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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한문소설 '손곡산인전' 전문, 원문과 주해

New-Mountain(새뫼) 2020. 12. 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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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한소)손곡산인전-허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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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許筠)의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

 

주해  신영산

 

 

蓀谷山人 李達字益之.

雙梅堂李詹之後, 其母賤, 不能用於世. 居于原州蓀谷, 以自號也.

達少時, 於書無所不讀, 綴文甚富. 爲漢吏學官, 有不合, 棄去之.

손곡산인 이달자익지

쌍매당이첨지후 기모천 불능용어세 거우원주손곡 이자호야

달소시 어서무소부독 철문심부. 위한리학관 유불합 기거지

 

손곡산인(蓀谷山人) 이달(李達)의 자는 익지(益之)이다.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의 후손이었지만, 모친이 천인(賤人)이어서 세상에 쓰여질 수 없었다. 원주(原州)의 손곡(蓀谷)에 살았기에 자신의 호(號)로 삼았다.

이달은 젊은 시절에 읽지 않은 책이 없었고, 지은 글도 무척 많았다. 한리학관(漢吏學官)이 되었지만, 합당치 못한 일이 있어 벼슬을 버리고 가버렸다.

 

從崔孤竹慶昌,白玉峯光勳遊, 相得懽甚 結詩社.

達方法蘇長公, 得其髓, 一操筆輒寫數百篇, 皆穠贍可詠.

一日, 思菴相謂達曰 : “詩道當以爲唐爲正. 子瞻雖豪放, 已落第二義也.”

종최고죽경창 백옥봉광훈유 상득환심 결시사

달방법소장공 득기수 일조필첩사수백편 개농섬가영

일일 사암상위달왈 시도당이위당위정 자첨수호방 이락제이의야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과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과 교유하였는데, 서로 마음이 맞아 아주 기뻐하였고, 시사(詩社)를 맺기도 하였다. 이달은 바야흐로 소장공(蘇長公)가 시를 짓던 방법을 본받아, 그 핵심을 터득하여 한번 붓을 잡으면 문득 수백 편을 적어 냈으나, 모두 내용이 깊고 풍부하여 읊기에 좋은 시들이었다.

하루는 정승 사암(思菴)이 이달에게 이르기를,

“시를 지을 때는 마땅히 당시(唐詩)를 법도로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네. 자첨(子瞻)의 시는 호방하기는 하지만, 이미 당시에는 미치지 못한다네.”

 

遂抽架上太白樂府歌吟,王孟近體以示之. 達矍然知正法之在是.

遂盡捐故學 歸舊所隱蓀谷之莊.

取文選太白及盛唐十二家,劉隨州,韋左史曁伯謙唐音 伏而誦之.

夜以繼晷, 膝不離坐席. 凡五年 悅然若有悟. 試發之詩, 則語甚淸切, 一洗舊日熊.

수추가상태백악부가음 왕맹근체이시지 달확연지정법지재시

수진연고학 귀구소은손곡지장

취문선태백급성당십이가 유수주 위좌사기백겸당음 복이송지

야이계귀 슬불리좌석 범오년 열연약유오 시발지시 칙어심청절 일세구일웅

 

그리고는 시렁 위에서 이태백(李太白)의 악부(樂府)와 가음시(歌吟詩), 왕유(王維)와 맹호연(孟浩然)의 근체시(近體詩)를 찾아내서 보여주었다. 이달은 깜짝 놀란 듯, 올바른 창작 방법이 거기에 있음을 알았다. 마침내 이전에 배운 기법을 완전히 버리고, 예전에 숨어 살던 손곡(蓀谷)의 땅으로 돌아갔다.

≪문선(文選)≫과 이태백의 시, ≪성당십이가(盛唐十二家)≫, 유수주(劉隨州), 위좌사(韋左史) 및 백겸(伯謙)의 ≪당음(唐音)≫까지 꺼내서, 문을 닫고 외었다. 밤이면 날을 새운 적도 있었고, 온종일 무릎을 자리에서 떼지 않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여 다섯 해가 지나자 어렴풋하나마 깨우침이 있었다. 시험 삼아 시를 지었더니, 시어가 무척 맑고 절개가 높아, 옛날의 수법을 완전히 씻을 수 있었다.

 

卽倣諸家體而作長短篇及律絶句. 鍛字聲揣律摩 有不當於度, 則月竄而歲改之.

凡著十餘篇, 乃出而詠之諸公間, 諸公嗟異之.

崔白皆以爲不可及. 而霽峯荷谷一代 名爲詩者, 皆推以爲盛唐.

즉방제가체이작장단편급률절구 단자성췌률마 유불당어도 칙월찬이세개지

범저십여편 내출이영지제공간 제공차이지

최백개이위불가급 이제봉하곡일대 명위시자, 개추이위성당

 

그리하여 여러 시인의 시의 격식을 본받아 장편(長篇)과 단편(短篇), 율시(律詩)와 절구(絶句)를 지어냈다. 글자를 단련하고 소리를 헤아리며, 운율을 연마하였다. 시의 법도에 부당함이 있으면, 달이 넘고 해가 가도록 다시 고쳐 짓기를 거듭하였다.

무릇 그렇게 십여 편을 지어서, 비로소 세상에 내놓고 여러 문인 사이에서 읊었는데, 모두 감탄해 마지않으며 깜짝 놀랐었다.

최경창과 백광훈 등도 모두 따라갈 수 없다고 하였고, 제봉(霽峯)과 하곡(荷谷)과 같은 당대에 시로 이름난 분들도, 모두 성당(盛唐) 풍의 시를 짓는다고 추켜세웠다.

 

其詩淸新雅麗高者. 出入王孟高岑, 而下不失劉,錢之韻.

自羅麗以下, 爲唐詩者皆莫及焉. 寔思菴鼓舞之力. 而其陳涉之啓漢高乎.

達以是名動東國, 貴之而捨其爲人, 稱譽不替者, 詞林三四鉅公也.

而俗人之憎嫉者, 比肩林立. 屢加以汚衊, 寘之刑網, 卒莫能殺而奪其名也.

기시청신아려고자 출입왕맹고잠 이하부실유 전지운

자나려이하 위당시자개막급언 식사암고무지력 이기진섭지계한고호

달이시명동동국 귀지이사기위인 칭예불체자 사림삼사거공야

이속인지증질자 비견임립 누가이오멸 치지형망 졸막능살이탈기명야

 

이달의 시는 깨끗하고 산뜻하였으며, 우아하고 고왔고 수준이 높았다.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 고적(高適), 잠삼(岑參)에 버금갔고, 수준이 낮은 것도 유장경(劉長卿)과 전기(錢起)의 운율을 잃지 않았다.

신라(新羅)와 고려(高麗) 이래로 당시(唐詩)를 지었다고 하는 사람 중 아무도 이달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 정말로 사암(思菴)이 고무시켜 준 힘이었으니, 그건 진섭(陳涉)이 한고조(漢高祖)의 창업을 열어 준 것이라고나 할까.

이달은 이 때문에 이름이 우리나라에 울렸고, 귀하게 여겨져 그의 신분은 놓아두고도, 칭찬해 마지않는 분들로, 시문(詩文)에 뛰어난 서너 명의 큰 문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속인(俗人) 중에는 증오하고 미워하는 자들이 줄줄이 이어 있었다. 여러 번 더러운 누명을 덮어씌우며, 형벌의 그물에 밀어 넣었지만, 끝내 죽게 하거나 명성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達貌不雅, 性且蕩不檢. 又習俗禮 忤於時.

而善談今古 及山水佳致喜酒 能晉人書.

其中空洞無封畛, 不事產業, 人或以此愛之.

平生無着身地, 流離乞食於四方, 人多賤之. 窮厄以老, 信乎坐其詩也.

然其身困而不朽者存, 豈肯以一時富貴易此名也.

所著殆失盡, 不佞粹爲四卷以傳云.

달모불아 성차탕불검 우습속례 오어시

이선담금고 급산수가치희주 능진인서

기중공동무봉진 불사산업 인혹이차애지

평생무착신지 유리걸식어사방 인다천지 궁액이로 신호좌기시야

연기신곤이불후자존 개긍이일시부귀역차명야

소저태실진 부녕수위사권이전운

 

이달은 용모가 아담하지 못하고, 성품이 호탕하였으나 자신을 잘 단속하지 않았다. 또 당시 풍속의 예법에도 익숙하지도 못하여, 이런 것들 때문에 시류에 거슬리기도 하였다.

이달은 고금(古今)의 이야기를 잘했으며,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 이르면 술을 즐겨 마셨다. 진(晉)나라 사람에 가깝도록 글씨도 잘 썼다. 마음은 탁 트여 한계가 없었고, 먹고 사는 생업에는 종사하지 않아서, 사람 중에는 이 때문에 더 그를 좋아하는 이도 있었다.

평생 몸을 붙일 곳도 없어,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며 빌어먹기까지 했으니, 사람들이 대부분 천하게 여겼다. 그렇지만 궁색한 액운으로 늙어갔음은, 말할 나위도 없이, 그가 시 짓는 일에만 몰두했던 탓이었다.

그러나 이달의 몸은 곤궁했어도 불후의 명시를 남겼으니, 한때의 부귀로 어떻게 이와 같은 명예를 바꿀 수 있겠는가. 지은 글들이 거의 다 없어질 지경인데, 내가 가려서 네 권으로 만들어 전해지게 하였다.

 

外史氏曰.

朱太史之蕃, 嘗觀達詩. 讀至漫浪舞歌, 擊節嗟嘗曰 : “斯作去太白, 亦何遠乎?”

權石洲韠見其斑竹怨曰 : “置之靑蓮集中, 具眼者不易辨也.”

此二人者, 豈妄言者耶. 噫, 達之詩, 信奇矣哉.

외사씨왈

주태사지번 상관달시. 독지만랑무가 격절차상왈 사작거태백 역하원호

권석주필견기반죽원왈 치지청련집중 구안자부역변야

차이인자 개망언자야 희 달지시 신기의재

 

외사씨(外史氏)는 논한다.

태사(太史) 주지번(朱之蕃)은 일찍이 이달의 시를 보았다. 시 <만랑무가(漫浪舞歌)>를 읽고서는, 박자를 맞추며 마음에 느끼는 바대로 칭찬하기를,

“이 작품이 이태백(李太白)의 시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했으며, 석주(石洲) 권필(權韠)도 이달의 시 <반죽원(斑竹怨)>을 보고서,

“청련(靑蓮)의 시집 속에 넣어도, 안목을 갖춘 사람일 망정 판별하기 쉽지는 않으리라.”

하였으니, 이 두 사람이 어찌 망언을 할 사람이겠는가. 슬프다. 이달의 시야말로 진실로 기특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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