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서치전(看書痴傳) ; 책만 읽는 바보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신영산 옮김
木覓山下, 有痴人, 口訥不善言, 性懶拙. 不識時務, 奕棋尤不知也.
人辱之不辨, 譽之不矜.
목멱산하 유치인 구눌불선언 불식시무 혁기우부지야
인욕지불변 예지불긍
목멱산(남산) 아래에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는데, 어눌하여 말을 잘하지 못하였고, 성품은 게으르고 졸렬하였다.
시급하거나 중요한 일도 알지 못했고, 바둑이나 장기도 더더욱 알지 못했다. 남들이 욕을 하여도 따지지 않았고, 칭찬을 받아도 뽐내지 않았다.
惟看書爲樂, 寒暑飢病, 殊不知.
自塗鴉之年, 至二十一歲, 手未嘗一日釋古書.
其室甚小, 然有東牕, 有南牕, 有西牕焉, 隨其日之東西, 受明看書,
유간서위락 한서기병 수부지
자도아지년 지이십일세 수미상일일석고서
기실심소 연유동창 유남창 유서창언 수기일지동서 수명간서
오직 책을 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고, 추위나 더위나 주림이나 아픔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손에서 일찍이 하루도 옛 책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의 방은 몹시도 작았지만, 동창과 남창과 서창이 있어, 해가 동에서 서로 가는 방향을 따라 빛을 받아가며 책을 보곤 하였다.
見未見書, 輒喜而笑, 家人見其笑, 知其得奇書也.
尤喜子美五言律, 沉吟如痛疴.
得其深奧 喜甚 起而周旋 其音如鴉叫
견미견서 첩희이소 가인견기소 지기득기서야
우희자미오언률 침음여통아
득기심오 희심 기이주선 기음여아규
보지 못했던 책을 보게 되면 문득 기뻐하며 웃었으니, 집안사람은 그가 웃는 것을 보면 기이한 책을 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자미(두보)의 오언율시를 좋아하였는데, 낮은 소리로 읊조리는 것이 마치 병을 앓은 듯했다.
그러다가 심오한 뜻을 깨우치게 되면, 매우 기뻐하며, 벌떡 일어나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웅얼거렸는데, 그 소리가 갈까마귀가 지저귀는 것 같았다.
或寂然無響, 瞠然熟視, 或自語如夢寐人.
目之爲看書痴, 亦喜而受之.
無人作其傳, 仍奮筆書其事, 爲看書痴傳, 不記其名姓焉.
혹적연무향 당연숙시 혹자어여몽매
인목지위간서치 역희이수지
무인작기전 잉분필서기사 위간서치전 불기기명성언
그러다가 혹은 고요하게 아무 소리도 없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하고, 혹은 꿈을 꾸는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간서치(책만 보는 바보)’라 하였지만, 이 말 또한 기쁘게 받아들였다.
아무도 그의 전기를 써 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이에 붓을 휘몰아쳐 그의 일을 써, 간서치전(看書痴傳)을 지었다. 그의 이름과 성은 따로 적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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