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臺劒俠傳(오대검협전)
; 오대산의 검협 이야기
金祖淳(김조순, 1765~1832)
신영산 옮김
五臺劒俠, 不知何人也.
오대검협 불지하인야
오대산의 검협이란 사람은 누구인지 잘 모른다.
英宗時, 京師有徐生者, 癖堪輿術.
嘗游五臺山, 登絶頂. 望龍脉之重疊, 意欲窮其奇.
跨澗度嶺, 不知幾何里. 至一林,
영종시 경사유서생자 벽감여술
상유오대산 등절정 망용맥지중첩 의욕궁기기
과간도령 부지기하리 지일림
영조 때 서울에 서생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일찍이 풍수와 방술을 아주 좋아하였다.
어느 날 오대산에 가서 놀게 되었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산줄기가 거듭하며 흘러감을 바라보다가, 문득 지맥의 기이함을 다 보고 싶어졌다.
서생은 물을 건너고 고개를 지나, 몇 리를 지났는지 알지 못한 채 한 숲에 이르렀다.
日已暮, 四望不見人烟處.
心甚慌, 披荊覓路, 天漸黑, 不辨東西, 政惶急無措.
忽有燈光, 星星從葉間漏. 生乃匍匐趁光而前. 林竟茅廬在焉.
일이모 사망불견인연처
심심황 피형멱로 천점흑 불변동서 정황급무조
홀유등광 성성종엽간루 생내포복진광이전 임경모려재언.
하지만 날이 이미 저물었고, 사방을 살펴봐도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몹시 당황하여 가시나무를 헤치며 길을 찾았지만,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동서를 분간할 수 없었기에, 황급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런데 홀연히 등불 빛이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고 있었다. 서생은 엉금엉금 기어 빛을 따라 앞으로 나갔다. 숲이 다하는 곳에 오두막집 하나가 있었다.
生叩之,
一少年出, 而驚曰 : “此虎豹藪也, 客何人也?”
생고지
일소년출 이경왈 차호표수야 객하인야
서생은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한 젊은이가 나오더니 깜짝 놀라며,
“여기는 호랑이와 표범이 득실거리는 곳이온데, 손님은 누구십니까?”
라고 물었다.
語之故.
喜曰 : “山中多猛獸, 人居止敝舍, 客幸至此.”
卽延坐堂上.
語屋內人 : “急辦飯, 與客充飢!”
어지고
희왈 산중다맹수 인거지폐사 객행지차
즉연좌당상
어옥내인 급판반 여객충기
서생은 이곳으로 오게 된 연유를 말하였다.
젊은이는 다행한 듯이,
“이 산중에는 사나운 짐승이 많고, 사람들이 거처할 곳이라고는 다만 이곳뿐이지요. 여기에 이르렀으니 다행이옵니다.”
라고 하며, 곧 서생을 맞아 방 안에 앉게 하였다. 그리고는 집안사람에게
“급히 밥을 지어, 손님의 허기짐을 채우게 하오.”
라고 말하였다.
生視少年, 年可三十餘, 貌秀氣溫, 無村秀才態.
室中惟滿架書, 四壁無點塵.
問其姓氏, 曰: “徐當告之.”
생시소년 연가삼십여 모수기온 무촌수재태
실중유만가서 사벽무점진
문기성씨 왈 서당고지
서생이 젊은이를 보니, 나이는 서른 정도인데 용모는 빼어났고, 기운은 온화하여 시골 서생의 모습이 아니었다. 방 안의 서가에는 책들이 가득했고, 네 벽에는 한 점의 티끌도 없었다.
서생이 젊은이에게 성명을 묻자,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라고만 하였다.
小間飯畢, 少年與客語, 問山中所見及國內山川風水, 甚亹亹恭怡.
可二更, 謂生曰 : “客勞止, 請早臥. 主人有所業, 次當就睡.”
소간반필 소년여객어 문산중소견급국내산천풍수 심미미공이
가이경 위생왈 객로지 청조와 주인유소업 차당취수
조금 후에 식사를 마치자, 젊은이는 서생에게 그동안 산속에서 보았던 우리나라 안의 산천과 풍수에 대해. 상세하고도 공손하며 온화하게 물었다.
이경이 되자 젊은이가 서생에게 이르기를,
“손님께서는 피곤하실 터이니, 청하오니 일찍 누우시지요. 나는 따로 할 일이 있기에 일을 마치고 자려 합니다.”
하였다.
臥客於己席, 己則背客而坐. 懸燈讀書, 琅然可聽.
生熟寐良久, 偶欠伸而寤. 臥睨少年背, 猶端坐不動.
와객어기석 기칙배객이좌 현등독서 낭연가청
생숙매양구 우흠신이오 와예소년배 유단좌부동
젊은이는 서생을 자기 자리에 눕게 하고는, 그를 등지고 앉았다. 등불을 달고, 글을 읽는데, 그 소리가 낭랑하여 들을 만했다.
서생은 깊게 잠든 지 오래되었을 때, 우연히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다가 잠이 깨었다. 누운 채로 젊은이를 엿보니, 여전히 꼿꼿이 앉아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忽聞戶外有聲, 颯然如墜葉.
內忽低問曰 : “來否?”
戶外應曰 : “我來也.”
啓戶欲入, 躇曰 : “臥者爲誰?”
홀문호외유성 삽연여추엽
내홀저문왈 내부
호외응왈 아래야
계호욕입 저왈 와자위수
이때 갑자기 문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마치 바람에 이파리가 날려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안에 있던 젊은이가 갑자기 나지막한 목소리로
“왔나?”
하고 물었더니, 문밖에서
“내가 왔네.”
라고 답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하다가 주저하며,
“누워 있는 자는 누구인가?”
라고 물었다.
少年曰 : “無傷. 山行失路者耳.”
仍微搖生, 連呼曰 : “睡未? 睡未?”
生訝之, 佯不應, 轉齁齁若醉.
少年曰 : “睡深矣.”
其人卽入.
소년왈 무상 산행실로자이
잉미요생 연호왈 수미 수미
생아지 양불응 전후후약취
소년왈 수심의
기인즉입
젊은이가,
“괜찮다네. 산을 헤매다가 길을 잃은 사람이네.”
하고는, 서생을 약간 흔들고는, 이어서 말하기를,
“주무십니까? 주무십니까?”
하였다. 서생은 의아하게 여겼지만, 응대하지 않으려 거짓으로 뒤척이며 잠에 취한 듯이 코를 골았다.
젊은이가
“잠이 깊이 들었군.”
하며, 그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生從睫間, 窃瞰之. 又一少年, 長身偉幹.
側立燈影下, 謂少年曰 : “可去也.”
少年卽起, 入閨藏, 出一小籠抖之, 有二匕首, 一帕裹.
於是二人脫其故服, 取帕中物着之, 一靑一黃.
生大怖駭, 愈縮如死者.
생종첩간 절감지 우일소년 장신위간
측립등영하 위소년왈 가거야
소년즉기 입규장 출일소롱두지 유이비수 일파과
어시이인탈기고복 취파중물착지 일청일황
생대포해 유축여사자
서생이 눈썹 사이로 엿보았더니, 들어온 이도 젊었는데 키가 크고 몸이 우람했다. 그는 등불 아래에다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섰다가 젊은이에게,
“이제 가야지!”
라고 하니, 젊은이는 곧 몸을 일으켜 내실로 들어가더니, 작은 대그릇을 가지고 나와 열고는, 그 안에서 비수 두 자루와 보자기 하나를 꺼냈다. 두 사람은 옷을 벗어 던지고 보자기를 끌려, 그 속에 든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하나는 청색이요, 하나는 황색이었다.
서생은 이들의 거동에 더욱 몸이 오싹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二人裝畢出門, 不知所之.
生乃潛起, 抽架上編, 多劒書. 知其爲劒俠也.
復就寢, 轉輾不能寐,
이인장필출문 부지소지
생내잠기 추가상편 다검서 지기위검협야
부취침 전전불능매
두 사람은 채비를 갖추고 문을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서생은 그제야 슬며시 일어나 서가의 책을 뽑아 보았는데 검서가 많았다. 그래서 젊은이가 검협임을 알았다. 서생은 다시 자려고 했지만 뒤척거렸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向鷄鳴, 戶外有颯然聲, 二人已入坐.
生窃瞰之, 二人擲匕首於地, 改衣冠. 執手相笑, 喜動顔色.
旣而慘然泣數行下, 良久無語.
향계명 호외유삽연성 이인이입좌
생절감지 이인척비수어지 개의관 집수상소 희동안색
기이참연읍수행하 양구무어
이윽고 새벽닭이 울 무렵, 집 밖에서 다시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두 사람은 벌써 방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서생은 가만히 엿보았다. 두 사람은 비수를 비수에 바닥에 던지고 다시 옷과 관을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서로 손을 맞잡고 웃었는데, 대단히 기쁜 안색이었다.
하지만 슬프고 처량한 눈물이 몇 줄기 아래로 흘리면서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其人曰 : “我去也.”
倏然而出. 少年乃整其裝藏之.
呼生曰 : “起! 起! 旣無足怪, 亦無足畏, 何庸假睡爲?”
生始敢起, 請循其本.
기인왈 아거야
숙연이출 소년내정기장장지
호생왈 기 기 기무족괴 역무족외 하용가수위
생시감기 청순기본
다른 젊은이가,
“난 가겠네.”
하며, 홀연히 집 밖으로 나가자, 젊은이는 그제서야 행장을 꾸려서 본디 있던 자리에다 간직했다. 그리고는 서생을 부르며
“일어나시오. 일어나시오. 괴상하게 여길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나이다. 거짓으로 잠든 체하지 마시오.”
서생은 비로소 일어나, 그들의 내력을 물었다.
少年曰 : “其人居關北, 三甲界, 卽吾友也.
始吾與其人及他一人, 同師而學, 一人以非辜, 爲人所殺.
吾兩人常欲報之, 積十數年, 不得其便, 今始往殺之.”
소년왈 기인거관북 삼갑계 즉오우야
시오여기인급타일인 동사이학 일인이비고 위인소살
오양인상욕보지 적십수년 부득기편 금시왕살지
젊은이는,
“저이는 함경도 삼수와 갑산의 경계에 있는 자로 저의 벗입니다. 처음에 저와 벗은 다른 한 벗과 함께 한 스승에게 배웠는데, 다른 한 벗이 아무런 죄 없이 살해되었지요. 우리 두 사람은 늘 그 원수를 갚으려 했지만, 십여 년이 되도록 기회를 얻지 못하였는데 이제 비로소 가서 원수를 죽인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生又問曰 : “然則以子之才, 何待十數年?”
曰: “否! 術不能勝天. 故雖神者, 必假天, 天命未盡之前, 吾何以加彼哉?
今夜某時, 卽彼大厄之辰, 是以待之良苦.”
생우문왈 연칙이자지재 하대십수년
왈 부 술불능승천 고수신자 필가천 천명미진지전 오하이가피재
금야모시 즉피대액지진 시이대지양고
서생은 다시 묻기를
“그렇다면 그대들의 재주로 어찌하여 십 년이나 기다렸습니까?”
하니 젊은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방술은 하늘의 뜻을 이길 수 없소이다. 그렇기에 비록 신인(神人)이라도 반드시 하늘의 뜻을 빌려야 하기에, 천명이 다하기 전에는 저라도 어찌 원수에게 손을 댈 수가 있겠소이까?
오늘 밤 그 시간은 바로 그가 큰 액운을 당하는 때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기다리는 동안 실로 괴로웠습니다.”
라고 답하였다.
曰 : “然則殺之, 截腰斷領乎?”
曰 : “否! 是, 術之疎者. 工者殺人, 必化而爲風, 從其九竅而入.
自脊至踵, 細剸其骨骸, 縷切其臟腑, 使外軆不損皮毛, 內爲肉泥然後爲快.”
왈 연칙살지 절요단령호
왈 부 시 술지소자 공자살인 필화이위풍 종기구규이입
자척지종 세전기골해 누체기장부 사외체불손피모 내위육니연후위쾌
그러자 서생이,
“그럼 죽인 방법은 허리나 목을 자르는 것이었습니까?”
라고 물으니, 젊은이는,
“아니지요. 그런 것은 검술로는 서투른 방법이지요. 능한 자가 사람을 죽일 때는 반드시 바람으로 변한 뒤에, 그 사람의 아홉 구멍으로 스며듭니다. 그리고는 등마루부터 발꿈치까지 그 뼈를 가늘게 베고 창자를 실처럼 끊되, 바깥의 몸은 피부나 털 하나도 상하지 않게 하고, 그 속을 고기처럼 저민 후에야 끝나는 것이지요.”
라고 답하였다.
曰 : “讐在何處, 而姓名爲誰?”
曰 : “嶺南某地之某富人也.”
生黙記其姓名, 計其程, 往返踰千餘里.
又問 : “何爲先笑而後泣也?”
曰 : “快除深讐, 自不得不歡. 追念亡友, 自不得不感耳.”
왈 수재하처 이성명위수
왈 영남모지지모부인야
생묵기기성명 계기정 왕반유천여리
우문 하위선소이후읍야
왈 쾌제심수 자불득부환 추념망우 자불득부감이
서생이 묻기를,
“원수가 사는 곳은 어디이고, 이름은 무엇이라 하오?”
하니, 답하기를
“영남의 아무 곳에 사는 갑부로서 아무개지요.”
하였다. 서생은 그 사람의 이름을 마음속에 기억하고, 두 사람이 다녀온 길을 헤아려 보니, 오고 가는데 천여 리가 넘었다.
서생이 다시 묻기를,
“그런데 어찌하여 처음에는 웃었는데, 나중에는 눈물을 흘렸소?”
하니, 답하기를,
“즐거이 깊은 원수를 갚으니, 기쁘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그러나 죽은 벗을 생각하니 감회가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生仍竦身言 : “某嘗聞世有擊劒之術, 然視之無緣. 今幸逢子, 苟許一眄, 足慰平生.”
少年笑曰 : “倉卒薄技, 無可娛客者.”
沈吟而起, 復至閨藏中, 取一籠抖之, 滿籠皆鷄翎也.
생잉송신언 모상문세유격검지술 연시지무연 금행봉자 구허일면 족위평생
소년소왈 창졸박기 무가오객자
침음이기 부지규장중 취일롱두지 만롱개계령야
서생은 움츠렸던 몸을 바로 펴며 말하기를,
“내 일찍이, 세상에 칼을 특별하게 쓰는 방술이 있다고 들었으나, 인연이 없어 구경을 하지 못하였소. 다행히 오늘 그대를 만났으니, 진정 그것을 보여 주시어 내 필생의 갈망을 풀어주시오.”
하니, 젊은이가 웃으면서,
“급작스레 말씀하시고, 더구나 시원치 않은 기예라, 손님을 기쁘게 하지 못할까 걱정이외다.”
하고는, 잠시 무엇을 생각하다가 몸을 일으켜 다시 내실로 들어갔다, 보자기를 하나 들고 나와 털어 내는데, 그 속에 가득한 것은 모두 닭털이었다.
少年乃運劒匝翎堆邊, 已而不見, 只一道白氣, 圍亘室中.
鷄翎皆肅肅自舞, 亂飄壁上.
燈穗靑熒, 隨而上下, 寒光冽氣, 毛髮爲竪.
生惝怳戰栗, 不敢正坐.
소년내운검잡령퇴변 이이불견 지일도백기 위긍실중
계령개숙숙자무 난표벽상
등수청형 수이상하 한광렬기 모발위수
생창황전율 부감정좌
이윽고 젊은이는 칼을 뽑아 휘두르기 시작하니, 주위에는 깃털이 쌓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보이지 않았고 다만 한 줄기 흰 기운이 집을 에워쌌다. 닭털은 제 스스로 춤을 추듯 펄펄 날면서 벽 위를 어지럽게 날았다.
등불은 이삭처럼 푸르게 빛났고 위아래로 움직였는데, 차가운 기운 때문에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서생은 당황하고 떨려서 감히 바로 앉지 못했다.
俄而錚然一響. 少年投劒而笑曰 : “薄技畢矣. 客觀之否?”
生瞠然如愚, 噤不能語.
良久始定神, 視地上數千翎, 皆中斷. 亟前抱之.
아이쟁연일향 소년투검이소왈 박기필의 객관지부
생당연여우 금불능어
양구시정신 시지상수천령 개중단 극전포지
이윽고 쨍그랑하는 소리가 나더니, 젊은이는 칼을 던지고 웃으며,
“제 천한 기예가 끝났나이다. 손님께서는 잘 보셨습니까?”
라고 물었다.
서생은 눈이 휘둥그레한 채, 어리석은 사람처럼 입을 다물고 말하지 못했다. 오랜 후에 정신을 차린 후 땅바닥을 내려다보니 수천 개의 닭털이 모두 중간이 끊어져 있었다. 서생은 급히 앞으로 나와 청년을 안았다.
少年曰 : “戱耳.”
盡收藏之. 與生復就寢而宿.
소년왈 희이
진수장지 여생부취침이숙
젊은이는
“이는 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거두어 제자리에 간직하였다. 그리고는 서생과 함께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生欲棄其所學而學少年.
曰 : “非人人可學, 且客之骨相無此, 學亦不能成也.”
생욕기기소학이학소년
왈 비인인가학 차객지골상무차 학역불능성야
서생은 그때까지 자신이 배운 것을 버리고 젊은이에게 배우고자 했다.
하지만 젊은이는,
“사람이라고 하여 다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외다. 또 손님의 골상(骨相)을 보니 배우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록 배우더라도 능히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明日供飯, 指路而送之,
戒曰 : “愼無以夜來事相泄! 苟有泄, 雖千里之遙, 吾卽知之.”
명일공반 지로이송지
계왈 : 신무이야래사상설 구유설 수천리지요 오즉지지
이튿날 젊은이가 밥을 지어 먹이고 길을 가리키며,
“어젯밤 일을 세상에 알리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만일 알린다면 비록 천리가 떨어져 있다 해도 저는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라며 경계했다.
生應諾而行, 不歸其家.
直至嶺南某邑, 問某姓富人, 果居某里. 卽入其里.
潛探之, 其里人皆云 :
“某人, 於某月某夜, 無疾暴卒. 及殯殮, 屍軟縮如糠袋.
若素無筋骨然, 遠近駭異, 不知其病祟.”
생응낙이행 불귀기가
직지영남모읍 문모성부인 과거모리 즉입기리
잠탐지 기리인개운
모인 어모월모야 무질폭졸 급빈렴 시연축여강대
약소무근골연 원근해이 부지기병수
서생은 그러자고 약속을 하고 산을 내려왔지만,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곧바로 영남 지방의 한 고을에 이르러, 아무개 성씨의 갑부를 물어, 아무개 마을에 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시 그 마을로 찾아 들어갔다.
은밀히 탐지하니 동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사람은 아무 달 어느 밤에 병도 없이 갑자기 죽었지요. 그런데, 시신을 빈소에 옮기고 염(殮)을 해 보았지만, 그 시체가 어찌나 부드러운지, 흡사 겨를 넣은 주머니 같았다오. 평소에 뼈나 근육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아서 모두 괴이쩍게 여겼으나, 결국 그가 무슨 병으로 그렇게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답니다.”
生推其日, 定自家宿五臺山中夜也.
愈加驚歎而歸, 不敢以所見語人, 及老始語其親戚云.
생추기일 정자가숙오대산중야야
유가경탄이귀 불감이소견어인 급로시어기친척운
서생은 속으로 그가 죽었다는 날을 헤아려 보았더니, 바로 자기가 오대산 산중의 초막에서 자던 날 밤이었다.
그는 더욱 경탄하며 돌아왔지만, 감히 이 사실을 입 밖에 내지 못하다가 나이가 늙어 죽을 때가 되자 비로소 친척들에게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閏人曰:
“余童子時, 愛太史公 「刺客傳」, 讀之往往忘食
以爲 ‘天下之奇, 無過於是.’
及讀唐傳奇 「韋十一娘」, 「紅線」 諸傳, 又茫然自失.
윤인왈
여동자시 애태사공 자객전 독지왕왕망식
이위 천하지기 무과어시
급독당전기 위십일낭 홍선 제전 우망연자실
윤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어린 시절에 태사공의 <자객전>을 즐겨 읽었는데, 때때로 식사를 잊었고 ‘천하의 기이한 일이 이보다 더할 수는 없겠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다가 당나라 때의 전기소설(傳奇小說) 중 <위십일랑>과 <홍선전> 등을 읽고서는 망연자실하곤 했다.
譬之, 荊聶 諸公, 如猛虎下山, 終始具塗人耳目, 見之悍然增氣而已.
若韋娘ˎ 紅線之類, 如神龍入雲, 時露鱗爪, 其神變殆不可測.
似乎勝之, 所處異而所用殊也.
비지 형섭 제공 여맹호하산 종시구도인이목 견지한연증기이이
약위낭 홍선지류 여신룡입운 시로린조 기신변태불가측
사호승지 소처이이소용수야
비유하자면 형가와 섭정은 같은 사람은 사나운 범이 산을 내려오는 것같이 사람들의 귀와 눈에 크게 드러나서, 사람들 앞에 나타나면 사나운 기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위랑과 홍선과 같은 부류는 마치 신룡(神龍)이 구름 속에 숨어 있다가 때때로 비늘과 발톱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신비로운 변화는 거의 측량할 수가 없다.
형가와 섭정보다는 나은 것 같기도 하나, 이는 각기 처한 바가 다를 뿐이다.
五臺劒俠者, 余不知其何人, 然視乎其術, 蓋亦有道者也.
其言曰 : ‘術不能勝天, 必假天.’
夫殺人, 凶事也, 而必假天, 不知天者, 殺人亦不可得爲也.
世固有無事而甘心殺人者, 良非斯人之罪人歟! 嗚乎悲夫!”
오대검협자 부불지기하인 연시호기술 개역유도자야
기언왈 술불능승천 필가천
부살인 흉사야 이필가천 부지천자 살인역불가득위야
세고유무사이감심설인자 양비사인지죄인여 오호비부
나는 오대산 검협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그의 방술을 보면, 역시 도(道)가 있었던 높은 경지에 올랐던 사람임에 틀림없다.
젊은이는 ‘방술이 하늘을 이길 수 없으며, 반드시 하늘의 뜻을 빌려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무릇 사람을 죽이는 일은 흉사이기에, 반드시 하늘의 뜻을 빌려야 하고,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
세상에는 아무런 일도 없이 사람 죽이기를 달갑게 여기는 자가 있으니, 이런 사람은 어찌 죄인이 아니겠는가. 아, 슬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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