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坡三友說(서파삼우설)
- 세 물건을 벗으로 삼은 뜻은
柳方善(유방선, 1388~1443)
신영산 옮김
西坡三友者, 吾友李而立之自號也.
而立, 人豪也. 少通六籍, 擅名斯文.
中乙酉科, 歷臺諫, 掌銓選, 十年宦遊, 功昭名著, 可謂天縱之才矣.
서파삼우자 오우이이립지자호야
이립 인호야 소통육적 천명사문
중을유과 역대간 장전선 십년환유 공소명저 가위천종지재의
서파삼우란 나의 벗 이이립이 스스로 지은 별호이다.
이립은 사람들 중 호걸이라 할만하다. 젊었을 때 이미 여섯 경전을 통달하여, 글로써 이름을 드날렸다.
을유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대간을 역임하였고, 관리를 골라 뽑는 직을 맡아, 십여 년을 벼슬길에 있으면서, 공로와 이름이 뚜렷이 드러냈으니, 가히 하늘이 낸 인재라 할 것이다.
歲己亥秋, 乞退南還, 居永之西坡里.
自號曰, 西坡三友, 三友者, 陽燧也, 角觥也, 鐵刀也.
세기해추 걸퇴남환 거영지서파리
자호왈 서파삼우 삼우자 양수야 각굉야 철도야.
기해년 가을에,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원하여, 남쪽으로 돌아와 영천의 서파리에 살게 되었다.
스스로 호를 짓기를 서파삼우라 하였는데, 세 벗이란 양수와 뿔잔과 쇠칼이다.
其自言 曰 :
余旣離群索居, 人不欲求友於我, 而我亦不必求友於人.
今以三者爲友, 火以司㸑, 觥以崇酒, 刀以膾鮮.
自酌自飮, 旣醉旣飽. 逍遙魚稻之鄕, 鼓舞唐虞之天.
此吾所以取友之意也, 子幸有以張之.
기자언 왈
여기리군삭거 인불욕구우어아 이아역불필구우어인
금이삼자위우 화이사촌 굉이숭주 도이회선
자작자음 기취기포 소요어도지향 고무당우지천
차오소이취우지의야 자행유이장지
그가 되는 대로 말하였다.
“내가 이미 벗들로부터 떨어져 혼자서 사니, 사람들이 나를 벗으로 삼으려 하지도 않고, 나도 역시 굳이 사람들을 벗으로 삼지 않는다네. 이제 세 가지 물건으로 벗을 삼으려니, 양수에게 불 때는 것을 맡기고, 뿔잔에게 술을 숭상하게 하고, 쇠칼에게 생선회를 뜨는 것을 맡기려 하네.
나는 스스로 술을 따르고 스스로 마실 뿐이러니, 이내 취하고 이내 배부를 게야. 그리하여 물고기 나고 쌀이 나는 시골에서 소요하면서, 요순 때의 백성처럼 태평성대를 누리려는 것이지. 이것들을 내가 벗으로 취한 뜻이라네. 자네는 이런 내 뜻을 글로 펴 주기 바라네.”
余惟友也者, 友其德也. 苟有可友之德, 則人與物, 皆可以爲友也.
故古之人, 多以物爲友者矣.
然物之可取以爲友者, 非獨此也, 而必以此爲友者, 豈眞以爲口腹之計乎.
子所言者謙也.
여유우야자 우기덕야 구유가우지덕 칙인여물 개가이위우야
고고지인 다이물위우자의
연물지가취이위우자 비독차야 이필이차위우자 기진이위구복지계호
자소언자겸야
내가 생각하기를 벗을 사귄다는 것은, 그 마음의 덕을 벗하는 것이리라. 진실로 벗을 삼을 만한 덕이 있다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모두 벗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옛사람 중에는, 물건으로 벗을 삼은 자가 많았다.
하지만 물건 중에 가히 벗으로 삼을만한 것이 유독 이 셋뿐만이 아닌데, 이립이 반드시 이것들로써 벗을 삼은 것이, 어찌 진실로 입으로 먹고 배를 채우기 위한 계책 때문이었겠는가. 아마도 이립이 겸손하게 말한 것이리라.
吾觀陽燧者, 取火器也.
一得其火, 而使之不滅, 則其光無不照, 如德之一明, 而使之不息, 則其明無不盡.
取此火者, 存此思, 則必有日新又新之功矣, 豈止卬烘于煁而已也.
오관양수자 취화기야
일득기화 이사지불멸 칙기광무부조 여덕지일명 이사지불식 칙기명무부진.
취차화자 존차사 칙필유일신우신지공의 기지앙홍우심이이야
내가 보기에 양수는 불을 얻기 위한 기구이다.
한번 그 불을 얻어 꺼지지 않게 하면, 그 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 없기에, 마치 마음의 밝은 덕을 한 번 밝혀서, 그치지 않게 하면서, 그 밝음을 다하지 않게 하려는 것과 같다.
이 불을 취하려는 자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면, 반드시 날로 새롭고 또 새로워지는 공이 있으리니, 어찌 화덕에 불을 피우려고 하는 것뿐이겠는가.
觥之爲物, 角也.
虛中而向內, 有臨下之道. 其入也, 或淸或濁, 懷有容之量.
用其器者, 思其德, 則必有休休樂善之心矣. 何有三爵不識之患乎.
굉지위물 각야
허중이향내 유림하지도 기입야 혹청혹탁 회유용지량
용기기자 사기덕 칙필유휴휴락선지심의 하유삼작불식지환호
뿔잔이라는 물건은 바로 뿔로 된 것이다.
가운데가 비고 안쪽으로는 아래로 내려가려는 길이 있다. 거기에 들어가는 것이 맑거나 흐리거나 모두 포용하는 아량을 품고 있다.
그 그릇을 쓰는 자가 그 덕을 생각하면, 반드시 도를 즐기고 선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니. 어찌 겨우 석 잔을 마시고 우환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겠는가.
若乃刀則金也. 其氣配秋, 而其德在利矣.
用其利於物, 則陳平之分肉, 甚均也. 用其利於政, 則如晦之制事, 善斷也.
執此刀, 審所用, 則游刃有餘地矣, 彼嗚敢當我之足言哉.
약내도칙금야 기기배추 이기덕재리의
용기리어물 칙진평지분육 심균야 용기리어정 칙여회지제사 선단야
집차도 심소용 칙유인유여지의 피오감당아지족언재
칼이라는 것은 쇠이다. 그 기운은 가을에 걸맞고, 그 덕은 예리한 데 있다.
그 예리함을 물건에 써서 진평은 고기를 썰기를 매우 균등히 하였고, 그 예리함을 정치에 써서 두여회는 사건 처리에 결단을 잘하였다.
이 칼을 잡고 그 쓰이는 바를 잘 살피면, 칼 쓰기를 여유롭게 할 것이니, 어찌 남들이 감히 나의 옳은 말을 당하겠는가.
是則內而自修之方, 外而臨民之道, 實具於三者之中.
而夫子所稱之益友, 孟氏所論之尙友, 端不過此矣.
以斯人而得斯友, 可謂知取友之法. 而其所取以善者, 夫豈小哉.
시칙내이자수지방 외이림민지도 실구어삼자지중
이부자소칭지익우 맹씨소론지상우 단불과차의
이사인이득사우 가위지취우지법 이기소취이선자 부기소재
이는 안으로 스스로 몸을 닦는 방법과, 밖으로는 백성에 임하는 도리가 실로 이 세 가지 가운데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공자가 말한 ‘유익한 세 벗’과 맹자가 논한 ‘옛사람을 벗한다’라는 말이 본래 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이러한 벗을 얻었으니, 가히 벗을 취하는 법을 안다고 이를 만하다. 그 취하여 잘 쓰는 바가 어찌 작겠는가.
他日應束帛之徵, 膺具瞻之責, 進退百官, 陶甄一世.
上贊南面之化, 下垂竹帛之名者.
未必不資於三友之力也歟.
타일응속백지징 응구첨지책 진퇴백관 도견일세
상찬남면지화 하수죽백지명자
미필부자어삼우지력야여
이립이 훗날에 예를 갖춘 임금의 부름에 응하고, 대신의 직책을 받아서, 관리들을 등용하거나 물러나게 하면서, 일세의 인재를 만들리라. 위로는 임금의 다스림을 돕고, 아래로 빛나는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전하게 되리라.
그렇게 된다면, 반드시 이 세 벗에게 힘입지 않았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嗚呼, 大丈夫生斯世也, 遇不遇天也.
雖然, 方今聖明在上, 泰道維新, 拔茅彙征, 惟其時也,
吾何不爲豫哉, 當刮目以竢云耳,
오호 대장부생사세야 우불우천야
수연 방금성명재상 태도유신 발모휘정 유기시야
오하불위예재 당괄목이사운이
아, 대장부가 이 세상에 나서 때를 만나고 못 만나는 것은 하늘이 정한 운명이리라. 비록 그러하기는 하지만, 바야흐로 지금은 밝은 임금이 위에 계셔, 도가 더욱 커지고 새로워져, 만물이 무성한 때를 만났도다.
내 어찌 기뻐하지 않으리오. 마땅히 눈을 씻고 이립의 정진을 기다리겠노라.
* 육적 :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예경(禮經)·악경(樂經)·춘추(春秋)
* 양수 : 문질러 불을 내게 하는 구리로 만든 물건.
* 진평; 한나라 건국 공신. 젊은 시절 마을 제사에 사용했던 고기를 나눠주는 일을 했는데, 정확하게 고기를 잘 나누어 서운하게 여긴 사람이 없었다고 함.
* 두여회 : 당나라 초기의 명재상. 당나라이 법을 새로 만들었고, 정사를 처리함에 있어 한치의 망설임도 없어서 마치 칼질을 하는 듯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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