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산가서(後山家序)
- 다시, 산속에서 사는 뜻
길재(吉再, 1353~1419)
신영산 풀이
天之生民, 莫不厚焉.
或爲君子而貴, 或爲小人而賤, 何也.
貴而爲貴, 賤而爲賤, 理之常也.
或貴而賤, 或賤而貴, 命之然也.
천지생민 막부후언
혹위군자이귀 혹위소인이천 하야
귀이위귀 천이위천 이지상야
혹귀이천 혹천이귀 명지연야
하늘이 백성을 나게 하였을 때는, 넉넉하게 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누구는 군자가 되어 귀해지고, 누구는 소인이 되어 천해지니, 이는 무슨 까닭인가.
귀한 이가 귀하게 되고, 천한 이가 천하게 되는 것은, 이치로 예사로운 일이다.
하지만 귀한 이가 혹 천해지거나, 천한 이가 혹 귀해지게 되는 일이 있으니, 이는 타고난 운명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리라.
自古公卿之子, 生長富貴.
車馬足以代馳涉之艱難, 使令足以息四體之勤勞.
養而有兼珍之膳, 衣而有寒暖之宜,
旣生而君知之, 旣長而君命之, 祿秩之厚, 不期而至, 官爵之貴, 自然而加.
其知之也如此其易, 其貴之也如此其足.
此無他, 祖宗積累之勳, 豫養之恩故也.
자고공경지자 생장부귀
거마족이대치섭지간난 사영족이식사체지근로
양이유겸진지선 의이유한난지의
기생이군지지 기장이군명지 녹질지후 불기이지 관작지귀 자연이가
기지지야여차기이 기귀지야여차기족
차무타 조종적루지훈 예양지은고야
예로부터 높은 벼슬아치의 자식들은, 부귀하게 태어나고 자라났다.
수레와 말이 걸어 다니는 어려움을 대신하기에 넉넉했고, 하인들이 손과 발의 수고로움을 쉴 수 있게 하기에 넉넉했다.
그렇기에 맛있는 음식으로 길러졌고, 춥고 더운 때에 맞추어 알맞은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이미 태어나자마자 임금이 이들을 알았고, 자라나면 임금이 이들을 임명했으니, 봉록과 벼슬의 두터움이 때에 이르지 않아도, 저절로 더해졌다.
그렇게 알려지기가 이처럼 쉬웠고, 그렇게 귀해지는 것이 이처럼 만족스러웠다.
이는 다른 것 때문이 아니다. 선조들이 쌓아 온 공로와, 미리 그렇게 길러졌던 은혜 때문에 그런 것이다.
庶人之子, 生長草菜, 霑體塗足.
衣不足以掩其身, 食不足以養其體, 迫寒餓死.
疲精極神, 動心忍性.
其功業之著而後有司知之, 有司知之而後朝廷聞之, 朝廷聞之而後君用之.
其知之也如此其難, 其達之也如此其遲.
此無他, 功業始基於一身, 無積累之漸, 豫養之恩故也.
서인지자 생장초채 점체도족
의부족이엄기신 식부족이양기체 박한아사
피정극신 동심인성
기공업지저이후유사지지 유사지지이후조정문지 조정문지이후군용지
기지지야여차기난 기달지야여차기지
차무타 공업시기어일신 무적루지점 예양지은고야
하지만 서민들의 자식은, 풀 속에서 자라났기에, 몸은 젖고 발은 흙투성이였다.
옷으로는 그 몸을 가리기에 부족했고, 먹을 것으로는 그 몸을 기르기에 부족했기에, 춥고 굶주려서 거의 죽게 된 것이다.
다만 정신이 피폐해진다 해도, 마음이 분발하면 성정을 참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로가 나타나게 되면 관리가 알게 되고, 관리가 알게 되면 조정에서 듣게 되며, 조정에서 듣게 되면 임금이 등용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알려지는 것은 어려웠고, 그렇게 성취하게 되는 것이 더디었다.
이는 다른 것 때문이 아니다. 공로가 자기로부터 시작될 뿐이고, 쌓아오고 길러온 은혜가 이미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况愚也生長農畝, 賤而莫賤, 微而莫微.
年纔八九, 菜山牧羊.
年抗長矣, 朝耕夜讀, 螢窓十年.
寒衣蔬食自若也, 畎畝治耨, 霑體塗足亦自若也.
但以竭力耕田, 馳心經學, 下以養親, 上以事君.
養親則底豫其親, 事君則堯舜其君, 納民於唐虞, 躋世於三代.
此余平日所志也,
황우야생장농무 천이막천 미이막미
연재팔구 채산목양
연항장의 조경야독 형창십년
한의소식자약야 견무치누 점체도족역자약야
단이갈력경전 치심경학 하이양친 상이사군
양친칙저예기친 사군칙요순기군 납민어당우 제세어삼대
차여평일소지야
하물며 나 같은 사람은 시골에서 자랐기에, 천하기가 더 천할 게 없었고, 미천하기가 더 미천할 게 없었다.
나이 겨우 팔, 구세에 산에서 나무하고 염소 치며 자랐다.
나이를 먹고 좀 더 자라서는, 아침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읽어, 반딧불과 눈빛으로 십 년을 공부했다.
베옷을 입고 나물만 먹어도 태연했고, 밭 갈고 김을 매다가, 몸이 젖고 발이 더러워졌으나 역시 태연했다.
다만 힘을 다해 밭을 갈고 마음을 다해 학문을 닦아, 아래로는 어버이를 봉양했고, 위로는 임금을 섬기었다.
어버이를 봉양하니 어버이가 즐거워했고, 임금은 섬기니 임금이 요순이 되어, 백성들이 요순시대로 들어가게 하였고, 세상을 하은주의 삼대로 나아가게 했다.
이것이 평소의 내가 뜻한 바였다.
今也不幸, 逢天之慽, 十年之功, 掃地如也.
嗚呼, 天實爲之, 謂之何哉.
於是彷徨憾慨, 翻然改圖, 莫若隱然自晦.
掛冠蘿月, 吟嘯淸風, 俯仰二儀之間, 逍遙一世之上.
不受當時之責, 永保性命之正.
如是則可以凌霄漢出宇宙之外, 豈羡千駟萬鍾之富貴乎.
금야불행 봉천지척 십년지공 소지여야
오호 천실위지 위지하재
어시방황감개 번연개도 막약은연자회
괘관라월 음소청풍 부앙이의지간 소요일세지상
불수당시지책 영보성명지정
여시칙가이릉소한출우주지외 기이천사만종지부귀호
이제는 불행하게도 하늘이 무너지는 때를 만났으니, 십 년의 공부가 쓸려버리고 말았다.
슬프다. 하늘이 하는 일이니, 무엇이라 이르리오.
이에 방황하고 탄식하다가, 마음으로 도모하려다 갑작스레 돌이키고, 스스로 자취를 숨기었다.
달빛 비치는 여라에다 관을 벗어 걸고, 맑은 바람을 맞으며 시를 읊으며,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고, 세상 위에서 소요하곤 하였다.
이 시대에 책임도 지지 않고, 길이 몸과 마음을 바르게 보전하려 한 것이다.
이렇게 하니 가히 하늘을 박차고 우주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과 같았도다.
어찌 천 필의 말과 만 석의 쌀을 지닌 부귀함을 부러워할 리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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