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시,부

임상덕의 '무안 바닷가 사람들(면해민)'

New-Mountain(새뫼) 2022. 6. 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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綿海民(면해민) ; 무안 바닷가 사람들

 

林象德(임상덕, 1683~1719)

신영산 옮김

 

 

 

1.

客行自蘆嶺 객행자노령   나그네로 노령을 넘어가다 본 일이라.

禾稼滿原陸 화가만원륙   벼 이삭 들판에서 가득 넘실대는데

道有翳桑人 도유예상인   길가에는 예상의 백성처럼 주린 사람 있었으니

男行女隨哭 남행여수곡   사내는 앞에 걷고 아낙은 울면서 따르더라.

草涉泥露霑 초섭니로점   풀섶을 헤치고 다녔는지 진흙 묻고 이슬 젖고

黃黑無人色 황흑무인색   누렇게 뜬 데다가 검게 그을려 사람 낯빛 아니더나.

借問此何人 차문차하인   내 물었지. “그대들은 어느 고을 사람이며

今向何州適 금향하주적   지금 어느 고을 향해 가는가?”

 

* 노령 : 전북도 정읍과 전남 장성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갈재’라고도 부름.

* 예상 :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지명으로,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것을 상징하는 말로 쓰임.

 

2.

自言綿海住 자언면해주   답하기를, “살던 곳이 면해의 바닷가라오.

終身事南陌 종신사남맥     한평생 남쪽 땅에서 농사짓고 살았는데

皇天旱吾州 황천한오주     하늘이 우리 고을만 가물게 하였는지

田畒年年赤 전묘연년적     밭마다 해마다 붉게 타들어 갔다오.

麥臞婦飢卒 맥구부기졸     보리는 시들고 며느리는 굶주려 죽었으니

山棄風雨暴 산기풍우폭     비바람이 사나울 제 산골에 버렸지요.

死者良已安 사자량이안     죽어간 사람은 참으로 편안하지만

生者難終育 생자난종육     산 자식은 끝끝내 길러내기 어려운데

子簽於蘭防 자첨어란방     아들놈은 어란진에 수자리 살러가고

身屬京騎籍 신속경기적     이 몸은 서울 기마대 군적에 올랐네요.

 

老媼背貼兒 노온배첩아     늙은 할미가 등에 업어 키워내는 손주 녀석

失乳鳴呃呃 실유명애애     젖이 없이 응애응애 배고프다 보채는데

指言去歲生 지언거세생     손주 녀석 태어난 건 작년인데

生已隷司僕 생이례사복     벌써 사복시에 이름이 올랐다오.

鱗鱗印帖降 인린인첩강     끊임없이 도장 찍힌 문서가 내려오니

札札誰鳴織 찰찰수명직     짤깍짤깍 어느 뉘라 베틀 울려 베 짜리오.

東隣有富屋 동린유부옥     동쪽의 이웃에는 부잣집이 있었는데

百指垂纖白 백지수섬백     손가락마다 가늘고 하얗기만 하네요.

 

無身我何患 무신아하환     이 몸이 없어진들 내 무슨 걱정이리오.

有身吏鞭扑 유신리편복     이 몸이 살아봐야 아전의 채찍질이라.

人生愛膚體 인생애부체     사람들은 살아가며 제 살과 몸 아끼노니

等死猶有擇 등사유유택     죽음을 기다려도 가리는 바 있겠지요.

代代良家子 대대양가자     대대로 이어 오던 양갓집 자식인데

不忍化盜賊 불인화도적     도적이 될 수는 차마 없었기에

極知流離死 극지류리사     떠돌아다니다간 죽을 것을 알겠지만

且復辭楚毒 차부사초독     다시금 매를 맞아 생길 독은 면하겠지요.

 

籬前小田在 이전소전재     제 집의 울타리 앞에는 조그만 밭 있었지만

我行不種麥 아행부종맥     급하게 떠나면서 보리 심지 못했으니

懸知賦役出 현지부역출     짐작건대 세금과 부역이 나오면은

官許里人鬻 관허리인죽     관아에선 마을 사람에게 그 밭을 팔겠지요.

雖種非我有 수종비아유     비록 보리 심더라도 제 몫이 아니었겠지만

未種猶戀惜 미종유련석     그래도 못 심은 건 오히려 애석하구려.

 

咄此亦天運 돌차역천운     아! 이 또한 하늘이 정한 운명이니

非我獨罹厄 비아독리액     저만 홀로 당하는 재앙이 아니었다오.

故鄕餘幾人 고향여기인     고향에는 몇 명이나 남아 있으리까?

他鄕渾故識 타향혼고식     타향에서 만나는 이들 고향 사람 섞여 있어요.

初行頗自傷 초행파자상     처음 떠날 때는 몹시 마음 아프더니

遠出如疇昔 원출여주석     멀리 떠나오니 어느덧 옛날이네요.”

 

* 사복시 : 왕궁의 말을 관리하는 관아.

* 면해 : 무안의 바닷가. 전남 무안의 옛 이름이 면성(綿城)이었음.

* 어란 : 전남도 영암군에 있던 진(鎭)으로 현재는 해남군에 속해 있음.

 

 

3.

日落山嶺峻 일락산령준   해가 져서 산마루로 넘어갈 제

依依旁山宿 의의방산숙   쓸쓸하게 산곁에서 잠을 청하였지.

疾風吹飢鴈 질풍취기안   모진 바람이 배고픈 기러기에 불어오니

萬里迷所泊 만리미소박   만리 밖에 머물 곳 찾지 못해 헤매더라.

雝雝失雲天 옹옹실운천   끼룩끼룩 구름 낀 하늘에서 갈 곳 잃고

仰視潛歎息 앙시잠탄식   하늘을 우러르며 남몰래 탄식하네.

物情有近人 물정유근인   생물도 더러는 사람 정에 가까우니

天理難爲客 천리난위객   떠도는 어려움은 하늘의 이치인가.

 

嘗聞古聖王 상문고성왕   일찍이 들어보니 옛날의 어진 임금

處民有田宅 처민유전택   백성에게 밭과 집을 마련해 주셨는데

奈何苦征徭 내하고정요   어찌하여 조세와 노역에 괴롭히어

而不保鄕域 이불보향역   고향 땅을 보전하지 못하게 하였는가?

水旱天地心 수한천지심   홍수와 가뭄이 천지의 마음이어도

經綸臣下責 경륜신하책   경륜을 베푸는 건 신하의 책임이라네.

明明周官法 명명주관법   밝디밝은 주나라의 관직 법은

穆穆在金石 목목재금석   거룩하게 쇠와 돌에 새겨져 전하노니

我亦沾一命 아역첨일명   나 또한 말단의 관직을 받았으니

惻愴思我力 측창사아력   내 역량을 생각하니 안타까울 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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