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문산문

이학규의 '박꽃이 피는 집(포화옥기)'

New-Mountain(새뫼) 2022. 6. 2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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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옥기(匏花屋記)

- 박꽃이 피는 집

 

이학규(李學逵, 1770~1835)

신영산 옮김

 

 

洛下生之屋, 高不及一仞, 廣不及九咫. 揖讓則妨帽, 寢處則跼膝.

盛夏之日, 斜光所注, 窗戶爀然.

乃於環阫之下, 種匏十餘本, 蔓莚芘屋.

藉其陰翳, 更蟁蜹棲其暗, 蛇虺蔭其凉.

낙하생지옥 고불급일인 광불급구지 읍양칙방모 침처칙국슬

성하지일 사광소주 창호혁연

내어환배지하 종포십여본 만연비옥

자기음예 갱문예서기암 사훼음기량

 

낙하생(작자의 호)의 집은, 높이는 한 길이 채 못 되고, 너비도 아홉 자가 채 못 되었다.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하려 해도 갓이 방해되었고, 잠을 자려하면 무릎을 구부려야 했다. 한여름에 햇볕이 쏟아지기라도 하면 창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래서 둥글게 담장을 두르고 그 밑에다 박 십여 그루를 심었더니, 넝쿨이 자라 집을 가려 주었다. 하지만 그 그늘에서 모기와 파리들이 서식했고, 뱀과 도마뱀들이 그늘의 서늘한 곳에 웅크리곤 하였다.

 

昬夜屢興, 持鐙燭廵戶庭.

定靜則疲於搔痒, 振迅則惧此辛螫. 憂瘁日甚, 發爲疢疾, 爲消中, 爲痞懣.

見人客則具言其狀.

혼야루흥 지등촉순호정.

정정칙피어소양 진신칙구차신석 우췌일심 발위진질 위소중 위비만

견인객칙구언기장

 

그렇기에 어두운 밤에는 자주 일어나 등불을 들고 마당을 살펴야 했다.

가만히 있으면 가려워서 긁느라고 지치게 되었고, 이리저리 움직이면 쏘아대는 것들이 두려웠다. 이것들을 걱정하고 신경 쓰느라고 병이 생겼으니, 소갈증이 심해졌고, 가슴도 막힌 듯이 답답했다.

그래서 찾아오는 손님에게 이런 사정을 자세히 말하곤 했다.

 

客有從洌上來者, 聞言而愍之.

已又述其前日身自歷遭者而告之曰 :

某少也貧, 爲貿遷之事, 凡嶺以南津亭驛舍竆邨小店, 足迹無不至焉.

객유종렬상래자 문언이민지

이우술기전일신자력조자이고지왈

모소야빈 위무천지사 범영이남진정역사궁촌소점 족적무부지언

 

그런데 나그네 중에 서울에서 온 사람이 있어, 내 말을 듣고 나서 위로하였다.

그리고 예전에 자신이 몸소 겪은 것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저는 어려서부터 집이 가난하여 장사를 했다오. 영남 땅의 나루터와 정자와 역과, 궁벽한 고을의 작은 주점에 이르기까지, 제 발길이 닫지 않은 곳이 없었지요.

 

若値盛夏之月, 行旅會同.

則其爲令宰使价者, 先據邃閤以招凉. 所有風廊露牀, 又爲其傔從伍伯所占便.

惟其燠堗煗牀, 鑿壁以燎松明, 剟簟以攘鼈蝨者, 爲不爭之地.

而吾曹之所信宿者也.

약치성하지월 행려회동

칙기위령재사개자 선거수합이초량 소유풍랑로상 우위기겸종오백소점편

유기욱돌난상 착벽이료송명 철점이양별슬자 위부쟁지지

이오조지소신숙자야

 

만약 한여름 철에 다니다 보면, 나그네들이 한곳에 모인답니다.

그러면 수령과 벼슬아치들이 먼저 내실을 차지하여 서늘하게 지내지요. 바람 부는 행랑과 바깥의 평상은 또 시중드는 무리의 차지랍니다.

오직 후덥지근한 구들방이나, 관솔불을 밝히려 벽에 구멍을 뚫어둔 방이나, 삿자리나 깔아 빈대나 겨우 쫓아낼 수 있는 곳이나 다투지 않는 곳이지요.

우리 같은 무리가 묵고 지낼 수 있다고 믿는 곳입니다.

 

夜深則人氣熏蒸, 若鬵鬲之饙餾焉.

亦有狐臭者, 矢氣者, 鼾䨓者, 齘戛者, 疥而爬者, 藝而詬者, 聲態百出, 不可殫述.

其有毷氉不耐者, 褰衣絝夾薦藉. 徧覓廚棧碓屋牛宮馬皁, 而已四五遷矣.

야심칙인기훈증 약심격지분류언

역유호취자 시기자 한뢰자 계알자 개이파자 예이후자 성태백출 불가탄술

기유모소불내자 건의고협천자 편멱주잔대옥우궁마조 이이사오천의

 

밤이 깊어지면 사람들의 열기가 달아올라, 마치 가마솥의 밥을 다시 뜸 들일 수 있을 듯하지요.

또 고약한 냄새가 나는 사람, 방귀를 뀌어대는 사람, 코를 고는 사람, 이를 가는 사람, 옴에 걸려 긁어 대는 사람, 잠꼬대하며 욕을 해대는 사람 등, 온갖 소리와 모양이 나타나니,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답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도저히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은, 옷가지를 들고 돗자리를 끼고서, 부엌 바닥이나 외양간, 마구간 등을 찾아다니며 잠자리를 옮기는데, 네댓 번씩이나 한답니다.

 

每見爲逆旅之傭奴者. 垢首膩面, 侁侁爲牛馬走,

朝暮仰餔于行人之餘, 放飯流歠, 無不甘之. 旣醉且飽, 偃仰卽寐.

吾曹之向所不耐者, 彼卽安之如凄凔之辰, 爽塏之宮.

觀其態色, 則雖襤褸百結之中, 而肌理充實, 無菑無害, 以永其天秊.

매견위역려지용노자 구수니면 신신위우마주

조모앙포우행인지여 방반류철 무불감지 기취차포 언앙즉매

오조지향소불내자 피즉안지여처창지신 상개지궁

관기태색 칙수람루백결지중 이기리충실 무치무해 이영기천년

 

그러나 매번 보게 되면 여관집의 노비들은 우리와 다르지요. 때가 낀 얼굴을 하고 부지런히 소나 말처럼 오가며 일을 한답니다.

아침저녁으로 나그네들이 남기거나 버린 음식을 핥아먹어도, 달지 않은 음식이 없습니다. 취하고 배부르면 눕자마자 곧 잠이 들지요.

우리가 예전에 견뎌내지 못한 것들을 그 사람은 편하게 여기니, 마치 쌀쌀한 새벽에 시원한 궁궐에서 자는 것 같이 한답니다.

저들의 모습을 볼 것 같으면, 비록 옷은 해져 여기저기를 꿰매었지만, 살결은 튼튼하니, 특별한 재앙을 겪지 않고, 천명을 누리는 게지요.

 

是無它, 彼以其所處爲逆旅, 以爲命分之固有焉.

無懻忮憂思之勞其情, 而呻吟噦噫之閼其氣. 故能無菑無害.

永其天秊者也.

시무타 피이기소처위역려 이위명분지고유언

무기기우사지로기정 이신음홰희지알기기 고능무치무해

영기천년자야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저들은 자기가 사는 곳이 다만 들러서 가는 여관이라 여기고, 지금의 운명도 정해진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온갖 걱정과 근심으로 자기 마음을 상하게도 하지 않으며, 신음하고 탄식하느라 자신의 기운을 막지도 않는답니다. 그렇기에 특별한 재앙을 입지 않고 천명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지요.

 

且夫今世者, 斯吾養生送死之逆旅, 而逆旅者. 又其一宿再信之逆旅也.

今吾子旣寓形于斯逆旅之內, 而又流離窘束, 竄身竆谷.

是又見居于逆旅之逆旅者也.

차부금세자 사오양생송사지역려 이역려자 우기일숙재신지역려야

금오자기우형우사역려지내 이우류리군속 찬신궁곡

시우견거우역려지역려자야

 

대저 지금의 이 세상은, 살아있는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여관일 뿐이지요. 여관이란 것은 하루나 이틀을 묶고 가는 곳이고요.

지금 그대는 이러한 여관에 몸을 잠시 의탁하였다가, 또 멀리 떠나가면 막힌 골짜기에 몸을 묻게 됩니다.

이것으로 보자면 우리는 지금 여관 속의 여관에 기거하는 것이지요.

 

彼傭奴者, 不識不知, 徒以逆旅爲逆旅,

而健飮食, 佚寢興, 寒暑不能害, 疾病不爲菑,

피용노자 불식부지 도이역려위역려

이건음식 일침흥 한서불능해 질병부위치,

 

하지만 저 여관의 노비는 무식할 뿐이니, 다만 여관을 여관으로 여길 뿐입니다.

건강하게 먹고, 편안하게 자고 일어날 뿐이니, 추위와 더위도 해를 입힐 수 없으며, 질병도 해치지 못하겠지요.

 

而吾子守道順命, 知素履而行者也. 猶且居逆旅之逆旅, 而不以爲逆旅.

而自煎熬其眞火, 椓害其元氣, 疾病旣興, 危死立至.

吾子所願學者, 昔之聖哲, 而顧不能如逆旅之爲傭奴者乎.

이오자수도순명 지소리이행자야 유차거역려지역려 이불이위역려

이자전오기진화 탁해기원기 질병기흥 위사립지

오자소원학자 석지성철 이고불능여역려지위용노자호

 

그런데 그대는 도을 지키고 운명에 순응하며, 소박하게 행동하는 분입니다. 하지만 여관 중의 여관에서 지내면서도, 여관 중의 여관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이는 스스로 화를 북돋우고 들볶아 원기를 해치는 것이기에, 병이 생겨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대가 배우기를 바라는 것은 옛 성현의 명철함인데, 여관집 노비가 하는 것만큼도 못하고 있나이다.”

 

乃次第其言而書之壁, 以爲匏花屋記.

내차제기언이서지벽 이위포화옥기

 

이에 이번에 그의 말을 벽에 적고, ‘포화옥기’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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