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당서객전(山堂書客傳)
최충성(崔忠成, 1458~1491)
주해 신영산
書生不知何許人, 姓字莫解, 貫源難評.
又未知所自來也, 其在山堂也.
以讀書爲業而衣縫掖之衣, 冠章甫之冠, 幾乎有儒者氣像.
故自號山堂書客, 其爲人也性喜澹泊, 心絶浮華.
서생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성(姓)도 자(字)도 알 길이 없고 관향(貫鄕)의 근원도 판단하기 어렵다. 또 어디에서부터 온 자인지 알지 못하여 다만 그를 산당(山堂)이라고 말할 뿐이다. 독서를 업으로 삼고 도포(道袍)를 걸치며 유건을 쓰니 유학자의 기상에는 거의 가깝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스스로 호를 산당서객(山堂書客)이라 하였으니, 그 사람됨엔 성품이 밝고 담박하며 마음으로 겉치레를 끊었다.
人雖譽之而不以爲喜, 人雖毀之而不以爲憂, 喜怒不見於榮辱.
憂樂不繫於得失, 不求人之知, 不求名之顯.
사람들이 비록 칭찬하여도 기쁨으로 여기지 않았고, 사람들이 비록 험담하여도 근심으로 여기지 않아 희노(喜怒)가 영욕(榮辱)에서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우락(憂樂)을 득실(得失)에 얽매이지 아니하며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아니하였고, 명예가 드러나기를 구하지 아니하였다.
故嘗愛吟古詩云.
自知寡足眞堪笑, 賴有顏瓢一味長.
그러했기에 일찍이 고시(古詩)를 즐겨 읊었다.
“스스로 부족하나 족함을 알아 웃고 견디면서,
안연(顏淵)의 도시락과 표주박으로 느긋하다네.”
其爲養眞也則布被百結, 藜羹一盂, 一簞食, 一瓢飮, 得之則飽焉.
冬一裘, 夏一葛, 得之則服焉.
不以飢渴而苟得於人, 不以困窮而改其初心, 忍飢忍寒而講讀不撤.
그가 본성을 수양할 때는 누더기 베옷을 입었고, 나물 한 그릇을 먹으면서, 광주리의 밥 한 덩이와 표주박의 물 한 모금이라도 얻으면 배부르다고 여겼다. 겨울에는 가죽옷과 한 벌, 여름에는 갈옷 한 벌을 얻으면 그저 옷으로 여겼다.
배고프고 목마르다고 해서 남에게 구차하게 얻으려 하지 않았고, 곤궁하다고 해서 초심(初心)을 바꾸지 않았으며, 굶주림과 추위를 참으면서 글 읽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故嘗愛吟古詩云.
直在胸中窮亦樂, 何須戚戚向平生.
그러했기에 일찍이 고시(古詩)를 즐겨 읊었다.
“마음이 곧으면 궁해도 또한 즐거우리니,
어찌 모름지기 평생 근심할 것이 있으리오.”
其爲讀書也則窮探聖經, 盡閱賢傳, 上師聖人, 下友群賢.
以弟子之問, 爲己之問, 以聖人之答, 爲己之耳聞.
求其意於言語之間, 探其理於文字之外.
豈可以博聞強記, 巧文麗辭, 致力於詞章之末, 而不知其本哉.
그가 독서를 할 때는, 성인(聖人)의 경전을 깊이 탐구하고, 현인(賢人)의 글을 모두 열람하여, 위로는 성인을 스승으로 삼고 아래로는 여러 현인을 벗으로 삼았다. 제자들의 물음을 자기의 물음으로 삼고 성인의 대답을 자기의 귀로 듣는 것처럼 하였다. 여러 말씀 가운데서 그 뜻을 구하였고, 문자 밖에서 그 이치를 탐색하였다.
그러했으니 어찌 많이 듣고는 억지로 기억한 것으로, 화려한 기교로써 시와 글을 꾸미겠다고 하였을 것이며, 온 힘을 다했는데 그 근본을 알지 못했겠는가?
故嘗愛吟古詩云.
欲爲天下屠龍手, 肯讀人間非聖書.
그러했기에 일찍이 고시(古詩)를 즐겨 읊었다.
“천하의 용을 잡는 솜씨를 갖겠다고 하면서
어찌 성인이 짓지 않은 책을 읽으려 하는가?”
其爲學業也則正其衣冠, 尊其瞻視, 起居必中於理, 動靜無違於禮.
早夜孜孜, 而思顏子之所學者何學, 窮年兀兀, 而求孟氏之必稱堯舜者何道也.
終夜不寐, 終日不食, 仰而思之,
幸而得之, 去其不如聖賢者, 就其如聖賢者, 而兢兢業業, 惟日不足.
그는 그렇게 학업을 하면서 의관을 바로 하고, 눈빛을 존엄하게 하였으며, 생활은 반드시 이치에 맞게 하였고, 행동은 예(禮)를 어기지 않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학문에 힘쓰면서, 안자(顔子)가 배웠던 것이 어떤 학문이었는가를 생각하였고, 한평생 꼿꼿이 앉아 맹자(孟子)가 일컫던 요순(堯舜)시대에는 어떤 도(道)가 있었는가를 찾았다.
밤이 새도록 잠들지 않았고, 해가 지도록 먹지 아니하며, 우러러 생각하였다.
다행히 생각한 바를 얻게 되더라도 성현(聖賢) 같지 못한 것은 버렸고, 성현 같은 것이라도 나아가 경계하고 조심하기를 업(業)으로 삼았기에, 하루해가 부족하다 하였다.
故嘗愛吟古詩云.
術業貴及時, 勉之在靑陽.
希顏亦顏徒, 要在用心剛.
그러했기에 일찍이 고시(古詩)를 즐겨 읽었다.
“학업은 때에 맞게 하는 것이 귀하리니,
젊어서 학업에 힘을 써야 하리라.
안자(顔子)를 바라면 안자 무리가 되는 것이니,
중요한 것은 마음을 강건하게 하는 것이로다.”
其爲存心也則邪思妄念, 不作於意, 淫謀讒術, 不留於胸.
事未來而其體之寂然不動者, 如鑑之空而理無不具焉.
事方至而其用之感而遂通者, 如鑑之照而物無不見焉.
體用相須, 內外一體, 隨事而存, 靡他其適, 豈以一時而應兩事哉.
그가 마음을 보존할 때는, 사특(私慝)한 생각과 터무니없는 생각을 뜻에 두지 않았고, 음란한 계략과 속이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일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은 체(體)가 고요하기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며, 거울이 비어있는 것과 같아서 이치가 갖추어지지 않는 것이다. 일이 막 이르게 되면 그 용(用)이 감응하여 마침내 통하게 되는 것이니, 거울이 비추는 것과 같아서 사물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다.
체(體)와 용(用)이 서로 따르게 되고, 안과 밖이 하나가 되어, 일에 따라서 마음을 보존하고 다른 데로 가지 않으니, 어찌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호응할 수 있겠는가?
故嘗愛吟古詩云.
人心妙不測, 出入乘氣機.
至人秉元化, 動靜體無違.
그러므로 일찍이 고시(古詩)를 즐겨 읊었다.
“인심은 오묘하여 예측할 수가 없고,
들고 날 때는 운기를 타는 법이라.
지극한 사람은 하늘의 이치를 꿰뚫기에
행동할 때 마음의 어긋남이 없도다.”
其爲立志也則寧學聖人而未至, 不以小善而爲名.
寧以天下爲己任, 而不以一己之利害爲計.
陽德方亨而虎嘯風冽, 則可出而兼善, 以覺其未覺者.
豈可以高不事之心, 踰墻而避哉.
北風其涼而詑詑拒人, 則可退而保身, 自樂其身也.
豈可以立齊而操瑟, 獻璧而求售哉.
過門閉戶, 隨時而處, 素富素貧, 惟義所適.
그가 뜻을 세울 때는, 차라리 성인을 배우다가 이르지 못할지언정, 작은 선(善)으로 명예를 삼지 않았다. 또 차라리 천하의 일을 자기 일로 삼을지언정, 자기 한 몸의 이해를 위해 계책으로 삼지는 않았다.
양덕(陽德)이 바야흐로 형통하고 호랑이가 포효하여 찬바람이 일어날 때 나아가서 다른 이들을 감화시켰으니, 깨닫지 못한 자들도 깨닫게 하였다. 어찌 깔보면서 섬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담장을 넘어 피하였겠는가?
북풍이 몹시 차갑고 으쓱거려 사람을 막아버린다면, 물러나 몸을 보호하며 스스로 그 몸을 즐기곤 하였다. 어찌 비파를 가지고 가서 제(齊)나라 궁궐 문 앞에 서서 비파를 바치면서 팔리기를 바랐겠는가?
문을 지날 때는, 문이 닫힐 때에 따라 처신하였고,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오직 의(義)를 따랐다.
故嘗愛吟古詩云.
不汲汲於富貴, 不戚戚於貧賤.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그러했기에 일찍이 고시(古詩)를 즐겨 읊었다.
“부귀함에 급급하지 말 것이고
빈천함에 근심하지 말 것이라.
천하 사람들이 근심하기에 앞서 내 먼저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한 뒤에 비로소 내가 즐거워하는구나.”
其爲論道也則曰.
“用具於未始之前, 體立於有形之後. 太極流行於陰陽之中, 陰陽不出乎太極之內.
二氣交感, 理亦賦焉, 於是乎萬物生矣.
萬物之中, 飛者走者, 動者植者, 厥類非一.
而明三綱五常之道, 習六藝九疇之法. 強不呑弱, 下不陵上, 此人之所以爲貴者也.
人而不知則其何以異於禽獸哉.”
此書生之所以致力於學問者也.
그는 도(道)를 다음처럼 논하였다.
“용(用)은 시작되기 전에 갖추어지고, 체(體)는 형체가 있고 난 뒤에 세워진다. 태극(太極)은 음양(陰陽) 가운데로 흘러 퍼지지만, 음양은 태극의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두 기가 서로 감응하고 이(理)가 또한 부여되면 이에 만물이 생성된다.
만물은 나는 짐승 뛰는 짐승, 동물과 식물 등 하나의 부류가 아니다. 하지만 오직 사람만이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의 도를 밝히고, 육예(六藝)와 구주(九疇)의 법을 익힌다. 강자가 약자를 삼키지 않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지 않기에 사람이 귀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러니 사람이 되어 이것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금수와 다르겠는가?”
이야말로 서생이 학문에 힘을 쏟은 까닭이다.
故嘗愛吟古詩云.
若識無中含有象, 許君親見伏羲來.
又云.
由來道理非高遠, 須向人間事上求.
그러했기에 일찍이 고시(古詩)를 즐겨 읊었다.
“만약 무(無) 가운데 유(有)의 형상이 들어 있음을 안다면,
그대는 복희씨가 오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하리라.”
또 읊기를,
“도리(道理)는 본래 높고 원대한 것이 아니기에
모름지기 인간의 세상에서 구해야 하는 것이리라.”
或問曰.
“欲明三綱五常之道, 而去父子, 離妻子, 獨居山中, 惡在其爲求道也.
欲定其心而去聲色, 斷外物, 寂在深林, 其非反鑑而索照者乎.
子之學, 無乃有幾於釋氏之空寂耶.”
혹자가 그에게 물었다.
“삼강오상(三綱五常)의 도를 밝힌다고 하면서도, 부자(父子)를 버리고 처자(妻子)를 떠나서 홀로 산속에서 산다면, 구하려는 도가 있을 수 있으리오. 마음을 안정시킨다고 하면서, 듣는 것과 보는 것을 버리고 바깥세상과 단절하여 고요히 깊은 산속에만 있으니, 이는 거울을 뒤집어 놓고 비출 것을 찾는 것이 아닌가? 그대의 학문은 혹시 석가모니의 공적(空寂)에 가깝게 이른 것이 아닌가?”
書生曰然.
“父子之親, 夫婦之別, 長幼之序, 親親然, 友友然, 怡怡然, 和而睦之, 然後家可齊也.
耳之於聲, 目之於色, 口之於味, 固人之所不可無者也.
但於其間, 識其眞僞, 而不以此累其心, 然後心可得而定矣.
吾非惡此而不爲也, 又非有所托而逃之.
是亦有說焉, 不可幸而致也.
家在某州, 門戶零丁, 內乏甔石之儲, 外無應門之童.
冬暖而兒號寒, 年登而妻啼飢. 救死而恐不贍, 奚暇治禮義哉.”
서생이 답하였다.
“그렇다. 부자의 친함과 부부의 분별과 어른과 아이 간의 차례는 친애하고 우애하고 화락하여 화목하게 한 뒤 집안이 가지런해진 다음에야 이루어질 수 있다. 귀로 소리를 듣고 눈으로 색을 구별하고 입으로 맛을 보는 것은, 진실로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다만 그 사이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여 이러한 것으로써 마음을 얽매지 않은 연후에야 마음이 안정될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이것들을 싫어해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또 의탁할 곳이 있어서 도피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들에 대해 역시 할 말이 있으니, 요행으로 이를 수 없는 것이다.
집이 어느 고을 안에 있는데, 문은 닫혀있고 집안에는 항아리가 비어있으며 밖에는 손님 맞을 아이도 없다. 겨울이 따뜻해도 아이는 춥다고 부르짖고 농사는 풍년인데도 아내는 배고프다고 울어, 죽음을 구하기에도 부족할까 두려운데, 어느 겨를에 예의(禮義)를 다스리겠는가?”
魯齋先生曰.
“學當先治其產業, 產業不贍而衣食於奔走, 則雖欲學, 其可得乎.”
今者書生之窮, 若是其甚焉,
則必也荷鋤帶犢, 躬自耘耕而手胼足胝, 然後可以免死而已.
雖欲誦聖人之書, 求聖人之道而以至於聖人之域, 不亦難矣乎.
此書生之所以樂于山間. 而忘其家者也.
胡安定之裂家書, 范文正之斷虀羹, 而居于山間, 終成其道者, 豈非以是故歟.
노재(魯齋) 선생이 말하였다.
“학문을 하려면 먼저 생업을 다스려야 하니, 생업이 넉넉하지 못하여 먹고사는 데 분주하면 비록 배우고자 하나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서생의 궁함이 이처럼 심하다면, 반드시 호미를 메고 송아지 끌고 몸소 농삿일을 하여 손과 발에 못이 박힌 뒤에야 죽음을 면할 수 있을 따름이다. 비록 성인의 글을 외우고 성인의 도를 찾아서 성인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나,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이는 서생이 산속에서 즐기며 집안을 잊은 까닭이다. 호안정(胡安定)이 집에서 온 편지를 찢고 범문정(范文正)이 나물국도 끊고서 산속에 거처하여 마침내 도를 완성했던 것이 어찌 이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故書生嘗自吟云.
靑山疊疊, 綠水汩汩.
塵喧不到, 世慮不接.
無思無慮, 獨行獨樂.
仰觀俯察, 不愧不怍.
風來山亭, 於焉而臥.
雲橫山腰, 於焉而坐.
鶴舞山顏, 與之共嬉.
猿號山嶺, 與之相宜.
鬱鬱山松, 爲廬爲室.
盤盤山石, 爲床爲席.
月掛山上, 可以看詩.
花落山庭, 可以療飢.
山中之樂, 樂且無央.
遊於斯樂於斯,
終吾生以徜徉.
그러했기에 서생이 일찍이 스스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청산은 첩첩하고, 녹수는 콸콸 흘러가니
속세의 시끄러움이 닿지 않아, 세상의 염려가 접할 일이 없어라.
생각도 근심도 없이 홀로 행하고 홀로 즐겼으니
우러러보고 굽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었도다.
바람이 산속 정자로 불어오면 누워 지내고,
구름이 산허리에 걸리면 앉아서 지냈다네.
학이 산등성이에서 춤추면 함께 즐겼고,
원숭이가 산마루에서 울면 뜻을 함께하였도다.
울창한 산속 소나무 숲이 집이 되고 방이 되며
반반한 산속의 바위를 상과 의자로 삼았노라.
달이 산꼭대기에 걸리면, 시를 읊을 만하고,
꽃이 산자락에 떨어지면 요기가 되었도다.
산속의 즐거움은 즐거움이 다하도록 끝이 없고,
여기에서 노닐면서 여기에서 즐기면서
내 생애를 마치도록 거닐 것이라.”
此其爲書生之樂乎.
書客不知其何者, 而傍有山人, 遂爲之傳云.
이것이 산당(山堂)에서 사는 서생의 즐거움일 것이다.
서생을 찾은 객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곁에 산사람이 있어 마침내 전(傳)을 지었다.
'고전 풀어 읽기 > 한문소설,가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석경의 한문소설 '박효랑전(朴孝娘傳)' 전문 풀이 (0) | 2021.08.24 |
---|---|
안석경의 한문소설 '검녀(劍女)' 전문 풀이 (0) | 2021.08.23 |
허균의 한문소설 '손곡산인전' 전문, 원문과 주해 (0) | 2020.12.08 |
허균의 한문소설 '엄처사전' 전문, 원문과 주해 (0) | 2020.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