 왕이 초민(焦悶)하여 각 읍(邑)에 전지(傳旨)하여 명의(名醫)를 구하되, 무가내(無可奈)해라.
항의는 돈연(頓然) 무려(無慮)하고 성의는 주야로 불탈의대(不脫衣帶)하고, 탕약(湯藥)을 맛보아 봉양(奉養)하며 하늘께 축수(祝壽)하여,
“불초자(不肖子) 성의로 대명(代命)하고, 모후(母后)의 병을 낫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밤마다 축원(祝願)하더니, 일일(一日)은, 궐문(闕門) 밖에 한 도사(道士)가 뵈어지라 청한다 하거늘, 왕이 듣고 도사를 바삐 청하니, 도사가 완연(完然)히 들어와 예필(禮畢) 좌정(坐定) 후에 왕이 묻기를,
“도사는 어디에서 좇아오며 무슨 허물을 이르고자 왔느뇨?”
도사가 공수(拱手)하며 이르기를,
“빈도(貧道)가 듣사온즉, 왕비 병세 극중(極重)하셔 왕자 성의 효성이 지극하옵기에, 이의 이르러 환후(患候)를 뵈옵고자 왔사오니, 전하는 마땅히 긴 노로 왕비 우수(右手)를 매어 노 끝을 주소서.”
하거늘, 왕이 근시(近侍)로 내전(內殿)에 통하니, 성의 듣고 즉시 노를 매어 노 끝을 밖으로 내여 보내니, 도사가 노를 잡아 진맥(診脈)하고 물러 나와 왕께 여쭈오되,
“내전의 환후 근원(根源)이 깊사와 고황(膏肓)이 들었사오니, 만일 일영주(日映珠) 아니면 회춘(回春)하기 어렵도소이다.”
왕 이르기를,
“일영주가 어디 있느뇨?”
도사가 이르기를,
“서역(西域) 청룡사(靑龍寺)의 있사오니, 만일 효성(孝誠)이 부족하오면 얻지 못하리이다.”
하고 언파(言罷)에 팔을 들어 읍(揖)하며 옥계(玉階)에 내리더니, 문득 간 데 없는지라. 성의 크게 신기히 여겨 공중을 향하여 배사(拜謝)하고, 부왕께 고(告)하기를,
“소자(小子)가 비록 연소(年少)하오나 서천(西天)의 가서 일영주를 얻어 올까 하나이다.”
왕 이르기를,
“내 아이 성효(誠孝) 지극하나, 서역(西域)은 하늘가라. 만리창파(萬里蒼波)에 어찌 인간으로 득달(得達)하며, 약수(弱水)를 어찌 건너리오. 오활(迂闊)한 말 말라.”
하고 내전에 들어가 도사의 말을 전하니, 왕비 가로되,
“허탄(虛誕)한 도사의 말을 곧이듣고 서역을 어찌 득달하리오. 인명(人命)이 재천(在天)하니 일영주가 어찌 사람을 살리리오. 아이는 망령(妄靈)된 의사(意思)를 두지 말라.”
성의 이르기를,
“옛적 태행산(太行山) 운림(雲林)선생이 일광로(一匡老)의 명으로 한 공주의 명을 구하였사오니, 도사의 말이 비록 허탄하오나, 소자가 또한 신몽(神夢)을 얻었사오니, 결단코 약을 얻어 모후의 병환을 구하옵고, 소자의 불효를 만분지일(萬分之一)이나 면할까 하나이다.”
왕비 탄(嘆)하며 이르기를,
“너의 효성이 지극하니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요행(僥倖) 약을 얻어온들 어찌 차도(差度)를 바라리오. 너를 보내고 병중(病中)에 심려(心慮)되리로다.”
하니 성의 답하기를,
“모후는 과려(過慮)치 말으시고, 소자의 왕환(往還)간 보중(保重)하소서.”
하고 즉시 선척(船隻)을 준비하여 격군(格軍) 십여 명을 데리고 떠날새, 부왕(父王)과 모후(母后)께 하직하니, 왕비 이르기를,
“네 지성(至誠)을 막지 못하나, 어찌 주야에 의문지망(依門之望)을 억제(抑制)하리오. 다만 천우신조(天佑神助)를 얻어 무사히 회환(回換)함을 바라거니와, 만일 불행하여 다시 못 보면 지하에 가도 눈을 감지 못하리로다.”
하고 눈물을 흘리거늘, 성의 재삼 위로하고 인하여 발행(發行)할새,
동문밖에 나와 배를 타고 순풍(順風)을 얻어 행선(行船)한 지 칠일에 홀연 대풍이 일어나 순식간에 한 섬에 다다르매, 배를 머무르고 성의 묻기를,
“서역(西域)이 얼마나 남았느뇨?”
사공 이르기를,
“이 땅은 서해니 수천 리를 가면 염포섬이 있고, 그 섬에서 수천 리를 또 가면 서천 영보산이니이다.”
성의 탄(嘆)하며 이르기를,
“만경창파(萬頃蒼波)에 동서를 불변(不辨)하니 언제나 서역에 득달하리오.”
사공 이르기를,
“이곳은 소강이라. 사면(四面) 산이 비추거니와 삼천 리 약수(弱水)는 하늘가이니 일 년을 간들 어찌 가 보리오. 헤아리건대 양진(兩津)을 건너면 서천을 바라 보리이다.”
하고, 즉시 돛을 달고 행선하여 한 곳에 다다르니, 홀연 풍랑이 일어나며 우레 같은 소리가 해중(海中)에 진동(震動)하거늘, 주중인(舟中人)이 대경(大驚)하여 망지소조(罔知所措)이러니, 문득 이름 모르는 큰 짐승이 수중(水中)에서 솟으며 머리를 들어 입으로 물을 토하니, 수중이 흉용(洶湧)하여 배가 진퇴(進退)하니 격군 등이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어찌할 줄을 몰라 하거늘, 성의 앙천(仰天) 축수(祝手) 이르기를,
“소자는 안평국 왕자 적성의러니, 모친 병이 극중(極重)하오매, 서천의 일영주를 얻으러 가오니, 복걸(伏乞) 천지신명(天地神明)과 사해(四海) 용왕(龍王)은 소자의 절박(切迫)한 정세(情勢)를 살피사, 서역에 득달하여 약을 얻어오게 하소서.”
하니 그 짐승이 문득 들어가고, 물결이 고요하며 천지 명랑(明朗)하더니, 홀연 일엽편주(一葉片舟)에 일위(一位) 선관(仙官)이 청삼(靑衫) 흑건(黑巾)으로 봉미선(鳳尾扇)을 가리우고, 청의(靑衣) 동자(童子)가 선두(船頭)에서 옥(玉)저를 청아(淸雅)히 불고, 뒤에 또 한 선관이 사자(獅子)를 타고 백우선(白羽扇)을 쥐고 나는 듯이 지나가며 한 곡조를 읊으니, 하였으되
“태행산 높은 봉(峰)은 하늘을 괴어 있고, 약수 얕은 물은 날짐승의 깃에 잠기는 도다. 망령된 저 아이는 일편주(一扁舟)로 어디를 향하는고?”
하거늘, 성의 자연 슬프고 깨달아 웨기를,
“수상(水上) 선관은 길 잃은 사람을 구하소서.”
하니, 그 선관이 청이불문(聽而不聞)하고 가거늘, 성의 탄(嘆)하며 이르기를,
“수상에 선관이 왕래하니 선경(仙境)은 불원(不遠)하나 뉘더러 물으며, 어디로 지향(指向)하리오.”
앙천(仰天) 탄식(歎息)하며 이르기를,
“불초 성의는 모친 병을 위하여 서천으로 일영주를 구하러 가오니, 천지신명은 일영주를 얻게 도와 주옵소서.”
하고 빌기를 마치매, 문득 기이한 운무중(雲霧中)의 탄금(彈琴) 소리가 청아(淸雅)하거늘, 성의 눈을 들어 보니, 청포(靑布) 선관이 파초(芭蕉) 잎을 타고 거문고를 희롱하며, 또 한 선관이 고래를 타고 흑건(黑巾)을 쓰고 풍월을 읊더니, 고래 탄 선관이 묻기를,
“네 어떤 속객(俗客)이기에, 인간 배를 타고 어디로 가느냐?”
성의 재배(再拜)하고 이르기를,
“소자는 안평국 왕자 성의러니 모병(母病)이 중하옵기로, 서천에 일영주를 구하러 가오니, 바라건대 길을 가르쳐 주실까 하나이다.”
선관 이르기를,
“나는 봉래, 방장, 영주, 요지를 다 구경하였으되, 서천을 못 보았거든 너 같은 조그만 속인(俗人)이 약수(弱手)를 어찌 건너리오. 바삐 돌아 가 네 부모 얼굴이나 다시 봄이 마땅할까 하노라.”
성의 다시 재배(再拜)하며 이르기를,
“소자가 모친을 위하여 죽음이 원(願)이라. 해중(海中)에 표류(漂流)한지 팔십 일에 종시(終是) 서천을 못보고 죽사오면, 하면목(何面目)으로 지하(地下)에 가서 부모를 뵈오리오. 바라건대 하해지덕(河海之德)을 드리오사 약을 얻어 돌아가게 하소서.”
하니, 파초선 탄 선관이 탄금을 물리치고 이르기를,
“네 정성이 지극하도다. 나이 몇이뇨?”
성의 답하기를,
“십이 세로소이다.”
선관이 웃으며 이르기를,
“먼저 가던 선관을 보았느냐?”
성의 이르기를,
“여러 선관이 지나가시되, 냉랭(冷冷)하여 시이불견(視而不見)하옵더니, 금일 어진 선관을 뵈오니 소자의 원(願)을 이룰 소이다.”
선관 이르기를,
“연소(年少) 척동(尺童)이 자모(慈母)를 위하여 만리(萬里) 험로(險路)에 천신만고(千辛萬苦)하여 왔으니, 효성이 족(足)히 감천(感天)할지라. 내 어찌 구(求)하지 아니하리오. 다만 속인(俗人)은 약수(弱手)를 못 건널 것이니, 너의 동행(同行)을 저 수변(水邊)에 두고 너만 파초선에 오르라.”
하거늘, 성의 즉시 수변에 배를 붙이고 사공에게 천만 당부하고, 선관을 따라 갈새, 선관이 부작(符作,부적)을 주며 이르기를,
“이 부작을 몸에 달아두면 해중(海中) 용신(龍神)이라도 감히 범(犯)하지 못하니라.”
하고 거문고를 타며 표연(飄然)히 가더니, 순식간의 한 가에 다다르니 선관 이르기를,
“이곳은 서역 한 가이라. 동중(洞中)에 들어가 천성금불(天成金佛) 보탑존자(寶塔尊者)를 찾아 지성(至誠)으로 약을 구하라.”
성의 이르기를,
“약을 얻자온들 어찌 이곳을 찾아오며, 선관이 아니 계시면 어찌 하리잇가?”
선관 이르기를,
“그는 염려(念慮)말고 다만 정성으로 약을 얻으라. 내는 봉래산(蓬萊山) 자각봉(紫閣峰)에 적송자(赤松子), 왕자진(王子晉), 엄군평(嚴君平), 두목지(杜牧之)로 기약(旣約)하였기로, 잠깐 다녀 일광로(一匡老) 선생을 뵈옵고, 삼일이 못하여 이곳에 와 기다릴 것이니 의심 말라.”
하고, 금현(琴絃)만 희롱(戲弄)하더니, 문득 운무(雲霧)가 사면(四面)에 일어나며, 선관의 가는 바를 알지 못할러라.
차설(且說), 성의 몸을 돌리어 점점 나아가며 보니, 높고 높은 봉(峰)에는 취란(翠巒) 자봉(雌蜂)이 쌍쌍 왕래하며 기화요초(琪花瑤草)는 처처(處處) 무성(茂盛)하고 창송(蒼松) 취죽(翠竹)은 벽계(碧溪)를 둘렀는데, 서천 팔십사 봉(峰)의 경개(景槪) 절승(絶勝)하니 짐짓 별유(別有) 세계(世界)러라.
성의 기운이 웅건(雄健) 청결(淸潔)하여 채운간(彩雲間)으로 들어가니, 층층(層層) 대상(臺上)에 황금(黃金) 주작(朱雀)은 영롱(玲瓏)하고 옥루(玉樓) 금전(金殿)은 굉장하니, 칠십 대보탑(大寶塔)은 벽공(碧空)에 연연(連延)하였고, 상운(祥雲) 향무(香霧)는 사면에 둘렀는데, 팔만자(八萬字)의 대장경(大藏經) 외우는 소리가 귀에 사무치더라.
성의 십분 조심하여 보탑(寶塔) 밑에 나아가니, 한 상좌(上佐)가 머리에 고깔을 숙여 쓰고 경문(經文)을 외우며 나오다가 성의를 보고 합장(合掌)하고 이르기를,
“이곳은 서방세계(西方世界)라. 속객이 어찌 왔느뇨?”
성의 이르기를,
“나는 안평국 사람이러니, 천성금불 보탑존자를 뵈오러 왔노라.”
상좌가 이르기를,
“보탑존자는 금강경 천불(千佛) 대사(大師)이라. 인간 육신이 곳곳에 들어왔으니, 그 정성을 신령(神靈)이 감동함이라. 그러나 마음이 부정(不淨)하면 대사(大事)를 이루지 못할 것이니, 물러가 칠십 일 재계(齋戒) 후에 들어와 대사를 뵈오라.”
하거늘, 성의 청파(聽罷)에 아연(啞然) 낙담(落膽)하여 다시 절하여 이르기를,
“속객이 해상에 표류하여 천만신고(千萬辛苦)하여 왔거늘, 어찌 차마 물러가리오. 차라리 이곳에서 죽어, 사부(師父)의 어여삐 여김을 바라나이다.”
상좌가 이르기를,
“이곳을 한번 보면 이십팔숙(二十八宿) 삼재팔란(三災八難)을 멸삭(滅削)하고, 선록(仙錄)에 오르나니, 일찍 대사가 명일(明日) 신유(辛酉) 시에 안평국 왕자가 올 것이니 아뢰라 하시더니, 과연 그대를 이르심이라.”
하고, 들어가더니 이윽고 나와 청하거늘 성의 따라 들어가니, 칠층(七層) 전각(殿閣)에 일위(一位) 존자(尊者)가 머리에 누런 송낙을 쓰고 칠건(漆巾)가사(袈裟)를 매었으며, 좌수(左手)에 금강경(金剛經)을 쥐고, 우수에 백팔(百八) 염주(念珠)를 두르며 경문을 외우고, 좌우에 오백 제자(弟子)가 일시에 염불(念佛)하더라.
성의 칠보대(七寶臺) 아래에서 재배하니, 대사가 이르기를,
“내 일찍 수도(修道)하여 천하 제국 중생(衆生)의 선악(善惡)을 듣는지라. 네 위친(爲親) 지성(至誠)이 지극하여 만경창파를 지척(咫尺)만 여겨 천신만고(千辛萬苦)하여 오늘 올 줄 이왕(已往) 알았노라. 이 약을 주느니 빨리 돌아가 모환(母患)을 구하라. 너는 본디 하계(下界) 사람이 아니라. 전세(前世) 함일성(含日星)과 극(極)한 혐의(嫌疑) 있더니, 금세(今世) 형제 되어 허다(許多) 곤액(困厄)이 있으나, 필경(畢竟) 원한이 풀리리라.”
하고, 인하여 동자를 불러 구슬 같은 약 두 환(丸)을 가져다가 성의를 주어 이르기를,
“이 약이 일영주이니, 그대는 빨리 돌아가라. 기간(其間)에 명(命)을 버리셔도 이 약을 쓰면 다시 살고 백병(百病)이 다 소삭(消索)하리라.”
하고, 나가기를 재촉하거늘, 성의 존자를 향하여 백배 사례하고, 길을 찾아 송산(松山) 벽계(碧溪)를 지나 격산(隔山) 심곡(深谷)으로 내려오니, 약수 가에 거의러라. 문득 청아(淸雅)한 저소리가 들리거늘, 바라본즉 일편(一片) 백운(白雲)이 떠오며 웨기를,
“안평국 왕자는 일영주를 얻어 오느냐?”
성의 응성(應聲)하고 급히 나아가니 이는 동방삭(東方朔)이라. 성의 재배하고 이르기를,
“선관이 지시(指示)하시므로 약을 얻어 오나이다.”
선관 이르기를,
“그대 지성(至誠) 대효(大孝)로 얻은 것을 어찌 내 치하(致賀)하리오.”
청하여 파초선(芭蕉船)에 태우고 순식간에 해변에 다다르니, 사공 등이 일시에 배를 타고 나와 맞아 반기며, 무사히 득달(得達)함을 치하하고 약 얻은 수말(首末)을 듣고 칭찬하며 이르기를,
“우리 대군(大君)은 짐짓 천상(天上) 신인(神人)이라.”
하더라. 성의 파초선에 내리니 선관이 또한 파초선을 돌리거늘, 성의 선관을 향하여 백배사례하고, 인하여 배의 올라 돛을 달고 순풍을 만나 행하니라.
각설, 안평국 왕비, 성의를 서천에 보내고 불승(不勝) 창연(愴然)하여 병세 침중(沈重)한지라. 주야 체읍(涕泣)하며 이르기를,
“십여 세 소아(小兒)가 허탄(虛誕)한 말을 듣고, 어미를 위하여 만리창파에 정처 없이 어디로 향하는고. 망망(茫茫) 창해(滄海)의 파도는 흉흉(洶洶)하고, 운산(雲山)은 첩첩(疊疊)하니, 하일(何日) 하시(何時)에 회환(回還)할고. 한번 떠난 후 사생존몰(死生存沒)을 모를지라. 이제는 다시 못 보리니, 이 유한(遺恨)을 어찌 하리오.”
하더라. 이 때 항의 헤아리되,
“부왕과 모후가 성의를 본디 사랑하시거늘, 만일 약을 얻어온즉 더욱 효성을 아름다이 여길 것이요, 일국이 칭복(稱福)할 것이니, 반드시 내게 유해(有害)하리라.”
하고, 왕과 후에게 고하기를,
“성의 서천의 가온 지 장근(將近) 반 년에 소식이 묘연(渺然)하오니, 소자가 중로(中路)에 가와 종적(蹤迹)을 탐지(探知)하고, 혹 풍파(風波)에 불행한 일이 있사와도, 소자가 서천에 가 약을 구하여 오리이다.”
하고, 인하여 하직하고 선척을 준비하여, 사공과 일등 무사(武士) 수십 인을 데리고 서해로 향하여, 삼일의 풍랑을 만나 강변에 배를 머무르고 밤을 지낼새, 월색(月色)이 원근(遠近)에 조요(照耀)한 곳에 문득 서쪽으로부터 일 척 소선(小船)이 나는 듯이 오거늘, 항의 의심하여 크게 웨기를,
“앞에 오는 배, 안평국 대군이 아닌가?”
하니, 성의 문득 웨는 소리를 듣고 천만 반겨 접선(接船)하고 보니, 이 곳 세자(世子)이라. 슬프다. 항의 불측한 흉계를 품었음을 성의 어찌 알리오. 다만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여 바삐 배에 나려 배례하니, 항의 이르기를,
“현제(賢弟) 만 리 수로(水路)에 독행(獨行)하옴이 위태한 고로, 부왕의 명을 받자와 중로(中路)에 와 맞거니와, 아지 못 게라. 약을 얻어 오느냐?”
성의 형의 불인지심(不忍之心)을 모르고 일영주를 주며 모후의 환세(患勢)를 물으니, 항의 약을 받고 이르기를,
“현제 떠난 후에 병세 일량(一量)이시매 현제 오기를 고대하였노라.”
성의 이르기를,
“환후가 여차(如此)한 즉 급히 약을 쓰면 쾌복(快復)하시리이다.”
하니, 항의 문득 주중(舟中)의 높이 앉으며 고성(高聲) 대매(大罵)하기를,
“네 거짓 서역의 가 일영주를 얻어 오마 하고, 병모(病母)를 버리고 불도(佛道)에 침혹(沈惑)하여 돌아올 마음이 업으니, 이는 천고의 불효라. 모후가 너를 보시면 병세 더하실지니, 여등은 빨리 물의 빠져 군부(君父)의 명(命)을 순수(順受)하라.”
성의 이 말을 들르매 심혼(心魂)이 아득하여 묵묵(默默) 양구(良久)에 앙천(仰天) 탄(嘆)하며 이르기를,
“소제(小弟)가 천신만고하여 장근 반년에 서천을 왕환(往還)하여 약을 얻어옴은 자모(慈母)를 위함이러니, 무슨 연고로 형장(兄丈)이 수다(數多) 인명(人命)을 살해하려 하니, 이런 지원(至冤)함이 어디 있으며, 소제 죽기는 탄(嘆)하지 아니하거니와 부모를 다시 못 뵈오니, 천고 무궁지통(無窮之痛)이 될 것이요, 또 나로 인하여 수십 인명이 무죄히 취사(取死)하니, 그 아니 가련(可憐)하리오. 슬프다. 황천후토(皇天后土)와 일월성신(日月星辰)은 조림(照臨)하소서.”
하고, 대성통곡(大聲痛哭)하니 일월(日月)이 무광(無光)하고, 초목(草木)이 슬퍼하는 듯하더라. 주중(舟中) 제인(濟人)이 또한 성의를 붙들고 통곡하며 이르기를,
“우리 수십 인이 공자를 모셔 만리창파를 득달하여 선간(仙間)에 들어가 일영주를 얻어와 곤전(坤殿) 환후(患候)를 평복(平復)하시고, 우리 주상을 받자올까 하였더니, 무고(無故)히 죽게 되니 어찌 망극하지 않으리오. 우리 등 소견에는 대군을 모셔 궐내에 들어가 약을 바치고, 왕상(王上)의 처분을 기다려 죽사와도 한이 없을까 하나이다.”
하니, 항의 이 말을 듣고 대노하여 무사를 호령하여, 성의와 제인을 일제히 죽이라 하니,
제인이 대호(大呼)하여 이르기를,
“대군과 우리 등이 무슨 죄 있기에 다 죽이려 하느뇨. 우리 등이 너희 검하(劍下)에 죽음이 더러우니 스스로 물에 빠져 죽으려 하거니와, 너희는 후사(後嗣)를 안향(安享)치 못하리라.”
하고, 앙천(仰天) 통곡하니, 항의 더욱 분노하여 무사를 재촉하여 칼을 들고 일시에 짓치니,, 격군 등이 성의를 옹위(擁衛)하여 이르기를,
“사세(事勢) 여차(如此)하니 공자는 동기간(同氣間)이라, 지성(至誠) 애걸(哀乞)하여 존명(存命)을 보전(保全)하여, 우리 등 비명횡사(非命橫死)하온 고혼(孤魂)이나 위로하소서.”
하고, 일시의 물의 뛰어드니 산천(山川) 금수(禽獸)가 다 슬퍼하더라. 항의 무사에 눈을 주어 성의를 죽이려 할새, 무사 중 태연이란 사람이 대호(大呼)하기를,
“세자가 비록 왕명을 칭하나, 어찌 동기간 사정을 생각하지 아니하느뇨. 공자는 지극한 효자이라. 세자가 어찌 인정이 약차(若此)하리오.”
하고, 칼을 들어 모든 무사를 물리치니, 항의 불승(不勝) 분노하여 달려들어 성의의 두 눈을 찌르고 배를 엎지르니, 성의 눈에 피를 흘리고 파선(破船)한 조각에 의지하여 무변(無邊) 대해(大海)에 정처 없이 흘러가니, 아지 못 게라.
창천(蒼天)이 효자를 보전(保全)하시는가 종말(終末)을 보라.
차설, 항의 배를 돌리어 돌아올새, 무사를 당부하여 누설(漏泄)하지 말라 하고 금백(金帛)을 많이 주고 궐중에 들어가 뵈오니, 왕과 후(后)가 묻기를,
“성의 소식을 들었느냐?”
항의 답하기를,
“소자가 배를 타고 서천을 향하여 칠일 만에 약수가에 다다르니, 일위 선관이 파초(芭蕉) 잎을 타고 오다가 소자를 보고 이르되, ‘그대 안평국 세자 아닌가?’ 하옵기로, 소자가 배례하온즉, 선관이 이르되, ‘나는 왕자진이러니, 서천의 갔다가 안평국 왕자를 만나니 비록 일영주를 얻었으나, 성의 외도(外道)의 뜻을 두어 삭발(削髮) 위승(僞僧)하고, 불경에 잠심(潛心)하여 세사(世事)를 잊었기에 헤아리매, 안평국 왕이 기다릴 지라, 마침 인간으로 가는 역로(歷路)에 전하여 주마 하고 가져 오더니, 그대를 만나나니 그대 성의를 생각하지 말고 약을 가져다가 바삐 쓰라.’ 하옵기에 받아 왔나이다.”
하고, 일영주를 드리거늘 왕비 일영주를 땅에 던지고 통곡하며 이르기를,
“성의는 천석지인(天釋之人)이라. 어찌 일조(一朝)에 변하리오. 연일(連日) 몽사(夢事)가 불길하더니 이런 연고(緣故)가 잇도다.”
하고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니, 항의 이르기를,
“성의 어린 마음으로 일시 변하였사오나, 나이 차면 회심(回心)하여 돌아올 것이니 과념(過念) 마옵시고 약을 쓰사이다.”
하니 왕이 또한 위로하며 약을 갈아 일환(一丸)을 쓰니, 정신이 씩씩하고 병기(病氣) 소삭(消索)한지라. 또 일환을 쓰니 심신(心身)이 쇄락(灑落)하고 사지(四肢) 강건(强健)하여 백병(百病)이 일시에 물러가되, 다만 성의를 생각하여 주야 비척(悲慽)하더라.
각설, 성의 한 조각 널을 의지하였으니, 두 눈이 폐맹(廢盲)이매 불분(不分)동서(東西) 흑백(黑白)이라. 다만 바람이 냉랭(冷冷)하면 밤이요, 일기 훈훈(薰薰)하면 낮인 줄 짐작하나, 만경창파에 금수(禽獸) 소리가 없는지라, 삼(三) 주야(晝夜)만에 널 잎이 다다른 곳이 있거늘, 놀라 손으로 더듬으니 이곳이 해변 암상(巖上)이라. 겨우 기어올라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바위에 의지하며 탄식하며 이르기를,
“사형(舍兄)이 불량(不良)하여 무죄한 인생을 창파중(滄波中) 원혼(冤魂)이 되게 하고, 나로서 이 지경에 및게 하고, 또 맹인이 되어 부모가 곁에 계셔도 뵈올 길이 없게 되니, 어찌 통한(痛恨)치 않으리오. 그러나 모친 환후가 어떠 하시며, 일영주를 썼는지 못썼는지 알지 못하니 장차 어찌하며, 만일 악형(惡兄)이 먹었으면 모친은 속절없이 황천에 돌아가시도다.”
하고, 통곡하니 무성한 대수풀이 소리에 응하거늘, 울음을 그치고 헤아리되,
“무변(無邊) 대해에 대 소리가 어찌 나리오. 분명 초(楚)나라 땅이로다.”
하고, 더듬어 내리고자 할 제, 오작(烏鵲)이 지저귀는 소리가 나며, 손에 자연 잡히는 실과(實果)가 있거늘, 먹은 즉 배부르고 정신이 상활(爽闊)한지라. 인하여 바위에 내려 죽림(竹林)을 찾아가니 무성(茂盛)한 대밭이라. 기중(其中)의 한 대 줄기 마디마디 휘둘려 죽성(竹聲)이 요요절절(撓撓折折)하거늘, 허리의 단검을 빼어 그 대를 베어 단저를 만들어 한 곡조를 부니, 그 소리가 청아하여 여원여소(如怨如笑)하매 산천이 위로하여 감동하는 듯하니, 이는 해상에서 신선의 저 소리를 듣고 곡조(曲調)를 능통(能通)한 바이러라.
차설, 중국 사신 호승상(好丞相)이 안남국(安南國)에 갔더니, 일 년 만에 수로(水路)로 회환하다가, 이곳에 이르러 일행이 쉬더니, 추풍(秋風)은 소슬(蕭瑟)하고 수파(水波)는 고요한데, 처량한 단저 소리가 은은히 들리거늘, 호승상이 하리(下吏)를 명하여 저 소리를 찾아 부르라 하니, 하리 나아가 보니 한 동자(童子)가 암상(巖上)을 의지하여 단저를 슬피 불거늘, 묻기를,
“동자(童子)는 어디 있기에 이곳에 와 저를 부느뇨?”
성의 놀라 답하기를,
“나는 의지 없는 사람이로라.”
하리, 이르기를,
“우리 노야(老爺) 중국 사신으로 안남국에 갔다가 회환하시더니, 동자의 저 소리를 들으시고 청하시니 함께 가자.”
하니, 성의 이르기를,
“맹인이 촌보(寸步)를 옮기지 못하니 어찌 뵈오리오.”
하리 불쌍히 여겨 붙들어 해변의 나아가 승상께 뵈오니, 승상이 그 비범한 용모에 폐맹함을 차탄(嗟歎)하여 이르기를,
“아깝다. 저런 인물이 일월(日月)을 못 보는도다.”
성의 재배 이르기를,
“소자가 부모를 잃고 유리표박(流離漂泊)하다가, 수적(水賊)을 만나 양안(兩眼)을 상(傷)하고, 잔명(殘命)을 겨우 보전하여 무인(無人) 절도(絶島)의 이르러 심사(心思)가 번뇌(煩惱)하오매, 우연히 단저를 불이러니 상공이 들으시도소이다.”
하고, 언파(言罷)의 누수(淚水)가 여우(如雨)거늘 승상이 추연(惆然)하여 이르기를,
“나이 몇이뇨?”
대답하기를,
“십이 세로소이다.”
승상 이르기를,
“네 외모(外貌)가 안평국 인물 같으니, 내 너를 이곳에 버리고 가면 필경 명(命)을 보전치 못하리라.”
하고, 인하여 데리고 중국의 돌아가 천자(天子)께 숙배(肅拜) 후에 주(奏)하기를,
“신이 중로(中路) 해상에서 여차여차(如此如此)하온 아이를 만나 데려왔나이다.”
하니, 천자가 들으시고 불러 보시니, 옥 같은 소동(小童)이라, 그 옥골(玉骨)선풍(仙風)이 실목(失目)함을 차탄(嗟歎)하시고 묻기를,
“짐이 들으니 저를 잘 분다하니 한번 듣고자 하노라.”
성의 고두(叩頭)하고 한 곡조를 시험하니, 청아한 소리가 진세(塵世) 음률(音律)과 다른지라. 상이 칭찬하여 이르기를,
“필경 천인(賤人)이 아니로다.”
하시고 후원(後園)에 두시니라.
차시, 황제 다만 한낱 공주를 두었으니, 명(名)은 채란이요, 연광(年光)이 십삼 세라. 화용월태(花容月態)는 월궁(月宮) 항아(姮娥)가 하강(下降)한 듯하고, 또한 재기(才氣) 민첩(敏捷)하여 시서(詩書)와 음률이 무불통지(無不通知)하니, 황제와 황후가 지극 애중(愛重)하시고, 궁중(宮中)이 막불흠앙(莫不欽仰)하더라. 한가한 때면 단금(短琴)을 타며, 혹 후원에서 무예를 익히니 가위(可謂) 여중군자(女中君子)요, 규중호걸(閨中豪傑)이러라.
차시 성의 후원에 있어 의식(衣食)은 유족(有足)하나, 고국(故國) 소식이 묘연(渺然)함을 슬퍼하며 이르기를,
“서신(書信)을 뉘 통하리오. 내 기르던 기러기 살았는가 죽었는가. 만일 살았으면 부모의 안부를 전하련마는 어찌할 수 없도다.”
하고, 불승(不勝) 비감(悲感)하여 단저로 사향곡(思鄕曲)을 부니, 청음(淸音)이 벽공(碧空)에 사무치며 애원(哀怨) 처절(凄切)한지라. 공주가 마침 월색(月色)을 띄어 시녀를 데리고 완월루(玩月褸)의 올라 유완(遊玩)하다가, 저 소리를 듣고 옥수(玉手)로 단금을 타며 차탄하여 이르기를,
“기특하다. 이 곡조(曲調)는 왕자진, 엄군평의 곡조이니, 필연 후원에 사람이 있어 단저를 희롱하도다.”
하고, 시비 벽옥을 명하여, 그 소리를 찾으라 하니, 벽옥이 승명(承命)하고 자운각(紫雲閣)으로부터 능파대(凌波臺)의 올라 살피니, 후원에서 한 동자가 홀로 앉아 저를 슬피 불거늘, 벽옥이 앞에 나아가 묻기를,
“선동(仙童)은 어찌 심야(深夜)의 자지 아니하고 단저를 희롱하느뇨?”
성의 놀라 답하기를,
“나는 외국 사람이라. 일월을 못 보는 병인(病人)으로 수회(愁懷) 교집(交集)하매, 마침 단저를 희롱하더니, 그대 어찌 묻느뇨?”
벽옥이 답하기를,
“나는 공주의 시비러니, 공주가 완월루에 계셔 저 소리를 들으시고 찾으라 하시기 왔노라.”
성의 대경(大驚) 이르기를,
“내 비록 맹인이나, 어찌 감히 옥주(玉主) 안전(案前)에 뵈오리오. 가장 불가(不可)하도다.”
하거늘, 벽옥이 돌아와 그 용모와 문답(問答) 언어(言語)를 낱낱이 고하니, 공주가 문득 몽사를 생각하고 이르기를,
“내 들으니 호승상이 해변에서 단저 부는 아이를 데려다가 후원에 두었다 하더니, 필연 그 아이로다. 즉시 부르라.”
하니, 벽옥이 다시 가서 성의에게 이르기를,
“옥주(玉主)가 비록 심궁(深宮)의 처(處)하시나, 약간 음률을 아시는 고로, 그대의 저 소리를 듣고자 부르심이니 사양치 말고 감이 어떠하뇨?”
성의 마지 못하여 벽옥을 따라 완월루에 이르러 재배하니, 공주가 자세히 살펴본즉 비록 폐맹이나 표표(表表)한 골격이 짐짓 대장부의 기상(氣像)이라. 공주가 자리를 주고 거주(居住) 성명(姓名)을 물으니, 성의 답하기를,
“소생(小生)은 죄악(罪惡)이 심중(深重)하여 부모를 실산(失散)하고 혈혈무의(孑孑無依)하여 전전유리(輾轉遊離)하더니, 천행(天幸)으로 호승상을 만나 거두심을 입사와 의식은 무려(無慮)하오나, 자연 신세를 생각하고 감창(感愴)하여 단저로 수회(愁懷)를 폐(廢)하려 하옵더니, 의외 옥주께서 부르시니 황공무지(惶恐無地)하오며, 부모 성명과 거주는 모르옵고 다만 나이는 심삼 세로소이다.”
공주가 청파(聽罷)의 장탄(長歎)하며 이르기를,
“가석(可惜)하다. 일월을 보지 못함이여. 그대의 단저 곡조가 가장 신기하기로 청하였나니, 수고를 아끼지 말라.”
성의 수명(受命)하고 즉시 단저를 빼어 월하(月下)에 슬피 부니, 사람의 마음이 자연 감동하는지라. 공주가 탄금(彈琴)을 그치고 이르기를,
“그대 필연 범인(凡人)이 아니로다. 곡조가 제차(第次)가 있으니, 품은 재조를 다하라.”
하니, 성의 답하기를,
“옥주께서 소생의 미천함을 혐의(嫌疑)치 않으시고, 이같이 관대하시니 은혜 망극이라. 어찌 재조를 은휘(隱諱)하리오.”
하고, 손으로 난간(欄杆)을 치며 고시(古詩)를 읊으니, 공주가 산호(珊瑚)필(筆)을 들어 화전(花氈)에 쓰고 백옥(白玉) 서안(書案)을 쳐 구구(句句) 칭찬하더라. 공주가 옥배(玉杯)를 전하며 이르기를,
“백옥(白玉)이 곤산(崑山)의 묻혔으나 명광(明光)을 감추지 못하나니, 그대 일찍 부모 이별하다 하니, 재조를 뉘게 배웠느뇨?”
성의 답하기를,
“어려서 도인을 만나 배웠나이다.”
공주가 탄(嘆)하며 이르기를,
“그대 전세(前世) 도덕(道德)이 높기로 금세(今世)의 저런 재조를 배웠도다.”
벽옥 이르기를,
“옥주의 단금과 소동의 단적이 짐짓 적수(敵手)이라.”
하더라.
이윽고 누성(樓星)이 진(盡)하매 공주가 시녀로 하여 성의를 인도하여 보내고 침소(寢所)로 돌아 오니라.
이러구러 익년(翌年) 춘(春)을 당하니, 때 정히 방춘화시(芳春花時)라. 백화(百花)는 만발(滿發)하여 나비를 머무르고, 세류(細柳)는 의의(依依)하여 황조(黃鳥)가 왕래하는지라.
황제 춘경(春景)을 사랑하여 후원 백화정(百花亭)에 태평연(太平宴)을 배설(排設)하매, 문무백관(文武百官)의 금포옥대(錦袍玉帶) 제제(濟濟)하여 천상(天上) 선관(仙官)이 봉미(鳳尾)에 모인 듯하더라.
황제 호승상을 명초(命招)하사 성의를 부르시니, 차시(此時) 성의 홀로 앉아 본국을 생각하고 탄식만 하더니, 홀연 부르심을 듣고 즉시 승명(承命)하여 들어가서 어전(御前)의 복대(伏待)하니, 황제 근시(近侍)하라 하시고 자세히 보신즉, 옥골(玉骨) 풍채(風采) 빼어나고 성음(聲音)이 청아(淸雅)하매 새로이 성의 재조를 칭찬하시고 그 신세를 애련(哀憐)하시니,
이때 제신(諸臣)이 반열(班列)에 섰다가 성의를 보고 사단(事端)을 알고자 하거늘, 호승상이 전후사(前後事)를 설파(說破)하니 제인(諸人)이 차탄(嗟歎)하며 이르기를,
“석일(昔日) 해풍청이 칠년 만에 눈을 떴으니, 저 소동의 기질이 비범하니 타일(他日)에 필경 신기한 일이 있으리로다.”
하더라.
일모(日暮) 파연(罷宴)하매, 제신은 물러가고 황제 내전에 드시어 성의의 말을 일컬어 애석(哀惜)하시니, 황후(皇后)가 이르기를,
“그 아이 맹인이라 하니 무슨 허물이 있으리오. 한번 보사이다.”
황제 즉시 승전(承傳)으로 성의를 인도하여 들어오거늘, 상이 좌(座)를 주시고 저를 불라 하시고 한 곡조를 들으시니, 그 곡조가 과연 비상하여 진세(塵世) 음률이 아니라, 짐짓 선악(仙樂)이거늘 황후가 묻기를,
“고향은 어디며 부모의 성명을 아느냐?”
성의 답하기를,
“삼 세에 부모를 잃고 유리표박(流離漂泊)하였사오니, 거주와 부모 성명을 모르나이다.”
이때 공주가 장내(牆內)의 있다가 성의를 바라보니, 명월이 벽공(碧空)에 걸렸는데 표표(表表)한 풍채가 월하(月下)에 볼 적과 다른지라. 심중에 그윽히 안폐(眼廢)함을 아끼더라. 황후가 금은을 후히 상사(償賜)하여 보내시니, 성의 사은(謝恩)하고 후원으로 돌아와 금은을 어루만져 체읍(涕泣)하며 이르기를,
“부모 안부 어떠하시며, 불초자를 얼마나 생각하시는고. 몸이 본국을 떠나 서천의 가, 약을 얻어 회환하다가, 정성이 부족하여 불측(不測)한 형의 독수(毒手)를 만나 잔명(殘命)이 타국에 유락(流落)할 뿐 아니라, 일월을 못 볼 지경을 당하니 생불여사(生不如死)이라. 망극할사 악형(惡兄)이여. 금은이 여산(如山)하니 무엇에 쓰리오. 본국은 동남(東南)이라. 두 날개 없으니 어찌 하리오. 창천(蒼天)은 굽어 살피소서.”
하고, 인하여 전전불매(輾轉不寐)하더라.
차시, 공주가 야심(夜深)함을 인하여 옥촉(玉燭)을 밝히고, 난간에 의지하여 시를 읊다가, 홀연 성의의 고향 사념(思念)하든 글을 생각하고, 춘란에게 이르기를,
“사람이 이국이가(離國離家)함에 회포(懷抱)가 간절할지니 그 아니 가련하냐?”
춘란 등이 답하기를,
“요사이 소동의 말이 왕왕(往往)히 귀를 놀래더이다.”
공주가 탄(嘆)하며 이르기를,
“내 비록 궁중 여자이나, 한번 위로하고자 하나니, 여등 소견이 어떠하뇨?”
춘란 이르기를,
“소비도 이미 헤아린 바이로소이다.”
하고, 즉시 성의 처소의 가 불러 이르기를,
“옥주가 마침 잠이 없어 단저 소리를 듣고자 하시니 감이 어떠하뇨?”
하니, 성의 놀라 옷을 정제(整齊)하고 춘란을 따라 옥루(玉樓)에 나아가니 공주가 이르기를,
“우연히 그대와 음률을 화답하니, 비록 예도(禮道)를 어기나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다시 청하여 월색의 시를 화답고자 하나니 그대 즐겨할 소냐?”
하고, 시녀를 명하여 일배(一杯) 향은(餉銀)을 권하니, 성의 술을 먹지 못하나 공주가 주심을 사양치 못하여, 받아 먹은 후에 시를 읊으니 기시(其詩)에 이르기를,
“일신(一身)이 만리(萬里)의 유락(流落)함이여. 어느 때 고향 생각이 없으리오. 홍안(鴻雁)조차 무정하니 소식 전하기 어렵도다.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은 창해(滄海)를 보태는 도다.”
하였거늘, 공주가 재삼(再三) 보다가 화답하니, 기시 이르기를,
“우연히 원객(遠客)을 만나니 그 아니 연분인가. 일곡(一曲) 단저 맑은 소리가 사람의 심회(心懷)를 돕는 도다. 만사(萬事)가 임의(任意)로 못하나니, 일배주(一杯酒)로 위로뿐이로다.”
읊은 후 묻기를,
“시는 과연 마음으로 난다 하니, 본디 천인(賤人)은 민간(民間)에서 살고 왕자(王子)는 궁중(宮中)에 생장(生長)하나니, 청컨대 심사를 은닉(隱匿)하지 말라.”
성의 이르기를,
“기혹(欺惑) 언성(言聲)이라 하니, 그런 일이 없나이다.”
공주가 부답(不答)하고 단금을 내어 한 곡조를 희롱하니, 소리가 가장 처량하여 객회(客懷)를 돕는지라. 성의 옷깃을 여미고, 꿇어 이르기를,
“옥주가 소생 같은 천인을 혐의(嫌疑) 아니 하시고, 여차 관접(款接)하시니 은혜 태산이 가볍도소이다.”
공주가 이르기를,
“그대는 필시 귀공자라. 금잔옥대(金盞玉臺)에 단풍(丹楓)시(詩)를 상응(相應)하니 심사가 어찌 범연(泛然)하리오.”
성의 묵묵(默默) 무언(無言)이러니, 문득 금계(金鷄) 보효(普哮)하는지라. 공주가 몸을 일어나며 시녀로 하여금 성의를 인도하여 보내니라. 성의 처소로 돌아가 헤아리되,
“공주는 아미(蛾眉) 다스린 장부(丈夫)이라. 짐짓 군자호구(君子好逑)이건마는 도시(都是) 천정(天定)이라. 어찌 인력으로 하며, 고국이 창망(蒼茫)하니 나의 심회를 부칠 곳이 없으매, 다만 눈물이 속절없도다.”
하더라.
각설, 안평국 왕비 병세 쾌복(快復)하나 성의 생사를 몰라 주야 슬퍼하더니, 일일은 성의 있던 별당(別堂)에 들어가니, 산호(珊瑚) 서안(書案)에 서책(書冊) 필연(筆硯)은 의구(依舊)하나, 형용(形容)이 막연(漠然)하매 심회 감창(感愴)함을 금치 못하더니, 홀연 외기러기 슬피 울거늘 괴이하여 물으니, 시녀 등이 답하기를,
“거년(去年)의 공자(公子)님 행시의 기러기를 쓰다듬어 경계(警戒)하며 이르기를, ‘네 나와 더불어 일시도 떠남이 없더니, 이제 만 리 원별(遠別)을 당하니 언제나 모이리오. 만일 무슨 일 있거든 네 두 날개를 부쳐 소식을 전하라.’ 하시고 가신 후에 궁녀 등이 밥을 먹이더니, 요사이 밤마다 슬퍼 울기를 그치지 아니하오니, 내궁(內宮)이 초원(超遠)하기로 낭랑(娘娘)이 못 들어 계시니이다.”
왕비 즉시 기러기를 어루만져 이르기를,
“네 임자가 어디 갔느뇨? 해중에서 죽었느냐 살았느냐. 만일 살았거든 내 앞에서 세 번을 울라.”
하니, 기러기 목을 늘이어 세 번 울거늘 왕비 기뻐 이르기를,
“네 아는도다.”
하고,
“네 임자가 살았거든 내 필적(筆跡)을 전할 소냐?”
기러기 머리를 세 번 좇거늘, 즉시 일봉서(一封書)를 떠 기러기 다리의 매고 경계하여 이르기를,
“네 두 날개로 만 리를 가는 새이리니 이 글을 잘 전하라.”
기러기 세 번 소리하고 두 날개를 치며 청천에 떠 운간(雲間)으로 들어 서북을 향하여 가니라.
이때 채란공주가 홀로 금각당의 앉아 글을 외우다가 사창(紗窓)을 열고 보니, 금풍(金風)이 소슬(蕭瑟)하고 황엽(黃葉)은 포락(浦落)하매, 심사가 자연 처창(悽愴)하여 벽옥에게 이르기를,
“이미 하절(夏節)이 지나 이슬이 서리를 맺었으니, 나는 옥궐(玉闕) 금전(金殿)에 번화(繁華) 영락(榮樂)으로 있건마는 오히려 마음이 슬프거든, 허물며 만 리 타국의 고객의 심사가 오죽할 소냐.”
벽옥이 답하기를,
“변방 기러기 돌아오고 대 아래 국화 반발할 때는 문인(文人), 묵객(墨客)도 수회(愁懷)를 금치 못하옵거늘, 그 중 고국을 떠나 만 리 타항에 고초(苦楚)하는 사람의 마음이야 일러 무엇 하리잇고. 소동을 한번 청하여 저의 외로운 마음을 위로하면 좋을 듯하외다.”
공주가 이르기를,
“인정(人情)이 본디 그러하나 외간(外間)의 남자를 자주 불러봄이 예모(禮貌)에 손상할까 저어 심히 난처하도다. 그러나 네 이미 발설하였으니 청하여 오라.”
벽옥이 즉시 후원에 나아가 성의를 부르니, 이때 성의 마침 잠을 깊이 들었다가 놀라 일어나 앉으니 공주가의 시녀 벽옥이라, 반가운 마음 측량없어 잠깐 헤오되,
“아까 꿈이 비상하니 오늘날 일정 좋은 일이 있으리라.”
하고, 대답하여 이르기를,
“그대 궁중 귀주(貴主)의 시녀로 이런 심야에 나 같은 천인(賤人)을 찾으니 무슨 일이 있느뇨?”
벽옥이 답하기를,
“공주가 그대를 청하여 계심이라.”
하니, 성의 즉시 금각당의 올라가니, 공주가 반겨 좌를 주고 묻기를,
“그 사이 객중(客中) 무양(無恙)하냐?”
성의 답하기를,
“천생(賤生)이 성상(聖上)의 해활지택(海闊之澤)을 입사와 아직 일신이 편하나이다.”
공주가 시녀를 명하여 갖은 성찬(盛饌)을 내리고, 향은(餉銀)을 성에게 권하며 담화하더니, 문득 월색이 명랑하며 동남에서 외기러기 슬피우는 소리가 들리거늘, 성의 자연 심사가 처창하여 귀를 기울여 들으니, 소리 점점 가까워 중천(中天)에서 금각당으로 돌아다니며 울거늘, 공주와 좌우 시녀가 나와 하늘을 우러러 살피며 심히 괴이 여기고, 성의는 혼백(魂魄)이 비월(飛越)하여 생각하되
“이 짐승이 반드시 나의 기르던 기러기인가 보다.”
하고 어린 듯 취한 듯 앉았더니, 기러기 두 날개를 펴고 점점 내려와 성의 앞에 앉으며 몸을 누이여 슬피 울거늘, 성의 그제야 쾌히 본국 기러기 온 줄 알고 급히 두 손으로 기러기를 쥐고 그 등을 어루만지며 울며 이르기를,
“이제 옴은 반드시 중전(中殿)이 승하(昇遐)하시도다.”
하고 엎어져 혼절(昏絶)하거늘 좌우 시녀가 놀라 급히 구할새, 공주가 살펴보니 기러기 좌편 다리에 일봉서를 매었거늘 끌러본 즉, 피봉(皮封)에 ‘안평국 국모(國母)는 아자(兒子) 성의에게 부치노라.’ 하였거늘, 공주가 기이히 여겨 이르되,
“기러기 발에 봉서(封書)가 달렸으니, 그대는 정신을 수습(收拾)하여 사연을 들으라.”
하고, 봉서를 떼어보니, 하였으되,
“모년 월일의 안평국 국모는 읍혈(泣血)하고 아자(兒子) 성의에게 부치노라. 슬프다. 나의 슬하(膝下)를 떠난 지 거의 기년(朞年)이라. 망망(茫茫)한 천지간에 어느 곳에 가 죽었느냐 살았느냐. 네 출천지효(出天之孝)로 나의 병을 위하여 황당(荒唐)한 도사의 말을 듣고, 좋은 궁궐을 버리고 만리창파(萬里滄波)에 일신(一身)을 편주(片舟)의 붙이어 서천에 가, 약을 얻으리니 네 효성을 하늘이 감동하심이나 네 회정(回程)하는 소식이 없으니, 슬프다. 우리 아이야. 어별(魚鼈)의 밥이 되었느냐. 어느 지방(地方)에 의지하였느냐. 네 형이 소식을 탐지(探知)하고자 하고 가더니, 무슨 연고인지 너는 아니오고 다만 일영주만 가지고 왔으며, 네 형의 말을 들은 즉, 네 삭발(削髮) 위승(僞僧)하여 불경(佛經)을 잠심(潛心)하여 부모를 버리고 부귀를 부운(浮雲)같이 여긴다 하니, 그 말을 가히 믿지 못하리로다. 그러한즉 너의 사생(死生) 존망(存亡)을 어찌 알리오. 일영주를 먹은 후에 백병(百病)이 구퇴(救退)하여 완인(完人)이 되니, 네 효성은 대순(大舜), 증자(曾子)의 미칠지라. 슬프다. 천사만탁(千思萬度)하여도 네 형의 불효부제(不孝不悌)한 행실은 천고에 드문지라. 너를 시기하여 노중(路中)의 불측(不測)한 환(患)을 만나 돌아오지 못함이냐. 월명(月明) 심야(深夜)에 일모(日暮) 황혼(黃昏)에 망망(茫茫) 무제(無際)한 천지(天地)를 부앙(俯仰)하고 부르짖어 슬퍼할 따름이러니, 일일은 너 있던 별당의 가 고적(古跡)을 살펴본즉 다만 티끌이 쌓이고 외기러기 슬피우니, 이 곳 너의 기르던 짐승인 고로, 경계(警戒)하고 부탁한즉 이것이 사람의 심신을 요동(搖動)하는지라. 구만리 창천(蒼天)에 지향무처(指向無處)하나 일봉서를 부치나니, 행여 명천(明天)이 감동하사 소식을 전할까 바라노라. 기러기 회편(回便)의 반가운 답서(答書)를 볼까 축수(祝手)하여, 만행(萬幸)으로 소식을 들을진대 구천(九泉)에 돌아가도 한이 없을까 하노라. 만단(萬端) 수회(愁懷)를 펴고자 하나, 혈루(血淚)가 먼저 가리기로 그치노라.”
하였더라.
성의 듣기를 다하매 가슴이 무너지고, 간장이 스는 듯하는 중에, 일변 반가워 정신이 쇄락(灑落)하여 바삐 일어나 배사(拜謝)할 제, 문득 두 눈이 번개 같이 뜨이니 구년지수(九年之水)에 햇빛을 본 듯, 침침칠야(沈沈漆夜)에 달을 만난 듯, 황천(黃泉)에서 살아온 듯, 청천에 뛰어오른 듯하여, 생시인지 몽중(夢中)인지 깨닫지 못하여 도리어 어린 듯 취한 듯 정신이 황홀한지라.
좌중(座中)을 살펴보니 일위(一位) 공주가 시녀를 데리고 금수(錦繡)석상(席上)에 단좌(端坐)하였으니, 옥모화용(玉貌花容)과 교태염풍(嬌態艶風)이 천하절색(天下絕色)이요, 왕모(王母)가 요지(瑤池)에 반도연(蟠桃宴)을 배설(排設)한 듯, 항아(姮娥)가 광한루(廣寒樓)에 조회(朝會)하는 듯 한번 보매 정신이 산란(散亂)한지라.
이때 공주가 옥수(玉手)로 봉서를 들고 그 보지 못함을 혐의(嫌疑)치 아니하여 낭낭(琅琅)한 소리로 행운(行雲) 유수(流水) 같이 읽어 드리다가, 천만 의외의 눈을 떠 유정(有情)이 살핌을 보매, 혼백(魂魄)이 비월(飛越)하고 마음이 경공(敬恭)하여 나삼(羅衫)을 들어 옥면(玉面)을 가리우고, 걸음을 가볍게 움직여 침소(寢所)로 들어갈새, 춘란 등이 또한 놀라 일시에 공주를 쫓아가고, 등촉(燈燭)없는 칠야(漆夜)의 성에 홀로 앉아 그 서간을 새로이 보니, 안채(眼彩) 더욱 명랑하여 비록 칠야(漆夜)이나 한 글자도 희미함이 없어, 재삼 보아도 분명 모친 친필(親筆)이라. 한 번 보고 두 번 보매 비회(悲懷) 교집(交集)하여 아무리 할 줄을 몰라 혼혼(昏昏)히 앉았더니, 차시 공주가 피하여 들어가 춘란으로 말씀을 전하여 이르기를,
“천고(千古)의 기특(奇特)하고 이상한 일이 필시 오늘날 밖에 없을 듯한지라. 그 치하(致賀)함을 측량(測量)치 못하거니와, 그대 일정(一定) 심사(心事)를 기이하심(꺼리심)은 아녀자의 태도이라. 그러나 이제로부터 내외(內外) 현격(懸隔)하였으매 다시 모든 의논은 고사(姑捨)하고 전일사(前日事)를 생각한즉 자괴지심(自愧之心)으로 대인(對人)하기 어렵도다. 바라나니 귀체(貴體)를 보중(保重)하소서.”
하거늘, 성의 청파(聽罷)의 일어 사례하며 이르기를,
“소국(小國) 천인(賤人)이 옥주(玉主)의 생활지택(生活之澤)으로 종종 관접(款接)하심을 입사오니, 그 은덕을 생각하면 태산(太山)이 낮고 하해(河海) 얕은지라. 결초보은(結草報恩)하올 마음이 간절하더니, 천도(天道)가 유의(有意)하사 고목(古木)이 봉춘(逢春)하고 절처봉생(絕處逢生)이라. 두 눈이 밝아 만물을 다시 보옵고 부모 소식을 듣사오니 기쁘기 무궁하오나, 자금(自今) 이후로 화산(華山)의 길이 멀고 약수(弱水) 물이 깊었사오니 다시 뵈올 기약이 묘연(渺然)한지라. 창결(悵缺)하온 마음이 어찌 끝이 있사오리오. 그러나 귀체(貴體) 안강(安康)하소서.”
하고, 인하여 기러기를 안고 후원으로 돌아가 그 등을 쓰다듬고 이르기를,
“네 비록 짐승이나 능히 만 리 소식을 전하여 부왕(父王)의 문안(問安)과 모후(母后)의 환후(患候) 평복(平復)하심을 알게 하니 이제 죽어도 한이 없을지라. 내 이곳에 있는 줄을 네 어찌 알았느냐? 너 곧 아니런들 내 어찌 눈을 떠 일월(日月)을 다시 보리오. 네 은혜는 삼생(三生)에 다 갚지 못하리라.”
하고, 다시 칭찬하며 이르기를,
“한무제(漢武帝) 시절에 소무(蘇武)가 흉노(匈奴)에게 사신 갔다가 북해(北海)상(上)의 갇힌 지 십구 년이 되매, 기러기발에 글을 매어 상림원(上林苑)에 소식을 통하여 본국의 돌아감을 얻었더니, 아마도 너도 백안(白雁)의 후신(後身)이로다.”
하고 익일(翌日)에 호승상 집에 나아가 승상을 뵈오니, 승상이 크게 놀라 급히 그 손을 잡고 묻기를,
“네 일찍 정녕 한 맹인이러니, 어찌 일조(一朝)의 양안(兩眼)이 다시 밝았느뇨?”
성의 자초지종(自初至終) 연유(緣由)를 자세히 고하니, 호승상이 듣기를 다하고 크게 신기히 여겨 희색(喜色)을 띄어, 즉시 궐내에 들어가 성의의 눈뜬 사연과 안평국 왕자로서 고초(苦楚)하던 수말(首末)를 아뢰되, 천자가 들으시고 또한 기이히 여기사 성의를 바삐 부르사 그 손을 잡고 가로되,
“네 본시 선동(仙童)으로서 진세(塵世)의 내려와 맹인이 되어 인간을 희롱함이로다.”
하시고, 승상을 돌아보사 이르기를,
“경(卿)의 지인지감(智人之感)이 자못 타인이 미치지 못할 바이로다. 아직 성의를 경의 집에 두어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짐의 동량지신(棟樑之臣)이 되게 하라.”
하시고, 인하여 내전의 들르사 희색이 만연(漫然)하시니, 황후가 묻기를,
“폐하 오늘날 무슨 좋은 일이 계시니잇가?”
상 이르기를,
“공주의 배필을 얻었기로 자연 희색이 있나이다.”
후가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니잇고?”
상 이르기를,
“전일 단저 불던 소동이라. 호승상이 안남국의 사신 갔다가 회환 시의 해상에서 데려온 아이니, 비록 미여관옥(美如冠玉)이나, 다만 두 눈을 감았는 고로 매양 아끼더니, 이제 두 눈을 뜨고 근본이 안평국 왕자로서 여차여차하여 기특하고, 이상한 일이 천고의 드무니 무슨 의심 있으리오.”
하니, 황후가 또한 기뻐하여 다시 불러봄을 청하거늘, 상이 사관(辭官)을 보내어 성의를 부르시니, 성의 입궐 사배(四拜)하니, 황후가 이윽히 보시고 칭찬하며 이르기를,
“명월이 구름을 헤치고, 광일(光日)이 안개를 벗어남과 같도다.”
하시고, 금은채단(金銀綵段)을 상사(償賜)하시니, 이때 공주가 금각당에서 작별한 후로 피차 소식이 막힘을 한(恨)하더니, 문득 황후 낭랑(娘娘)이 소동을 불러보심을 듣고 춘란을 데리고 황후 침실에 들어가 주렴 사이로 열어본 즉, 관옥(冠玉) 같은 얼굴이 요요정정(夭夭貞靜)하고, 팔자(八字) 눈썹은 산천(山川)수기(秀氣)를 띄어 당당한 골격이 짐짓 일대호걸(一代豪傑)이오 만고(萬古)영웅(英雄)이라.
한번 보매 새로이 반갑고 마음이 낙락(樂樂)하나, 자기(自己) 전일(前日) 지내던 일을 생각한즉 자괴지심(自愧之心)을 못내 일컫더라.
차시, 상이 황후와 동좌(同坐)하여 성의와 문답하신즉, 시서(詩書) 백가(百家)를 무불통지(無不通知)하고 언습(言習) 정정(淨淨)하매, 상과 황후가 종일 만심(滿心) 환희(歡喜)하시고, 호승상에게 잘 거두라 당부하시니,
승상이 성의를 데려다가 후원 서당(書堂)의 두고, 지극 애중(愛重)하여 공궤(供饋) 범절(凡節)이 일호(一毫) 부족함이 없으니, 성의 풍채가 일일 배승(倍勝)하며, 문장(文章)은 입을 열매 귀신을 놀래고, 필법(筆法)은 손을 놀리매 용사(龍蛇)를 희롱하니, 천지간 기남자(奇男子)이라, 보는 사람이 흠앙(欽仰)하지 않는 이 없더라.
승상이 또한 아들이 없고, 다만 일녀(一女)를 두었으니 이름은 옥란이니, 일일은 부인이 승상을 대하여 이르기를,
“우리 노래(老來)에 다만 여식(女息)이 있어, 매일 택서(擇壻)하여 우리 후사(後嗣)를 전할까 바라옵더니, 듣사오니 후당(後堂)의 있는 서동(書童)이 안평국 왕자요, 겸하여 용모가 출중(出衆)하고 문필이 유여(有餘)하며 재기 과인(過人)하다 하오니, 여아(女兒)의 혼사를 정(定)하여 후사를 전함이 좋을까 하나이다.”
승상 이르기를,
“그 소년이 당당한 왕의 기상(氣相)이 있고 또한 안평국 왕자이요, 우리 여아는 한낱 군자의 배필될 기상이요, 이제 공주(公主)의 연광(年光)이 십오 세니, 성의 당당히 간택에 뽑힐지라. 향자(向者)에 궁인(宮人) 전언(傳言)을 들은 즉, 공주 현숙함이 석일(昔日) 영양공주(英陽公主)에 지난다 하니, 이는 이미 성의에 내정(內定)한 바이라. 어찌 의혼(議婚)하리잇고.”
부인이 청파(聽罷)에 악연(愕然)히 깨닫더라.
화설, 황제 춘추(春秋)가 높으시되, 매양 후사 없음을 한탄하옵시더니, 일일은 황후가 일몽(一夢)을 얻으신 후, 과연 그날부터 태기(胎氣)있어 십 삭(朔) 만에 생남(生男)하시니, 황제 환희하사 경과(慶科)를 뵈실새, 호승상이 성의 입장(入場)하기를 권하거늘, 성의 장중(場中)의 들어가 일필휘지(一筆揮之)하여 일천(一天)에 선장(先場)하였더니, 전두관(殿頭官)이 호명(呼名)하기를,
“금번(今番) 장원(壯元)은 적성의라.”
하거늘, 성의 인해중(人海中)을 헤치고 옥계(玉階)에 추찬(推讚)하온대, 천자가 인견(引見) 사주(賜酒)하시고, 한림(翰林)을 제수(除授)하시니, 한림이 천은을 숙사하고 이원(吏員) 풍악을 거느려 승상부(丞相府)로 돌아오니, 승상의 환열(歡悅)함은 일필난기(一筆難記)러라. 한님이 비록 영귀(榮貴)하나 경사(慶事)를 고할 데 없어 누수(淚水)가 옷깃을 적시더라.
차설, 채란공주가 적공자 장원급제함을 심중에 암희(暗喜)하더라. 이때 채란공주가 장성하매 상과 후가 성의의 재질이 빼어남으로 부마(駙馬)를 유의하사 적한림(赤翰林)을 명초(命招)하사 이르기를,
“경이 비록 타국 사람이나 짐의 나라에 들어와 소년(少年) 등과(登科)하여 재명(才名)이 빼어난지라. 짐에 한 딸이 있으니, 비록 임사(任姒)의 덕이 없으나 군자(君子)의 건즐(巾櫛)을 소임(所任)할지라. 이러므로 경으로 부마를 정하나니 사양치 말라.”
하시니, 한림이 복지(伏地) 주하기를,
“신이 외국 인물로 명도(命途)가 천박(淺薄)하옵거늘, 성상의 하해지택(河海之澤)을 입사와 일신이 영귀하온 중 갈수록 성은이 융중(隆重)하여 성교(聖敎)가 여차하시니, 신이 손복(損福)할까 하나이다.”
상이 대열(大悅)하사 흠천관(欽天官)에 택일(擇日)한즉, 지격(至隔) 일수(日數)한지라. 길일(吉日)이 다다르매 한림이 위의(威儀)를 휘동(麾動)하여 전안지례(奠雁之禮)를 행하매, 신랑 신부의 남풍여모(男風女貌)가 차등(差等)이 없더라.
일모(日暮)하매 신방(新房)에 나아가 원앙금(鴛鴦衾)에 운우지락(雲雨之樂)을 이루니, 무슨 낙포(洛浦)라도 이에서 지나지 못할러라. 명조(明朝)에 황상께 조현(朝見)하오니 상과 후가 새로이 무애(撫愛)하시더라. 한림과 공주가 승상부에 나아가 뵈올새, 승상 답례(答禮)하고 좌정(坐定) 후 부인이 하례(賀禮)하여 이르기를,
“귀주(貴主)가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인연이 있사와 누지(陋地)에 왕림(枉臨)하시니 천가(賤家)에 광채(光彩) 배승(倍勝)하여이다.”
공주가 공경(恭敬) 사사(謝事)할 뿐이러라. 일모하매 공주가 궁으로 돌아가니라.
수삭(數朔)이 지나매 부마가 공주를 대하여 추연(惆然) 낙루(落淚)하며 이르기를,
“복(伏)이 타국지인(他國之人)으로 대국에 들어와 용문(龍文)에 현달(顯達)하고 겸하여, 천은이 망극하여 부마되오니 일신이 명귀(明貴)하오나 부모를 생각하오매 망극하온지라. 어찌하면 본국에 돌아가 쌍친(雙親)을 뵈오리오.”
하고 누수(淚水)가 여우(如雨)하거늘, 공주가 염용(斂容) 답하기를,
“첩이 군자를 좇으매 여필종부(女必從夫)는 떳떳한 도리라. 황상께 주(奏)하여 수삭 말미를 얻으리이다.”
하고, 공주가 황상께 주하기를,
“부마가 이친(離親)한지 오래오매 사모함이 간절하온지라. 신이 또한 구고(舅姑)께 현알(見謁)하고자 하오니, 수삭 말미를 허(許)하소서.”
상이 하교(下敎)하기를,
“경등 주사(奏辭)가 여차하니, 이는 효도라. 짐이 어찌 막으리오.”
하시니, 부마 부부가 사은한 후 양전(兩殿)에 하직하고 승상 부부께 하직한 후 발행할새, 천자가 하교하사 군관(軍官) 수십을 주시고, 사신(使臣)을 먼저 보내사 전후(前後) 수말(首末)을 선통(先通)하라 하시다.
인하여 발선(發船)하여 순풍을 만나 배 빠르기 살 같더라. 여러 달 만에 전일 죽림(竹林)을 당하매 자연 비감하여 나아가 죽림에 사례(謝禮)하고 수일을 행하여 전일 액(厄)을 만나던 곳에 다다라 제문(祭文)을 지어 격군(格軍)의 고혼(孤魂)을 위로할새, 기문(其文)에 이르기를,
“유세차(維歲次) 모년 월일의 부마 도위(徒尉) 적성의는 통곡하고, 모든 격군의 고혼을 위로하나니, 오호(嗚呼)라. 그대 등으로 수만 리 소행(所行)을 지나다 이곳에 이르러 원억(冤抑)히 참사(慘死)하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수연(愁然)이나 이 도시(都是) 명(命)이라. 남을 원(怨)하지 말고 좋은 귀신이 되어 향화(香火)을 받으라. 나는 천우신조(天佑神助)하여 일신이 영귀(榮貴)히 돌아오니 어찌 그대 등의 도움이 아니리오. 마땅히 그대 등 자손(子孫)을 초용(招用)하리니, 신령(神靈)은 안심 흠향(歆饗)하소서.”
하였더라. 읽기를 마치매 일장(一場) 통곡(慟哭)하니 수운(愁雲)이 참담(慘憺)하더라. 배를 재촉하며 호호(呼號) 낭낭(琅琅)히 행하니라.
선시(先時)에 기러기발에 서찰을 매여 본국의 먼저 고하였더니, 차시(此時) 왕비 성의 생각하고 청천을 앙망(仰望)하더니, 기러기 슬피 울고 내려와 앉거늘, 자세히 살펴보니 기러기발에 서찰이 매였거늘, 개탁(開坼)한 즉 성의의 필적(筆跡)이라. 서중사(書中辭)에 참담하고 전후 수말(首末)이 벌렸더라.
왕비 보기를 다하매 흉격(胸膈)이 막히고 기운이 저상(沮喪)하여 기러기를 붙들고 대성통곡하니, 이때 항의 울음소리를 듣고 대경하여 생각하되,
‘성의 만일 살아 돌아오면 본적(本迹)이 탄로(綻露)할지라.’
가만히 심복(心腹) 무사(武士) 적부래를 불러 여차여차 하라 하되, 적부래 응낙하고 가더라.
이때 부마 일행이 정히 행하더니, 홀연 일성(一聲) 포향(砲響)에 일대(一隊) 인마(人馬)가 내달아 길을 막고 대호(大呼)하기를,
“너희 등은 타국 사람이라. 무단히 우리 지방(地方)을 범하니 이는 도적이라.”
하고 말을 채쳐 달려드니, 이는 적부래라. 부마와 공주가 대경하여 어찌할 줄 모르는지라. 대국(大國) 군관(軍官) 중 일인(一人)이 용맹이 절륜(絶倫)한 자가 있는지라. 이에 장창(長槍)을 들고 말에 올라 대호하기를,
“우리는 대국 장사(壯士)라. 부마와 공주를 뫼시고 나오거늘 어떠한 도적이기에 항거(抗拒)하느냐.”
하고, 맞아 싸워 수 합(合)이 못되어 적부래를 베고, 남은 군사를 짓친 후 위의를 차려 나아가니라.
차설, 항의 군사 패함을 듣고 대경하여 친히 칼을 들고 맞아 가더니, 문득 한 사람이 대호하기를,
“이 무지한 놈이 동기(同氣)를 몰라보고 이렇듯 지악(至惡)히 불량하니 너 같은 놈을 베어 후인(後人)을 징계(懲誡)하리라.”
하고, 일합에 베고 자문이사(自刎而死)하니 어찌 쾌(快)한 장부(丈夫)가 아니리오.
차시, 부마 일행이 환난(患難)을 벗어나 도성으로 향하여 들어갈새, 만조백관(滿朝百官)이 위의(威儀)를 차려 영접(迎接)하더라. 왕이 황사(皇使)를 맞아 별궁(別宮)에 들이고, 조서(詔書)를 읽은 후, 왕자와 공주를 맞아 일희일비하고 여몽(如夢)여상(如常)이러라.
왕자가 전후 설화(說話)를 고하니, 왕이 듣기를 마치매 항의의 의행(疑行)을 골경심한(骨驚心寒)하여 다만 유체(流涕)뿐이러라. 수삭(數朔)을 머무르매 황명(皇命)을 생각하고 부왕께 하직하고 일삭(一朔) 만에 중국의 득달(得達)하여 조현(朝見)하오니, 상과 후가 새로이 반기시며 무사(無事) 왕환(往還)함을 기뻐하시더라.
차시, 황상이 춘추가 높으시매 태자에게 전위(傳位)하시고, 태자가 즉위하시니, 천하가 태평하고 사방이 무사하더라. 호승상 부부가 홀연 득병(得病)하여 기세(棄世)하매 부마 부부가 의논하고 본국으로 돌아감을 주하니, 상이 윤허(允許)하시고 특별히 안평국 세자를 봉(封)하사 금은채단을 많이 상사(償賜)하시니, 세자와 공주가 사은(謝恩)한 후 본국으로 돌아와 쌍친을 효양(孝養)하더니,
왕과 후가 홀연 득병하여 붕(崩)하시매 세자가 즉위하사, 치국(治國) 태평하고 만민(萬民) 낙업(樂業)이러라. 기러기도 본토로 돌아가매 왕과 후가 창연(悵然)함을 마지아니하고, 기러기 화상(畫像)을 그려 평생을 잊지 아니하더라. 이후로 계계승승(繼繼承承)하여 자손이 창성(昌盛)하고 국부민강(國富民强)하여 누천년(累千年)을 누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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