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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 쓴 '옹고집전'

New-Mountain(새뫼) 2022. 6. 1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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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국소)옹고집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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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당 우물과 옹당 연못이 있는 옹진골의 옹당촌에 한 사람이 있되, 성은 옹이요, 이름은 고집이라. 성질과 버릇이 고약하여 풍년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심술이 맹랑하여 모든 일에 고집을 피우더라.

집안 살림을 보게 되면 석숭의 부유함과 도주공의 명성이나 위세도 부러워하지 아니하더라.

앞뜰에는 쌓아놓은 곡식이요, 뒤뜰에는 화려한 담장이라. 울 밑에 벌통 놓고, 오동나무 심어 정자 삼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어 집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하고, 사랑방 앞에 연못 파고 연못 위에 작은 돌산을 쌓아 놓고, 돌산 위에 한 칸 초당을 지었으되, 네 모퉁이에 풍경을 달았더라.

은은하게 맑은소리 바람결에 흩어 들려오고, 못 가운데 금붕어는 물결 따라 뛰노는데, 동쪽 뜨락의 모란꽃은 반만 피어 너울너울, 왜철쭉 진달래는 활짝 피었다가 삼월 봄바람의 모진 바람에 심하게 맞아 떨어지고, 서쪽의 앵두꽃은 담장 안에 너울너울, 영산홍 자산홍은 물에 비치어 방금 화려하게 웃고 있고, 매화꽃 복숭아꽃 가득 피었는데, 사랑 치레를 보면 찬란하다.

팔작집의 어간대청에는 삼층 난간이요, 세살창문, 들장지, 영창에는 안팎으로 걸쇠와 구리 사북을 걸고, 쌍룡 새긴 손잡이는 온갖 채색 영롱하여 반공중에 솟아 있고, 벼락닫이 앞에 여덟 첩 병풍 펼쳐놓고, 요강 대야 밀쳐놓고, 며늘아기 명주 짜고, 딸 아기 수를 놓으며, 곰배팔이 갈대로 자리 꿰고, 앉은뱅이 방아 찧고,

올해로 팔십 된 늙은 모친 병들어 누웠는데, 닭 한 마리 약 한 첩도 봉양하지 아니하고, 아침에는 밥이요 저녁에는 죽으로 대접하니, 냉돌방에 홀로 누워 서러워 울며 하는 말이,

“너를 낳아 길러낼 제, 몹시도 사랑하고 귀히 여겨, 내 마음이 보석같이 사랑하여 어르면서 하는 말이,

‘은 같고 금 같은 내 아이야, 티 없는 모습 같은 자태로다. 백옥 같은 내 아이야, 이 세상의 모든 것 중에 해와 달 같은 내 아이야. 아기 사랑, 기쁘고 즐겁게 해주는 내 아이야. 하늘같이 어질어져라. 땅같이 넓게 되어라. 금을 준들 너를 사랴, 은을 준들 너를 사랴, 하늘이든 세상이든 값으로 칠 수 없는 보물은 너 하나뿐이로다.’

이같이 사랑하여 너 하나를 길렀더니, 천지간에 이런 공을 모르느냐. 옛날 왕상이는 얼음 속에서 잉어 낚아 부모를 봉양하였으니, 그렇지는 못하여도 불효는 면하여라.”

음흉한 고집 이놈이 어미 말에 대답하되,

“진시황 같은 이도 만리장성 쌓아두고, 아방궁 높이 지어, 삼천 궁녀 곁에 두고 천년이나 살자더니, 외딴 산에 무덤 하나를 못 면하여 죽었고, 싸울 때마다 승리하던 초패왕도 오강에서 죽어 갔고, 안연 같은 어진 학자도 삼십에 일찍 죽었거든 오래 살아 무엇하리.

옛글에서 말하기를 세상에서 칠십 년 살기는 희한한 일이라 하였으니, 올해로 팔십 되신 우리 모친 오래 살아 쓸데없네. 오래 살기 바라시는 우리 모친 뉘라서 목숨을 끊으리. 도척이 같은 몹쓸 놈도 오래전에 저승에 갔거든 무엇이 옳다 그르다 말할쏜가.”

이놈 심사 이러한 중에 또한 불도를 능멸하여 무죄한 중을 보게 되면 결박하여 귀를 뚫고, 어깨 타고 뜸질하기 유명하더라. 이놈 욕심 이러하니 옹가 집 근처에는 동냥중이 갈 수 없다.

 

이때 월출봉 취암사에 한 도사가 있되, 높은 술법은 귀신도 측량하지 못할러라.

도사가 학대사를 불러 하는 말이,

“옹당촌에 옹좌수라 하는 놈이 불도를 능멸하고, 중을 보면 원수같이 한다 하니, 그놈의 집에 가서 책망하고 돌아오라.”

학대사, 거동 보소. 헌 굴갓에다 삼베 장삼 걸쳐 입고, 백팔염주 목에 걸고, 육환장을 손에 들고 허위허위 내려오니, 계수나무꽃은 화려하게 피어 있고, 산새는 슬피 울어 갈 길을 재촉한다.

꽃비 오는 석양 무렵 옹가 집에 다다르니, 어간대청 너른 집에 네 귀에 풍경 달고, 안팎 중문 솟을대문 좌우로 열었는데, 목탁을 딱딱 치며 권선문을 펼쳐놓고 염불하며 절을 할 제,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자재보살님께 비옵나니, 주상 전하, 왕비 전하 만세를 누리옵소서. 시주 많이 하옵소서. 극락세계로 가오리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때 종 할미 중문에 의지하고 하는 말이,

“노스님, 노스님, 저 노스님. 소문도 못 들었나. 우리 댁 좌수님이 초당에서 봄 잠을 넉넉히 자기는 하였지만, 기침도 아니 하였으니, 만일 잠을 깨거드면 동냥은 고사하고 귀 뚫리고 갈 것이니 어서 바삐 돌아가소.”

저 노스님 대답하되,

“높고도 큰 다락 집에서 중의 대접 그리할까. 악함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이요, 선함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을 것이라 하나이다. 소승이 영암 월출봉 취암사에 사옵더니 법당이 낡아 무너지게 되어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귀댁에 왔사오니, 황금 일천 냥만 시주하옵소서.”

합장하고 절을 하며 목탁을 뚜드리니, 옹좌수 거동 보소. 밀창문을 열치면서,

“어찌 그리 요란하냐?”

종놈이 여쭙되,

“문밖에 중이 와서 동냥 달라고 하나이다.”

좌수, 골을 바짝 내어 성낸 눈깔 내두르며 악한 소리 지르면서,

“괘씸한 이 중놈아. 시주하면 어쩐다느냐?”

저 노스님 대답할 제, 육환장을 눈 위에 높이 들어 합장하고 절을 하며 하는 말이,

“황금 일천 냥만 시주하옵시면, 소승의 절에 가서 수륙재를 올릴 적에, 아무 면 아무 촌에 사는 아무라고 축원을 올리오면 소원대로 되나이다.”

옹좌수 하는 말이,

“가소롭다, 네 말이라.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태어날 제, 부귀함과 빈천함과 자손이 있고 없음을 운수에 따라 분별하여 내었거늘, 네 말대로 한다면 가난할 이 뉘 있으며, 자식 없는 이 뉘 있으리.

속된 말로 일렀으되, 사람 중의 맨 밑자리는 중이라. 네 마음 고약하여 부모 은혜 배반하고 머리 깎고 중이 되어 부처의 제자라고 아미타불 거짓 공부하고, 어른 보면 동냥 달라, 아이 보면 가자 하고, 불충에다 불효에다 너의 행실 내 이미 알았으니 동냥 주어 무엇하리.”

저 노스님 대답하되,

“청룡사에 축원하여 만고 영웅 소대성을 낳아 충성을 다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게 하였고, 천수경 공부를 고집하여 주상 전하 만세를 아침저녁으로 발원하니,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함이 아니며 부모에게 은혜를 갚음이 아니리까. 그런 말씀 마옵소서.”

옹좌수 하는 말이,

“네 무슨 지식이 있느냐? 내 관상을 보아 다오.”

노스님 말하기를,

“좌수님의 관상을 살펴보니, 눈썹이 길고 미간이 넓었으니 명성과 위세는 넉넉하나, 누당이 보잘것없으니 자손이 부족하고, 얼굴이 좁았으니 남의 말은 아니 듣고, 손발이 작았으니 비명에 죽을 듯하고, 말년에 상한병을 얻어 고생하다 죽으리다.”

옹좌수 성을 내어 종놈을 부르되,

“돌쇠, 몽치, 깡쇠야. 저 중놈 잡아내라.”

저 종놈 거동 보소. 눈들을 부릅뜨고 천둥같이 달려들어 헌 굴갓 벗겨 내던지고, 두 귀 더뻑 잡아 높은 돌 위에다 휘휘 둘러 동당이질 쳐 잡아내니, 좌수가 호령하되,

“모질고 밉살스러운 이 중놈아. 들어보아라. 진도남 같은 이도 중을 불가하다 하고, 구름 낀 숲속에 들어가 숨어 살았느니, 너 같은 모질고 밉살스러운 놈이 거짓으로 불도를 핑계하고, 남의 돈과 곡식을 달라 하니, 너 같은 놈을 그저 두랴.”

귀를 뚫고 몽둥이로 삼십 대를 매우 때려 끌어 내치니, 학대사가 높은 술법 부려 완연히 돌아가서 절문으로 들어가니, 모든 스님이 영접하여 연고를 물으니,

학대사 대답하되,

“여차여차 하였노라.”

여러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의 높은 술법으로 염라왕께 전갈하여, 강림도령을 보내달라 하여 옹고집을 잡아다가 지옥에 엄히 가두고, 영원히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하옵소서.”

“그것은 불가하다.”

“그러하오면 해동청 보라매 되어 푸른 하늘 구름 사이에 높이 떠서 서산에 머물다가 표연히 달려들어, 옹가 대가리를 두 발로 더뻑 쥐고, 두 눈을 잘 익은 한데 수박 파듯 하여이다.”

“아서라, 그것도 못하리라.”

“그러하오면, 첩첩한 푸른 산에 사나운 범이 되어 깊은 삼경 밤에 담장을 넘어가서 옹가를 물어다가, 산 높고 계곡 깊은 사람 없는 곳에서 뼈 없이 먹게 하사이다.”

“그것도 또한 못하리라.”

“그러하오면, 신미산 여우 되어 화려하게 붉은 옷을 곱게 입고, 계집을 좋아하는 고집의 품에 안겨 붉은 입술에 흰 이를 반쯤 열어 좋은 말로 옹고집을 속일 적에,

‘첩은 본디 달나라 선녀로 옥황상제께 죄를 지어 인간 세상에 내치시매 갈 바를 모르더니, 산신령께서 지시하여 좌수님과 연분 있다 하옵기로 찾아왔나이다.’

하며 온갖 교태 내보이면, 옹가 필경 크게 혹해 등을 치며 배를 만지면서 온갖 희롱하다가, 찬 바람에 몸을 상하게 될 것이니, 그리 죽게 하옵소서.”

“아서라, 그것도 못하리라.”

학대사, 거동 보소. 별로 괴이한 꾀를 내어 짚 한 뭇 내어놓고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보니 분명한 옹고집이라. 부적을 써 붙이니 이놈의 화상 보소. 말머리 주걱턱이 하릴없는 옹가일레라.

 

옹가 집을 찾아가서 사랑문을 열뜨리고 분부할 제,

“늙은 종 돌쇠야. 젊은 종 몽치 깡쇠야. 어이 그리 거만하냐. 말 콩 주고 여물 썰어라. 춘단아 방 쓸어라.”

하며 천연덕스럽게 앉았으니, 분명한 옹좌수라.

진짜 옹가 들어오며 하는 말이,

“어떠한 손이 와서 사랑을 요란하게 하느냐?”

가짜 옹가 나앉으며,

“그대 어인 사람으로 예 없이 들어와서 주인인 체하느뇨?”

진짜 옹가 성을 내어 호령하며 왈,

“네가 나의 살림살이 넉넉함을 듣고 재물을 탈취하려 하고, 안뜰에 뛰어들었으니, 강쇠야 이놈 잡아내라.”

종놈들 대답하고 달려드니, 가짜 옹가 나앉으며 호령 왈,

“강쇠야, 저놈 잡아내라.”

노복들이 어처구니없어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니, 이 옹가와 저 옹가가 같은지라.

두 옹가가 서로 때리며 다투니, 흰 구름 깊은 곳에 숨어 사는 선비를 찾기는 쉬울지나, 대낮 대청 위 이 방에서 우리 댁 좌수님은 찾을 가망이 전혀 없어 잠자코 말이 없어 안으로 들어가서 하는 말이,

“일이 났소, 일이 났소. 아씨님 일이 났소. 사랑에서 일이 났소. 우리 댁 좌수님이 둘이 되었으니 보는 바 처음이라. 집안에 이런 변이 세상에 또 있는가?”

마나님 이 말 듣고 몹시 놀라 얼굴빛이 하얘지더니,

“애고, 애고. 이게 웬 말이냐. 너의 좌수님이 중을 보면 결박하고, 악한 형벌 무수히 하고, 불도를 능멸하며 오해 팔십 되신 늙은 모친 모질게 한 죄 없을쏘냐. 땅의 신이 움직이고 부처님이 도술을 피워 하늘이 주신 죄를 인력으로 어이하리. 춘단 어미 바삐 불러, 네가 나가 진위를 알아 오라.”

춘단 어미 바삐 나와 문틈으로 열어보니, 네가 옹가다 내가 옹가다 하며 서로 호령하니, 말이나 움직임이나 이목구비가 두 좌수 똑같으니, 춘단 어미 하는 말이,

“까마귀 겉모습만 보고 암수를 어이 알리. 게 뉘라 알아볼까.”

안으로 들어가며,

“마나님, 소비는 알 수가 전혀 없소.”

마나님 하는 말이,

“너의 댁 좌수님은 새로 좌수를 하게 되어, 도포를 급히 다루다가 불똥이 떨어져서 안자락이 타서 구멍이 있으니 그것을 보아 알아 오라.”

춘단 어미 또 나와 사랑문 열뜨리고,

“알아볼 일이 있사오니, 도포를 보사이다. 안 자락에 불똥 구멍 있삽나이다.”

진짜 옹가 나앉으며 도포 자락 펼쳐 보니 분명하니,

“우리 댁 좌수님이라.”

가짜 옹가 나앉으며,

“에라, 이년. 요망한 년 가소롭다. 남산에 봉화오를 제 인경치고, 사대문 열 제 순라군이 제격일 것이라. 그만한 표식은 나도 있다.”

앞자락을 펼쳐 뵈니 그것도 또한 불 구멍이라. 알 길이 전혀 없어 답답한 거동 보소.

“애고, 애고. 마나님. 나가 보옵소서. 소비는 알 수 없소.”

마나님 이 말 듣고 얼굴빛이 변해 하는 말이,

“우리 둘이 만날 적에 아내는 반드시 남편을 따르기를 본을 받아, 서산에 지는 해를 긴 노끈으로 잡아매고, 살아서는 이별 말고 죽어도 한날에 죽자 하고, 하늘과 땅에 맹세하고 해와 달을 증인으로 세웠더니, 의외의 변고가 있으니, 꿈이냐 생시냐, 이 일이 웬일인가.

도덕 높은 공부자도 양호 때문에 해를 입었다가 도로 놓여 성인이 되었으니, 자고로 성인네도 일시 딱한 재앙이 있거니와, 우리 집에 이런 변고가 또 있을까? 내 행실 가지기를 소나무 잣나무같이 굳은 마음이었는데, 두 낭군은 무슨 일인가.”

이같이 스스로 탄식할 제 며늘아기 여쭈되,

“집안의 변고가 있게 되니, 무슨 체면이 있으리까.”

사랑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짜 옹가 나앉으며,

“아가. 자세히 들어보아라. 창원 마산포서 네가 신행하여 올 제, 말 십여 필에 온갖 혼수 실어 두고, 나는 뒤에 따라올 제, 상사말 한 필 뒤뚱뒤뚱 걸어 실은 것이, 모두 다 파삭파삭 절단 나서 놋쇠 동이 한복판이 뚫어져서 쓰지 못하고 벽장에 넣었으니, 그도 또한 헛말이냐? 네 아비는 나로다.”

진짜 옹가 나앉으며,

“애고, 저놈 보소. 내가 할 말 제가 하네. 애고, 애고. 이 일을 어찌하리. 새아가, 내 얼굴 자세히 보아라. 네 시아비는 나 아니냐.”

며느리 여쭈되,

“우리 아버님은 머리에 금이 있고, 금 가운데 백발이 있사오니, 그 표식을 보사이다.”

진짜 옹가 나앉으며, 머리를 풀고 표식을 뵈니, 이 대가리 딴딴하여 송곳으로 찔러도 물 한 점 아니 날러라.

가짜 옹가 나앉으며, 요술 부려 흰 털을 빼어다가 저의 머리 붙이니, 진짜 옹가의 표식은 쓸데없고 가짜 옹가의 표식이 분명하다.

“나리, 나리, 며나리. 내 머리 자세히 보아라.”

하니, 며느리 나앉으며

“예. 우리 시아버님이요.”

하니, 진짜 옹가가 갖은 복통하여 머리를 와득와득 뚜드리며,

“애고, 애고. 가짜 옹가를 제 아비 삼고, 진짜 옹가는 구박하네. 기막혀 나 죽겠네. 내 마음 서럽고 원망스러운 마음 뉘더러 하소연하여 볼까.”

종놈들 거동 보소. 남문 밖 활터에 바삐 가서,

“가사이다, 가사이다. 서방님, 어서 가사이다. 일이 났소, 일이 났소. 좌수님이 둘이 되었소.”

서방님, 거동 보소. 화살 전통 걸어 메고 집으로 바삐 와서 사랑에 들어가니, 가짜 옹가 나앉으며 하는 말이,

“저 건너 최서방에게 세경 열 냥 가져왔냐? 너더러 주라 하였더니, 그 돈에서 한 냥만 술 사 오라 하여라.

분하고, 분하다. 이놈이 우리 세간을 빼앗으려고 이리한다.”

진짜 옹가 나앉으며,

“애고, 애고. 저놈 보소. 내가 할 말 제가 하네.”

아들놈 거동 보소. 끊임없이 상판 살펴보니, 이도 같고 저도 같고, 알 길이 전혀 없다.

가짜 옹가 나앉으며, 진짜 옹가의 아들 불러 이르기를,

“너희 모친께 무엇인지 좀 나오라 하여라. 이렇듯 집안의 변고가 난 중에 내외가 무엇이냐.”

한대 진짜 옹가 아들 거동 보소. 안으로 들어가 하는 말이,

“어머님, 어머님. 어서 나가 자세히 살펴보소서.”

가짜 옹가가 진짜 옹가의 아내 보고 하는 말이,

“내 말 자세 들어보소. 우리 처음 만나 신방 차려 함께 자려 할 제, 함께 품으려 하자 하니, 업신여기듯 사양하기에, 내 다시 알아듣게 타이를 제, 좋은 말로 자네를 호릴 적에,

‘이같이 어진 밤은 한평생 한 번만 얻을 뿐인지라. 어찌 서로 헛되이 보낼까.’

하니, 그제야 서로 품에 안았으니, 그런 일을 생각하여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소.”

옹가의 아내가 생각하되, 예전에 말했던 말이 과연 그런지라.

가짜 옹가를 진짜 옹가라 하니, 진짜 옹가가 할 수가 전혀 없어 갖은 복통이 나서 눈에서 불이 나되 어찌할 수 없는지라.

옹가 아내 하는 말이 둘이 다 똑같으니,

“애통하오.”

안으로 들어가서 팔자 한탄하는지라.

이때 구불촌 김별감이 와 문밖에서,

“옹좌수 게 있는가?”

하니, 가짜 옹가가 나앉으며,

“그게 뉘신가? 허허, 김별감인가? 달포를 못 보았더니 그새 편안한가? 나는 요새 편하지도 못하네.

집안에 변고가 있어 알지 못하는 자가 와서, 말이나 움직임과 모습이 나와 같은 사람이 나의 재물 뺏으려고 몹쓸 꾀를 내어 나인 체하고 집안 살림을 분별하니 이러한 변고가 어디 또 있는가.

아내는 나를 분별할 수 없어도, 내 친구는 나를 알아볼 수 있다 하였으니 자네 나를 모를쏜가. 서로 뜻과 기백이 맞을 터이니, 그 뜻을 명백히 분별하여 저 사람을 쫓아 주소.”

진짜 옹가 이 말 듣고 가슴을 퉁탕 뚜드리며,

“애고, 애고. 저놈 보소. 제가 나인 체하고 천연히 앉아 좋은 말로 그러할 듯 말하네. 이놈아. 네가 옹가냐? 내가 옹가지.”

하고, 서로 다툴 적에 김별감 하는 말이,

“두 옹가가 옹옹하니, 이 옹 저 옹을 분별하지 못하겠네. 관가에 가 송사나 하여 보소.”

두 옹가가 이 말 듣고 서로 붙들고 관아의 뜰로 들어가는데, 얼굴도 같고 의복도 같고 머리 가슴 팔뚝 다리 불알까지 같았으니, 그 사이에서 진짜와 가짜를 뉘가 알리오.

진짜 옹가가 먼저 아뢰되,

“소인이 옹당촌에서 대대로 머물러 살았더니, 천만뜻밖으로 알지 못하는 자가 소인의 행색같이 하고 들어와, 소인의 집을 제 집이라 하고, 소인의 가속을 제 가속이라 하오니, 세상에 이러한 흉한 일이 어디 또 있사오리까. 밝고 밝으신 사또께옵서는 이놈을 엄히 물으시어, 흑백을 가려 주옵소서.”

가짜 옹가가 또 아뢰되,

“소인이 아뢸 말씀을 저놈이 다 하였사오니, 소인은 아뢸 말씀 없사오니, 명백하신 사또께서는 통촉하여 허와 실을 가려 주옵소서. 인제 죽사와도 남은 한이 없겠나이다.”

사또가 분부하되,

“두 옹가는 각기 몇 걸음 걸어보라.”

하고, 육방 하인이며 내빈이며 지나는 객이 모두 살피되, 전혀 알 수 없는지라.

형방이 아뢰되,

“두 백성의 호적을 비교하여 살펴보게 하소서.”

“허허 그 말을 옳다.”

하고 호적색을 불러 두 옹가에게 호적을 확인받을 제, 진짜 옹가가 나앉으며 아뢰되,

“소인의 아비 이름은 옹송이옵고, 할애비는 만송이로소이다.”

사또 이르기를,

“그놈 호적은 옹송만송하다. 알 수 없으니 저 백성 아뢰라.”

가짜 옹가가 아뢰되,

“자하골 김씨 동네에 자리를 잡았을 때, 소인의 아비가 좌수 직을 맡아,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푼 공으로 하여금 집집마다 부과하던 여러 부역을 감하게 되어 고을 경계 내에서 유명하게 되었사오니, 옹돌면에서 제일가는 집으로, 아직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 옹고집이옵니다.

고집의 나이 삼십칠 세요, 아비는 옹송이오니 절충장군이옵고, 할애비는 상이오나, 오위장을 지내옵고, 고조는 맹송이요, 본은 해주이오며, 처는 최씨요, 본은 진주요, 아들은 골이오니, 나이가 십구 세 무인년생이요, 계집종에게 본 자식이 돌쇠이옵니다.

또 소인의 세간을 아뢰리다. 곡식과 콩과 팥을 합하여 이천백 석이요, 마구간에 말이 여섯 필이요, 암퇘지와 수퇘지와 합하여 이십이 마리요, 암탉과 수탉을 합하여 육십 마리요, 그릇으로는 안성 방짜 유기 열 벌이요, 앞닫이 반닫이며, 이층장 화류문갑 용장 봉장 가께수리,

산수 병풍 연꽃 병풍 다 있사옵고, 모란 그린 병풍 한 벌은 소인의 자식 신혼 때에 매화 그린 폭이 꿰어져 고치려 하고 다락에 따로 얹어 두었사오니, 그것으로 아옵시고,

책으로는 천자문, 추구, 당음, 당률, 사략, 통감,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시전, 서전, 주역, 춘추, 예기를 네 둘레의 벽에 이름을 적어 쌓아두었고,

은가락지 이십 걸이에 금가락지 한 죽이요, 비단은 청색 홍색 자색 합하여 열세 필이요, 모시가 서른 통이요, 명주가 마흔 통인데, 한 필은 소인의 큰딸이 첫몸 보아 개짐을 명주통에 끼었더니 피가 조금 묻었사오니, 이것을 보아도 명백히 알 것이요,

진신 마른신이 석 죽이요, 쌍코 줄변자 여섯 켤레 중 한 켤레는 이달 초사흘 밤에 쥐가 코를 갉아 먹어 신지 못하여 안 벽장에 넣었으니, 이것으로 살펴보시어 하나라도 틀리거든 곤장 아래 죽사와도 올바르게 사실을 밝혔사옵니다.

저놈이 소인의 세간이 이렇듯이 넉넉함을 욕심내어 사또의 관아를 요란하게 하오니, 저렇듯 무도한 놈을 처치하여 뒷사람을 경계하옵소서.”

사또가 듣기를 다하고 이르기를,

“그 손이 참 옹좌수라.”

하고 대청 위에 올려 앉히고, 기생을 불러,

“이 양반께 술 권하여라.”

얼굴 고운 기생 술을 들고 권주가 화답하되,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잔 잡으시오. 이 술 한잔 잡으시면 천만년이나 사시리라. 이는 술이 아니라 한무제 승로반에서 이슬을 받은 것이오니 쓰거나 달거나 잡으시오.”

옹좌수 흥을 내어 술잔을 받아 들고 하는 말이,

“하마터면 아깐 세간을 저놈에게 빼앗기고 이런 제일의 미인이 주는 이렇듯이 맛난 술을 못 먹을 뻔하였다. 그러나 사또 덕택에 흑백을 가려 주옵시니 은혜 주어 백골이 되도록 잊지 못하리다. 겨를 내어 소인의 집에 나오시오. 막걸리 한잔 대접하오리다.”

“그는 염려 말게. 처치하여 줌세.”

진짜 옹가를 불러 분부하되,

“네가 몹시도 흉악한 놈으로 음흉한 뜻을 두고 남의 세간을 탈취하려 하니, 네 죄상은 마땅히 법에 따라 귀양을 보낼 것이로되, 옛날의 올바른 도리로 편안하게 하고자 하니 바삐 끌어 물리치라.”

큰 곤장 삽십 대를 매우 험하게 쳐서 죄목을 묻되,

“이제도 옹가라 하겠느냐?”

진짜 옹가 생각하되, 만일 옹가라 하다가는 곤장 밑에 죽을 듯하니,

“예. 옹가 아니오. 처분대로 하옵소서.”

아전이 호령하여, 긴 채찍을 들고 직접 데리고 나가,

“저놈을 고을 경계 밖으로 내치라.”

하니, 벌떼 같은 군노 사령 일시에 달려들어 옹가 상투를 잡아 휘휘 둘러 내쫓으니, 진짜 옹가 하릴없이 남북으로 빌어먹게 되어,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큰 소리로 목놓아 울며 하는 말이,

“답답하다. 내 일이야. 꿈이냐, 생시냐. 어찌하여야 옳단 말이냐. 떨칠 수 없는 재앙이 이르렀도다.”

무지한 고집이 놈 인제는 잘못을 뉘우치고 애통해하며 하는 말이,

“나는 죽어 마땅한 놈이거니와 대청 위 학처럼 하얗게 머리 센 우리 모친 다시 봉양하고지고. 어여쁜 우리 아내 월하노인의 인연 맺어 해와 달을 증인으로 삼고, 하늘과 땅에 맹세하여 한평생 같이 살다 따라 죽으려 하였더니, 혼자 지내는 빈 방이 적막한데, 임 없이 홀로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잠 못들어 근심으로 지내는가.

무릎 아래 어린 새끼 금과 옥같이 사랑하여 어를 제, ‘섬마둥둥 내 사랑, 후두둑 후두둑. 엄마 아빠 눈에 암암.’ 나 죽겠네. 아마도 꿈인가 생신가 꿈이거든 깨거라.”

가짜 옹가 거동 보소. 송사에서 이기고 돌아올 제 의기양양하는 거동 그야말로 제법이라.

“얼씨구나, 좋을씨고.”

손춤 추며 노랫가락

“좋을씨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조롱하여 하는 말이,

“허허 흉악한 놈 하마터면 우리 고운 마누라 빼앗길 뻔하였다.”

하고 집으로 들어오며 희색이 얼굴에 가득하니 집안의 모든 이들이 송사에서 이겼다는 말 듣고, 옹가 마누라 왈칵 뛰어 내달으며, 가짜 옹가의 손을 잡고 묻는 말이,

“송사에서 이겼는가?”

“허허. 그리하였네. 그새 편안히 있었는가. 세간은 고사하고 하마터면 자네 놓칠 뻔하였네. 원님이 똑똑히 살펴 주시기로 자네 얼굴 다시 보니 이런 좋은 일 또 있을까. 불행 중 다행이로다.”

그렁저렁 날이 저물매 가짜 옹가가 옹가의 아내 데리고 밤새도록 말로 수작하다가 원앙금침 펼쳐놓고 동침하여 누웠으니, 두 사람의 마음 깊은 정에 좋은 마음 측량 없다.

이같이 즐기다가 잠깐 잠이 들어 한 꿈을 얻으니, 하늘에서 허수아비 무수히 떨어져 뵈거늘 문득 깨어나니, 한때의 헛된 꿈이라.

가짜 옹가에게 꿈속의 일을 이르니, 가짜 옹가 하는 말이,

“그러할시 분명하면 아마도 잉태할 듯하나, 꿈과 같을진대 떼 허수아비 낳을 듯하네. 그러하나 다가올 앞날을 보리라.”

이러구러 열 달이 차매, 옹가 아내 몸이 곤하여 잠자리에 누워 해산하는데 진양성 안에 집집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중에, 개구리 해산하듯, 돼지가 새끼 낳듯 무수히 퍼 낳는데, 하나 둘 셋 넷 너무 많아 셀 수가 없으리로다.

이렇듯이 해산하니 보던 바 처음이요, 듣는 바 처음이라.

옹가 마누라 좋아라고 고단함을 잊고 길러내더라.

 

이같이 즐겨할 제 진짜 옹가는 하릴없어 세간 처자식을 다 빼앗기고 팔자 없는 곤장 맞고,

“세상에 살아 무엇하랴. 애고, 애고. 내 팔자야.”

대지팡이에 짚신 신고 표주막 하나 들고 첩첩 푸른 산속으로 들어가니, 산은 높아 천 개의 봉우리요, 골은 깊어 만 개의 골짜기라.

인적은 고요하고 나무들은 빽빽한데 때마침 한창 봄날이라. 새들은 수풀에서 날아오르고, 산새들은 쌍을 지어 오고 가며 날아들 제,

“슬피 우는 저 두견새는 나의 심회 자아내어 꽃 무더기에 눈물 뿌려 점점이 맺혀 두고, 어찌 돌아갈까 일을 삼으니, 슬프다. 이런 빈 산 중에 아무리 쇠나 돌 같은 간장이라도 아니 울고 못하리라.”

이렇듯 슬피 울 제 한 곳을 바라보니 층층한 돌절벽 위에 백발도사 높이 앉아 청려장을 옆에 끼고 반송 가지를 휘어잡고 노래로 하는 말이,

“후회하여 뉘우친들 어찌할 수 없도다. 하늘이 주신 죄를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한다는 말인가.”

진짜 옹가 듣기를 다하매, 너무 급해 방향을 잡지 못한 채, 도사 앞에 급히 나아가 합장하고 절을 하며 공손히 하는 말이,

“이놈의 죄를 생각하면 천 번 죽어도 아깝지 않고,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으나, 밝고 밝은 도와 덕을 베푸시어 제발 덕분에 살려 주오. 대청 위의 늙은 모친, 규중의 어린 처자 다시 보게 하옵소서. 보기를 원하온 후 지하에 돌아가도 남은 한이 없을까 하나이다. 제발 덕분에 살려 주옵소서.”

온갖 방법으로 애걸하니 도사 하는 말이,

“천지간에 몹쓸 놈아. 이제도 올해 팔십 되신 늙은 모친 냉돌방에 구박할까. 불도를 능멸할까. 너 같은 몹쓸 놈은 응당 죽일 것이로되, 네 모습이 불쌍하고 가련하고, 너의 처자 불쌍한 고로 풀어주리니, 돌아가 지난 허물을 뉘우치고 착하게 되어라.”

부적을 써 주며 이르기를,

“이 부적을 몸에 붙이고 네 집에 돌아가면 괴이한 일 있으리라.”

하고 언뜻 보이다가 바로 없어져 간데없거늘, 진짜 옹가 즐거이 돌아와서 제 집 문앞에 다다르니, 높고 큰 다락집에 맑은 바람 불고 밝은 달빛 어리는 경치는 옛 놀던 풍경이라.

“담장 안의 홍련화는 나를 보고 반기는 듯. 연산홍아 잘 있었더냐. 자산홍아 무사하냐.

옛일을 생각하니 지난 잘못된 일을 올바르게 깨달아 옛집을 다시 찾아오니 죽을 마음 전혀 없다. 가소롭다. 가짜 옹가야. 이제도 네가 옹가라 장담할 거냐.”

하며 들어가니, 마누라 이 거동을 보고,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며 하는 말이,

“애고, 애고, 좌수님. 저놈 또 와서 천살을 맞았는지 또 와서 지랄하고 들어오니 이 일을 어찌하리까.”

이러할 즈음에 방에 있던 옹가 간데없고, 없던 짚 한 뭇이 놓여 있고, 가짜 옹가의 자식들도 문득 허수아비 되니, 집안의 모든 이들이 손뼉 치며 크게 웃더라.

좌수, 부인더러 하는 말이,

“마누라. 그 새 허수아비 자식을 저렇듯이 무수히 낳았으니, 그놈과 한가지로 얼마나 좋아하였는가. 한 상에서 밥도 먹었는가.”

부인이 얼척없어 잠자코 말이 없이 방안에 돌아다니며 가짜 옹가의 자식 살펴보니, 이리 보아도 허수아비, 저리 보아도 허수아비, 아무리 보아도 허수아비 떼가 분명하다. 부인이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워하더라.

도승의 술법을 탄복하여 모친께 효성하고, 불도를 공경하여 지난 허물을 뉘우치고 착하게 되니, 그 어짐을 칭찬하더라.

 

대저 이 책이 사람을 훈계한 책이니, 보는 사람이 남녀를 막론하고 부모께 효성하고 남에게 착하게 할지니, 만일 착한 일을 하지 않고 효성을 아니하면 옹고집의 처음 마음과 같을지라.

하늘이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있어도, 자기가 불러온 재앙은 벗어날 수 없다 하니, 보는 사람은 명심명심하여 부디부디 효성으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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