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풀어 읽기/한문산문

서거정의 '수직론' 원문과 풀이

New-Mountain(새뫼) 2022. 3. 11. 08:21
728x90

 

수직론(守職論)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신영산 풀이

 

 

壬午 臺諫書徐居正守職論以上

임오 대간서서거정수직론이상

 

임오 일에 대간이 서거정(徐居正)의 수직론(守職論)을 써서 임금께 올렸다.

 

凡物各有其職,

牛之職職耕, 馬之職職服乘, 鷄職晨, 犬職夜,

能職其職, 謂之守職; 不職其職, 而代他職, 謂之越職

越職則悖理, 悖理則受禍

범물각유기직

우지직직경 마지직직복승 계직신 견직야

능직기직 위지수직 불직기직 이대타직 위지월직

월즉즉패리 패리즉수화

 

무릇 모든 물(物)에는 각기 그 직책이 있는 법이다.

소는 밭 가는 일을 직책으로 하고, 말은 사람을 태우는 일을 직책으로 하며, 닭은 새벽을 알리는 일을 직책으로 하고, 개의 직책은 밤에 도둑 지키는 것이다.

능히 그 직책을 다하는 것을 수직이라 하며, 그 직책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대신한다면 이를 월직이라 한다. 월직을 하게 되면 이치를 위배하는 것이요, 이치를 위배하면 화를 받게 되는 것이다.

 

今以一物譬之,

雞不晨而夜, 則人皆驚怪之, 磔攘之, 得非禍於越職乎?

吾見士大夫居家, 奴職耕婢職織而家事理

若奴而織, 婢而耕則人皆驚怪之矣, 焉知不有磔攘之禍乎

금이일물비지

계불신이야 즉인개경괴지 책양지 득비화어월직호

오견사대부거가 노직경 비직직이가사리

약노이직 비이경즉인개경괴지의 언지불유책양지화호

 

지금 한 가지 물을 들어 비유해 보리라.

닭이 새벽에 울지 아니하고 밤에 운다면, 사람이 다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반드시 잡아 제상의 제물로 쓰로 말 것이니 것이니, 이는 월직에서 오는 재앙이 아닌가.

또 내 보건대, 사대부의 집안에서 사내종은 밭갈이를 직책으로 하고, 계집종은 길쌈을 직책으로 할 때 그 집안 일이 잘 되는 것이다.

만일 사내종이 길쌈을 하고 계집 종이 밭을 간다면, 사람들이 모두 놀라 괴이하게 여길 것이니, 제물로 찢기는 닭과 같은 재앙이 오지 않겠는가.

 

至於治國, 公卿宰執職公卿宰執, 近侍臺諫職近侍臺諫,

暬御僕從職暬御僕從, 府史胥徒職府史胥徒,

各職其職, 則官事理, 而國治矣

지어치국 공경재집직공경재집 근시대간직근시대간

설어복종직설어복종 부사서도직부사서도

각직기직 즉관사리 이국치의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도, 공경과 재집은 공경과 재집의 직책을 맡고, 근시와 대간은 근시와 대간의 직책을 맡고, 설어와 복종은 설어과 노복의 직책을 맡으며, 부리와 서도는 부리와 서도의 직책을 맡아야 한다.

이들이 각기 제 구실을 다한다면, 관아의 일이 잘 처리되고, 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이다.

 

若暬御僕從職公卿宰執之職, 府史胥徒而職近侍臺諫之職,

公卿宰執, 近侍臺諫不職其職, 而思出其位,

是越職而悖理, 不祥莫大焉

약설어복종직공경재집지직 부사서도이직근시대간지직

공경재집 근시대간불직기직 이사출기위

시월직이패리 불상막대언

 

만약 설어와 복종이 공경과 재상의 직책을, 부리와 서도가 근시와 대간의 직책을 맡게 된다면, 공경과 재상과 근시와 대간은 제 직책을 못하게 되니, 그 직책에서 머물고자 하는 생각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월직으로 이치를 그르치게 되는 것이니, 상서롭지 못함이 이보다 클 수 없다.

 

南華老仙有言曰:

"庖丁雖不治庖, 尸祝不越尊俎而代之"

此至論也

남화노선 유언왈

포정수불치포 시축불월존조이대지

차지론야

 

남화의 늙은 신선이 이르기를

“백정이 짐승 잡는 일을 잘못한다 해도, 제관이 제사 음식을 대신 만들 수는 없느니라.”

라고 하였으니, 이는 지극한 논리다.

 

近有一甲, 起自微賤, 因緣僥倖, 得參盟府, 官躋一品

職非臺諫, 而職臺諫之職, 好爲章奏, 彈擊人物

嘗上疏論一大臣, 極口詆毁, 比之霍光梁冀, 章三四上

근유일갑 기자미천 인연요행 득참맹부 관제일품

직비대간 이직대간지직 호위장주 탄격인물

상상소론일대신 극구저훼 비지 곽광 양기 장삼 사상

 

근래에 아무개는 미천한 출신에도 요행을 인연하여, 맹부에 이름을 올렸고, 관직이 1품까지 올랐다.

직책은 대간이 아닌데도 대간의 직책을 행하였으니, 상소를 올려 사람들을 공격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는 일찍이 상소를 올려 한 대신을 논핵하여 입이 마르도록 비난하였는데, 각광과 양기에 견주어서 글월을 세 번 네 번 올리기도 했다.

 

殊不知怠, 又上疏歷毁三公六卿, 朝無全人

陵轢朝廷, 鞭撻縉紳, 自以爲得計

又上疏論一近侍, 極言其無狀小人, 比之李林甫盧杞賈似道韓侂冑

伏閶闔, 抗天顔而固爭之, 甚於臺諫

수부지태 우상소력훼 삼공 육경 조무전인

능력조정 편달진신 자이위득계

우상소론일근시 극언기무상소인 비지이임보 노기 가사도 한탁주

복창합 항천안이고쟁지 심어대간

 

그는 관리들의 태만함도 알지 못하면서도, 또 상소하여 삼공과 육경을 차례로 폄훼하여 조정에 온전한 사람이 없게 했다.

조정을 능멸하였고, 벼슬아치들을 채찍으로 때리며, 제 계획이 이루어졌다고 흡족해 하였다,

또 상소로 한 근시를 논핵하여, 형편없는 소인이라며 이임보나 노기, 가사도, 한탁주와 같다고 극언하였다.

대궐문에 엎드리어 감히 임금에 항거하였는데, 굳이 다투기가 대간보다 더하였다.

 

居正聞之笑曰:

"某甲賢則賢矣, 才則才矣, 文則文矣, 然好越職論事, 吾恐有雞夜磔攘之禍矣"

거정문지소왈

모갑현즉현의 재즉재의 문즉문의

연호월직론사 오공유계야책양지화의

 

서거정은 이를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아무개가 어질다면 어질고, 재주가 있다 하면 재주가 있겠고, 글을 잘쓴다면 글을 잘 쓴다면, 잘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월직하여 일을 따지기를 좋아하니, 내가 보기에는 닭이 밤에 울다 목이 잘리는 일을 당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居無何, 朝中士大夫以朋黨亂政受辜,

坐黨附權要, 羅織人罪, 誣妄上疏, 削勳籍, 編配遠方

人皆曰: "越職之禍也"

是故, 君子貴守職

거무하 조중사대부이붕당란정수고

좌당부권요 나직인죄 무망상소 삭훈적 편배원방

인개왈 월직지화야

시고 군자귀수직

 

얼마 되지 않아, 조정의 사대부들을 붕당짓게 하여 조정을 어지럽혔다고 벌을 받았고, 당파에 붙어 권력에 아부하고 남의 죄를 꾸며 상소했다 하여, 훈적에서 박탈당하고 먼 지방으로 유배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월직한 재앙이다.”

하였다.

이러므로 군자는 제 직책을 지키는 자를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다.

 

蓋指子光而著也

개지자광이저야

 

이는 대개 유자광을 가리켜 지은 글이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