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운문)/채련곡

조선의 채련곡9 - 여규형(呂圭亨)

New-Mountain(새뫼) 2020. 12. 20. 15:49
728x90

21. 여규형(呂圭亨, 1848~1921)

 

益州采蓮曲  익주채련곡

 

 

東家小女西家娘 동가소녀서가낭     동쪽 집의 어린 소녀, 서쪽 집의 어린 낭자

相約淸晨去采蓮 상약청신거채련     약속하여 동이 틀 때 연꽃을 캐러 가네.

春浦西南十里塘 춘포서남십리당     춘포* 서남쪽 십 리의 연못에는

蓮莖蕺蕺葉田田 연경즙즙엽전전     연 줄기가 쭉쭉 올라 연잎이 가득한데

短帬赤脚陷泥淖 단군적각함니뇨     몽당치마 맨발인데 진흙 속에 담가두고

長鑱木柄連根拔 장참목병련근발     긴 침으로 줄기 달린 뿌리를 뽑아내네.

行人笑問胡爲爾 행인소문호위이     지나던 이* 웃으면서 무얼 하냐 물었구나.

 

以此糊口資生活 이차호구자생활     답하기를, 이것으로 겨우 입에 풀칠하네요.

昨年大旱焦山澤 작년대한초산택     작년 큰 가뭄으로 산과 연못이 말라버려

禾黍苽菓無遺種 화서고과무유종     벼와 기장 오이 종자 남은 게 없었어요.

苦遲今夏麥登場 고지금하맥등장     올여름 보리 패기 괴롭고도 더딘데도,

徴租索錢不旋踵 징조삭전불선종     세금 낼 돈 찾으려니 겨를도 없었지요.

松皮剝盡野無草 송피박진야무초     솔 껍질 모두 벗기고 들에는 풀도 없어

枵腹日日庚癸呼 효복일일경계호     굶주리며 나날이 양식 달라 부르짖었죠.

夙聞富豪饍氷藕 숙문부호선빙우     일찍이 들어보니 부자들은 흰 연뿌리가

全勝秋江溧飯菰 전승추강률반고     가을 강의 고미밥*보다 낫다고 좋아한대요.

采采歸來作鼎實 채채귀래작정실     캐고 또 캐 돌아와서 솥 가득 삶았는데

麤硬淡澁不可口 추경담삽불가구     거칠고 떫기만 해 먹을 수가 없었어요.

吞嚥猶覺有生意 탄연유각유생의     그래도 삼키면 살고 싶다는 생각 드니

釜中生魚亦已久 부중생어역이구     솥 안에 고기가 생겨난 지* 오래랍니다.

 

我聞此語重歎息 아문차어중탄식     내가 이 말 듣고 거듭 탄식하였도다.

嗷鴻澤國誰能數 오홍택국수능수     연못의 슬픈 기러기* 뉘라서 헤아릴까.

民生不可有此色 민생불가유차색     백성이 누런 낯빛 되어서는 안 되는데

咬根漫說百事做 교근만설백사주     풀뿌리를 씹는다고 온갖 일이 이루어지나.*

因念古來女子職 인념고래여자직     예로부터 여자들의 직분을 생각해보면

祭祀采蘩蠺采桑 제사채번잠채상     흰 쑥 캐어 제사하기* 뽕잎 따다 누에치기라.

就中江南采蓮者 취중강남채련자     그중에 강남에서 연잎 캐는 사람들은

凌波仙襪紅粉粧 능파선말홍분장    비단 버선 물결 밟고 곱게 단장했다지만.

葉暗無光絲難織 엽암무광사난직     잎 그늘져 어두우니 베를 짜기 어려웠고

十丈甘蜜殊荒唐 십장감밀수황당     열 길 연꽃 달다는 건 황당한 말일지니*

不過土風事遨遊 불과토풍사오유     강남의 풍속임에 불과할 것이로다.

蘭舟桂棹泛中央 난주계도범중앙     목란주 배 계수 노로 못 가운데 떠 다니다

誰謂將此代艱食 수위장차대간식     뉘라 어찌 생각했을까, 먹을거리 대신할 줄.

 

草木橫被池魚殃 초목횡피지어앙     초목의 횡액이요, 연못 고기 재앙이라.

花神上訴天應泣 화신상소천응읍     연꽃 신이 상소하면 응당 하늘을 울리리니

化爲甘澍徧四方 화위감주편사방     이 뜻이 변화되어 단비 되어 흩뿌리리라.

富貴人家哺用脯 부귀인가포용포     부잣집 딸들은 고기를 먹는다던데*

寔命不猶至此極 식명불유지차극     운명이 달라 오히려 이 지경에 이르렀네.

采蓮之曲不勝悲 채련지곡불승비     채련곡에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으니

采作風謠獻京國 채작풍요헌경국     채련곡으로 풍요* 지어 나라에 바치노라.

 

-≪荷亭初稿(하정초고)≫

 

 

* 춘포 : 익주(현 전북 익산) 지방의 있던 개천 이름.

* 행인 : 작가

* 고 : 고미(菰米). 물가에서 자라는 식물로 열매를 채취해서 밥처럼 지어 먹었다고 함.

* 부중생어 : 오래 계속되지 못할 일.

* 오홍 : ≪시경(詩經)≫에서 백성이 먹고 살길이 없어 유랑하는 모습을 슬피 우는 기러기에 비유한 말.

* 교근만설백사주 :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 “풀뿌리를 씹어먹게 되면, 백 가지 일을 성사할 수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 글에서는 여기에서는 ‘풀뿌리는 씹는다고 성사될 일이 있겠는가.’ 하고 본래의 의미와는 반대로 풀이하였음.

* 번 : 산흰쑥(白蒿)이란 나물로 중국에서는 제사에 사용하였다고 함.

* 십장감밀 : 당나라의 시인 한유(韓愈)는 <고의(古意)>에서 “태화봉 봉우리 우물에 핀 연꽃은, 꽃이 피면 열 길이고 잎 넓기는 배만 한데, 눈 서리처럼 시원하고 꿀처럼 달았더라. 한 조각만 먹게 돼도 위중한 병이 낫는다지.”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먹을 게 없어서 연뿌리를 먹는 사정을 말하고 있음.

* 포용도 : 한나라 시인 진림(陳琳)은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에서 장정들이 만리장성에 축조에 동원되었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을 노래하면서, “사내를 낳거든 제발 떠들지 말고, 딸을 낳거들랑 고기 먹여 키우소서.”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이를 같은 딸이라도 고기를 먹지 못하고 연뿌리를 캐러 다니는 낭자들의 처지를 노래한 것임.

* 풍요 : 그 지방의 풍속을 읊은 노래.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