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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내려 걷고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뒤를 보지는 않습니다. 발밑으로 채이는 낙엽이라든지, 벌써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이제 내려가는 일만 생각합니다. 꽤나 많이 내려온 것임이 분명했지만, 얼마나 더 내려가야만하는지 가늠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잠시 쉬기로 하였습니다.
그루터기에 돌무지에 아무렇게나 곤한 몸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런데 데자뷰인양 낯익은 얼굴도 내 옆에서 쉬고 있습니다. 산을 올라가는 길에 더 오르기 위해 잠시 호흡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 사람은 올라가야 할 길은 보지 않고 올라온 길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습니다.
올라오며 남겨둔 적지 않은 흔적을 헤아려 보는 것일까요. 아니면 저 멀리 있을 시작점에 대한 아쉬움을 곰곰이 새기고 있는 것일까요. 혹 거기에 남겨두고 온 무엇인가를 더듬으며 추억을 진하게 물들여 풀어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무거운 어깨짐으로 남겨두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쯤입니다. 내려가는 이가 올라오는 이를 만날 수 있는 곳이. 하지만 나는 저이를 살펴보고 있지만 저이는 내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기에 충고는 허튼 독백이 될 뿐입니다. 그래도 내려오는 때, 알게 되겠지요. 산길을 자욱하게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오르며 남겨둔 언어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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