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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경룡전' 전문

New-Mountain(새뫼) 2018. 2. 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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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경룡전(王慶龍傳)

 

 

경룡(慶龍)의 성은 왕()이요, ()는 시현(時見)으로 절강(浙江) 소흥부(紹興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놀라웠으며 재주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 아버지 위공(魏公)은 가정(嘉靖) 말년에 벼슬이 각로(閣老)에 이르렀다. 이 때 경룡의 나이는 16세였는데, 부지런히 배우면서 장가들 생각은 하지 않았고, 문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서 종일토록 글을 읽은 지 여러 날이었다. 마침 위공은 정사를 의논하다가 윗사람의 뜻을 거슬러 관직을 그만 두고 고향 마을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위공은 동시(東市)의 부유한 상인에게 은자 수만 냥을 빌려준 적이 있었다. 부자 상인이 그때 마침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흥정하여 사고파는 일로 강남으로 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위공은 길을 떠나려 할 적에 경룡을 그곳에 머물게 하면서 말하였다.

은자 수만 냥은 집안의 귀중한 재물이니 한낱 창두(蒼頭)를 시켜 그 돈을 받아 오는 일을 맡길 수는 없으니, 네가 그것을 받아 가지고 오너라.”

경룡이 명을 받고 뒤에 처져서 늙은 하인 한 명을 거느리고 서울에서 한 달여를 머물렀다.

상인은 곧 돌아와서 이자 돈까지 모두 갚자, 경룡이 곧 여행 짐을 꾸려 절강(浙江)으로 향하였다. 길이 서주(徐州)에서 머물게 되자, 문득 이곳이 본디 번화한 곳으로 이름났다는 것을 생각하고 한번 구경해 보고 싶었다.

곧바로 늙은 하인에게 말했다.

내가 지난날에는 아버님의 가르침이 엄격하여, 책에 얽매이느라 나이가 이미 어른이 되었는데도 집안에만 굳게 갇혀 지냈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술집과 창루(娼樓)의 호사스럽고 아름답다는 것이 과연 어떠한지 알지 못하니, 이제 조금 말을 멈추고 잠깐 유람을 하려네.”

늙은 하인은 무릎을 꿇고 나아가 말했다.

도련님! 도련님! 삼가 그리 마십시오. 술이란 바로 미치게 하는 약으로 입에 대면 마음이 방탕해지고, 여색(女色)이란 요사스런 여우로 눈앞에 어른거리면 혼이 어지러워지게 됩니다. 도련님은 나이 어린 서생(書生)으로서 뜻과 생각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두 가지 것이 한번 마음과 눈에 들어오면, 저것들을 받들게 되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이가 거의 드물 것이니, 차라리 안 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경룡은 비록 그 말이 옳겠다고 여겼으나 스스로 한 번 놀고 감상한다고 어찌 뜻을 잃는 데까지 이르겠는가.’ 하고는 끝내 듣지 않았다.

곧 서관(西館)으로부터 동관(東館)까지를 두루 살펴보니, 푸른 깃발과 금색 간판은 꽃과 버들 사이로 은은히 비치고, 연두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은 젊은 여인들은 누대(樓臺)와 정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노래를 부르고 피리를 번갈아 연주하고, 술잔과 쟁반이 이리저리 섞여 있었다.

경룡은 길을 따라 두루 구경하면서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남쪽 주루(酒樓)에 이르러 잠시 쉬려고 누각에 올라 난간에 기대어 차를 사서 마셨다. 마침 수십 보 정도쯤에 유달리 높은 누각이 있고, 누각 아래로는 숫돌처럼 평평한 큰 길과 명주 같은 잔잔한 강물이 보였다. 곧 멀고 가까운 곳에서 온 채색한 배들이 꽃이 만발한 물가에 정박해 있는데, 비단 돛과 목란 상앗대가 물결에 따라 가벼이 흔들리고 있었다. 또 두세 마리 흰 말이 수양버들에 매어 있었는데, 금 안장에 옥 굴레를 하고는 발을 구르며 울고 있었다.

누각 위에는 화려한 비단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한창 잔치를 베풀고 즐기는 것이 보였다. 붉은 주렴은 반쯤 걷혀 있고 푸른 창문은 활짝 열렸는데 옥 향로에서는 향이 타는 푸른 연기가 안개를 이루어 자욱하고, 금빛 잔으로 술을 드니 비취색 술거품이 물결을 일으켰다. 단장한 아가씨들이 모여 앉아 비단 옷이 줄을 이루었고 애절한 비파 소리와 호탕한 피리 소리가 아득히 하늘에 어리고, 아름다운 춤과 맑은 노래 소리가 하루 종일 어지러이 어울렸다.

그 가운데 젊은 아가씨 한 명이 손에 푸른 부용꽃 한 송이를 쥐고 열을 벗어나 혼자 서 있는데 맑고 빛나 눈부시니 신선과도 같았다. 경룡은 자신도 모르게 눈길을 주면서 한번 만나 보려고 하였으나 인연을 만들 방도가 없음이 한스러웠다.

우연히 누각 아래를 보니 표주박을 파는 할미가 있기에 할미를 앞으로 불러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누각 속에 이러이러한 모양을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요?”

할미가 말했다.

동관에서 키우는 아이로 이름을 조운(朝雲)이라 하지요. 마침 노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잔치를 베푸는지라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뭇 손님과 여러 기생들이 각각 흩어져 돌아가자, 경룡은 곧 은자 이십 냥을 할미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 돈이 비록 적으나 정으로 드리는 것이니, 할미는 나를 위해 이 고운 아이를 불러 줄 수 없겠소?”

할미는 그 돈을 사양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저 아가씨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생업이니 부르면 곧 올 것이지요. 다만 공자(公子)께서 저 아가씨를 보고자 하는 것이 예쁜 아가씨이기 때문이라면, 저 아가씨보다 더 예쁜 아가씨가 있습니다. 곧 저 아가씨의 누이동생으로, 이름은 옥단(玉檀)이고, 나이는 지금 열네 살이며, 자색(姿色)이 다른 사람보다 빼어나 동서 양관(兩館)을 다 찾아보아도 그보다 나은 사람이 없을 겁니다. 다만 나이가 어려 지금까지 팔리지 않은 것이니 만약에 많은 재물을 줄 것 같으면 반드시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을 것이에요.”

경룡이 말했다.

내가 한 번 보고자 하는 것은 다만 뛰어난 자색을 구경하고자 하는 것일 뿐, 합환(合歡)에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오.”

할미가 말했다.

나와 그 아가씨는 평소에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지요. 더구나 그대의 은혜를 입었으니 감히 명을 어기겠습니까?”

곧 그 집으로 들어가더니 오래도록 나오지 않았다.

경룡이 혹 할미에게 속았는가 걱정이 되어, 얼마쯤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스러워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고대하고 있을 때였다.

할미가 한 아환(丫鬟)의 손을 이끌고, 느릿느릿 걸어왔다. 얼굴을 가다듬고 문으로 들어오는데, 광채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타고난 선녀 같은 자태가 조운보다 백 배나 나았다. 참으로 세상에 다시없는 나라 안에서 으뜸가는 미인이었다.

자리에 앉아 채 말도 붙이지 않았는데 돌이켜 몸을 일으켜 누로 가려하니, 할미가 만류하여 잡았으나 끝내 머무르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도 할미에게 속아서 공자의 부름에 잘못 나온 것을 부끄럽게 여김인 듯하였다.

경룡은 이 뛰어난 미인을 보고 마음에 솟는 정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곧 은자 삼천 냥을 세어서 그 집에 보내고 할미를 시켜 그녀의 어미에게,

선물이 비록 많지는 않으나 감히 한 번 만나 본 예물로 준비했습니다.”

라는 말을 전하게 하였다.

그 어미가 돈을 탐내어 경룡을 맞아 집에 오게 하였다.

잔치 자리를 성대하게 차려 놓았고, 금빛 병풍이 엇갈려 빙 둘러 쳐져 있었으며, 수놓은 장막이 높이 쳐졌는데 좋은 술이 가득 채워져 있고, 향기로운 음식이 이리저리 놓여 있었으며, 곱게 화장한 여자들이 음악을 연주하였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술을 바치고 자리를 장식한 물건과 즐거움을 북돋는 도구가 지극히 화려하고 사치하여 한낮의 잔치보다 갑절이나 나았다. 또한 옥단으로 하여금 자리에 나와 앉도록 하였는데, 옥단은 난초 같은 자태에 부끄러움을 띠고, 옥 같은 얼굴에 교태를 머금었으며, 구름 같은 머리채를 단정하게 빗어 꽃비녀로 가다듬었다. 비취새의 깃털과 금빛으로 수놓은 저고리에 천축(天竺)의 얇은 비단 적삼을 걸쳤으며, 붉은 깃털에 구슬 그물을 장식한 저고리에, 천촉(川蜀)의 조가비 무늬가 그려진 고운 비단 치마를 겹쳐 입었다. 모두 울금향(鬱金香)을 뿌리고 용뇌향(龍腦香)으로 향기를 내었으니, 빼어난 미모는 자리를 비추고 기이한 향기가 집안에 가득하였다.

경룡은 옥단의 아리따운 얼굴과 화려한 치장을 보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하여 저도 모르게 더욱 놀라고 당황하여 허둥지둥하였다.

술이 얼큰해지자 경룡이 술 한 잔을 특별히 들어 조운과 옥단에게 들기를 청하며 말했다.

멀리서 온 나그네가 이처럼 좋은 잔치를 만나 경액(瓊液)에 취하고 신선의 음악을 듣게 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소? 평생의 큰 행운이라 할 수 있겠으나 아쉬운 것은 두 낭자의 아름다운 시와 운장(雲章)이 빠진 것입니다.”

조운이 자리를 옮겨 앉아서 천악(天樂) 한 곡을 지으며 술을 권하였다.

()는 이렇다.

 

화양동(華陽洞) 안에 짝 잃은 동자 신선,

남국으로 귀향 온 지 몇 해이런가.

붉은 누각의 옥 같은 모습,

푸른 창의 꽃 같은 얼굴이,

바삐 공자와 좋은 인연을 맺으니,

즐기지 않고 어찌 보기만 하리.

향기로운 요리와 진기한 술에,

격조 높은 음악을 곁들였네.

밤은 늦고 봄날은 따뜻하니,

높은 누각에서 취하여 잠드누나.

높은 누각에서 처음 여는 화려한 잔치,

두어 동이 술, 노래, , 음악이 질탕하게 이어지네.

멋스럽고 풍치가 있는 공자(公子),

얌전하고 정숙한 고운 여인은,

백로(白鷺) 곁의 붉은 연꽃과 흡사하구나.

오늘 밤이 어인 밤인가,

불꽃 새긴 은촉(銀燭)에 등화(燈火)를 채촉하고,

금 장식한 화로엔 연기가 사라지네.

봄꿈에 취하려고,

옥비녀와 금빛 모자가 베개 가에 어지럽네요.

 

경룡이 곧 화답하였다.

 

예전에 요급(瑤笈)을 펴서 신선을 배워,

금단(金檀) 다린 지 몇 십 년이 되었네.

동정(洞庭)의 난향(蘭香)과 종릉(鍾陵)의 채란(彩鸞),

달 속에 인연 있음을 어이 알았으리.

오늘 밤은 어떤 밤이기에 서로 만나,

백옥소(白玉簫)를 불고

녹기금(綠綺琴)을 타네.

얼큰한 술 다시 다하고 한 베개에 누우면,

의당 남교(藍橋)를 향해 잠들리라.

한번 호화로운 궁전의 아름다운 잔치에 올라,

가인(佳人)과 미인(美人)을 보네.

난초와 혜초가 서로 어울렸으니,

타고 난 자태 아리땁구나,

선녀의 태도가 완연하니,

아마도 붉은 연꽃이 흰 연꽃에 비치나 보네.

노랫말은 아름답고 곡조는 맑아,

붉은 구슬 바다에 달같이 밝고,

구슬은 남전(藍田) 안개에 윤택하네.

아마도 이 몸이 신선 되어 날아올라,

곧바로 봉래산(蓬萊山) 자락에 이르렀나봐.”

 

노래가 끝나자 옥단에게 이어 화답하게 하니, 옥단은 잠깐 교태를 짓다간 잠깐 부끄러워하면서 얼굴을 숙이고 응하지 않았다. 그 어머니와 조운이 힘을 합쳐 다투어 권하였으나 옥단은 잘하지 못한다고 사양하였다.

조운이 옥단의 소매를 잡고 웃으면서 간절히 권하며 말했다.

경성지모(傾城之貌)를 팔았는데 사람을 놀라게 하는 노래에는 왜 인색하니? 속히 새로운 노래를 지어 아름다운 손님을 즐겁게 해주렴.”

옥단이 억지로 명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옮겨 옷깃을 여미고서 모우곡(暮雨曲) 한 곡조를 지어 노래하니,

그 사는 이렇다.

 

강에는 매화가 있고,

산에는 대나무가 있으니,

맑은 격조 어찌 보통 꽃과 같으리.

봄엔 피지 않고,

가을엔 떨어지지 않아,

곧은 자태 거짓으로 거친 이끼에 의탁했네.

성긴 가지는 서리 내린 뒤에 푸르고,

차가운 잎은 눈 속에서 향기로워라.

꽃을 찾는 나그네에게 말하노니,

부디 화류장(花柳場)엘랑 비기지 마오.

 

노래 소리가 매우 맑고 심원하며, 곡조 또한 애처롭고 은근하였다. 게다가 노래 속에는 은미한 뜻이 많았다.

경룡은 혹 옥단과 더불어 합환(合歡)하기 어려울까 마음속으로 의심스럽고 걱정되어 마침내 노래에 화답하여 옥단의 뜻을 보기로 하였다.

그 사는 이렇다.

 

아침에는 꽃을 찾고,

저녁에는 봄을 찾아,

온 성의 꽃들을 모두 헤쳐 보았다네.

동쪽에서 대나무를 묻고,

서쪽에서 매화를 물으며,

온 산의 이끼를 온통 밟아 지났다오.

기원(淇園)에서 신선의 격조 감상하고,

유령(庾嶺)에서 국향(國香)을 맡았어라.

이미 두루 알게 되었으니,

한 마당에 옮겨심기를 바라노라.

 

옥단은 그 노래를 다 듣고 나서야 비로소 청아(靑峨)를 열고 가만히 눈길을 보내었다.

때는 한밤중이 되어 즐거운 놀이도 끝나니, 그 집에서는 옥단으로 하여금 경룡을 모시고 자게 하였다. 경룡이 잠자리에 들어 희롱하려 하자 옥단은 완강하게 거절하면서 말했다.

제가 명을 어기는 것은 뜻이 있어서이지요. 만약에 강제로 희롱한다면 죽음이 있을 따름입니다.”

경룡이 의심하여 그 까닭을 묻자 옥단은 크게 한숨을 쉬면서 대답하였다.

저는 본래 양가집 자식으로 어려서 부모를 잃었고 의탁할 만한 친척도 없어서 작은 여종 하나를 데리고 이웃집으로 구걸하러 다녔지요. 이 집의 창모(娼母)가 나의 재주와 얼굴을 살펴보고 딸로 데려다가 길렀으니, 바로 오늘의 몸값을 취하는 이익을 위해서였기 때문에 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에요. 그러나 늘 여분(汝墳)의 정조를 흠모하였고, 하간(河間)의 음란한 행실을 미워해 왔어요. 이제 만약 공자를 한번 사랑하면 맹세코 다시는 다른 사람을 섬기지 않을 터인데 공자께서 저를 노류장화(路柳墻花)로 여겨 한번 꺾고 난 뒤 영영 버릴까 걱정됩니다. 이런 까닭에 감히 명을 따르지 못하는 것이지요. 아까 술자리의 말에서 저의 천한 뜻을 은근히 의탁하였으니, 공자께서는 이미 이해하셨을 것이에요. 공자를 보니 풍채가 매우 빼어나고 재주는 맑고 높으니 건즐(巾櫛)을 받들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첩의 마음속에 품은 것이 이와 같으니 공자께서는 그것을 생각해 주세요.”

경룡은 놀라 기뻐하며 일어나 절을 하면서 말했다.

지당한 말씀을 들으니 기쁘고 위안되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습니다. 만약 타고난 성품이 곧고 정숙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겠소? 내가 비록 초삼(醮三)의 예는 없을지라도 낭자가 한 지아비만을 따르는 의리를 지키지 못 하게야 하겠소? 내 낭자와 더불어 끝까지 해로할 것을 맹세하오.”

옥단이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만약에 이와 같을 수만 있다면 주신 은혜가 얕지 않을 것입니다.”

경룡이 마침내 옥단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으니 그 즐거워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경룡은 이러한 일이 있고 난 후, 사랑의 정에 빠져 떠나고자 하나 떠나지 못하고, 환락만 탐하고 즐거움만을 취하여 낮도 없고 밤도 없었다.

늙은 하인이 틈을 타 말하였다.

도련님께서는 제가 전에 도련님께 경계했던 말을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경룡은 사실대로 말하였다.

새로운 정이 아직 흡족하지 못하니 끊어버리고 가기 어려우니 할아범은 우선 기다려요.”

늙은 하인은 다른 날 간절히 간하여 말했다.

지난번 은자를 줄 때에 제가 말리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낭군께서 마음을 기울이고 뜻을 쏟는 것을 보고는 간할 수 없음을 알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다만 도련님께서 스스로 깨닫기를 바랐는데, 한 번이 어찌 이토록 오래 머물러 이런 지경까지 이른단 말입니까?”

경룡은 불쾌해 하면서 말했다.

내 나이가 열 다섯[志學]을 넘었으나 아직 아내가 없소. 이 여자는 비록 창기이기는 하나 일찍이 다른 사람에게 시집 간 적이 없으며, 난초 같은 마음과 혜초(蕙草) 같은 바탕은 군자의 배필이 될 만해요. 더구나 함께 해로하기를 원하여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기로 맹세까지 하였소. 설령 좋은 중매쟁이를 시켜 처를 구하더라도 어떻게 이 같은 사람을 얻을 수 있겠소!”

늙은 하인이 말했다.

도련님 일은 결단이 났으니, 이제 하직하고 가겠습니다.”

경룡은 갑자기 화를 내며,

저 늙은이! 저 늙은이! 왜 빨리 돌아가지 않는 거야?”

하고는, 사람을 시켜 곧 쫓아내도록 하였다.

늙은 하인은 문을 나서며 탄식하였다.

나와 도련님이 함께 각로 나리의 간곡한 명을 받고 은자 수만 냥을 거두어 돌아가다가, 뜻밖에 중도에서 요사한 여우를 받들어 갑자기 이런 망극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구나. 은자는 아까울 게 없으나 저 사람이 옳지 못한 일에 빠진 것이 애석하다.”

마침내 길을 떠났다.

걸음이 절강에 못 미쳐 마침 같은 마을에 사는 상인을 만나자 울면서 말하였다.

자네가 돌아가거든 우리 각로께 알려주게. 내가 못나 도련님을 모시고 뒤에 떨어졌으나 바른 도리로 이끌어 깨우쳐드리지 못하고, 끝내 도련님으로 하여금 요물(妖物)에 미혹되어 중도에서 돌아올 것을 잊게 하였네. 이제 은자도 잃어버리고 또 도련님도 잃어 버렸으니 내 죄는 죽어도 남음이 있을 것이네. 장차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 각로 나리를 뵙겠는가?”

마침내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찔렀다.

상인이 구하려고 했으나 하인은 이미 죽어 버렸다.

상인은 돌아가 각로를 뵙고 그 사유를 갖추어 아뢰었다. 각로는 분하고 원통함이 그치지 않아 끝까지 찾으려고 하였으나, 단지 경룡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였기에 화를 내며 꾸짖을 따름이었다.

 

각설(却說)하고, 경룡은 하인을 쫓아 보낸 후, 늙어 죽을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창루의 번잡하고 시끄러운 것이 싫고 유객(遊客)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꺼려서, 많은 은자를 들여 따로 서루(書樓)를 지으려 했다.

옥단이 하루는 그가 혼자 있는 틈을 타서 말하였다.

저는 창가(娼家)의 천한 신분으로 군자께서 버리지 않고 한 집을 지어 첩의 안식처로 삼으려 하시니 무엇 보다 큰 은혜이니, 감격스러움이 깊습니다. 제가 낭군과 함께 부부가 되기로 맹세하였으니, 그대와 함께 즐겁게 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공자께서 첩 때문에 부모님께 죄를 짓고 사림(士林)에게 허물을 끼치게 된 점을 어찌하겠는지요? 모름지기 장부의 큰 뜻을 펼치시고 아녀자의 깊은 정에 기울지 마세요. 첩도 역시 낭군을 따라 몰래 가고자 하나 일이 누설될까 두렵고, 그리고 우리 집의 주모도 당신에게 책망을 할 것입니다.

설령 공자의 집안에는 법도가 있어 예절과 몸가짐이 엄숙하니, 대인께서 천한 첩을 보시고 어찌 눌러 살게 할 만하다고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첩과 함께 오래 머무르시면 또한 일을 그르칠 것이며, 공자의 대인께서는 첩에게 많은 노여움을 두실까 걱정됩니다.

다만 근심이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창모는 욕심이 많아 이익이 다하면 정도 멀어질 것입니다. 주모가 공자를 대하는 것도 어찌 처음과 같을 것이라고 보장하겠습니까?

공자를 위한 계책을 내자면, 아직 다 쓰지 않은 재물을 갈무리하여 그 반쯤 헤맨 잘못을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뵙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부지런히 학업을 닦아, 속히 나아가 소년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일찌감치 요직에 올라 임금을 섬기면 공자에게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의 명예가 있을 것이요, 첩도 단원(團圓)의 약속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께서 떠난 뒤에 저는 마땅히 그대를 위해 죽음으로 절개를 지켜 훗날의 기약을 기다릴 것입니다. 첩의 어리석은 계책은 이와 같은데, 높고 밝게 헤아려 보시니 어떻습니까?”

경룡도 역시 그의 높은 견해에 감복하여 절하고 또 감사를 표하였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해 보니 데리고 가자한들 어려운 일이 많아 옥단이 말한 것과 같을 것이요, 버리고 가자니 다른 사람이 옥단의 뜻을 빼앗아 옥단이 죽을까 걱정되어 마침내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 공사를 끝내 높은 누각을 크게 짓고 옥단과 함께 살았다. 누각이 집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북루(北樓)라고 불렀다.

누각이 세워진 뒤로 창모는 경룡이 오래 머물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꿰뚫어보고는 쫓아내려는 꾀를 내었다. 그리하여 물건을 대 주는 핑계로 날마다 금은을 요구하였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한 것이 5, 6년이 지나자 경룡의 돈주머니는 바닥이 나서 어느 물건이고 댈 수가 없어, 급기야 그 집에서 밥을 얻어먹게 되었다.

창모가 하루는 옥단에게 속삭여 말하였다.

왕 공자의 재산은 이미 다하였기에 더 이로울 것이 더 없다. 네가 잠시 피해 있으면 왕 공자는 반드시 떠날 것이다. 어찌 네가 가난한 사내만을 지키면서 빈 것을 지고는 높은 가치를 두느냐?”

옥단이 말했다.

왕 공자는 저 때문에 겨우 몇 해를 살면서 이미 만금을 바쳤어요. 재물이 바닥나자 버리고 배반하는 것은 인정상 차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찌 감히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창모가 옥단을 피신시킬 수 없음을 알고 먼저 경룡을 없앨 방도를 생각하고는 마침내 조운(朝雲)과 함께 모의하여 말했다.

옥단을 데려다 기른 것은 다만 한 번 합환(合歡)하는 값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다. 값으로 치자면 천금도 많지 않음을 걱정해야 하는데, 지금 어찌 옥단을 한갓 왕가의 물건이 되게 할 수 있겠느냐?”

서로 계교를 꾸미고 옥단과 경룡을 속여 말했다.

아무 날, 서관(西館)에서 지내는 아무개가 상복을 벗게 되니, 우리 집 늙은이와 젊은이들도 전례대로 당연히 가봐야 되고 옥단도 가지 않을 수 없소.”

경룡이 어렵게 여기자, 창모가 말했다.

공자가 만약 그 아이만 보내기가 어렵다면 함께 갈 수 있겠소?”

경룡은 기뻐하면서 허락하였다.

다음 날, 온 집안사람들이 길을 떠나 수 십 리쯤 가서 노림(蘆林)의 입구에 닿았다.

창모가 거짓 놀라는 체하며 말했다.

내가 떠나 올 때에 길 떠날 채비를 바쁘게 하여 재물을 저장한 방에 자물쇠 잠그는 것을 잊어버렸으니 다소의 재물을 누가 도둑맞지 않게 지켜 주나.”

그리고는 경룡에게 청하여 말했다.

내가 돌아가 자물쇠를 잠그고 다시 오고 싶으나, 늙은 몸의 근력(筋力)으로는 감히 달려갈 수가 없으니, 공자께서 수고를 좀 해 주시지 않겠소?”

경룡이 그 말을 의심하지 않은 채 마침내 가겠다고 하니, 창모는 쇠 자물쇠를 주면서 말했다.

속히 가서 자물쇠를 잠그고 돌아오세요. 우리는 여기에 머무르면서 기다리겠소.”

경룡은 마침내 홀로 말을 타고 채찍질을 하며 되돌아 달려갔다.

몇 리쯤이나 갔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을 때, 창모는 옥단을 윽박질러 다른 길을 잡아 도망쳐버렸다.

옥단이 울면서 그 창모에게 말하였다.

만약 왕 공자를 쫓아 보내고자 했다면, 마땅히 스스로 떠나가도록 해야지 이곳에 와서 속이는 것은 매우 어질지 못한 일입니다

마침내 수레에서 스스로 떨어지자 하인들이 겨드랑이를 껴안아서 구해 내니, 옥단은 또 정신을 잃을 정도로 슬프게 통곡하면서 말했다.

평소 듣기로 노림은 도적들의 소굴이라고 하던데, 왕 공자가 저녁 무렵에 돌아오면 반드시 호랑이 입에 던져지게 될 것이야. 내가 비록 왕랑(王郞)을 죽이지는 않았으나 왕랑은 꼭 나 때문에 죽게 되는군요.”

하인들도 몹시 슬퍼하는 말을 듣고는 또한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렸다.

경룡이 그 집에 도착하여 집을 보니, 집은 단지 네 벽만 있을 뿐 물건은 보이지도 않고, 또 집을 지키는 하인들도 없었다.

밖으로 나와 이웃 사람들에게 물었다.

온 집안의 여기 저기 물건들이 싹 쓸은 듯이 남아 있는 것이 없으니, 비록 집안 하인들이 한 짓이라지만 이웃 사람들이 그걸 어찌 알지들 못했습니까?”

이웃 사람들이 서로 눈짓하여 비웃으면서 말했다.

어리석소! 공자는 당당한 장부로서, 아녀자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이 이와 같단 말이오? 저들은 먼저 재보(財寶)를 다른 곳으로 몰래 옮긴 다음 뒤따라서 갔고, 또 공자를 중도에 헛되이 되돌려 보내어 그 발자취를 찾을 수 없게 하였으니, 그 계략에 속은 것이오. 공자는 어찌 깨닫지 못 하오?”

경룡은 너무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다만

어느 곳으로 재보를 몰래 옮겼지요?”

하고 물을 뿐이었다.

이웃 사람이 말했다.

저들이 몰래 숨어버렸는데 어찌 그 곳을 일러 주었겠소?”

경룡이 분을 누를 수 없어, 다만 옥단을 뒤쫓아 잡아서 따져 물으려 하였다.

즉시 노림으로 달려 돌아왔지만 옥단 일행의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갈랫길에서 서성이다가 날은 저물어 어두워지고, 사방에 인가의 불빛은 없는데 갈대숲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경룡은 옥단이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침내 노림으로 들어가 앞으로 나아갔다.

노림은 사람이 살지 않는 강가에 있으며, 주위가 수십 리이고 마을과는 뚝 떨어져 있어서, 도적들이 모여 밝은 대낮이 아닌 때에 지나는 사람은 약탈과 살육을 당하기 예사였다. 하물며 창모는 먼저 도적과 만나 경룡의 옷과 말을 빼앗고 반드시 그를 죽이라고 약속까지 하였음에랴?

경룡이 노림에 이르러 절반도 채 지나지 못했는데 과연 도적의 무리가 있어, 경룡을 붙잡아 그 안장과 말을 뺏고 상의와 바지를 벗기고 죽이려고 하였다. 경룡이 두 손을 싹싹 빌며 슬프게 호소하여 한 목숨 살려줄 것을 애걸하니, 도적 가운데 한 사람이 애처롭게 여겨 구해 주었다. 다만 그 손과 발을 묶고 벗긴 옷으로 입을 틀어막아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고는 노림 가운데 던져두고 가버렸다.

다음날 아침, 마침 어떤 노인이 지나가다가 잠깐 풀숲에서 컥컥거리는 숨소리를 듣고 숲으로 들어와 그의 묶인 것을 풀어주고 입을 틀어막은 것을 떼어 내자 한참 만에 살아났다.

노인이 그 까닭을 묻자, 경룡이 일의 전말을 갖추어 말해 주니, 노인이 말했다.

허어! 공이 스스로 불러들인 화인데 누구를 탓하겠소? 인생이 이 지경까지 이르다니 불쌍하구료.”

곧 해진 옷을 벗어 입혀 주면서 말했다.

이곳은 흉년이 들어 입에 풀칠하기가 매우 어렵소. 앞으로 수십 리쯤 가면 마을이 있는데 구걸하는 무리들이 경점(更點)을 쳐서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을 얻어먹고 있소. 당신도 그곳에 가면 어쩌면 살 수가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죽을게요.”

경룡이 고생고생하면서 겨우 걸어 그 마을에 당도하니, 걸인들이 큰 소리로 말했다.

너는 뒤에 들어왔으니 편안하게 끼일 수는 없다. 반드시 삼경(三更)을 혼자 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참가할 것을 허락하겠다.”

경룡이 그날 밤에 피곤에 지쳐 깊이 잠드는 바람에 경점(更點)을 잘못 치자, 걸인들은 맡긴 일을 게을리 하였다 하여 여럿이 쳐서 내쫓아버렸다.

경룡은 굶주림에 울며 기다시피 하며 가는 곳마다 먹을 것을 구걸하면서 양주(楊州)로 굴러 들어가 저자에서 구걸을 하며 구차스럽게 목숨을 유지하여 세월을 보내었다.

마침 그 해 섣달 그믐날 관아에서 나례(儺禮)를 행하였다.

경룡은 사람들에게 품을 팔며 맹인 배우의 종이 되어 한창 뜰에서 연희를 하였다.

당상(堂上)의 한 관원이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목을 늘이고 자세하게 들여다보며 물었다.

너는 어느 지방 사람이며, 너의 이름은 무엇이라고 하느냐?”

경룡이 괴이하게 여기면서 이름과 성과 지방을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그 관원은 놀라며 일어나서 뜰로 내려와 손을 잡고 경룡에게 말했다.

도련님께서 무슨 연유로 천대받고 욕을 당함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셨는지 모르겠군요?”

울면서 그 연유를 묻고는 자기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 의식을 함께 나누며 돌봐 주는 정이 매우 지극하였다.

관원은 바로 옛날 왕각로의 서리(胥吏)였다. 성은 한()씨요, 이름은 안()이었는데, 지금은 조운 낭중(漕運郎中)으로 뽑혀 이 관아에 와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경룡이 한안(韓鶠)의 집에서 여러 달을 머무르자, 한안의 아내와 아들이 한안에게 여러 차례 하소연하여 말했다.

당신께서 옛 은혜를 잊지 않고 왕랑을 대접하는 것은 후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와 같은 흉년에 살림은 가난하고 녹봉이 적어 처자식도 오히려 춥고 굶주려서 내 몸도 돌볼 겨를이 없는데 더구나 다른 사람을 구휼할 수 있겠습니까?”

싫어하는 말이 꽤나 자주 귀에 들리니, 경룡은 이에 한안에게 작별하면서 말하였다.

부모를 떠난 지 여러 해가 되었기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날로 간절하군요. 설령 전전하면서 구걸을 하더라도 역시 절강으로 돌아가 부모를 뵙고자 합니다.”

한안 또한 만류하지 않고 약간의 노자를 주었다.

경룡이 마침내 길을 떠나 먼저 관왕묘(關王廟)로 가서 길흉(吉凶)을 점치려고 가다, 길에서 한 할미를 만나게 되었는데, 곧 지난날 누각 아래에서 표주박을 팔던 할미였다.

할미는 놀라 울며 말했다.

왕 공자는 귀신이요? 사람이요? 나는 죽었을 것이라고만 생각하였지 살아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어떤 연고로 이곳에 오시게 되시었소? 나는 그대에게 받은 은혜가 많았기에 매일 생각이 미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지요. 어찌 오늘 아침에 이곳에서 서로 만나게 될 줄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괴이하다! 괴이해! 옥단 일가는 거짓으로 서관(西館)에 간 후, 다른 객점에서 여러 달을 머물다가, 곧 집으로 돌아와서 예전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다만 옥단은 애초부터 그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원통함을 호소하면서 슬피 울면서, 공자께서는 반드시 죽었을 것이나 훼절(毁節)하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항상 북루에 살면서 땅을 밟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만약 공자께서 이곳에 계시다는 소식을 들으면 반드시 천리를 멀다 않고 달려올 것입니다.”

경룡은

아아!”

하며, 자세하게 노림에서 욕을 보던 일과 춥고 굶주리면서 떠돈 고초를 말하였다.

할미가 말했다.

저는 술을 팔기 위해 배를 타고 이곳에 왔는데 지금 배를 돌려 갔다가 머잖아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공자께서 미리 노정을 요량하여 잠시 머무시면, 꼭 소식을 가지고 옥단에게 갔다가 돌아오겠습니다.”

또 은자 몇 냥을 경룡에게 주면서 말했다.

공자께서는 이 돈으로 우선 머무시면서 기다리는 동안의 비용으로 쓰십시오.”

경룡이 말했다.

나도 노자를 지니고 있어 몇 개월은 버틸 수 있습니다.”

사양하면서 받지 않고, 다만 종이와 붓을 찾아 잠깐 동안 옥단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는 이렇다.

 

노림에서 살아남은 몸이 떠돌면서 양주(楊州)에 이르기까지 슬피 울며 걸식하여 아직껏 모진 목숨을 보전하며, 늘 낭자의 박정함이 매우 심함을 원망하였습니다. 뜻밖에도 이웃 사람을 길에서 만나, ‘낭자가 북루에 살면서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팔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렇습니까?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하다면 나를 죽인 사람은 낭자가 아님을 알겠습니다. 서로 천 리 밖에서 바라보면서 돌아갈 길이 없으매, 스스로 생각을 해보니 한평생 동안 어느 날에야 다시 만날는지요? 돌아가는 배가 떠나려고 하여 편지를 부치기도 너무 바쁘니, 눈물이 벼루와 먹을 적시고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봉합니다. 가슴에 가득한 깊은 슬픔을 말한들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 달 아무 날, 경룡 배.

 

쓰기를 마친 후 할미에게 부쳤다.

할미는 그 편지를 받고 경룡과 서로 헤어져, 마침내 배를 타고 서주(徐州)로 돌아갔다. 그리고 몰래 옥단을 만나서 왕랑의 일을 모두 이야기하며 그 편지를 전하고 아울러 다시 가겠다는 뜻을 말하였다.

 

각설하고, 옥단은 한 번 노림으로부터 나뉘어 흩어진 뒤로 애닯게 부르고 서럽게 울면서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켰다.

집에 돌아온 날로 곧 북루에 올라 늘 왕랑이 잠자고 식사하던 곳임을 생각하고 왕랑이 입고 쓰던 물건을 어루만지면서 곧 스스로 통곡하니,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절절하였다. 한 번도 누각을 내려가지 않으며 참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화장과 빗질을 모두 그만두니 얼굴이 고요하면서도 쓸쓸하게 되었다.

이웃 사람들이 찾아와 보고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고, 그곳을 찾는 건달들도 감히 묻지 못했다.

이럴 즈음에 옥단이 왕랑의 수찰(手札)을 받고 왕랑이 죽지 않았음을 알게 되자, 서러움을 이길 수가 없어 머리를 감싸고는 오열하면서 할미에게 사례하여 말하였다.

할미가 편지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늘 위의 기이한 일을 땅에 사는 사람에게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내일 저녁에 마땅히 시비를 시켜 편지를 전할 것이니, 할미는 돌아가 왕 공자에게 전해 주세요. 혹시라도 할미로 인연하여 왕 공자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면 모두 할미가 주신 은혜이니, 갚을 수만 있다면 장차 뼈가 가루가 되도록 하지 않을 수 없군요.”

또 말하였다.

몰래 서로 출입하면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까 두려우니 할미는 다시 오지 마세요.”

이때 마침 창모가 사람이 와 있는 것을 알고 북루로 와 창 밖에서 몰래 엿보았다.

옥단이 알아채고 이에 할미에게 눈짓을 하면서 거짓으로 꾸짖어 말했다.

할미가 처음에 왕 공자를 나에게 중매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왕랑은 노림에서 속임을 당하여 이미 까마귀와 솔개의 뱃속에 장사지내었소. 나는 스스로 절개를 지킬 것을 깊이 맹세하여 죽음으로 기약하였으니 할미도 마땅히 불쌍히 여기고 슬퍼해야 할 것이오. 그런데 다시 교묘한 말로 어느 사내에게 중매하려고 합니까? 어찌 할미의 어질지 못함이 이 지경에까지 이를 줄 알았겠습니까?”

할미도 역시 거짓으로 대답하였다.

나는 낭자가 청춘으로 헛되이 늙어 가는 것을 가련하게 여겨, 화장하고 빗질하여 새 기쁨을 보게 하려 했을 뿐인데, 왜 아가씨는 나를 심하게 꾸짖는 거요?”

창모가 말을 듣고 창문을 밀치고 들어와 말하였다.

할미의 말이 옳다. 너는 어찌 생각도 않고 도리어 사람을 꾸짖기만 하느냐?”

하면서, 그 말에 꼬리를 달아 반복하여 설득시키려 했다.

옥단이 대답을 하지 않고 쓰러져 누워버리자, 잠시 후 창모와 이웃집 할미가 모두 누각을 내려가 가버렸다.

다음날 정오에 옥단이 홀연히 누각을 내려와 그 어미에게 말하였다.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고 베개 맡에서 생각해 보니 어제 한 말이 매우 이치에 맞는 것 같네요. 제가 본래 창가(娼家)에서 길러졌으니 어찌 정조를 생각하겠습니까? 장대(章臺)에 있는 버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꺾는 것이 제 분수요, 현도(玄都)에 핀 꽃이 수많은 말들에 의해 오솔길이 이루어지는 것을 어찌 싫어하겠습니까? 화려한 안장의 준마는 오직 부르는 곳으로 달려가고, 비단 이불과 구슬 자리는 그들이 끌어당기는 것을 따라서 머무는 것입니다. 비록 한 번 웃음으로 천금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역시 오릉(五陵)에서 비단을 내기할 만합니다. 한편으로는 내 몸을 영화롭게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집안을 부유하게 하면 이는 바로 부모님이 기뻐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난번에는 왕도령을 만나 여러 해 동안 정을 두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헤어져 떨어지자니, 마음이 자못 사나워 혹시라도 살아 돌아와 예전의 기쁨이 이어지기를 바랬습니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 세월도 변하고 소식도 영영 끊어졌으니, 왕랑이 죽은 것이 확실합니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아름다운 얼굴을 오래 간직할 수 없으니, 뒷날에 백발이 되면 후회가 막급할 것입니다. 설령 왕랑이 다시 살아난다 해도 어찌 다시 저를 좋아하겠습니까? 아직 청춘이 저물지 않은 때를 좇아 홍루(紅樓)에서 비싼 값을 받겠습니다.”

창모가 크게 기뻐하면서, “네가 미혹에 빠졌다가 스스로 되돌아왔으니 우리 집안의 복이로다.”라고 말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옥단은 북루로 돌아와 몰래 편지를 쓰고, 몰래 감추어둔 은자 백 냥을 세어 시비를 시켜 칠흙 같은 밤을 틈타 이웃 할미에게 보내면서 말하였다.

할미께서 힘을 써서 이 만금을 전해 주세요. 지금 보내는 은자 중에서 그 반은 할미가 갖고 나머지 반은 왕랑에게 주세요.”

며칠 지나, 이웃 할미는 편지와 물건을 지니고 돌아갈 배를 사서, 양주에 도착했다.

경룡은 굶주림을 참으면서 강 머리에 머물러 기다린 지가 이미 반달이 넘었다.

할미가 편지와 물건을 전하자, 경룡은 옥단이 손수 쓴 글씨를 보더니 얼굴을 가리고 울고는 편지 봉투를 열었다.

그 편지는 이렇다.

 

남편을 배반한 옥단은 재배하고 아룁니다.

저는 애초 천한 신분으로 기루에서 공자를 그르치더니, 뒤에는 교묘한 계획으로 노림에서 공자를 속였습니다. 제가 비록 그 사이에 무정하였지만, 그 동안의 일은 실로 저의 어미가 도모한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누가 이 화를 일으킬 빌미를 제공한 것인가요? 한 번 죽어 거듭된 허물에 갚는 것이 마땅하지만, 다만 저의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음은 맑게 갠 날 해를 향해 물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공자께서 만에 하나라도 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쩌면 제가 뒷날에 사실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결하지 못하고 이제껏 구차하게 살아 온 것입니다.

이웃 할미가 이 편지를 전할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공자께서 노림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으셨으며 청루(靑樓)에서의 일을 후회하신다는 것을 알고 나니,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슬퍼서 오직 눈물만을 삼킵니다.

제게 옛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어리석지만 꾀가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아무 달 아무 날, 몰래 서주(徐州)에 도착해 관왕묘에 들어가 탁자 아래 엎드려 계시면서 제가 오기를 기다리십시오. 한 마디 말이 천리를 가는 법이라, 기틀이 샐까 두려우니 부디 비밀스럽고 비밀스럽게 하시어 일이 어긋나 잘못되지 않게 하세요.

공자의 처지가 딱하고 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우선 급한 데 쓰실 비용을 보내드립니다.

아무 날, 옥단 배.

 

경룡은 편지를 다 보고 나서 은을 팔아 행장을 꾸리고, 날짜를 헤아려 길에 올라 몰래 서주(徐州)에 도착하였다.

약속한 날짜가 되자 비밀히 관왕묘에 들어가 옥단이 한 말과 똑 같이 하였다.

 

각설하고, 옥단은 할미를 보낸 뒤로부터 화장을 하고 치장을 하며 평상시와 같이 이야기하고 웃기도 하며, 혹은 이웃 마을에 놀러 나가기도 하여 북루에는 거처하는 날이 드물었다. 같은 고을에 성이 조()씨인 큰 장사치가 있었다. 나이는 비록 늙었으나 일찍부터 옥단의 재주와 아름다운 용모를 사모하였다. 이제 옥단이 절개를 버렸다는 소문을 듣고 한번 합환(合歡)하고자 하여 천금을 창모에게 주었다.

창모가 돈을 받고서 옥단에게 권유하니, 옥단은 마침내 허락하고 그와 기약을 정하였다. 그러나 딱 반 달 뒤로 약속 날짜를 잡으니, 그 어미가 까닭을 물었다.

옥단이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내가 지난날에 왕 공자와 정이 깊어 함께 맹세를 하고 이를 신명에게 고했는데, 이제 맹약을 깨지 않은 채 다른 사람에게 간다면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게 됩니다. 관왕묘에 가서 길일을 점쳐 맹약을 깨고자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기일을 늦추었을 뿐입니다.”

어미도 그 말에 따랐다.

옥단이 드디어 목욕재계하고 관왕묘에 갈 때에 몰래 금은 수백 냥을 품고 갔다.

관왕묘 밖에 이르자 종자에게 말하였다.

내가 맹약을 깨는 말을 고할 때는 숨길 말이 많으므로 너희들에게 듣게 해서는 안 되겠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 같이 기다리면서 또 모름지기 사람을 오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는 곧 사당에 들어가 관왕(關王)에게 절을 하고 탁자로 다가가면서 왕 공자를 불렀다. 경룡이 탁자 아래에서 나오니 옥단은 벌써 탁자 앞에 와 있었다. 오래 떨어져 있어 서로 소식이 끊어져 품었던 한을 억제할 수가 없어 자신도 모르게 부여안고 통곡을 하는데, 옥단이 다급히 말리면서 말하였다.

만약 나를 따라온 사람들이 듣기라도 한다면, 오늘의 화는 노림에서 겪은 것보다 더 심할 것이니 조심, 조심하세요.”

그리고 옛날의 원통했던 일을 털어 놓았다.

당시 서관으로 갈 때에 저와 공자는 함께 간사한 꾀에 빠졌던 것이에요. 그러나 첩도 공자를 속인 것이 또한 있어요.”

경룡이 말했다.

무엇이지?”

옥단이 말했다.

노림으로 가기 며칠 전에 저의 어미가 나에게 잠시 피해 있도록 하고 공자를 쫓아내려 하였습니다. 저는 매우 완고하게 거절하였지만, 그 때에 공자께 알리지 않은 것은 공자의 마음이 번뇌에 빠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혼자 알고 있으면서 금석(金石) 같은 뜻을 굳게 하기만 하면 될 뿐이라고 여겼어요. 어찌 흉악한 꾀가 노림에서처럼 심한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공자께 알리지 않고 먼저 처리한 것이, 이것이 제가 공자를 속인 죄입니다. 만 번 죽은들 어찌 속죄를 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일은 이미 지나갔으니 말한들 이익이 없군요. 청하건대 기묘한 계책으로 앞길을 열어 나가려 합니다.”

즉시 금은을 주고는 서로 비밀히 계획하여 말했다.

이리이리 하세요.”

곧바로 경룡으로 하여금 도로 탁자 밑에 숨게 하고는 종자를 불러 관왕에게 나란히 절을 하고 동시에 밖으로 나와서 갔다.

경룡은 곧 이웃 고을의 시장으로 가서 금은을 팔아 비단 옷을 입고 준마를 탔다. 또 빈 가죽 상자 이백 개를 사서 모래와 돌로 채우고 황동 자물쇠로 잠가 금은보화가 들어 있는 것처럼 꾸몄다. 마부와 말 백 필을 세내어 싣고는 그들을 시켜 앞서 가게 하고 경룡은 뒤에 따라 서주의 경계로 들어갔다. 옥단의 집을 향하는데, 남쪽으로부터 북쪽으로 가니 마치 서울[京師]을 향해 가는 것처럼 하였다.

옥단의 집이 있는 거리에 도착하니, 이웃 사람들이 경룡을 보고는 모두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길을 둘러싸고 절을 하면서 말했다.

공자께서 한번 가시고는 소문이 뚝 끊어졌었는데, 오늘 어느 곳으로부터 오셨으며, 어떻게 아직도 수많은 재물을 누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경룡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들은 이백(李白)의 시를 듣지 못하였소? ‘하늘이 큰 재주를 낸 것은 꼭 쓸 데가 있어서이고, 흩어 쓴 천금도 다 다시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소. 오늘은 마침 북경(北京)에 정혼하러 가느라 방금 절강(浙江)으로부터 오는 길이오.”

많은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고 감탄하니, 창모 집의 종들도 서로 다투어 바라보고는, 집으로 달려가서 이를 알렸다.

옥단은 그 말을 듣고 거짓으로 놀라는 체하며 말했다.

아아! 왕 공자가 죽지 않았으니, 어찌 맹세를 깨트리고 다른 사람에게 다시 시집갈 수 있단 말인가?”

이내 북루로 달려가 스스로 목을 매니, 시비들이 창모를 불러 구원하여 그치게 하였다.

경룡은 옥단의 집을 지나면서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창모와 조운은 갖옷과 말과 재물의 성대함을 몰래 보고서, 서로 은밀히 의논하여 말했다.

옥단은 왕랑이 죽지 않은 것을 알고 맹세를 깨트린 것을 한하여 자결하려고까지 하였으니, 이 후로는 반드시 재가(再嫁)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이번 재물을 놓치면 다시는 이익 되는 바가 없을 것이야. 저이는 곧 속없는 공자라 따뜻한 말로 잘 녹여만 놓으면 반드시 옥단을 잊지 않고 돌아올 것이니, 이때 그 재물을 도모하는 것이 낫겠다.”

마침내 쫓아가 말고삐를 붙들고 말했다.

공자님! 공자님! 어찌도 이와 같이 무정하시오? 노림에서 한번 헤어진 후로 공자가 어디에 계신지 알지 못하여 날마다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끝내 소식이 없어 온 집안의 노소가 목 놓아 큰 소리로 울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늘 생각지도 않게 공자를 다시 보게 되었으나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오지 않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경룡이 고삐를 당기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참으로 무슨 말이냐? 처음에 내가 창가(娼家)에 미혹되어 재물을 다 없애고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들은 노림에서 나를 속여 꼭 없애 버리려고 하였지. 그러나 내 복이 다하지 않아서인지 하늘의 보살피심을 받아, 도적을 만났으나 죽지 않았어. 고향으로 돌아가 재산을 늘려 좋은 아내를 찾는데 마침 마땅한 자리가 있어서 고향으로부터 길을 잡아 나선 것이니 이것을 놓칠 수 없는 일이지. 아직도 네 집에서 불행을 겪었음을 한스럽게 생각하는데 어찌 자네 딸을 찾아가 다시 욕을 보라고 해?”

창모는 소리를 지르며 거짓으로 웃어 말하였다.

지난번 노림의 입구에서 방자(房子)가 자물쇠를 잠그지 않은 것을 깨닫고 공자께 청하니 가시어서, 우리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날이 이미 저물었습니다. 공자께서는 틀림없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고 그곳은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어 사방에 의지하여 묵을 곳이 없었어요. 마지못하여 하는 수 없이 노림을 버리고 가까운 객점으로 가서 투숙하고서는 다음 날 공자께서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어찌 공자께서 밤을 무릅쓰고 말을 달려 돌아와, 곧바로 노림으로 들어가서 도적의 수중에 떨어졌을 줄 알았겠습니까? 그 날 다음 날에도 공자를 기다렸는데 오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공자의 발꿈치를 찾아서 수색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몇 달을 배회하다가 어찌할 도리가 없어 비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에 있던 물건들은 텅 비어 남아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는 반드시 이웃 사람들과 집을 지키던 노비들이 한 짓이라고 여기면서도, 재물을 도둑맞은 것은 원망하지 않고 오직 공자님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만 걱정했답니다. 비록 어질지 못한 할미도 울부짖었으니, 하물며 옥단은 죽기를 맹세하고 절개를 지키면서 밤낮으로 소리 높여 울면서 북루에서 내려오지 않은 지가 2년이나 됩니다. 공자께서 만약 이웃에 물어 보시면 또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집안이 공자를 그리워한 것은 그야말로 간절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나 공자께서는 어찌 핑계하는 말씀이 이와 같으십니까? 만약 옥단과의 정과 인연이 이미 다해서 다시 돌아볼 것도 없다고 말을 하시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처럼 뜻밖의 말을 고대하던 사람에게 할 수 있습니까?”

경룡이 거짓으로 승낙하여 말했다.

어미의 말이 이와 같다면 당연히 옥단을 만나 다시 물어보겠네.”

이어 말을 돌려 그 집으로 향하였다.

창모와 조운은 스스로 계책이 성공했다고 여겼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경룡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경룡이 문 앞에 당도하니 창모가 맞이하여 대청에 오르게 하고 옥단을 불러 나와 보라고 하였으나, 옥단은 나오지 않으면서 말했다.

누가 왕 공자를 오라고 불렀습니까? 저 분이 비록 억지로 왔으나 어찌 노림에서의 원한을 잊었겠습니까? 만나지 않고 가시는 것만 못합니다.”

창모가 안으로 들어와서 몸소 밖으로 나오기를 권하니, 옥단이 말했다.

저 분은 각로의 아들로 창모(娼母)에게 잘못 떨어져, 겨우 몇 해를 살면서 만금을 모두 다 주어 버렸으니 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은혜를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도리어 사지(死地)에 빠뜨렸으나, 저 공자는 다행히 생명을 보전하고 다시 한 번 큰 부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가 비록 말은 하지 않으나 제가 어찌 무안스럽게 마주 대하겠습니까?”

창모가 말했다.

내가 둘러대는 말로 해명하자 저이도 역시 풀어졌기 때문에 여기서 만나게 된것이야. 너는 어찌 이처럼 지나치게 생각하니?”

옥단이 말했다.

사람이 목석이 아닐진댄 모두 이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어찌 노림에서 속임을 당하여 죽을 뻔하였는데도, 갑자기 이러한 원한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경룡도 옥단이 오래도록 나오지 않자 일어나 가려는 것처럼 하니, 창모는 옥단에게 더욱 간절히 권하였다.

옥단이 말했다.

어미가 나를 억지로 나가게 하려 한다면, 반드시 한 가지 계책을 써서 공자를 속인 후에 나갈 것입니다.”

창모가 말했다.

무엇이냐?”

옥단이 말했다.

마땅히 공자가 전 날에 싸 가지고 왔던 금은과 공자가 장만했던 진기한 물건과 기물(器物)들을 모두 갖다 앞에 늘어놓으세요. 그리고 또 큰 잔치를 베풀어 축수하면서 말하기를, ‘집안의 재물은 전에 이미 잃어버렸으나, 오직 공자가 주신 금은과 진기한 기물들은 마침 옥단이 북루 아래에 감추어 두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이니 다 공자의 복입니다. 집안이 망한 후에도 항상 이 물건들을 남겨 놓고 차마 팔지 않은 것은, 뒷날 공자께서 찾아오실 것을 기다린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공자를 기다린 정이 이 정도인데도 공자께서는 노림에서의 실상이 아닌 일로 의심을 하시다니요? 청컨대 이것들을 가지고 축수를 올리겠습니다.’라고 하면, 저 이도 반드시 감정을 풀고 도리어 재물을 내놓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옛날의 재물로써 새로운 재물을 낚는 좋은 미끼가 될 것입니다.”

창모가 아주 그럴싸하다고 여기고는 잔치를 차리고 늘어놓기를 한결같이 옥단의 말대로 하였다.

옥단이 이에 밖으로 나와 공자에게 절을 하였으나 얼굴을 돌리고 앉아 감히 마주 대하지를 않았다.

경룡이 그 까닭을 물으니, 옥단이 말하였다.

공자께서는 노림 일이 실상이 아닌 줄 알지 못하고 내가 속였다고 의심하시어 문 앞을 지나면서도 돌아보지 않았는데, 제가 무슨 면목으로 공자를 대하겠습니까?”

경룡은 술잔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 화를 당했을 때에는 의심과 원한이 없지 않았으나, 오늘 주모(主母)의 정성이 매우 지극함을 보니 어찌 묵은 원한이 모두 없어지지 않겠소?.”

곧 창모와 조운에게 축수를 드리고 권하는 것이 아주 간절하였다.

창모 모녀는 그 꾀임에 빠진 것을 기뻐하면서, 마침내 저녁이 다 가도록 잔치에 참석하여 마음껏 즐기고서야 파하였다.

옥단은 이보다 먼저 몰래 시비를 시켜 경룡에게 술을 따를 때에는 물을 섞어 올렸다. 게다가 경룡의 주량은 헤아릴 수 없었기에 끝내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창모와 조운은 마음놓고 술에 취해 부축을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경룡과 옥단이 그 재보(財寶) 기완(器玩)들을 모두 거두어서 북루로 돌아가서 잠자리에 드니 기쁜 정과 막혔던 감회가 하루 밤으로는 다 풀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잠들지 못하고 황홀하여 꿈을 꾸는 것과 같았다.

경룡이 마침 병풍에 있는 옥단이 지은 절구 한 수를 보았는데, 이렇다.

북루의 봄 날이 또 황혼인데,

붉은 수건 다 젖도록 눈물 자국 훔치네.

고개 돌리니 노림엔 까막까치만 자주우니,

어느 곳에 가 혼을 부를 지 알 수 없구나.

 

경룡은 시의 말 뜻이 애처롭고 한스러운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곧 붓을 뽑아 화답하는 시를 지어 병풍에 썼다.

 

옛 손이 당()에 오르니 날은 이미 황혼인데,

등불 밝히고 마주 앉아 눈물 흔적 훔치네.

노림의 비바람은 지금은 어떠한지?

못 돌아온 혼 거기 남아 있어 서글프구나.

 

때는 한밤중이 돼서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은 없었다.

옥단이 크게 한숨을 쉬면서 경룡에게 말하였다.

공자는 재상 집안의 천금같은 자식으로서 선대의 가업을 잇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한번 창루의 여자를 만나 빠져서 돌아가지 못 하고 여러 해를 머무르면서 만금을 다 소비하셨어요. 끝내는 한없이 귀중하신 몸으로 예측할 수 없는 화에 떨어졌으니 비록 죽지는 않았다.’고 하나 그 재앙은 몹시 참혹합니다. 그러니 이 은밀한 기회를 틈타 저 재물을 거두어 집으로 돌아가면 부모님의 노여움도 거의 풀어질 것이에요. 그리고 종내는 경박한 행동을 했다는 이름도 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어 부축해 일으키니 눈물을 흘리며 마주 보고는 이윽고 슬픈 노래를 지어 이별을 하였다. 그 곡조는 만정방(滿庭芳)이었는데, ()는 이렇다.

 

깊은 정을 채 펴지도 못했는데,

맑은 밤은 벌써 밝아 오니,

이 생애에서 어느 날 다시 즐기나.

노림에서 액을 면한 것이 엊그제이니,

어찌 좋은 기회를 잃을 수 있으랴.

아아, 낭군께서 한번 떠나가시고 나면,

거울을 대하여도 외로운 난새 되리라.

좋이 집으로 돌아가, 황권(黃券)에 오로지 마음을 두시고,

삼가 제 얼굴일 생각 마세요.

 

경룡이 곧 화답하였다.

 

천리 길을 살아 돌아왔건만,

한밤중에 이별을 해야 하니,

슬프고 기쁜 마음이 어지럽네.

곧바로 말안장 얹고 떠나려 하니,

흰 구름이 초()나라 관()에 희미하구나.

헛되이 한 쌍 옥퉁소를 불고,

진대(秦臺)를 바라보니,

어느 제나 난()새 탈까?

그대의 옷깃 잡고,

차마 놓지 못하니,

장사(壯士)의 붉은 얼굴 야위어지네.

비록 금석 같은 약속을 하였으나,

다시 만날 길 없으니,

어느 날에 다시 돌아올거나?

아마도 석장(石腸)이 재로 되고,

옥아(玉兒)가 배를 타고 가니.

세월은 빨라서 어디쯤 흐르는가?

슬퍼서 마주보고 난간에 기대어 슬피 우네.

혹시 죽지 않아,

옛 인연을 다시 이으려면,

바닷물을 돌리고 산도 옮겨야 하리.

 

이윽고 이웃집의 닭이 울고 푸른 등불 빛이 희미해지자, 옥단은 급히 시비를 시켜 공자를 따라다니는 사람을 몰래 불러 빈 가죽 상자를 모두 가져오게 하여, 그 속의 모래와 돌을 빼고 그 대신에 창모가 축수한 금은과 기물들과 아울러 자기가 간수했던 패물, 보석 노리개들을 함께 그 속에 넣고 자물쇠를 채우고는 경룡을 돌아보면서 말하였다.

제가 간수했던 물건을 강남(江南)에서 팔면 허비한 금액을 채울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는 급히 물건을 싣고 도망가라고 하였다.

경룡은 떨어져 헤어짐을 슬프게 여겨 가슴 아프게 목놓아 큰 소리로 울면서, 옥단을 부둥켜안고 차마 버리고 떠나지를 못하였다. 옥단이 손으로 밀어 문을 나오니, 경룡이 애써 이별하며 말했다.

어느 때에 다시 만날 기약을 하오?”

옥단이 말했다.

공자께서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뵌 후에 오로지 글 읽기에 전념하여 후일 과거에 급제하시고 이 고을의 자사(刺史)가 되시면 이 날이 바로 저를 만나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를 보기가 어려울 것이에요. 저는 마땅히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켜서 맹세코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 아양을 떨지 않을 것입니다.”

경룡이 생각해 보니, 창모가 반드시 옥단의 지조를 빼앗을 것이고, 옥단은 죽음으로써 약속을 지킬 것이니, 그러면 평생 다시는 옥단을 만날 수 없을 것이 두려웠다. 이에 옥단을 끌어잡고 울면서 말했다.

낭자가 맹세코 다른 사람에게 교태를 짓지 않겠다는 것은 지극하다고 말할 수 있소. 그러나 주모가 강제로 위협하면 어찌하겠소? 그러면 반드시 죽은 뒤에야 끝이 날 것이니, 인생이 한번 죽으면 어찌 다시 볼 수 있겠소? 뜻을 꺾고 절개를 굽혀 후일 다시 만날 약속을 이루는 것만 같지 못해요. 낭자는 내 말을 소홀히 여기기 말고 내가 원하는 이를 수 있도록 하시오.”

옥단이 말했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법인데 열녀라고 어찌 유독 다르겠습니까? 만약에 임시 방도가 있다면 헛되이 죽음을 지킬 필요가 없으나, 몸을 더럽히려는 지경에 이른다면 곧 죽음이 있을 뿐이에요.”

경룡은 마침내 이별을 하고 몰래 길에 올라 절강으로 향하였다.

옥단은 경룡을 보낸 뒤 울음을 삼키며 침실로 돌아와 시비와 함께 서로 약속하고, 각각 옷의 솜을 꺼내 입을 틀어막고 끈으로 손과 발을 등뒤로 묶은 다음 침상 아래 함께 거꾸러져 있었다.

 

다음 날, 창모와 노비(奴婢)들이 경룡 일행인 마부와 말이 간 곳 없이 사라진 것을 보고 창모에게 와서 아뢰었다.

창모가 곧바로 취한 머리를 부여잡고 급히 옥단의 침소에 가서 보니, 옥단과 시비가 모두 윽윽 하면서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창모가 놀라 소리치면서 구해 놓으니, 옥단이 한참만에 거짓으로 깨어나는 체하면서 말했다.

내가 어제 왕랑을 만나려고 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어미가 스스로 불러 맞이하게 하였으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왕 공자가 비록 속이 없다.’고 하나 어찌 노림에서의 원한을 다 잊어버린 채 흙 인형처럼 될 리가 있겠습니까?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도 합환하지 않아 저 혼자 괴이하게 여겼는데, 한밤중이 되자 그 종자들을 몰래 불러 별안간 우리를 에워싸고 금과 보물을 모두 찾고 나서, 저와 시비를 죽이려고 하였는데 공자가 그나마 말려 이만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욕을 본 것은 한스럽지 않으나 다만 재물이 따라서 없어지게 된 것이 한스러우니 뒤쫓아가 그 재물을 빼앗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결박을 당할 때에 그들이 약속하는 말을 몰래 들으니, 우리가 뒤를 쫓을 것이 두려워 본부(本府)에 들어가 머물다가 도망가자고 하였으니, 속히 달려가 잡으세요.”

창모는 마침내 이웃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온 집안사람이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려 추격하였다. 서주(徐州)의 공문(公門) 밖에 이르자 옥단이 갑자기 말에서 내리더니, 그 창모를 붙잡아 끌어내리고 공부(公府)의 서리(胥吏)와 이웃 사람들에게 크게 소리쳐 말했다.

저는 본래 지체 있는 집안의 딸입니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었는데, 이 할미가 나의 자색(姿色)을 보고 데려다 길렀으니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도록 하여 그 값을 취해 다만 자기 집을 이롭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어머니와 딸의 의리가 있었겠습니까? 지난번에는 절강 왕 각로의 아들이 마침 우리 집을 지나다가 저를 보고 기뻐하여 만금을 다 들여 저를 아내로 맞이하고 따로 집을 지어 해로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할미가 음모와 계략을 간교하게 꾸며 노림에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왕 공자께서는 다행히 그곳을 벗어나 맨몸으로 고향에 돌아갔으나 첩을 그리는 정이 더욱 더해 재물을 싣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지난밤에도 이 할미는 다시 재물을 훔치고 나서 죽이려고 하였으나 왕 공자가 기미를 알아채고 도망쳤습니다. 그러므로 이 할미가 그 재물을 얻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겨 이제 이웃 사람들을 거느리고 추격해서 죽이고 재물을 빼앗으려는 것이에요. 저는 거짓으로 이 모의를 같이하는 체하고 이곳에 와서 사실대로 관아에 고발하는 것입니다. 이 일의 처음과 끝은 이웃 사람들이 모두 아는 바라 속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어서 스스로 통곡하면서 그 창모를 끌고 송사에 나가려고 하였다. 이웃 사람들도 본디 노림에서의 일을 알고 있었기에 밤사이의 음모를 믿고 모두 옥단이 옳고 할미가 그르다고 하면서 말했다.

이 할미가 왕 공자께서 재물을 훔쳐 도망했다고 거짓말을 하기에 우리들은 그 청에 따라 이곳으로 와서 재물을 빼앗아 돌아가려고 하였지만, 만약에 죽여서 빼앗으려는 사정을 알았더라면 어찌 감히 따라 왔겠습니까?”

서리들도 역시 노림의 소문을 자세히 들었는지라 모두들 할미를 꾸짖고, ‘흉악한 도적이라고 했다. 할미가 스스로 변명하려고 하였으나 사람들은 믿지 않고, 모두들 옥단에게 고발하러 들어가도록 권하니, 창모가 당황하고 두려워하여 옥단에게 애걸하였다.

옥단은 말했다.

비록 남편을 죽이려는 음모는 있었으나 나를 길러준 은혜가 있기 때문에 우선 고발하지는 않겠소. 그러면 할미는 내가 수절하도록 하여 끝까지 협박하지 않겠소?”

할미가 승낙하자 옥단은 서리에게 청하여 한 장의 맹세하는 문서를 만들어 기록하게 하고, 이웃 사람들이 두루 서명토록 했다. 그런 연후에 옥단은 그 서약서를 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북루에 올라 다만 한 시비로 하여금 쌀을 구걸하여 아침저녁을 공급하게 하고, 창모에게는 하나도 의지하지 않았다. 그 시비도 역시 어려움을 겪으면서 쌀을 구걸하여 주인을 받듦에 조금도 싫어하거나 괴롭게 여기지 않았다.

이 시비의 이름은 난영(蘭英)으로 역시 자색을 지녔으나 성품이 다른 사람과 더불어 즐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혹시 사랑을 구하는 사람이 있어도 응하는 일이 드물었으며, 다만 옥단을 모시면서 그 곁을 떠나지 않았으니, 옥단이 양가집으로부터 데리고 온 사람이었다.

창모는 옥단을 미워하여 항상 죽이려고 하였으나, 이웃 사람들이 알까봐 두려워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였다. 전날의 조() 상인이 옥단을 얻을 수 없음을 알고, 창모에게 주었던 돈을 돌려받고자 하자, 창모는 그 재물이 아까워 몰래 약속하여,

이리이리 하세요.”

라고 하였다.

여러 달이 지나자 창모는 옥단을 꾸짖어 말했다.

너는 왕랑 때문에 내가 너를 길러 준 은혜를 배반하고 끝내 나를 어미로 여기지 않는다. 비록 내 집에서 살고 있으나 이익되는 것이 없으니 북루를 비우고 나가 사는 게 낫겠다.”

조운이 마침내 구박하여 내쫓았다.

창모는 이보다 먼저 같은 마을의 장사 집 과부 할미에게 많은 재물을 주고 비밀스런 계략을 약속하였다.

옥단이 쫓겨나 시비 하나를 거느리고 돌아갈 곳이 없어 울면서 길을 따라 가다가 장사꾼 할미를 길에서 만났다. 할미는 그 까닭을 묻고 거짓으로 우는 체하며 말했다.

내가 매번 낭자가 정조와 절개를 지키면서 고생스럽게 쌀을 구걸하여 입에 풀칠하는 것을 가엾게 여겼는데, 이제 다시 쫓겨났으니 어느 곳에서 의지할 겐고? 만약에 의지할 곳이 없으면 우선 누추한 내 집에 머물도록 하오.”

옥단이 머물 곳을 얻었음을 기뻐하여 절을 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할미를 따라갔다. 한 달 남짓 함께 살다가 할미가 말했다.

내가 낭자를 보니 남편을 배반하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그리워하니 마음에 몹시 애처롭고 측은하오. 내 낭자를 위해 재산을 들여 사람과 말을 세내서 낭자를 데리고 절강으로 가면, 낭자는 왕 공자로 하여금 후하게 갚아 돌려보내게 해 주겠소?”

옥단은 그 말을 다행으로 여겨 곧 사례하여 말했다.

정말 이처럼 될 수만 있다면 감히 힘을 다하여 덕을 갚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할미가 허락하고는 말을 세내고 행장을 꾸려 날을 잡아 노정을 계획하여 함께 길을 떠났다. 걸음이 서주(徐州)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을 때에 갑자기 사람들이 떼를 지어 길을 막아서더니 옥단을 에워싸고 구박하면서 데리고 갔다. 옥단이 돌아보면서 상인 할미를 불렀으나 상인 할미는 이미 간 곳이 없었다.

이에 무리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무슨 이유로 나를 위협하여 데리고 갑니까?”

무리들이 말하였다.

우리는 조 대고(趙大賈)가 시키는 대로 낭자를 맞이하여 데려가는 것이니, 무슨 협박을 했다고 그러나?”

옥단은 소리도 내지 못한 채 통곡하면서 말했다.

내가 이 두 집의 늙은 과부에게 속았구나.”

마침내 말에서 떨어지니 무리들이 다시 감싸 안아 윽박질러 말 위에 태우니, 옥단이 슬피 울며 애걸하여 말했다.

잠시 나를 쉬게 해주시오.”

무리들이 가련히 여겨 잠시 늦추어 주었다. 옥단은 자결하려고 생각하였으나 자유로이 그럴 수도 없었다. 이윽고 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헛되이 죽으면 예전의 약속을 어기게 되니 짐짓 가서 기회를 살피느니만 못하겠다하고, 비단 소맷자락을 찢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고는 그 천 위에다 글을 썼다. 그리고 몰래 난영을 시켜 길 왼쪽 나무숲에다 걸어 놓게 하였다. 혹시라도 지나가는 사람 중에 호사가가 있어서 걸어 놓은 것을 남쪽에 전하게 되면 머지않아 경룡에게 전달되리라 여긴 때문이었다.

옥단이 윽박을 받아 조 상인에게 오니 조 상인은 문 밖에 나와 발돋움을 하며 기다리고 있다가, 옥단이 오는 것을 보고 말에서 부축해 내리고는 기뻐 맞이하며 말했다.

낭자는 이 늙은이에게 역시 인연이 있는가 보다. 이것은 실로 하늘이 주는 것이지 어찌 인간이 꾸민 일이겠는가?”

옥단은 거짓으로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중도에서 길을 바꿔도 또한 좋은 인연을 이룰 수 있습니다.”

조 상인은 한창 옥단이 죽음으로 절개를 지킬 것이라고 의심을 하였다가 아양 떠는 말을 듣고는 기뻐서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옥단은 조 상인과 함께 살면서 이야기하고 웃으며 서로 기뻐하여 그 친근함이 지극하였다. 다만 합환하려고 하면 곧 사양하면서 말했다.

왕경룡이 떠나 갈 적에 첩과 더불어 말하기를 올해에 반드시 찾아오마고 약속하고, 만약 이 기간이 지나면 네가 다른 데로 시집가는 것을 들어주마 하였고, 첩도 역시 허락하여 맹세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이미 해도 저물어 가는데 왕 공자는 오지 않고, 손을 꼽아 헤아려 보니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설령 올해에 왕 공자가 다시 온다 해도 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집안에 들어왔으니 어찌 감히 다시 나갈 수 있겠습니까?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은 그 약속을 마쳐서 내 마음을 속이지 않으려는 것일 뿐입니다. 새해에 새롭게 합환한다면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조 상인은 그 뜻을 거스를까 염려스러워 감히 억지로 가까이하지 못하였고, 다만 옛 처에게 돌아가 자려 하면 곧 옥단은 거짓으로 투기를 부려 만류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옥단이 조 상인과 서로 합환하지 않은 것을 알지 못하였으나 조 상인이 수시로 친구에게 말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일을 알게 되었다.

그 때에 마침 절강(浙江)의 상인이 그 이웃에 와서 묵으면서 향과 비단을 팔았다. 옥단이 난영에게 비단 한 필을 후한 값으로 사오게 하여 사운(四韻) 시 한 수를 수놓았다. 조 상인은 글을 알지 못하여 오직 아름답다고 칭찬만 할 뿐이었다. 수놓기를 마치자 몰래 그 상인에게 돌려주며 말하였다.

당신이 소흥(紹興)의 왕각로 댁에게 돌아가 판다면 반드시 어떤 청년이 두 배 값을 주고 살 것이요.”

상인은 그 말대로 소흥으로 돌아가 각로 집안에 팔았다.

옥단은 여러 달을 살면서 구처(旧妻)가 비록 자색은 지녔으나 평소에 정조가 없음을 알았다. 또 이웃 사람 무당 부부가 오랫동안 이 집안과 교유하고 있었는데, 무당 남편도 역시 검속(檢束)한 행실이 없고 오직 주색만 탐하는 줄을 알게 되었다. 이에 조 상인의 아내가 서로 만나자는 편지를, 그 필적을 모방하여 위조해서 무당 남편에게 보내고, 또 무당 남편의 편지를 역시 이와 같이 써서 조 상인의 아내에게 보냈다. 두 사람은 각각 믿고서 서로 만나 사사로이 정을 통하면서도 모두 깨닫지 못하였다. 이런 후로는 새벽에 가고 저녁에 오는 일이 금방 일상으로 되었다.

옥단이 하루는 그들이 와 만나는 기회를 틈타 창 밖에서 몰래 살피다가, 직접 창문을 잠그고 엿보고 있다는 형상을 드러내 보이자, 두 사람은 옥단이 그 남편에게 알릴 것을 두려워하여 함께 계교를 꾸며 그 흔적을 없애버리려 하였다.

때마침 그 남편이 밖으로 나가 이웃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돌아왔다. 조 상인의 아내는 아주 맛있는 죽을 쑤고 죽 속에 독을 넣어 남편과 옥단에게 주었다. 옥단이 막 머리를 빗다가 그 죽을 보고 독이 들었나 의심이 되고, 또 자기에게만 독을 풀었는가 염려가 되기도 하여 말하였다.

그 죽이 매우 맛있게 보이니 내가 많은 것을 먹겠습니다.”

하고 나서, 자기 앞에 놓인 것을 바꾸어 상인 앞에 놓았다. 그리고 화장하는 일을 핑계로 꾸물거리며 먹지 않고 조 상인이 다 먹은 후에야 거짓으로 손을 대는 척하다 엎질러 버렸다. 잠깐 있으니 조 상인은 땅에 거꾸러지면서 피를 토하고 죽어 버렸다. 옥단은 밖으로 뛰어나가 동네 사람들 불러 말했다.

조 상인의 아내와 무당 남편이 모략을 꾸며 그 남편을 독살하였소.”

동네 사람들이 고꾸라질 듯 놀라며 모여들어 조 상인의 아내와 무당 남편 및 옥단을 포박하였다. 옥단이 구멍을 뚫어 몰래 엿본 일을 말하고, 또 남은 죽을 개에게 먹이니 개가 곧 죽어 버렸다.

그러자 조 상인의 아내가 말했다.

옥단이 절개를 빼앗긴 원한 때문에 죽에 독을 넣은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이 세 사람과 무녀를 붙잡고, 그 집 노복과 가까운 이웃 사람들과 함께 관아에 고발하였다. 조 상인 아내와 옥단은 서로 변론하였으나 모두 명백한 증거를 댈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무당 남편과 조 상인의 아내는 평소에 간통한 증거가 없다고 아뢰고, 어떤 사람은 조 상인과 옥단이 아직 합환하지 않았다고 말하니, 마침내 의옥(疑獄)이 되어 관아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각설하고, 경룡은 서주에서 한밤중에 옥단과 이별한 뒤로 그 재물을 싣고 절강을 건너 소흥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각로는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잡아들여 곤장을 치면서 말했다.

너는 아비를 배반하고 돌아오기를 잊었으니 첫 번째 죽일 일이고, 술에 빠져 몸을 망쳤으니 두 번째 죽일 일이며, 재물을 없애고 가업을 엎어 버렸으니 세 번째 죽일 일이다.”

경룡이 울면서 대답하였다.

돌아오기를 잊고 몸을 망친 것은 참으로 변명하기가 어려우나, 재물을 없앤 것에 이르러서는 하찮은 것조차도 잃어버리지 않고 지금 모두 싣고 왔습니다.”

각로의 성품은 본래 준엄한지라 오히려 더욱 매질하라고 명령하였다. 때마침 각로의 사위 이부 원외랑(吏部員外郞)인 조지고(趙志皐)가 일 때문에 이곳에 와 있었다. 이 사람은 각로가 매우 공경하여 사랑하였고, 경룡과도 서로 친애(親愛)하는 사람이었다. 막 각로를 모시고 앉았다가 갑자기 뜰로 내려와 경룡을 부축하면서 각로에게 울며 말하였다.

이 아이는 나이가 어려 여색에 미혹되어 스스로 속히 돌아오지 못하였을 뿐, 어찌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오늘 돌아온 것을 보면 그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물며 그 재물을 이제 모두 싣고 돌아왔으니 주색으로 몸을 망치지 않은 것도 분명합니다.”

하였다. 각로가 이에 매질을 그치게 하고, 뜰에서 재보(財寶)를 헤아려 맞추어 보니 그 수가 모자라지 않고 남음이 있으니 각로가 마음 속으로 괴이하게 여겼다. 경룡이 안으로 들어가 어머니에게 절을 하자, 어머니는 경룡의 등을 어루만지며 울면서 그 연유를 물었다. 경룡이 사실대로 대답하고 옥단과의 일을 모두 말하니 어머니는 탄식하면서 말했다.

그 옥단이란 아이가 양가 집에서 길러지지 않은 것이 한스럽구나. 비록 며느리로 삼고 싶지만 어찌 될 일이겠느냐?”

여러 달이 지나자 각로는 경룡을 책망하면서 말했다.

너는 여러 해 동안 창피스럽게 예업(藝業)을 폐하여 공명(功名)을 다시 바랄 수는 없게 되었으니, 네가 원하는 일이 무엇이냐. 앞으로 농사를 지을 것이냐? 장사를 하려느냐?”

경룡이 오히려 글 읽기를 원하니, 각로는 곧 곁의 책을 뽑아서 가르칠 수 있는가를 시험하였다. 경룡이 서주에 오륙 년 동안 있으면서 옥단과 함께 오로지 문묵(文墨)에 종사했는지라 시험받는 글 뜻을 닿는 대로 완전히 풀이하였다. 각로는 평일에 익힌 것이 아닌가 하여 여러 책을 돌려가며 뽑아 시험하였으나 시험하거나 강을 하는 대로 꿰뚫어 통하지 않음이 없었다.

각로는 비록 인정하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기뻐하고 기특하게 여겨 다시 제술(製述)을 시험하려고 막 문제를 내려 하는데, 때마침 기러기가 와서 우는지라, 이에 이것을 제목으로 시를 짓도록 하였다. 경룡은 곧 시를 지었으니 이렇다.

 

지난 밤 서풍이 기러기 떼를 움직여,

허공에 점점이 흩어져 어지러이 나는구나.

그림자는 삼경 달빛에 푸른 무덤을 지나고,

소리는 만리 구름 밖의 창오산에 떨어지네.

바둑 끝난 영릉(零陵)에는 백발 노인 슬피 울고,

등불 가물거리는 장신궁엔 궁녀가 흐느끼네.

아득히 남쪽으로 오는 편지 누가 부쳤나,

겨울옷을 빨리 북군에 보내라 재촉하네.

 

각로가 읽어 보고 매우 기뻐하면서 말했다.

네가 지은 이 시가 족히 돌아오기를 잊은 잘못을 갚을 만하구나.”

들어가서 부인에게 말하였다.

부인의 아들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은 것은 반드시 중도에서 글을 읽는 데 빠졌기 때문이지 여색을 좋아했기 때문은 아니었구려.”

마침내 서루(書樓)를 지어 그곳에 머물게 하였다. 경룡은 서루에 머물면서 옥단이 경계한 바를 길이 마음에 두고 글 읽기를 업으로 삼아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다. 마침 하루는 마을 사람이 나그네가 전하는 옥단의 비단 편지를 받아 전해 주었다. 경룡이 편지를 보니 편지는 이렇다.

 

서주의 옥단은 소흥의 왕 수재(王秀才) 경룡에게 편지 올립니다.

저는 낭군을 보낸 후에 항상 북루에서 살았는데 주모가 구박하여 내쫓을 줄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우연히 이웃 할미를 따라 한 달여를 머물다가 다시 할미의 말만 믿고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가 뜻하지 않게 중도에서 남의 협박을 받았습니다. 이 역시 제가 스스로 일찍 자결을 하지 못하고 부질없이 옛 약속을 지키려다 어쩔 수 없이 두 할미의 간사한 계략에 빠진 것입니다. 어찌 미천한 목숨이 도랑에 버려지는 것을 아끼겠습니까마는 다만 이별할 때 경계하시던 말씀이 귀에 쟁쟁할 뿐입니다. 만약 신의를 펴다가 전날의 맹세를 다시 한할 것 같아, 이제 그 집으로 잠시 가서 기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형편이 만약 번거롭지 않다면 헛되이 죽지는 않을 것이지만, 몸을 더럽히려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어찌 구차히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애오라지 시 한 수를 지어 작은 정성을 부쳐 봅니다.

 

헤어진 난새 천척 높이 남쪽 향해 날더니만,

구름 밖에 몰래 덫을 놓았을 줄 어이 알리.

조롱 속에 살아 든 건 도리어 뜻이 있으니,

새 깃촉 다는 날엔 날개 치며 돌아가리.

 

아무 달 아무 날, 옥단 재배.”

 

경룡이 그 편지를 보고 옥단은 다른 사람이 차지했음을 알고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여겨, 저도 모르게 길이 통탄하며 침식을 모두 폐한 것이 여러 날이었다. 이윽고 그 시에 화운(和韻)하여 스스로 시름을 보내었다.

 

거울 속의 외로운 난새 그림자와 마주 날다,

춤 끝에 피울음 울며 매서운 덫에 떨어졌네.

기묘하게 얽힌 사정 스스로 상사곡을 지으니,

노래는 강남에 왔으나 몸은 돌아오지 못하네.

짝을 잃은 원앙새 한 마리 날다가,

북을 좇아 모함 엮는 베틀에 걸렸어라.

원한을 품고 서천의 넋이 되어,

시든 꽃에 피 뿌리며 돌아가도 못 돌아가네.

 

이 이후로 한 해가 이미 저물었으나 소식은 영영 끊기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침 한 상인이 그 집에서 향과 고운 비단을 팔고 있는데 집안사람들이 보았으나 그 귀함을 알지 못하고 다만 글자를 수놓았기 때문에 경룡에게 가지고 와서 보였다.

경룡이 그 시를 살펴보고 그 글씨를 자세히 본 다음 이것이 옥단이 지은 것이 아닌가 하여 직접 상인에게 물으니, 상인이 사실대로

이러이러 하였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런 연후에야 경룡은 과연 옥단이 부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두 배의 값을 주고 샀다. 그리고 그 시에 차운(次韻)하여 다시 부쳐 주려 하였으나 상인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사양하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옥단이 수놓은 시는 다음과 같았다.

 

넓게 친 구름 그물에 외로운 난새 몰아넣으니,

한번 이 세상에 떨어져 해가 벌써 저무누나.

푸른 깃은 모름지기 선학과 짝을 지어야지,

금빛 깃털이 어찌 들오리와 어울리겠나.

비록 안개 낀 물가를 따라 아침에는 함께 놀다가도,

바람 부는 가지에 가 밤이면 홀로 자네.

나는 아네, 날개 젓는 교핵(矯翮)은 다는 날엔,

나쁜 새는 쇠 탄환에 맞아 떨어지리라.

 

경룡이 화답한 시는 다음과 같다.

 

철책이 조롱 되어 채란(彩鸞)을 가두니,

진대에 돌아가는 꿈 몇 번이나 깨었던고.

높은 가지 둥지에선 연리수(連理樹) 생각,

울긋불긋 둥근 부채에 합환하던 일 그리네

천리 밖의 고운 소식 하늘 너머 아득하여,

긴긴 가을 외론 그림자 달빛 속에 혼자여라.

기러기는 어느 날에나 소식을 전할 겐지,

모산(茅山)의 환약 하나 부쳐나 보내고져.

 

경룡은 이 수놓은 시를 보고 난 후로 옥단이 조가 상인의 집에 머물러 있음을 알게 되자 창모의 간사한 술책을 분히 여기고, 옥단의 원통한 심정을 가련하게 여겨 더욱더 근심하고 괴로워하여 마음의 병이 되려 했다. 간혹 글을 읽을 때에도 희미하게 옥단이 보여 그 이름을 미친 듯이 불렀다. 그러다 이윽고 스스로 깨달아 말했다.

내가 만약 병이라도 나면 아마도 꼭 죽을 것이니, 어찌 다시 옥단을 볼 수 있겠는가?”

드디어 칼을 움켜잡으며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단정히 앉아 글을 읽었다. 그러다가 옥단이 눈앞에 어른거리면 곧 칼을 휘두르면서 꾸짖어 말했다.

네가 과거에 급제하라는 경계로써 나와 이별하고, 또 다시 만나자는 맹세로써 나와 기약하고는, 어찌하여 오늘 이처럼 나를 흔드는가?”

여러 달이 지나 그 병이 곧 낫자, 경룡은 삼년을 학업에 힘써 해원(解元)에서 장원으로 뽑히고, 또 회원(會元)에서도 일등으로 합격하더니 마침내 장원 급제하여 한림 수찬(翰林修撰)이 되었다.

이 때에 조정에서는 서주에서 생긴 남편 살해가 의심되는 옥사(獄事)가 오래도록 판결되지 못하므로, 어사를 파견하여 조사하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윤허하자, 경룡이 그 소임을 맡기를 청하여 마침내 서주에 도착하였다.

옥단은 어사가 바로 왕경룡이라는 소문을 듣고, 난영을 시켜 경룡의 고향과 집안[族氏]을 자세히 물어 보고는 어사가 과연 경룡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뒤에 몰래 글을 써서 그 원통함을 진술하고 봉투에 경룡의 친구가 쓴 편지인 양 속여 작성하여 난영을 장사꾼 여자로 변장시켜 경룡의 집안 일꾼을 통해 전하게 하였다.

경룡이 처음에 옥사를 살피려 공사(供辭)를 열람하고 죄인들을 불러 말하였다.

옥단은 납치되어 온 이후로 합환을 한 적은 없으나, 독을 풀었다는 말에 대해서는 스스로 벗어날 수가 없으니, 비록 명백한 증거는 없으나 반드시 사면하기 어렵다.”

특별히 명하여 별옥(別獄)에서 엄하게 국문하도록 하고 아래 뜰에 있는 조 상인의 아내와 무당 남편 등 여러 사람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옥단은 마땅히 먼저 죽일 것이기에 물을 필요도 없거니와, 이 무리들도 형벌을 늦추어 주었기 때문에 그 실정을 알아내지 못하였다. 오늘은 반드시 엄하게 국문(鞠問)하여 이 자들을 모두 죽이고, 내일 바로 서울로 돌아가야 하겠다.”

급히 공부(公府)에 명하여 고문하는 형구를 성대히 갖추도록 하니 지극히 엄하고 또 숙연하였다. 그리고 여행하는 짐꾸러미를 방에서 밖으로 옮겨 내와 뜰 가운데 갖다 놓도록 명하여 말했다.

먼 여행길에 의복과 여러 짐들이 비와 이슬에 젖은 것이 틀림없이 많을 것이니, 해가 중천에 뜨기를 기다려 볕에 말려야 되겠다.”

곧 뜰에 늘어선 아전들을 밖으로 물리치고 문을 닫아 그 뜰에는 다만 죄인들만 남게 하였다.

어사가 방에 들어가 점심을 먹느라 오래도록 나오지 않자, 죄인들은 아래 뜰에 있으면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서로 의논하여 말하였다.

옥단은 죄가 있건 없건 간에 죽이기로 이미 판결났다. 다만 우리들을 전보다 곱절이나 더 엄하게 국문한다 하니 어떻게 살아날 수 있겠나? 조 상인의 아내와 무당 남편의 모의를 정직하게 아뢰어 우리들이 풀려나는 것이 낫겠다.”

조 상인의 아내와 무당 남편은 애걸을 하면서 말했다.

우리가 만약 살아난다면, 꼭 후하게 보답을 할 것이요.”

여러 사람들은 혹 승낙도 하고 혹은 거부도 하였다.

한참이 지나 어사가 나와서 자리에 앉아 국문을 명하며 말했다.

너희들은 그 실정을 속이지 말라. 나는 이미 너희들이 의논한 것을 알고 있다.”

여러 사람이 서로 돌아보며 놀라고 의아해 할 즈음, 어사가 하리에게 명을 내려 짐꾸러미 중 두 옷상자의 자물쇠를 열게 하니, 두 사람이 상자 속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 한 사람은 본부(本府)의 주부(主簿)였고 다른 한 사람은 어사 집안의 젊은이였다. 두 사람이 죄인들을 향하여 그들이 의논한 바를 모두 말하여,

이러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라고 하였다. 죄인들은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말이 막혀 각각 그 죄를 시인했다.

마침내 조 상인의 아내와 무당 남편을 목 베고 옥단과 여러 사람을 풀어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죄가 없으니 석방하노라.”

부중(府中)의 사람마다 모두 그 지혜에 탄복했다.

경룡은 옥사 처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갈 때에 몰래 집안 일꾼을 시켜 말을 주고 옥단을 태워 돌아가게 하였다.

마당 한 가운데에 잔치를 베풀고 술을 들면서 서로 위로하다가, 이야기가 서로 이별하던 일에 이르자 슬픔과 기쁨을 견딜 수가 없었다. 경룡이 먼저 율시 한 수를 지었다.

 

바닷물 돌고 산 옮겨짐 모두가 신명이니,

칼 되오고 거울 합침이 어찌 인연 없었겠나.

노림에서 남은 목숨 총마를 타고 왔고,

초옥의 남은 혼이 비단 요에 올랐네.

서책이 백발을 도망치게 하였는데,

연지로 단장하니 청춘이어라.

상봉하는 날이 바로 맹세 다지는 날이 되니,

술잔 잡고 어이 막나, 수건 가득 젖는 눈물.

 

옥단이 눈물을 닦고 붓을 적셔 즉시 그 율시에 화답하니,

 

꽃다운 혼 원래가 매신(梅神)에 의탁 않으니,

오랜 약속이 옛 인연의 결과인지 어이 알리.

지난 날 슬픈 외침 목색(木索)을 만났더니,

오늘 아침 맑은 잔치 구슬 자리에 취하네.

보옥 온전히 돌려옴을 그 누가 어여뻐하나,

하찮은 꽃 늙어서야 봄 차지한 일 스스로 웃네.

푸른 옷자락 끌며 우물과 절구 따르리니,

금루곡(金縷曲)은 듣지 마오, 수건 마구 젖느니.

 

경룡은 과거에 오른 후에 각로의 명에 쫓겨 합() 씨의 딸을 아내로 삼았다. 그러나 옥단을 그리는 마음 때문에 한 번도 동침하지 않아 타인처럼 끊고 지내 왔었다. 이때에 이르러 그 아내를 보내고 옥단을 부인으로 삼으려 하자, 옥단이 옷깃을 여미고 일어나 절을 하며 말하였다.

창가(娼家)의 천한 신분으로 돈을 받고 낭군을 유혹했으니 몸은 이미 비루해졌고, 교묘한 말과 얼굴빛을 꾸며 사람을 속여 약속을 지켰으니 절개는 이미 끝났습니다. 살아 돌아오고자 하여 계략으로 사람을 죽였으니 선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래도록 죄인의 몸으로 있어 세상에서 더럽다고 여기니 길하다고 하겠습니까? 제가 차마 죽지 않고 오늘에 이른 것은 다만 군자를 다시 모시고 건즐(巾櫛)을 받들면서 평생의 약속을 이루고자 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천한 첩에게는 행운이요, 공자에게는 즐거움입니다. 어찌 봉비(葑菲)의 미천한 몸으로 갑자기 빈번(蘋蘩) 받드는 데에 들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부인을 보니 지조가 곧고 우아한 자태를 지녔기에 집안의 어머니로 썩 합당합니다. 공자가 만약 다시 갈라서 내쫓으면 저 집안의 부모는 반드시 그 지조를 빼앗으려 할 것이에요. 그러면 부인이 다른 사람을 섬기지 않으려고 할 것이니 이는 마치 옥단이 조 상인에게 아양을 떨지 않으려는 것과 같을 것이지요. 내 자신의 처지로써 남에게 견주어 보니 정말 몹시도 측은합니다. 만약 부인과 헤어지면 첩도 마땅히 물러날 것입니다.”

경룡이 그 말에 감동하여 내쫓지 않았고, 그 부인도 옥단의 은혜에 감격하여 자매처럼 대하였다. 그러나 경룡이 부인을 멀리하고 옥단으로 하여금 방을 독차지하게 하니, 옥단이 다시 이치로써 타일러 소박을 못하게 하여, 마침내 아들 둘을 낳았고 옥단은 아들 셋을 낳았다.

지금 경룡과 부인은 모두 죽고 옥단만이 아직 살아 있다. 옥단의 아들 두 명과 본처의 아들 한 명은 모두 문과에 합격하여 청환(淸宦)과 현직(顯職)을 두루 거쳤다. 옥단의 한 아들은 이름이 아무개인데 안찰사(按察使)가 되어 만력(萬曆) 기해(己亥)년에 조선에 동방 왜란 정벌 전쟁 감독을 하였다. 본처의 한 아들은 이름이 아무개인데 하남도(河南道)의 포정사(布政使)가 되었으며, 옥단의 한 아들은 이름이 또 아무개인데 국자 사업(國子司業)이 되었다. 아아! 경룡의 총명하고 지혜로움과 옥단의 수절, 헤어지고 만남의 기이한 이야기를 마친다. 후일 이것을 보는 자들이 누구나 마음이 동요하지 않겠는가? 대략 이와 같고 지금 다 기록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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