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문산문

동명왕신화(삼국유사)

New-Mountain(새뫼) 2015. 3. 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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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


고구려는 곧 졸본부여()이다. 혹은 지금의 화주() 또는 성주()라고 하나 모두 잘못된 것이다. 졸본주는 요동 경계에 있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는 이러한 내용의 글이 실려 있다.

시조 동명성제()의 성은 고씨()이고 이름은 주몽()이다. 이에 앞서 북부여왕() 해부루()가 이미 동부여()로 땅을 피해 갔다. 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때 금와는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 여기로 온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여자가 말하였다.

“저는 하백()의 딸로 이름은 유화()라고 합니다. 여러 동생들과 놀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남자가 자신을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고 말하고는 저를 웅신산() 아래 압록강 가에 있는 집으로 유인하였습니다. 거기서 남몰래 정을 통해 놓고는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단군기()』에서는 “단군이 서하(西) 하백의 딸과 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부루’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지금 이 기록을 살펴보면 해모수는 하백의 딸과 정을 통한 후 주몽을 낳았다. 『단군기』에서는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라 하였다.”고 했으니, 부루와 주몽은 배다른 형제인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중매도 없이 혼인한 것을 꾸짖으시고는, 마침내 저를 이곳으로 귀양 보내셨습니다.”

금와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그 여자를 방 속에 가두어 두었다. 그러자 햇빛이 그 여자를 비추었는데 여자가 몸을 피하면 햇빛도 쫓아와서 비추었다. 그리하여 임신을 해서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 되 정도 되었다. 왕은 그 알을 버려 개와 돼지에게 주었지만 모두 먹지 않았다. 그래서 길에 내다 버렸지만 소와 말이 모두 이 알을 피해서 다녔고, 다시 들에 버렸지만 새와 짐승들이 이 알을 덮어주었다. 왕이 알을 갈라보려고 하였지만 깨뜨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그 어머니는 알을 천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다. 그러자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골격과 외모가 영특하고 기이하였다. 나이 겨우 일곱에 기골이 뛰어나서 일반 사람들과는 달랐다. 제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는데 백번 쏘면 백번 다 맞혔다. 나라 풍속에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였기 때문에 주몽으로 이름을 지었다.

금와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어 늘 주몽과 함께 놀았지만 재주가 주몽에게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자 장남인 대소()가 왕에게 말하였다.

“주몽은 사람이 낳은 자식이 아닙니다. 만일 일찍 없애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걱정됩니다.”

하지만 왕은 이 말을 듣지 않고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였다. 좋은 말을 알아본 주몽은 먹이를 줄여 여위게 하고, 둔한 말은 잘 먹여서 살찌게 하였다. 그러자 왕은 살찐 말을 자기가 타고 여윈 말은 주몽에게 주었다.

왕의 여러 아들들과 신하들이 주몽을 해치려고 모의하자, 주몽의 어머니는 이를 알고 아들에게 말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너를 해치려고 한다. 너의 재주와 지략이라면 어디를 간들 살지 못하겠느냐? 빨리 대책을 세우도록 해라!”

그리하여 주몽은 오이() 등 세 사람을 벗으로 삼아 도망가다가 엄수()[지금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에 이르자 물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바로 천제의 아들이며 하백의 손자다. 오늘 도망가는데 뒤쫓는 자들이 거의 따라왔으니 어찌해야 좋단 말이냐?”
그러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 건너가게 한 다음, 흩어져 다리가 사라지자 쫓아오던 기병들은 건널 수 없었다.

주몽은 졸본주[현도군의 경계이다.]에 이르러 드디어 여기에 도읍을 정하였다. 하지만 미처 궁궐을 지을 겨를이 없어서 비류수() 가에 초가집을 짓고 살며 국호를 고구려라 하였다. 그리고 고()를 성으로 삼았다.[본래의 성은 해씨이다. 지금 자신이 천제의 아들로 햇빛을 받고 태어났다고 하였기 때문에 고를 성으로 삼은 것이다.] 그 당시 나이가 12세로, 한나라 효원제() 건소() 2년 갑신(기원전 37)에 즉위하여 왕이라 하였다. 고구려가 전성기였을 때는 210,508호나 되었다.

『주림전()』 제21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옛날 영품리왕()의 시녀가 임신을 하였는데, 관상을 보는 사람이 점을 치고 말하였다.
“임신한 아이는 귀하게 되어서 당연히 왕이 될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내 아들이 아니니 마땅히 죽여야겠다.”
그러자 시녀가 이렇게 말하였다.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 때문에 임신을 한 것입니다.”

그 아이가 태어나자 왕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 여기어 돼지우리에 버렸지만 돼지가 입김을 불어주었고, 다시 마구간에 버렸더니 말이 젖을 먹여주어서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이 아이가 자라서 마침내 부여의 왕이 되었다.[즉 동명제가 졸본부여의 왕이 된 것을 말한다. 이 졸본부여는 북부여의 다른 도읍이기 때문에 부여왕이라 한 것이다. 영품리()는 곧 부루왕의 다른 이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구려 [高句麗]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2012.8.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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