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문산문

홍성민의 '석전설(돌싸움 이야기)'

New-Mountain(새뫼) 2018. 3. 1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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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설(石戰說) - 돌싸움 이야기

홍성민(洪聖民)

 

 

작년에 안찰사(按察使)로서 영남(嶺南)을 순회하던 중 경주에 당도했을 때의 일이다. 때는 정월 보름, 밤이 되자 거리가 떠들썩한 게 마치 무슨 전투라도 벌어진 듯하더니 그 왁자지껄한 소리는 새벽이 되어도 그칠 줄을 몰랐다.

 

去年按嶺南巡到鷄林府在月正旬望夜有聲喧聒街巷若鬪若戰達曙猶不止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았더니 그의 대답인즉 그 고을에 예부터 돌싸움<石戰>’이라는 것이 있어 왔단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고을 사람들은 언제나 정월 보름이면 좌우로 편대를 갈 라 서로 각축전을 벌이는데 비가 쏟아지듯 싸락눈이 퍼붓듯 서로 돌팔매질을 하여 승부가 가려질 때까지 그달 내내 싸우다가 이기면 그 해 운수가 좋고, 지면 나쁘기 때문에 싸울 때는 오직 싸움에만 몰두하여 그칠 줄을 모른다고 한다. 그것은 그 한 해의 길흉이라는 것이 그들 마음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問之人邑俗之有石戰古也此邑之人每於月元隊左右角彼此手以石石以戰衆石交投雨下霰集惟雌雄是決限月盡乃已捷則辦一年之吉否則凶其所以力于戰而不知止者一年之吉凶動其心也

 

싸움이 일단 시작되면 돌멩이는 손에 쥐어지고 손에 쥐어진 것은 돌멩이 뿐이어서 있는 힘을 다하여 숨을 몰아쉬고 땀을 뻘뻘 홀리면서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가로 치닫고 앞으로 돌진하고 마치 미치광이처럼 날뛴다. 던질 때는 반드시 남보다 먼저 던지고 싸움도 혹시 남 뒤질세라 자식이 아비에게, 아우가 형에게, 척속(戚屬)이 척속에게, 이웃이 이웃에게 마구 돌팔매질을 퍼붓는다. 이미 너와 나로, 원수로 갈린 이상 반드시 상대와 맞서고 상대를 이겨서 내가 장해지고 내가 올라서고자 하는 것이다.

 

方其戰也塊其石而手之手其塊而石之出氣力賈勇銳喉喘顚汗橫奔直突有若狂者然投必人先戰恐人後子而石其父弟而石其兄戚屬而石其戚屬隣里而石其隣里物我相形仇敵已分必欲抗彼而我壯克彼而我乘

 

그러기에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고, 살갗이 찢기어 살이 드러나고, 머리를 싸매고, 발이 갈라지고, 기가 죽고, 털이 빠지고 하여 구렁텅에 쭈그리고 앉아 깊이 숨도 못쉬게 만들어 놓아야만 비로소 내 마음이 시원하여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내가 이겼다. 상대는 도망쳤다. 이제 나는 금년의 길운을 차지하여 우환도 없을 것이고 질병도 없을 것이다.”

 

乃敢血頭顱肉肌膚使之裹頭裂足喪氣褫魄顚縮於溝壑而不敢喘然後快於心揚揚然曰吾其勝矣彼其奔矣吾可以辦今年之吉而無憂患矣無疾病矣

 

또 싸움이 끝나고 난 후에는 아비에게 돌팔매질을 했던 자식이 말한다.

내가 감히 우리 아버지에게 돌팔매질한 것이 아니라 싸움 그 자체에다 돌멩이를 던졌을 뿐이다.”

아우로서 형에게 돌팔매질 했던 자도, 척속으로서 돌팔매질했던 자도, 또 이웃끼리 그랬던 자들도 모두 이구동성으로 오직 싸움에 돌멩이질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子而石之者曰非敢石吾父也石于戰也弟而石之者曰非敢石吾兄也石于戰也戚屬而石之者曰非敢石吾戚屬也石于戰也隣里而石之者曰非敢石吾隣里也石于戰也

 

뿐만 아니라 돌팔매질을 당한 부형 쪽에서도 말한다.

저가 감히 내게 돌팔매질을 한 것이 아니라 싸움이었을 뿐이다. 나도 일찌기 우리 아버지에게, 우리 형에게 돌멩이질을 하였었다.”

그 주장은 척속도 이웃끼리도 마찬가지이다. 이유는 다름 아닌 습속이 몸에 배어 있고 그 풍속이 흘러 전해온 지도 오래되어 그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그들에겐 여 겨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윤리(倫理)가 말살되고 풍교(風敎)에 손상을 주어도 그것이 이상히 여겨지질 않는 것이다.

 

父兄亦曰彼非敢石我也戰也吾亦曾石吾父石吾兄矣戚隣亦曰彼非敢石我也戰也吾亦曾石吾戚石吾隣矣所以然者習熟慣而流傳久自以爲當然蔑倫理傷風敎而不知怪矣

 

! 1년 동안의 길흉이래야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고 또 길흉 그 자체도 사실 그리되는 것인지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이해(利害)라는 그 한 생각이 속에서 맹동하고 있고 잘못된 습속이 마음에 고질화되어 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형에게, 척속들 사이에, 또 는 이웃끼리 서로 원수가 되어 돌팔매질을 하면서 내가 자식이요, 아우요, 척속이요, 이웃이라는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嗚呼一年之吉凶非緊也吉凶之說亦非固也利害一念萌于中習俗之誤痼其心石其父石其兄石其戚屬石其隣里而仇敵之不暇念其我是子弟也我是戚隣也

 

급기야 정월이 다 가고 싸움도 끝이 나면 지난 날 돌멩이질을 했던 그들이 이제 다시 부자가 되고, 형제가 되고, 척속이 되고, 이웃이 되어 언제 그 일이 있었더냐는 듯이 윤리가 밝아지고 서로 화기에 넘쳐 이제는 또 지난날 저가 바로 내게 돌을 던지던 자라는 것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것이다.

 

及其元月畢戰事已向日之石之者爲父子爲兄弟爲戚屬爲隣里而倫理之融融然怡怡然不暇念其向日彼之石我也我之石彼也

 

그 돌쌈이 있게 된 것은 유래가 있다. 신라의 도읍이 바다와 가까이 있어 섬 오랑캐들이 자주 침범하기 때문에 미리 돌팔매질이라도 익혀 음우(陰雨)에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번 그 유전(流傳)이 잘못되자 길흉이라는 엉뚱한 개념이 거기에 붙어 천 백년을 지나는 동안 윤리에 손상을 주어가면서까지 자신도 모르게 그 일을 되풀이해 왔던 것이다.

 

夫石戰之作有自來矣羅都近海島夷作梗隸戰于石以爲陰雨之備而流傳一誤吉凶之說作歷千百年至傷其倫理而不自知也

 

이해라는 그것이 한번 마음속에서 들썩이면 부자·형제·척속 그리고 이웃이 일시에 원수가 되고, 반대로 마음속으로부터 한번 이해에 관한 생각을 지워버리면 지난날의 원수였던 자가 이제 다시 부자·형제·척속·이웃으로 돌아와 그 정분이 다시금 멀쩡해진다. 그러니 이 이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얽어매고 있으며 또 습속이라는 것이 경우 에 따라서는 얼마나 사람들을 그릇되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利害之說一動其心而父子兄弟戚隣而仇敵焉利害之念一釋于中而向日之仇敵者父子兄弟戚隣之分自若焉甚矣利害之累此心也習俗之誤此人也

 

! 이해, 우리가 이해라는 그 생각만 아니라면 부자·형제·척속·이웃 이 모두에 아마 윤리가 다시 밝아지고 사리에도 서로 어긋남이 없을 것 아닌가. 따라서 이 역시 세속 인심을 깨우치고 풍화(風化)를 바로잡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있으리라 생각되어 감히 이렇게 말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微利害一念父子兄弟戚屬隣黨之理庶乎其不差矣此有可以警俗人而扶風化者故敢爲之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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