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정설(栗亭說)
백문보(白文寶, ?~1374)
신영산 풀이
尹相君初卜宅於坤岡之陽. 宅東西栗林稠密, 因構屋曰, 栗亭.
今又少西而新購宅, 栗林愈蕃焉.
城居罕植栗, 尹公購宅則惟栗是取.
윤상군초복택어곤강지양 택동서율림조밀 인구옥왈 율정
금우소서이신구택 율림유번언
성거한식율 윤공구택칙유율시취
윤 상군(尹相君)은 일찍이 곤강(坤岡)의 양지바른 곳에 집터를 마련하였다. 집터의 동서쪽으로 밤나무 숲이 울창하였는데, 그곳에 집을 짓고 ‘율정(栗亭)’이라 하였다.
지금 또 조금 서쪽으로 가서 새로 집을 샀는데, 그곳은 밤나무 숲이 더욱 무성하였다.
성안에 있는 집에 밤나무를 심는 사람이 드문데, 윤공은 집을 구할 때마다 오직 밤나무가 있는 곳을 선택하곤 하였다.
嘗謂余曰 : 春則枝疎, 相映於花卉, 夏則葉密, 可憩乎其陰.
秋則實美, 足克乎吾口, 冬則房墜, 通燒乎吾堗. 吾是用取栗焉.
상위여왈 춘칙지소 상영어화훼 하칙엽밀 가게호기음
추칙실미 족극호오구 동칙방추 통소호오돌 오시용취율언
일찍이 윤공은 나에게 말하였다,
“봄이면 가지가 성글어서 가지 사이로 꽃이 서로 비치고, 여름이면 잎이 우거져서 가히 그 그늘에서 쉴 수 있지. 가을이면 밤에 맛이 들어서 내 입이 만족스러울 만하며, 겨울이면 모아둔 껍질로 내 아궁이에 불을 지필 수 있다네. 이런 쓰임이 있기에 나는 밤나무를 택하는 거라네.”
余曰:
火就燥水流濕, 同氣相求, 理固必然.
蓋其所尙, 則物我之無間, 有不得不然者, 何也.
天地之間, 草木之生, 均是一氣. 然其根苗花實, 有難易先後之不一.
獨是栗最後於萬物之生, 栽甚難長.
而長則易壯, 葉甚遲發, 而發則易蔭, 花甚晩開, 而開則易盛, 實甚後結, 而結則易收.
蓋其爲物, 有虧盈謙益之理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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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취조수류습 동기상구 이고필연
개기소상 칙물아지무간 유부득불연자 하야
천지지간 초목지생 균시일기 연기근묘화실 유난이선후지불일
독시율최후어만물지생 재심난장
이장칙이장 엽심지발 이발칙이음 화심만개 이개칙이성 실심후결 이결칙이수
개기위물 유휴영겸익지이의
이에 나도 말하였다.
“불이 마른 것을 취하고, 물이 습한 곳으로 흐르는 것은, 같은 기운이 있는 것끼리 서로 구하는 것으로, 세상 이치가 반드시 그러한 것이네. 대개 그렇게 서로 숭상하는 것은, 물건이나 내가 다를 바가 없으니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왜 그러할까?
하늘과 땅 사이에서, 풀이나 나무가 나는 것은, 모두 한 기운으로 되는 것이라네. 하지만 그 뿌리나 싹이나 꽃이나 열매는, 어렵게 되는 것, 쉽게 되는 것, 일찍 되는 것, 늦게 되는 것, 모두 같지 않다네.
다만 이 밤은 모든 물건보다 가장 늦게 나고, 기르기도 매우 어렵고 긴 시간이 걸린다네. 하지만 자라기만 하면, 곧 튼튼해지며, 잎이 매우 늦게 달리지만, 달리면 그늘을 쉽게 만들어 주며, 꽃이 매우 늦게 피지만, 피기만 하면 성하기 쉬우며, 열매가 매우 늦게 열리지만, 열리기만 하면 거두기가 수월하다네.
대개 물건들은 이지러지면 차게 되고, 부족하면 보태지는 이치가 있기 때문이라네.”
尹公與余同年登科, 年已三十有餘. 而踰四十始霑一命, 人皆以爲晩.
而公就仕尤謹, 及知遇於先君之大用.
一日九遷, 登顯仕作司命, 不待矯揉而蔚乎其達矣.
其所立者先難, 而其所就者後易, 蓋有同於是栗之花實.
윤공여여동년등과 연이삼십유여 이유사십시점일명 인개이위만
이공취사우근 급지우어선군지대용
일일구천 등현사작사명 부대교유이울호기달의
기소립자선난 이기소취자후이 개유동어시율지화실.
윤공은 나와 같은 해에 과거에 합격했는데, 당시 30여 세였다. 그러다가 40세가 넘어서야 처음으로 벼슬에 나아갔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늦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공은 벼슬에 조심하여 충실히 하였기에, 옛 임금께서 먼저 공을 알아보시고, 크게 쓰셨다. 하루 동안에 아홉 번 승진하여, 높은 지위에 올라 사명(외교관)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이는 별로 손질을 하지 않았는데도 무성하게 뻗어나간 나무와 같은 것이다.
그 기틀을 세우는 것이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그 성취하는 것이 뒤에는 쉽게 된 것이니, 대개 이 밤나무의 꽃과 열매와 같은 바가 있다.
余請以理喩.
夫草木之句土, 其萌深而其坼遲. 坼則芽, 芽而枝, 必成乎幹矣.
水泉之盈科, 其出漸而其流止, 止則滙, 匯而淵, 必達乎海矣.
故其遲必將以速也, 其止必將以達也.
則虧可以盈, 謙可以益者, 亦何異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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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초목지구토 기맹심이기탁지 탁칙아 아이지 필성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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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이치를 설명하려 한다.
무릇 풀과 나무의 뿌리가 흙에 묻혀 있을 때, 그 싹이 깊으면 땅을 가르고 올라오는 것이 늦다. 가르고 올라오면 싹이 트고, 싹이 트면 가지가 생겨서 반드시 줄기를 이룬다.
샘물이 웅덩이에 가득 차게 되면, 그 물이 조금씩 흘러나오다가, 흐르던 것이 고이게 되고, 고이게 되면 물이 돌아 흐르고, 돌아 흐르면 못이 되어, 반드시 바다에까지 도달한다.
그러므로 그 느린 것은 반드시 장차 빨리 되는 것이요, 그 그치는 것은 반드시 장차 도달하려는 것이다. 이는 곧 이지러지면 차게 되는 것이며, 부족하면 보태지는 것과 또한 무엇이 다르겠는가.
可格其一物而質焉, 亦足以觀人之所尙.
則火燥水濕, 物我之無間者, 不得不然矣.
然則公之榮達, 則栗之生長, 而栗之收藏, 則公之卷舒.
其長也. 有輔世之道焉, 其藏也, 有養生之用焉, 余於是亭.
故表其理而爲之說.
가격기일물이질언 역족이관인지소상
칙화조수습 물아지무간자 부득불연의
연칙공지영달 칙율지생장 이율지수장 칙공지권서
기장야 유보세지도언 기장야 유양생지용언 여어시정
고표기리이위지설
한 가지 물건에 다가가 보더라도 이것은 실제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사람이 숭상하는 바를 관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곧 불이 마른 것으로 나아가고, 물이 습한 곳으로 흐르노니, 물건이나 내가 다를 바가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이 출세하여 영화롭게 된 것은, 곧 밤이 생장함과 같고, 밤을 거두어 간직하는 것은 곧 공이 물러나는 것과 같다. 그렇게 생장함에는 세상을 돕는 도가 있으며, 그렇게 간직함에는 자신의 삶을 수양하는 작용이 있다.
나는 이 정자에 대하여 그 이치를 들어 설(說)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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