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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 플랫포옴에
내렸을 때, 아무도 없어다들 손님들뿐.
손님 같은 사람들뿐.
집집마다 간판이 없어
집 찾을 근심이 없어.
빨갛게,
파랗게,
불붙는 문자도 없이
모퉁이마다
자애로운 헌 와사등에
불을 켜놓고,
손목을 잡으면
다들, 어진 사람들.
다들, 어진 사람들.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로 돌아들고.
언제부터인가 내가 맡는 학급의 급훈은 항상 "다들, 어진 사람들."이다.
아이들에게는 다만 윤동주의 시 한 부분이라고만 했다.
그간의 아이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아무도 관심이 없었는데,
한 녀석이 저 글귀가 궁금해 찾아 보았나 보다.
그리고는 묻는다.
"선생님은 왜 이 시가 좋아요?"
글쎄, 좋은 것이라기 보다는, 그냥 편안한 말이어서,
아니 그게 좋은 것인가?
녀석들은 3학년이므로 졸업앨범에 저 일곱 글자가 크게 박힐 게다.
먼 후일 어쩌다 앨범을 꺼낼일이 있으면
급훈에 대해 생각해 볼까?
윤동주의 시라는 것은 잊혀질 테지만
그리고 자신이 어질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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