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며 배우며/시 더읽기

김남주의 '녹두장군'

New-Mountain(새뫼) 2016. 10. 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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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김남주



무엇 때문일까

백년 전에 죽은 그가 아니 죽고

내 안에 살아 있는 것은

내 가슴에 내 핏속에 살아 숨쉬고

맥박처럼 뛰는 것은


그도 내 아버지의 아버지처럼

서너 마지기 논배미로 평생을 살았던 가난한 농부였기 때문일까

나와 같이 그 사람도 한때는

글줄이나 읽었던 서생이었기 때문일까


무엇 때문일까

천석꾼 만석꾼 큰 부자도 아녔던 그가

가난한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구척장신 불세출의 영웅호걸도 아녔던 그가

녹두꽃이라 녹두장군이라 인구에 회자된 것은

백년 동안 민중의 가슴 속에 남아

답답할 때면 노래되어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캄캄한 밤이면 별이 되어 그들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는 본다

들것에 실려 서울로 압송되어 가는 그의 얼굴에서

두개의 눈을 본다

양반과 부호들에 대한 증오의 눈과

가난한 민중에 대한 사랑의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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