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보전(朴泰輔傳)
주해 신영산
조선 숙종(朝鮮肅宗) 시절에 공의 명은 태보(泰輔)요, 자는 사원(士元)이니 충심이 백일(白日)을 꿰이는지라. 숙종대왕이 중전 인현왕후(中殿仁顯王后) 민씨(閔氏)씨를 폐위하신 후, 궁 희빈장씨(宮 禧嬪張氏)를 올려 왕비를 삼으려 하시니, 간특(奸慝)한 소인들은 상(上)의 뜻을 맞추고 충직(忠直)한 신하 간하는 자 있으면 상이 진노하셔서 참화(慘禍)를 입었더라.
기사(己巳) 사월 이십사일은 중전 탄신일(誕辰日)이니, 이날 백관(百官)과 백성들의 하례(賀禮)를 상이 다 물리치고 만약 거역하는 자 있으면 곧 파출(罷黜)하라 하시니, 이날로부터 더욱 궁중이 소란한지라.
전 응교(應敎) 태보가 또한 파직 중에 들었는지라. 나아가 다투고자 하나 어찌 못하여, 파직한 자 사십여 인을 데리고서 상소하기를 의논할 새, 전 판서 오두인(吳斗寅)이 소두(訴頭)가 된지라.
태보가 상소문을 지어 정히(正-) 쓰고 이튿날 정원(政院)에 바치고, 궐문 밖에서 비답(批答) 내리기를 기다리더니, 상(上)이 그 상소를 보시고 크게 노하여 곧 편전(便殿)에 좌기(坐起)하시고, 금부당상(禁府堂上) 그리고 대신과 서너 사람의 제신(諸臣)을 배초(陪招)하시고, 친히 국문(鞫問)하실 거조(擧措)를 크게 베푸시니, 뜰에 등화 불이 조루(照樓)하고 사람의 소리 효효(囂囂)한지라.
이때에 날이 이미 밤이 된 지라.
모든 신하 장차 명일로 대죄(待罪) 청대(請對)하려 하고 각각 그 집을 나가고, 오직 소두 오두인, 전참판(前參判) 이세화(李世華), 전참의(前參議) 심수광(沈壽匡), 목사(牧使) 이돈(李墩), 전한림(前翰林) 이인엽(李寅燁), 전정언(前正言), 김덕기(金德基) 등이 각각의 막(幕)에 있고 그 남은 사람은 다 일실(一室)에 있다가 궐내에 화광이 조루한 것을 보고 들리는 소리 진동함을 들으니 반드시 친국(親鞫) 거조가 있는지라.
즉시 모두 금호문(金虎門) 밖에 가서 대죄할 때, 사람이 다 실색(失色)하고 서로 돌아다보되, 홀로 할 태보는 신색(身色)이 자약(自若)하며 가로되,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진실로 괴이할 것 없는지라. 어찌 경황하기를 이같이 하느뇨.”
해창위(海昌尉), 그 부친 판서더러 일러 가로되,
“거두어 다시 고하여 상의 진노를 풀으실 말씀을 먼저 생각하여, 서로 의논을 하소서.”
하니 태보 왈,
“대감이 먼저 들어가신즉, 상이 반드시 먼저 상소 지어 쓴 사람을 물으실 것이니, 원컨대 바로 말씀하시고 숨기지 마소서.”
이세화가 바지를 끄르고 그 다리를 어루만져 가로되
“내가 팔십 년 국록(國祿)을 먹어 다리가 이미 살이 쪘으니, 오늘날 대궐 뜰에서 장사(杖死) 당하리다.”
횃불이 궐내에서 나와 큰 소리로 불러 왈,
“소두 오두인이 어디 있느냐?”
드디어 칼을 쓰며 들어갈 때, 태보, 두인의 옷을 잡고 가로되,
“범인(凡人)으로 더불어 서로 말하여도 속일까 보냐. 또 이번 상소는 대감이 독단하신 일이 아니라 내가 이미 지어 또 썼으니, 원컨대 대감은 바로 말씀하소서. 만약 바로 하지 않으시면 내 마땅히 스스로 죽으리라”
하고 인하여 목화(木靴)를 벗고 신을 신고 앉았더니, 오래지 아니하여 횃불이 또 안으로서 나오더니, 급히 이세화와 유현(柳絢)을 불러 세화 칼을 쓰며 들어가고, 유현이는 때에 신병이 있어 문밖에 있는지라. 금오당(金吾堂)과 나장(羅將)이 분주히 잡아들이고, 또 화광(火光)이 나는 듯이 나와 급히 물어 가로되,
“상소 지어 쓴 자가 누구냐?”
하니, 태보가 즉시 일어나 대답하여 왈
“내로다.”
드디어 망건을 벗어 담뱃대를 그 종에게 주어 가로되,
“모씨(母氏) 전에 갖다 드려라.”
하고 큰 칼을 쓰고 들어갈 때, 이인엽과 김몽신(金夢臣) 조대수(趙大壽) 등이 태보의 손을 잡고 말하여 왈,
“어찌 그 여럿에게 의논치 아니하고 자당(自當)하여 들어 가고자 하느냐.”
태보 왈,
“내 이미 뜻을 결정하였으니 무슨 의논이 있으리오.”
이인엽, 김몽신이 왈,
“이번 상소는 홀로 자네가 지은 것이 아니라, 우리도 또한 서로 의논하여 지었으니 어찌 자네가 혼자 당하는가?”
태보 왈,
“짓기도 내가 하고, 쓰기도 또 내가 하였으니, 자네들은 어찌 짓고 쓴 일이 있느냐? 비록 죽어도 자당함이라. 다행히 염려치 말라.”
소매를 뿌리고 들어가니, 이돈 왈,
“사원(士元)이, 자네는 어찌하여 그 즐거운 때에 나아감을 같이 아니 하고, 이같이 경솔히 하는고?”
태보 돌아다보고 웃어 왈,
“신복(臣僕)이 되어 이때에 다다르지 아니하고 무엇 하리오. 영공(令公)은 그런 가소로운 말을 하지 말라. 내 뜻이 이미 정하였으니 다시 변하랴?”
드디어 자약(自若)이 들어갔다. 두인은 이미 원정(冤情)을 드리고, 세화는 가로되,
“내가 나이 쇠로(衰老)하고 오랫동안 국은(國恩)을 입었으니 이제 비록 죽어도 진실로 후환이 없거니와, 자네 같은 이는 나이 청춘이요, 또 형제 없고 백발 양친이 계시니 자네 아니면 누구를 의지하며, 하물며 국은 입기를 나만 같지 못하니, 모름지기 원컨대 죄를 내게로 돌려보내고 다행히 자당(自當)치 말라.”
하니, 태보가 말머리를 잡고 답 왈,
“그런 성언(聲言)치 못한 말은 하지 말라. 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감이 가르치실 바가 아니라, 인신(人臣)이 되어 이 지경에 이르러 죽음이 있을 따름이라. 이를 임하여 속여 꾸미는 것이 어찌 차마 하리오.”
하고 태보가 들어가니, 상이 탑전(榻前)에 꿇어 앉히고 팔을 뽑아 내시고, 소리를 높여 태보더러 일러 왈,
“네가 죄를 범하고 사악(肆惡)을 한 지 오래이니, 내 상회(傷懷) 비통하나 오히려 버리지 않았더니, 어찌 오늘 나를 배반하고 다만 간악한 부인을 위함이 네 진실로 무슨 마음이며, 감히 이 같은 황예(荒穢)한 거조를 하는다.”
태보 다시 꿇어 대답하여 왈
“전하 어찌 차마 말씀을 하시나이까. 들으니 군신부자(君臣父子)는 일체(一體)라, 이제 아비가 성품(性品)이라도 하여, 무단히 어미를 내치신 즉 그 자식이 그 또한 살고자 한 마음이 있어 어찌 간(諫)치 아니 하리오. 전하께서 전에 없는 과도(過度)한 거동을 하시고자 하여, 곤위(坤位)로 하여금 크게 불안케 하심을 신등(臣等)이 통민(痛悶)함을 이기지 못하여 오직 한번 죽기를 생각하고 상소를 올렸으니, 어찌 감히 전하를 배반할 마음이 있으리오. 신등이 중궁(中宮)을 위반(委叛)하지 않음은 전혀 전하를 위한 뜻이라, 중궁은 전하의 중궁이 아니시나이까?”
상이 크게 노왈,
“급히 결박하라. 이놈아, 네가 마침내 나를 욕하니 내 장차 역률(逆律)로써 너 같은 놈을 죽이기가 그 어렵겠느냐.”
먼저 형문(刑問)으로 물을 거조를 베풀고 또 화형(火刑)할 거조를 차리니, 태보 왈,
“전하, 신으로써 상소를 짓고 썼다함으로 다스리고자 하시나이까. 원컨대 전하는 그 상소를 잡으시고 물으시면, 신이 청컨대 일일이 아뢰리이다.”
상 왈,
“소중(疏中)에 침윤등사(浸潤等事)는 이 어찌 한 말인고? 네 자세히 말하여라.”
태보 상소를 강(講)하며 조목을 찾아 대왈(對曰),
“이런 설화는 불과 이러하옵거니와, 대저 비록 여항(閭巷)간이라도 처첩을 둔 사람이 능히 그 가장(家長)의 도리를 다 못하고 기처(棄妻)를 편애(偏愛)한즉, 그간에 또한 침윤(浸潤)한 일이 있어 가도(家道)가 편치 못하다 하니, 전하 근래 후궁(後宮) 애총(愛寵)이 있음을 신등이 의려(疑慮)하였삽더니, 이제 전하 과한 거조 계시니, 신등이 써 침윤지사(浸潤之事) 있다 하나이다.”
상이 더욱 노 왈,
“네 감히 이런 말을 하여, 나더러 후궁에 침혹(沈惑)하여 허무한 말을 신청(信聽)한다 하느냐?”
하시고
“맹장(猛杖)을 하고, 또 큰 바에다 그 목을 얽어 무릎에 매고, 턱을 가슴에 붙이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라.”
호령하시고, 별호(別號)히 엄형(嚴刑)하여 낱낱이 고찰(考察)하라 하시니, 좌우 승지(承旨)와 도사(都事) 나장배(羅將輩)가 맹장하라는 소리를 일시에 병창(竝唱)하니, 동구문(洞口門) 안 대궐 일대가 요란하더라.
“전하 어찌 신하를 알지 못하시나이까. 치상(致祥)의 일은 암매지설(暗昧之說)이거니와, 신등의 상소는 상의 공공지론(公共之論)이라, 전하 어찌 신을 치상에게 비유하시나이까. 신이 경악(經幄)에 출입하옴이 이제 몇 해오나 신의 복심(腹心) 행사가 치상으로 더불어 같지 아니함을 전하는 알지 못하나이까.”
“네 어찌 음측(陰測)한 계직(階職)을 위하여 감히 음측한 일을 하는구나.”
태보, 소리를 가다듬고 얼굴을 고쳐 대왈,
“어찌 이런 말씀을 차마 내시나이까. 무릇 부부는 인륜의 비롯함임이라, 성인(聖人)은 인륜의 지극함이라, 비록 범인(凡人)이라도 또한 그 부부의 의를 알거든, 하물며 중궁은 이 뉘 중궁이시며 성인의 가르치심은 어찌 되시나이까. 이렇듯 패상(敗喪)하오신 말씀을 하시니 신이 그윽이 부끄럽사옵나이다.”
상 왈,
“네 나를 공척(攻斥)하난다.”
“전하 ≪주역(周易)≫을 읽어 계시니, 건곤지도(乾坤之道)를 알지 못하나이까. 비록 중궁이 조금 허물이 있을지라도, 이전 명성왕후(明聖王后) 때에는 심애(深哀)할 설움이요, 허물 있단 말씀을 듣지 못하였더니, 이제 원자(元子) 탄생한 후로부터 이 같은 과실이 들리니, 신은 반드시 침유(侵有)한 참소(讒訴)가 있다 하옵니다.”
상이 더욱 크게 노하여 분기가 탱중(撑中)하여 말을 이루지 못하며,
“이놈아, 네가 다시 그 말을 하느냐. 그 말이 어찌할 말이더냐. 네 감히 지만(遲晩)을 하지 아니하느냐. 이놈이 간악(奸惡)은 역률(逆律)로 압슬(壓膝) 화형(火刑) 쓰리라.”
하시고, 나장에게 지휘하였다.
두 차례나 어려운 형을 썼으나, 태보는 조금도 안색이 변하지 않고 다만
“신은 이미 죽기를 정한 몸이오니.”
할 뿐이었다. 상이,
“이놈의 간악은 김홍욱(金弘郁)보다 배가 더한지라. 간특하기가 이 같으니 그 나를 욕하지 않겠느냐. 소중(疏中)의 꿈 말은 또 어인 말인고?”
태보, 질통(疾痛)한 빛이 없이,
“이는 궁내사(宮內事)라 신이 자세히 알지는 못하거니와 꿈은 본시 허탄(虛誕)한 일이라. 설령 중전으로서 비록 실몽(實夢)이 있을지라도 몽중(夢中)에 이런 말씀이 계시니, 신은 전하의 처사(處事)하오심이 진선(眞善) 못하다 하였습니다.”
“네가 나를 헛말 하는 미친놈이라 하는다. 네가 간악한 자의 당이 되어 이같이 궤변(詭辯)하느냐?”
“신이 입조(入朝)하온 지 십팔 년에 본디 설당(設黨)하온 일이 없으니, 만약 당론(黨論)으로 불의한 일을 하여, 다행히 중궁 뜻을 맞추려 하면 어찌 저하의 뜻을 얻지 못하리까. 신의 상소는 실로 국론(國論)이라, 신이 전하의 신하 되어 이미 전하의 과거(過去) 하오심을 보고 어찌 간변(諫辯)치 아니하리까. 어미가 죄가 없고 무죄(無罪)히 아비가 내친즉 그 자식이 죽기를 다하여 다툴 터인즉, 전하 어찌 평심(平心)하여 깊이 생각지 못하시나이까?”
“이놈이 갈수록 사악하도다. 급히 화형을 행하라”
드디어 화형을 당하였으나,
“신이 이미 일호(一毫)도 부도(不道)한 죄가 없으니, 차라리 죽을지언정 무슨 죄로 지만(遲晩)을 올리리까.”
“네 종시 지만(遲晩) 못하겠느냐?”
“신이 어찌 뜻을 고치리오. 만약 구차히 상의 말씀을 좇아 무고(無故)한즉 안으로 마음을 속이고 위로 전하를 속이는 바이니, 이 뼈가 비록 재가 되나 이 마음은 변치 못하겠나이다. 신, 오늘날 신의 절개를 마땅히 다할지라. 다시 무슨 일이 있어 가히 지만(遲晩)을 하리까. 조사기(趙嗣基)는 말이 전후에 침범하여도 오히려 다스리시니 간절히 괴(怪)하여이다. 신이 십 년 경악(經幄)에 능히 보도(輔導)를 잘못하고 전하로 이런 과거함이 있음은 실로 신의 죄가 어찌 다시 죄당(罪當)할 일이 있으리오.”
상은 이 태보의 말을 일일이 기록지 못하게 하고, 형벌을 더 가하라 하니 우의정 김덕원(金德源)이 만류하더라.
“상소할 때에, 유현(柳絢)이는 알지 못하였다니 그 말이 과시(果是) 옳다.”
“어찌 알았겠나이까? 그때 병들어 참예(參預)치 못하고, 그 아들을 보내어 이름만 두었사오며, 소문(疏文)은 아직 보지 못하였으니 그 알지 못한다는 말이 괴이(怪異)치 아니하오이다.”
“이세화 이르되, 상소를 너와 같이 지었다 하니 그러냐?”
“짓고 쓴 것을 신이 다하였으니, 세화 어찌 일사(一辭)나 찬(撰)하였다 하리까? 신과 같이 지었단 말은 신을 구원(救援)하려 하는 뜻이나이다.”
“네 종시 지만치 못하겠느냐?”
“신이 지만할 조(條)가 없으니 만일 신을 죽이시려거든 속히 결단하심은 신이 감히 사양치 아니하려니와, 반드시 못할 지만을 받으시려 하나이까? 전하 발노(發怒)하여 달리시려 하오시니, 사람이 분기 신(辛)한즉 실정(失情)하고 기운이 불평하나니, 신은 옥체(玉體) 미령(靡寧)하실까 염려하오이다.
비록 신으로써 굳이 지만(遲晩)을 받으시려 하나, 신이 결단코 지만치 않을 것이오, 또 형벌을 견디지 못하여 속여 지만하더라도 무복지신(誣服之臣)이 되어 지하에 가도 귀신의 웃음을 받을 터이니 어찌 부끄럽지 않으리오. 신의 아비 나이 육십오 세요. 어미 나이 칠십이라, 오늘 죽어 다시 보지 못하면 인자(人子)의 도리가 가히 없으나, 이미 인신(人臣)이 되어 당연히 진충(盡忠)할 바의 사정을 이미 결단(決斷)한지라.
원컨대 속히 벌하시는 형벌을 행하소서. 엎드려 생각건대 신이 비록 죽어도 의(義) 있는 귀신이 되고 뒤에 뉘우침이 없으려니와, 불안한 일로써 불인(不忍)한 행형(行刑)을 하시니 흥망이 이에 판단한지라 성궁(聖躬)의 누(累) 되심이 어떻다 하리오. 중궁(中宮)의 시위(施爲)를 권선(勸善)하신 바이니, 그 투기할 뜻이 없음은 가히 알지라. 원자(元子) 탄생 후 어찌 투기할 일이 있으리오.
이 반드시 침윤(浸潤)한 참소(讒訴)로써 이렇듯 과한 거조가 있음이라, 신이 능히 인군(仁君)의 그른 것을 발리지 못할진대, 차라리 죽어 알음이 없음만 같지 못하오니 원컨대.”
이까지 말을 하고 마침내 목소리가 없으니 상이 손바닥을 치며 노 왈,
“판의금(判義禁)은 어찌 지만을 받지 못하느냐”
민암(閔黯)이 넋을 잃고 실음(失音)한 말로 가로되,
“사속히(斯速-) 지만하라.”
하니, 태보, 얼굴을 들어
“자네는 헤아려보라. 내 무슨 죄가 있어 지만하리라고 이같이 협박하는가.”
민암이 묵연히(默然―) 회오(會悟) 왈,
“시형(施刑)은 비록 무궁하오나 지만할 뜻은 일분(一分)도 없더이다.”
상이,
“심히 미련하도다, 이놈아. 지만(遲晩)하면 방석(放釋)하려 하나, 종시 지만치 아니하니 심히 미혹하도다.”
하니,
“신을 속이심은 어쩐 일이시나이까.”
이에 상이 친히 국문하시고 시형(施刑)하기를 참혹하고 또 오랜지라. 또한 옥체 편치 못하신 기색이 있어 이에 전내(典內)로 들어가시고, 영을 내리어 장문(杖問)하라 하시고, 시위(侍位)로 하여금 나가 보아 왈,
“박태보의 괴독(怪毒)은 내 일찍 알았는지라. 내 시형이 이미 이에 이르되, 종시 얼굴을 고치고 통곡하는 소리가 없으니 괴독하고 또 극악하기가 김흥욱보다 더 심하도다.”
하시었다.
사월 이십오일 밤에 수형(受刑)하여 이튿날 진시(辰時)에 끝이니, 형문(刑問)이 세 차례요, 압슬형이 두 차례요, 화형이 두 차례요, 낙형(烙刑)이 여러 번인지라. 동소(同疏)한 사람들이 문 외에 대죄(待罪)하다가, 태보 무수히 수형함을 듣고 눈물 흘리지 아니하는 자 없더라.
태보, 의금부로 향할 때, 창 메인 군사 좌우에 웅립(雄立)한지라. 종일 박필순(朴弼純)이가 군사를 헤치고 들어가 이불을 열고 손을 잡고 무수히 위로하며, 정신을 가지도록 원하는지라.
태보, 이불을 들고,
“내 마음이 이미 정한 지 오랜지라. 다시 물어 무엇하리오.”
하고 인하여 금부로 들어가니, 그때 그 부친 세당(世堂)은 교외에 있어 돌연히 친국이 되기로 미처 부자 서로 보지 못하였더니, 이미 금부로 들어가매 그 문밖에 사처(私處)하고 죽지 아니함을 듣고, 정신(精神)을 보고자 말을 보내어 왈
“네 가히 지필로 글을 닦아 보내겠느냐”
태보,
“이제 들으니 조정에서 나를 역률로써 죄를 의논하시니, 비록 부자간이라도 서자(書字) 상통이 미안(未安)하다.”
이르더라. 명일 또 추국(推鞫) 거조(擧條)를 하려 하니, 영의정 권대운(權大運)이 차대(次對) 왈,
“태보의 죄는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삽거니와, 다시 형추(刑推)를 더하면 또한 가긍(可矜)하니, 원컨대 정배(定配)로써 하소서.”
이에 절도안치(絶島安置)할 제, 금부문(禁府門)에 나오니, 그 얼굴을 보려 하고 장안 사람이 종로에 충만(充滿)하여 길을 분간치 못하는지라. 태보 그중에도 능히 친구는 알고 손을 들어 하례(賀禮)하니, 노소(老少) 서로 일러 왈,
“현인(賢人)의 안면(顔面)을 생시에 가히 보리라.”
하고 서로 어깨를 이어 거리에 늘어서고, 혹 통곡 참석중(參席中)이 막히니, 명이 경각에 있는지라. 잠깐 명(命)에 방골 집에 지체하여 그 어버이께 평생 원억(冤抑)함을 위로하고 모씨 기체(氣體)를 묻더라. 여럿이 가로되, 일세(日勢) 이미 저물고 병세 이 같으니, 성중(城中)에서 경야(經夜)하고 내일 나가자 하니,
태보,
“내 명이 비록 급하나 죄명이 중하고 기식(氣息)이 아직 끊이지 않았으니 경악(驚愕)을 유체(留滯)하리오.”
저물어 남문 밖으로 나아갈 제, 시정(市井) 노인이 다 갓을 벗고 초거(軺車)를 메고 가로되,
“이 나리는 편안히 뫼시지 아니치 못하리라.”
하니, 비록 이때 인심이라도 또한 그 격력(隔歷)함을 알더라. 남문 밖에 나가니 그 모씨는 곧 양모(養母)라. 어려서부터 수양(收養)한 고로 자애지정(慈愛之情)이 기출(己出)이나 다름없는지라. 급급히 나아가 보고 비록 만 가지로 치료하나 구활(救活)할 도리 없으니 손을 잡고 가슴을 어루만져 설워하더라.
태보 왈,
“죽지 아니하여, 오늘날 다시 모씨를 뵈오니 또한 천행(天幸)이라. 비록 죽으나 무상(無上)한 일이오, 부디 모씨는 과도히 상회(傷懷)치 말으소서.”
위로하는 것이었다. 열이 심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또한 먼 길을 당하니, 정신은 혹여 생(生)하나 편작(扁鵲)이 있어도 어찌할 수 없어 비참하더라.
태보 이때에
“내 이미 죽으려니와, 만일 살아 행(行)하면 적요중(寂寥中) 볼 서책이 없으니 행중(行中)에 넣으라.”
하니 친구는 말리더라. 병세 일중(日重)하여 길에 오르지 못하여, 문외(門外)에 머물러 치료하더니, 수일이 지나매 증세 더하나 왕명이 급하여 유체하기 미안한지라. 오월 초일에 강을 건너 종막(終幕)에 다다라 병세 위중하니, 조정에다 왈,
“죄인 박태보 병세 긴급하니, 증정(症情)을 보아 발배(發配)하옴이 어떠하오리까?”
상 왈,
“지도(知道)라.”
태보 만신(滿身)이 아프나, 그 양친이 있어 화독(火毒)을 침파(鍼破)하되, 한 번도 호통을 아니하고, 혹 벗으로 더불어 희롱하며 여상(如常)한 모양을 뵈이더라.
그 조카더러,
“지금 조정사(朝廷事)가 어떠하냐?”.
“중궁이 나가 계시이다.”
“하릴없다, 하릴없다.”
결의 사람 희롱하여 위로 왈,
“병세 이 같고 괴독(怪毒)이 심하니, 반드시 죽지 아니하리로다.”
태보 왈,
“나라에서 살리고자 두어 계시나, 내 기력 살기를 얻지 못한지라.”
하고 박 부인을 보기를 청하니, 또 부인과 소부인(小夫人)이 나아가 보니
“내 장차 죽을지라. 불효 극진하나 또한 명(命)이라. 일러 무엇 하리오. 부원(復願) 평심(平心) 관해(寬解) 하시고, 후사(後事)는 담의 형제 중하소서.”
대부인이 서로 차마 보지 못하고, 목이 메어 들어가니 그 친구들이 우리에게도 또한 할 말이 있느냐 물으니,
“다시 무슨 말 하리오.”
하고 조금 있다가 눈을 감고도 정신 설화(說話)가 오히려 분명하더라.
대부인이 다시 와서 보니,
“모씨 전에 다시 전달할 말씀이 없거니와, 오직 기후(氣候)가 안녕하시기 바라나이다.”
소부인이 부인 곁에 있어 비읍(悲泣)하기 마지 못하니
“내 죽은 후, 모씨 정회(情懷)는 우리 부인께 있고, 우리 후사도 또한 부인께 있으니, 부인이 죽은 즉, 일이 차마 말 못 할 바가 많으니, 과도히 애회(哀懷) 말고 보전하여, 우리 모씨를 잘 섬기어 내가 세상에 있는 나와 같이 하라. 이제 내가 죽을지라. 여기는 부인 있을 곳이 아니니, 속히 모씨를 모시고 들어가라.”
부인이 울고 가지 못하니 머리를 들고 꾸짖어
“남자가 죽기를 여인 손에 않느니, 속히 들어가고 머물지 말라.”
하고 인하여 종질(從姪)로 하여금 붙들어 가니라. 대부인이 다시 무슨 말할 일이 있느냐 물으니,
“원컨대 권학(勸學)하여 가르치소서.”
하였다.
이에 담기(痰氣)가 점점 올라 점석(苫席)에 졸(卒)하니, 공의 충심은 만고쟁영(萬古爭榮)하여 뉘 감탄치 않으리오.
상이 복(復)하시고 장희빈 직첩을 거두시고, 박태보 관작(官爵)을 돋우어서 용(用)하시고 시호를 내리셨으니, 기사년(己巳年) 사화(士禍)의 군자소인옥석(君子小人玉石)이 지금껏 분명하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매, 박태보 봉사손(奉祀孫)을 찾아 과거 시키었느니라.
- 주석은 아래 pdf 파일을 참조하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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