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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수의 소설 '검승전'

New-Mountain(새뫼) 2022. 7. 2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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劒僧傳(검승전)

 

申光洙(신광수, 1712~1775)

신영산 옮김

 

 

壬辰後五十餘年, 客有讀書五臺山者.

有僧年八十, 癯而精悍, 與之語頗黠. 常在旁, 喜聞讀書聲, 遂與客熟.

임진후오십여년 객유독서오대산자

유승년팔십 구이정한 여지어파힐 상재방 희문독서성 수여객숙

 

임진왜란 일어난 뒤 오십 년이 지난 때에, 오대산에서 독서를 하던 나그네가 있었다.

그 절에는 나이 여든쯤 되는 승려가 있었는데, 야위었지만 날쌔고 용맹스러웠으며, 더불어 이야기해 보면 꽤나 똑똑하고 날카로웠다. 늘 곁에 앉아 글 읽는 소리를 즐겨 들었기에, 나그네와 서로 친숙한 관계가 되었다.

 

一日曰 : “老僧今夜祭亡師, 不獲侍左右矣.”

夜深聞哭甚悲, 曉益酸絶. 朝見面有涕蹤.

客問 : “吾聞浮屠法, 祭不哭, 師老而甚哭, 聲若有隱痛. 何也.”

일일왈 노승금야제망사 불획시좌우의

야심문곡심비 효익산절 조견면유체종

객문 오문부도법 제불곡 사로이심곡 성약유은통 하야

 

하루는 노승이 말하였다.

“소승은 오늘 밤에 돌아가신 스승님의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기에 곁에서 뫼시지 못할 듯합니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무척이나 슬프게 우는 곡소리가 들려 왔는데,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끊어졌다. 아침에 보니 노승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어려 있었다.

나그네가 물었다.

“내 듣기로는 불가의 예법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곡을 하지 않는다는데, 스님께서는 그리 심하게 곡을 하시니, 그 소리에는 마치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이 있는 듯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僧歔欷而作曰 : “老僧, 非朝鮮人也.

淸正之北入也, 簡倭能劒者二十以下五萬. 得三萬, 三萬得萬, 萬得三千.

別部在軍前. 能百步飛擊人, 搏空鳥, 老僧 亦其一也.

승허희이작왈 노승 비조선인야

청정지북입야 간왜능검자이십이하오만 득삼만 삼만득만 만득삼천

별부재군전 능백보비격인 박공조 노승 역기일야

 

노승이 슬프게 흐느끼다가 대답하였다.

“소승은 조선 사람이 아닙니다. 가등청정이 조선의 북쪽으로 쳐들어갈 때, 왜인 중에서 검을 잘 쓰는 자를 이십 세 이하에서 오만 명을 골랐습니다. 그중에서 삼만 명을 고른 뒤에, 다시 삼만 중에서 일만 명을 추리고, 다시 일만 중에서 삼천 명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특별한 부대로 삼아 군대의 앞에 세웠습니다. 이들은 능히 백 보를 날아서 사람을 공격할 수 있었고, 공중의 새도 잡을 수 있었는데, 소승도 그 무리 중의 하나였습니다.

 

幷海九郡而北踰鐵嶺, 躙關南.

深入六鎭, 弗見人, 海有石陡立百餘. 尋見一人雨笠衣, 坐其上.

別部譟而仰發銃, 其人劒揮之, 丸輒紛紛雨落.

병해구군이북 유철령 인관남 심입육진

불견인 해유석두립백여 심견일인우립의 좌기상

별부조이앙발총 기인검휘지 환첩분분우락

 

우리 부대는 바닷가의 아홉 마을을 거쳐 북으로 철령을 넘어, 함경도를 짓밟았습니다.

함경도 육진까지 깊숙이 들어갔을 때입니다. 사람은 볼 수 없었는데, 바닷가의 언덕에 백여 길 정도 되는 바위가 솟아 있었지요. 거기에 한 사람이 도롱이를 입고 삿갓을 쓰고 그 바위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우리 부대는 고함을 지르며 총을 쏘았는데, 그 사람이 검을 휘두르자 탄환이 번번이 어지럽게 떨어졌습니다.

 

倭益忿環不去. 已而, 其人騰而鳥下, 飛劒往來, 人肩如草薙.

於是倭能劒者三千, 不殺獨老僧若一倭已.

왜익분환불거 이이 기인등이조하 비검왕래 인견여초치

어시왜능검자삼천 불살독노승약일왜이

 

왜인들이 더욱 분개하여 빙 둘러서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몸을 솟구쳤다가 새처럼 내려오며, 칼을 휘날려 오가게 하는데, 마치 풀을 베듯 사람들의 어깨를 베었습니다.

그랬더니 검을 쓰던 왜병 삼천 중에, 죽지 않은 자는 오로지 소승과 다른 왜인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其人遂按劒而嘑,

若屬三千, 其不殺若二人已. 若雖夷而讐我, 亦人已, 吾不忍盡之矣. 若能順我乎.’

, ‘死生唯命.’

二人遂從其人.

기인수안검이호,

약속삼천 기불살약이인이 약수이이수아 역인이 오불인진지의 약능순아호

왈 사생유명

이인수종기인

 

그 사람은 마침내 검을 어루만지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너희 무리 삼천 중에서 죽이지 않은 자는 너희 두 사람뿐이다. 비록 너희는 오랑캐이고, 나와는 원수지간이지만, 역시 사람이기에, 내 차마 모두 죽일 수 없었노라. 너희는 내게 순종하겠느냐?’

저희는 대답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을 오직 명령대로 하오리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마침내 그 사람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山中數年, 盡得其術, 師弟子三人, 徧游八道名山.

每至一山, 結茅住一年或半年, 輒棄去.

秋深月盛, 或登絶頂, 舞劒器淋漓. 移時, 擊石斷高松, 怒洩乃止.

然姓名不肯言.

산중수년 진득기술 사제자삼인 편유팔도명산

매지일산 결모주일년혹반년 첩기거

추심월성 혹등절정 무검기림리 이시 격석단고송 노설내지

연성명불긍언

 

산속에 머문 지 몇 해 만에, 검술을 다 익히고, 스승님과 제자 세 사람은 팔도의 명산을 두루 다녔습니다. 매번 어느 산에 이를 때마다 띠를 엮어 집을 짓고 일 년 혹은 반년 정도 살다가, 문득 버리고 옮겨가곤 하였습니다.

가을이 깊어지고 달이 찰 때면, 스승님은 산 정상에 올라서 칼춤을 힘차게 추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바위를 깨치며 높은 소나무를 끊어, 노여움이 풀리면 그제야 그치셨습니다.

하지만 스승님께서는 자신의 성명을 알려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後十年, 嘗出游, 其人覜而結屝係.

一倭忽乘後拔劒, 斷其頭. 顧老僧曰,

夫匪吾讐乎? 今日得反之矣. 吾二人, 盍間行反諸日本?’

후십년 상출유 기인조이결비계

일왜홀승후발검 단기두 고노승왈

부비오수호 금일득반지의 오이인 합간행반제일본

 

그 뒤에 십 년이 지났을 때, 어느 날 스승님이 띠집을 나서다가 몸을 굽혀서 신끈을 매려고 할 때였습니다.

다른 왜인이 별안간 그 뒤에서 검을 뽑아, 스승님의 머리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소승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저놈은 우리의 원수라. 오늘에야 원한을 비로소 갚았도다. 우리 두 사람은 사잇길로 하여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老僧目見師遇害, 狠發劒, 亦立斷其倭頭.

! 老僧與其倭, 俱倭耳. 同師數十年, 不知其日夜內懷陰賊心也.

노승목견사우해 한발검 역립단기왜두

희 노승여기왜 구왜이 동사수십년 부지기일야내회음적심야

 

소승은 눈앞에서 스승님이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는, 격노하여 검을 뽑아, 또한 그왜인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아, 소승은 그 왜인과 마찬가지로 왜인입니다. 같은 스승님을 모시고 수십 년을 지냈으나, 그날 밤에 음험하게 스승님을 해칠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旣報師讐念, ‘吾三人, 若父子兄弟, 一朝塗喪師.

又劒倭東來三千, 吾兩倭在爾, 吾殺其一倭, 顧天下一身已.

日出限漲海萬里, 居異國, 又多畏, 吾獨生何爲?’

遂大哭, 欲自殺.

기보사수념 오삼인 약부자형제 일조도상사

우검왜동래삼천 오양왜재이 오살기일왜 고천하일신이

일출한창해만리 거이국 우다외 오독생하위

수대곡 욕자살

 

소승은 스승님의 원수를 갚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아비 자식 같고 형제와 같았는데, 하루아침에 길에서 스승님을 잃었구나. 또 동쪽에서 온 삼천 명의 왜인 검객 가운데, 우리 둘만 남았는데, 내가 남은 한 왜인을 죽였으니, 돌아보니 천하에는 이 몸 하나뿐이로다. 일본은 만 리의 바다가 막혀 돌아가기 쉽지 않고, 낯선 땅에서는 또 많은 두려움이 있으니, 나 홀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고는 크게 울고는 자살하고자 하였습니다.

 

又念, ‘我日本人也. 投東澥而死.’

東走澥自投. 會海大魚鬪, 鼓浪卷落海岸, 不能再投.

卽上五臺爲僧, 食松葉四十年, 不下山.

每歲師死日, 未嘗不哭失聲.

又念, ‘我日本人也. 投東澥而死.’

동주해자투 회해대어투 고랑권락해안 불능재투

즉상오대위승 식송엽사십년 불하산

매세사사일 미상불곡실성

 

또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일본인이다. 동해에 뛰어들어 죽으리라.’

그리고 동쪽으로 가서 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마침 바다에서는 큰 물고기가 싸우고 있었는데, 그 틈에 큰 파도가 나를 말아 해안으로 떨어뜨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뛰어들 수는 없었습니다.

곧 오대산에 올라 중이 되었고, 솔잎만을 먹으며 살기를 사십 년 동안 산에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매해 스승님이 돌아가신 날이 되면, 일찍이 곡을 하여 실성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今年, 老僧八十矣. 朝夕且死, 後年今日, 欲復哭易乎.

是以甚哭, 顧安知浮屠法乎.

, 吾老於是矣, 仝寺僧, 莫知吾外國人. 今日爲措大, 一露其平生.

八十僧, 焉用諱倭.“

爲言已, 夷然乃笑. 明日不知所之.

금년 노승팔십의 조석차사 후년금일 욕부곡이호

시이심곡 고안지부도법호

희 오노어시의 동사승 막지오외국인 금일위조대 일로기평생

팔십승 언용휘왜

위언이 이연내소 명일부지소지

 

올해 소승의 나이 여든이옵니다. 조만간 곧 죽을 것이로되, 다음 해에 오늘이 와서 다시 울고자 하더라도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이리 운 것이니 어찌 절간의 예법을 돌아볼 일이 있겠습니까.

아, 소승이 여기에서 늙었으나, 같이 살았던 중들도 내가 외국 사람인 줄 모릅니다. 오늘에서야 선비님께서 비로소 평생의 자취를 드러내게 해 주셨습니다. 이 여든 먹은 중이 어찌 왜인임을 밝히는 것을 꺼리겠습니까?”

말을 마치자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다음날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外史氏曰. 劒師俠而隱者乎.

當壬辰之難, 草埜勇, 缺二字 如洪季男, 金應瑞輩, 多奮起捍賊, 立奇功.

劒師伏而弗出, 不欲以功名自顯, 何哉.

彼有異術, 誠知壬辰之變, 天數也, 非區區智力可弭.

외사씨왈 검사협이은자호

당임진지난 초야용 결이자 여홍계남 김응서배 다분기한적 입기공

검사복이불출 불욕이공명자현 하재

피유이술 성지임진지변 천수야 비구구지력가미

 

외사 씨가 이른다.

“스님의 스승은 협객이자 은자일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초야에서 용맹하고 굳센 선비들, 곧 홍계남, 김응서 같은 이들이 분기탱천하여 적을 막고 공을 세웠다.

그러나 스승은 엎드린 채 나오지 않아, 공명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자 하였다. 왜 그랬는가? 저 신기하고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이들은, 임진왜란의 변고가 하늘로부터 내려진 운명이기에, 보잘것없는 인간의 지혜로는 가히 그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自古智勇異能之士, 多不免小國尤甚焉.

雖以國朝言之, 南怡, 金德齡, 皆是已.

故劒師寧老死嵁巖而弗悔也. 豈世傳二子所遇白頭隱者, 草衣客之流也歟.

至若不言其姓名, 尤奇矣哉.

자고지용이능지사 다불면소국우심언

수이국조언지 남이 김덕령 개시이

고검사녕노사감암이불회야 기세전이자소우백두은자 초의객지류야여

지약불언기성명 우기의재

 

또 자고로 지혜와 용기와 특별한 재주를 지닌 자들도 변고를 면할 수 없었으니, 작은 나라라면 더욱 심했을 것이다. 비록 조선의 경우만 보더라도, 남이, 김덕령 등이 모두 이와 같았다.

그렇기에 스승은 차라리 험준한 산속에서 늙어 죽을지언정 후회함이 없었던 것이다. 어찌 세상에 전해진다는 두 부류의 사람들, 곧 흰머리가 되도록 세상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나, 풀 옷을 입고 숨어 사는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니겠는가.

자기 이름과 성을 말하지 않은 것에 이른 것은, 더욱 기이하지 않은가.

 

然劒師與二倭處十數年, 亦可以知心術矣.

一爲賊一爲子, 而肘腋之, 卒以其道授賊自戕. 明於保身, 闇於知人.

殆所謂單豹養內, 虎食其外者邪.

故孟子曰 : ”羿亦有罪焉.“

抑五臺老僧, 夷狄而奇男子也夫.

연검사여이왜처십수년 역가이지심술의

일위적일위자 이주액지 졸이기도수적자장 명어보신 암어지인

태소위선표양내 호식기외자사

고맹자왈 예역유죄언

억오대노승 이적이기남자야부

 

그러나 스승과 함께했던 두 왜인은 십수 년을 함께 했으므로, 역시 가히 스승의 마음 씀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는 적이 되었고, 하나는 자식과 같았는데, 곁에 있다가 마침내 길에서 적에게 스스로 죽임을 당하였다. 몸을 보호하는 데에는 밝았으나, 사람을 아는 것에는 어두웠도다.

소위 선표가 안으로는 오래 살기를 꾀했으나, 제 몸을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격이로다. 고로 맹자가 이르기를, ‘예 또한 죄가 있도다.’라고 한 것이다.

그렇지만 오대산의 노승은 오랑캐였지만, 재주가 슬기가 뛰어난 사내였음을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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