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일전(李春日傳)
이건창(李建昌, 1852~1898)
신영산 풀이
李春日, 沁邑人. 家貧無他能, 獨能飮酒.
邑南城門守者, 號門將而實賤役也.
春日求爲之. 醉輒大言曰 : 吾亦將云.
이춘일 심읍인 가빈무타능 독능음주
읍남성문수자 호문장이실천역야
춘일구위지 취첩대언왈 오역장운
이춘일은 강화도 사람이다. 집이 가난하며 다른 능력이 없었지만, 오직 술만은 잘 마셨다.
강화읍의 남쪽 성문을 지키는 사람을 가리켜, 문장(門將)이라 하였는데 실제로는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춘일은 이 문장이 되기를 갈구하였는데, 술에 취하면 문득 큰소리로 떠들곤 하였다.
“나 또한 장군이라.”
上三年, 洋人犯沁.
自鎭撫使至, 屬吏軍民悉鳥獸散. 賊皷噪而前.
時春日方隸城所.
徑至城下酒舍中, 盡取酒飮之. 還衣皁衣, 杖劍中門立.
상삼년 양인범심
자진무사지 속리군민실조수산 적고조이전
시춘일방례성소
경지성하주사중 진취주음지 환의조의 장검중문립
주상께서 즉위하신 지 3년, 양인들이 강화도를 침범했다.
진무사가 도착하였을 때는, 아전들과 군사들과 백성들이 까마귀가 흩어지듯이 모두 흩어져 달아났다. 적들은 북을 치면서 시끄럽게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 춘일은 바야흐로 강화성에 소속된 종이었다.
춘일은 곧장 성 아래에 있는 술집에 가서, 그곳에 있는 술을 다 퍼마셨다. 그리고 검은 군복으로 갈아입고, 긴 칼을 집고서 남문 가운데에 섰다.
有一老兵過而嘻曰 : 此何時, 若乃飮酒爲. 賊見皁衣人, 必殺之, 盍褫而走.
春日目直視若不聞.
老兵又嘻曰 : 若醉乃不知死耶.
前强褫之卽去, 春日又不動.
유일노병과이희왈 차하시 약내음주위 적견조의인 필살지 합치이주
춘일목직시약불문
노병우희왈 약취내부지사야
전강치지즉거 춘일우부동
이때 한 늙은 군인이 지나다가 비웃으며 말하기를,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렇게 술을 마셨는가? 적들이 군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반드시 죽일 것이다. 얼른 그 옷을 벗고 도망가라.”
하니, 춘일은 똑바로 바라보면서 마치 그 이야기를 못 들은 체하였다.
늙은 군인이 또 비웃으며 말하기를,
“아무리 술에 취했다 한들 죽을 것을 모르는가?”
하고는, 앞으로 다가가 강제로 옷을 벗기려다가 곧 가버렸지만, 춘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賊旣薄門, 春日俛取衣衣, 且拔劍.
賊恠問 : 何爲者, 獨不走.
春日張目罵曰 : 我南城門將也. 我守此門, 羯狗汝不得入. 必欲入者, 殺我乃可.
賊怒, 以刃剚之. 酒氣拂拂腹中出, 而口益罵, 至死不絶.
亂定, 留守以狀聞, 朝廷贈春日官, 旌其家.
적기박문 춘일면취의의 차발검
적괴문 하위자 독부주
춘일장목매왈 아남성문장야 아수차문 갈구여부득입 필욕입자 살아내가
적노 이인사지 주기불불복중출 이구익매 지사부절
난정 유수이장문 조정증춘일관 정기가
적들이 이윽고 성문 가까이까지 쳐들어오자, 춘일이 군복을 고쳐 입고 칼을 빼 들었다.
적들이 이상하게 여기고 묻기를,
“어떤 놈이기에 홀로 달아나지 않느냐?”
하니, 춘일이 눈을 부릅뜨고 욕을 하며,
“나는 남쪽 성문을 지키는 장군이다. 내가 이 문을 지키고 있으니, 개 같은 너희 오랑캐들은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꼭 들어오려 하는 놈은, 나를 죽여야 할 것이다.”
하였다. 이에 적들이 성을 내어 칼로 찔렀다. 뱃속에는 술기운이 술술 솟아났지만, 죽을 때까지 입에서는 욕이 그치지 않았다.
난리가 평정된 뒤에, 강화 유수가 이를 장계로 올리니, 조정에서는 춘일에게 관직을 내리고, 그의 집에 정려문을 세워주었다.
李鳳藻曰 :
沁邑有南城門, 當仁廟時淸兵至, 仙源金文忠公諸賢, 登門自焚以殉.
邑中校吏甿隷及諸公家僕從, 同日灰燼者, 指不勝計.
而門址有崇碑勒其事, 至今二百年, 赫赫如在目中.
今所云南城門者, 盖中世所徙, 非其舊云.
而春日者死於是, 烏乎可感也.
或謂春日素無識, 不飮酒, 未必能死.
吾獨怪, 古今多不能死者, 孰使其不飮酒哉.
이봉조왈
심읍유남성문 당인묘시청병지 선원김문충공제현 등문자분이순
읍중교리맹례급제공가복종 동일회신자 지불승계
이문지유숭비륵기사 지금이백년 혁혁여재목중
금소운남성문자 개중세소사 비기구운
이춘일자사어시 오호가감야
혹위춘일소무식 불음주 미필능사
오독괴 고금다불능사자 숙사기불음주재
이봉조가 말한다.
“강화도 남쪽에 성문이 있는데, 인조 때 청나라 군대가 침략해왔을 때, 선원 김문충공과 여러 어진 이들이, 이 문에 올라 스스로 불타 죽었다. 이때 강화읍에 있던 장교와 아전과 백성과 관노, 그리고 양반집 노비들도 같은 날에 타 죽었는데,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에 성문의 터에 높은 비석을 세워 그 사실을 새겨놓았으니, 지금 이백 년이 지났지만, 빛나는 업적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지금 말하고 있는 남쪽의 성문은 아마도 그 후에 옮겨 세운 것으로, 옛날의 그 자리는 아니다.
하지만 춘일이 또한 여기에서 죽었으니, 아! 감격할 만하도다.
어떤 이들은 춘일은 본래 무식한 사람이니,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이렇게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나는 홀로 괴이한 생각을 한다. 옛날부터 떳떳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누가 그들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말리기라도 하였단 말인가?”
1) 주상 : 고종 3년(1866)의 병인양요.
2) 진무사 : 바다의 방위를 맡았던 진무영(鎭撫營)의 으뜸 벼슬. 당시 진무사는 신헌(申櫶, 1810~1884)이었음.
3) 봉조 : 이 글의 작자인 이건창의 자(字)
4) 선원김문충공 :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청군이 들이닥치자 화약에 불을 질러 순국했던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을 가리킴. ‘선원’은 호이고, ‘문충공’은 시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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