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문산문

박지원의 '공작관문고 자서'

New-Mountain(새뫼) 2022. 7. 4.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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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관문고 자서(孔雀館文稿 自序)

- 공작관문고를 짓고 스스로 서문을 짓다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신영산 풀이

 

 

文以寫意則止而已矣.

彼臨題操毫, 忽思古語, 强覓經旨, 假意謹嚴, 逐字矜莊者.

譬如招工寫眞, 更容貌而前也.

目視不轉, 衣紋如拭, 失其常度, 雖良畵史, 難得其眞.

爲文者亦何異於是哉.

문이사의칙지이이의

피림제조호 홀사고어 강멱경지 가의근엄 축자긍장자

비여초공사진 갱용모이전야

목시부전 의문여식 실기상도 수량화사 난득기진

위문자역하이어시재

 

글이란 뜻을 그려내면 그만일 따름이다.

글제를 맞닥뜨리고 붓을 잡은 채, 갑자기 옛말을 생각한다거나, 억지로 경서에서 뜻을 찾아내어, 일부러 근엄한 척하고 글자마다 정중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비유하자면 화공을 불러 초상을 그리게 할 적에, 용모를 가다듬고 그 앞에 나서는 것과 같다.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채로, 평소 태도를 잃어버린다면, 비록 훌륭한 화공이라도, 그 참모습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글을 짓는 사람도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語不必大, 道分毫釐, 所可道也, 瓦礫何棄.

故檮杌惡獸, 楚史取名, 椎埋劇盜, 固是叙, 爲文者惟其眞而已矣.

以是觀之, 得失在我, 毁譽在人. 譬如耳鳴而鼻鼾.

어불필대 도분호리 소가도야 와력하기

고도올악수 초사 취명 추매극도 천 고시서 위문자유기진이이의

이시관지 득실재아 훼예재인 비여이명이비한

 

말이란 거창할 필요가 없으며, 도라는 것도 털끝만한 차이로도 나뉘는 법이니, 도라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부서진 기와나 벽돌인들 어찌 버리겠는가.

그렇기에 도올(檮杌)은 사악한 짐승이지만 초 나라의 역사책에서 그 이름을 취하였고, 사람들을 몽둥이질을 하여 몰래 묻어버렸던 극악한 도적도, 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가 기록으로 남겼으니, 글을 짓는 사람은 오직 그 진실함을 적을 따름이다.

이것으로 보자면, 글에서 얻거나 잃게 되는 것은 내게 달린 것이고, 비방 받거나 칭찬받는 것은 남에게 달린 것이다. 비유하자면 귀가 울리고 코를 고는 것과 같다.

 

小兒嬉庭. 其耳忽鳴, 啞然而喜, 潛謂鄰兒曰 :

“爾聽此聲, 我耳其嚶, 奏鞸吹笙, 其團如星.”

鄰兒傾耳相接, 竟無所聽, 閔然叫號, 恨人之不知也.

소아희정 기이홀명 아연이희 잠위린아왈

이청차성 아이기앵 주필취생 기단여성

인아경이상접 경무소청 민연규호 한인지부지야

 

한 아이가 뜰에서 놀다가, 제 귀가 갑자기 울리자, 뜻밖에 놀라서 기뻐하며, 가만히 이웃집 아이에게 말하기를,

“너, 이 소리 좀 들어 보렴. 내 귀에서 앵앵하며 피리 소리, 생황 소리가 나는데, 별같이 동글동글하다.”

하니, 이웃집 아이가 귀를 기울여 맞대어 보았으나, 끝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자, 민망하여 소리치며 남이 몰라주는 것을 한스럽게 여겼다.

 

甞與鄕人宿, 鼾息磊磊, 如哇如嘯, 如嘆如噓.

如吹火, 如鼎之沸, 如空車之頓轍. 引者鋸吼, 噴者豕豞.

被人提醒, 勃然而怒曰 : “我無是矣.”

상여향인숙 한식뢰뢰 여왜여소 여탄여허

여취화 여정지비 여공거지돈철 인자거후 분자시후

피인제성 발연이노왈 아무시의

 

일찍이 어떤 촌사람과 잠을 잔 적이 있었는데, 코 골기를 드르렁드르렁하니, 마치 토하는 것 같았고, 휘파람 부는 것 같았으며, 한숨 짓는 것 같았고, 큰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후후 불을 때며 부는 것 같았고, 솥의 물이 끓는 것 같았으며, 빈 수레가 덜컹거리며 구르는 것 같았다. 들이쉴 땐 톱질하는 소리가 나고, 내뿜을 때는 돼지처럼 꺽꺽대었다.

그러다가 남이 일깨워 주자 발끈 성을 내며,

“난 그런 일이 없소.”

하는 것이다.

 

, 乎己所獨知者, 常患人之不知, 己所未悟者, 惡人先覺, 豈獨鼻耳有是病哉.

文章亦有甚焉耳.

耳鳴病也, 閔人之不知, 况其不病者乎.

鼻鼾非病也, 怒人之提醒, 况其病者乎.

차 호기소독지자 상환인지부지 기소미오자 오인선각 기독비이유시병재

문장역유심언이

이명병야 민인지부지 황기불병자호

비한비병야 노인지제성 황기병자호

 

아, 자기만 홀로 아는 것을 남이 몰라줄까 봐 항상 근심하고, 자기는 깨닫지 못한 것을 남이 먼저 깨닫게 될까 싫어하나니, 어찌 오로지 코와 귀에만 이런 병이 있겠는가?

문장에도 또한 이런 경우가 있는데 더욱 심할 따름이다.

귀 울리는 것은 병인데도 남이 몰라줄까 봐 걱정하는데, 하물며 병이 아닌 것에 있어서랴? 코 고는 것은 병이 아닌데도, 남이 일깨워 주면 화를 내니, 하물며 병에 있어서랴?

 

故覽斯卷者, 不棄瓦礫, 則畵史之渲墨, 可得劇盜之突髩.

毋聽耳鳴醒我鼻鼾 則庶乎作者之意也.

고람사권자 불기와력 칙화사지선묵 가득극도지돌빈

무청이명성아비한 칙서호작자지의야

 

그러므로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이, 부서진 기와나 벽돌처럼 버리지 않는다면, 화공이 수묵화를 그리듯이, 극악한 도적의 튀어나온 귀밑털까지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남의 귀 울리는 소리를 들으려 말고, 나의 코 고는 소리를 깨닫는다면, 거의 작자가 의도하려 했던 뜻에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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