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序 文
序―랄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이고 정성껏 몇 마디 써야만 할 의무를 가졌건만 붓을 잡기가 죽기보담 싫은 날, 나는 천의를 뒤집어쓰고 차라리 病 아닌 신음을 하고 있다.
무엇이라고 써야 하나?
재조(才操)도 탕진하고 용기도 상실하고 8․15 이후에 나는 부당하게도 늙어간다.
누가 있어서 <너는 일편(一片)의 정성까지도 잃었느냐?> 질타한다면 소허(少許) 항론(抗論)이 없이 앉음을 고쳐 무릎을 꿇으리라.
아직 무릎을 꿇을 만한 기력이 남았기에 나는 이 붓을 들어 시인 윤동주(尹東柱)의 유고(遺稿)에 분향(焚香)하노라.
겨우 30여 편 되는 유시(遺詩) 이외에 윤동주의 그의 시인됨에 관한 목증(目證)한 바 재료를 나는 갖지 않았다.
<호사유피(虎死留皮)>라는 말이 있겠다. 범이 죽어 가죽이 남았다면 그의 호피(虎皮)를 감정하여 <수남(壽男)>이라고 하랴? <복동(福童)>이라고 하랴? 범이란 범이 모조리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시인 윤동주를 몰랐기로소니 윤동주의 시가 바로 <시>고 보면 그만 아니냐?
호피는 마침내 호피에 지나지 못하고 말 것이나, 그의 <시>로써 그의 <시인>됨을 알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病을 모른다. 나한테는 病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試鍊, 이 지나친 疲勞,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그의 遺詩 「病院」의 一節
그의 다음 동생 일주(一柱)군과 나의 문답(問答), ―
「형님이 살었으면 몇 살인고?」
「설흔 한 살입니다.」
「죽기는 스물아홉에요―」
「간도(間島)에는 언제 가셨던고?」
「할아버지 때요.」
「지나시기는 어떠했던고?」
「할아버지가 개척하여 소지주(小地主)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무얼 하시노?」
「장사도 하시고 회사에도 다니시고 했지요.」
<아아, 간도에 시(詩)와 애수(哀愁)와 같은 것이 발효(醱酵)하기 비롯한다면 윤동주와 같은 세대에서 부텀이었고나!> 나는 감상하였다.
..........
봄이 오면
罪를 짓고
눈이
밝어
이브가 解産하는 수고를 다하면
無花果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또 太初의 아침」의 一節
다시 일주(一柱) 군과 나와의 문답, -
「연전(延專)을 마치고 동지사(同志社에) 가기는 몇 살이었던고?」
「스물 여섯 적입니다.」
「무슨 연애 같은 것이나 있었나?」
「하도 말이 없어서 모릅니다.」
「술은?」
「먹는 것 못 보았습니다.」
「담배는?」
「집에 와서는 어른들 때문에 피우는 것 못 보았습니다.」
「인색하진 않았나?」
「누가 달라면 책이나 샤쓰나 거저 줍데다.」
「공부는?」
「책을 보다가도 집에서나 남이 원하면 시간까지도 아끼지 않읍데다.」
「심술(心術)은?」
「순하디 순하였습니다.」
「몸은?」
「중학 때 축구선수였습니다.」
「주책(主策)은?」
「남이 하자는 대로 하다가도 함부로 속을 주지는 않읍데다.」
...............
코카사스 山中에서 도망해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肝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肝」의 一節
노자 오천언(五天言 )에,
<허기심(虛基心) 실기복(實基腹) 약기지(弱其志) 강기골(强其骨)>이라는 구(句)가 있다.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抒情詩)에 우수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孤獨)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일제(日帝) 시대에 날뛰던 부일문사(附日文士)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뿐이나, 무명(無名)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
幸福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十字架가 許諾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十字架」의 一節
일제 헌병(日帝憲兵)은 동(冬)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鯉魚)와 같은 조선 청년 시인을 죽이고 제 나라를 망치었다.
뼈가 강한 죄로 죽은 윤동주의 백골(白骨)은 이제 고토(故土) 간도(間島)에 누워 있다.
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房은 宇宙로 通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魂이 우는 것이냐
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故鄕에 가자.
-「또 다른 故鄕」
만일 윤동주가 이제 살아 있다고 하면 그의 시가 어떻게 진전(津田)하겠느냐는 문제.
그의 친우 김삼불(金三不) 씨의 추도사(追悼辭)와 같이 틀림없이,
아무렴! 또 다시 다른 길로 분연 매진(邁進)할 것이다.
1947年 12月 28日
지 용
跋 文
東柱는 별로 말주변도 사귐성도 없었건만 그의 肪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가득 차 있었다. 아모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東柱 있나> 하고 찾으면 하던 일을 모두 내 던지고 빙그레 웃으며 반가히 마조 앉아 주는 것이었다.
<東柱 좀 걸어 보자구> 이렇게 散策을 請하면 싫다는 적이 없었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山이든 들이든 江까이든 아모런 때 아모데를 끌어도 선듯 따라 나서는 것이었다. 그는 말이 없이 默默히 걸었고, 恒常 그의 얼굴은 沈鬱하였다. 가끔 그러다가 외마디 悲痛한 高喊을 잘 질렀다.
<아—> 하고 나오는 외마디 소리! 그것은 언제나 친구들의 마음에 알지 못할 鬱憤을 주었다.
<東柱 돈 좀 있나> 옹색한 친구들은 곳잘 그의 넉넉지 못한 주머니를 노리었다. 그는 있고서 안주는 법이 없었고 없으면 대신 外套든 時計든 내 주고야 마음을 놓았다. 그래서 그의 外套나 時計는 친구들의 손을 거쳐 典當鋪 나드리를 부지런히 하였다.
이런 東柱도 친구들에게 굳이 拒否하는 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東柱 자네 詩 여기를 좀 고치면 어떤가> 하는 데 對하여 그는 應하여 주는 때가 없었다. 조용히 열흘이고 한달이고 두달이고 곰곰이 생각하여서 한편 詩를 誕生시킨다. 그때까지는 누구에게도 그 詩를 보이지를 않는다. 이미 보여주는 때는 흠이 없는 하나의 玉이다. 지나치게 그는 謙虛溫順하였건만, 自己의 詩만은 讓步하지를 않았다.
또 하나 그는 한 女性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이 사랑을 그 女性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끝내 告白하지 않았다. 그 女性도 모르는 친구들도 모르는 사랑을 回答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는 사랑을 제 홀로 간직한 채 苦憫도 하면서 희망도 하면서…… 쑥스럽다 할까 어리석다 할까? 그러나 이제 와 고쳐 생각하니 이것은 하나의 如惺에 對한 사랑이 아니라 이루어 지지 않을 <또 다른 故鄕>에 대한 꿈이 아니었던가. 어쨌든 친구들에게 이것만은 힘써 감추었다.
그는 間島에서 나고 日本福岡에서 죽었다. 異域에서 나고 갔건만 무던히 祖國을 사랑하고 우리말을 좋아하더니─그는 나의 친구기도 하려니와 그의 아잇적동무 宋夢奎와 함께 <獨立運動>의 罪名으로 2年刑을 받아 監獄에 들어간채 마침내 모진 惡刑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것은 夢奎와 東柱가 延專을 마치고 京都에 가서 大學生 노릇하던 中途의 일이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나 마지막 외마디소리를 지르고 殞命했지요. 짐작컨대 그 소리가 마치 朝鮮獨立萬歲를 부르는듯 느껴지더군요.>
이 말은 東柱의 最後를 監視하던 日本人 看守가 그의 屍體를 찾으러 福岡 갔던 그 遺族에게 傳하여 준 말이다. 그 悲痛한 외마디소리! 日本看守야 그 뜻을 알리만두 저도 그 소리에 느낀바 있었나 보다. 東柱 監獄에서 외마디소리로서 아조 가버리니 그 나이 스믈아홉, 바로 解放되던 해다. 夢奎도 그 며칠 뒤 따라 獄死하니 그도 才士였느니라. 그들의 遺骨은 지금 間島에서 길이 잠들었고 이제 그 친구들의 손을 빌어 東柱의 詩는 한 책이 되어 길이 세상에 傳하여 지려한다.
불러도 대답 없을 東柱 夢奎건만 헛되나마 다시 부르고 싶은 東柱! 夢奎!
(姜 處 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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