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총람(산문)/구운몽 한문본

권지이 - 14. 난양공주가 정경패와 함께 소유의 부인이 되기를 간청하다

New-Mountain(새뫼) 2020. 11. 2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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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난양공주가 정경패와 함께 소유의 부인이 되기를 간청하다

 

尙書異之 問於諸將曰 : “公等亦有夢乎?”

齊答曰 : “小的等皆夢陪元帥, 與神兵鬼卒大戰而破之, 擒其大將而歸, 此實擒胡之吉兆也.”

尙書備說夢中之事, 與諸將往見白龍潭, 碎鱗鋪地 流血成川.

尙書持盃 酌水先嘗, 因飮病卒 卽快癒矣.

상서리지 문어제장왈 공등역유몽호

제답왈 소적등개몽배원수 여신병귀졸대전이파지 금기대장이귀 차실금호지길조야

상서비설몽중지사 여제장왕견백룡담쇄 린포지 유혈성천

상서지배 작수선상 인음병졸 즉쾌유의

 

상서가 이상히 여겨 여러 장수에게 묻기를,

“공들도 또한 꿈을 꾸었는가?”

여러 장수가 일제히 답하기를,

“소장 등도 모두 꿈에 원수를 따라서, 귀신 같은 병졸들과 크게 싸워 그들을 격파하고, 그 대장을 사로잡아 돌아왔나이다. 이는 실로 오랑캐를 사로잡을 길조로소이다.”

상서가 꿈속의 일을 낱낱이 설명하고, 여러 장수와 함께 백룡담에 가보니, 부스러지고 깨진 비늘 껍질들이 땅에 널려 있고 흐르는 피가 내를 이루었다. 상서가 잔을 들고 물을 떠서 먼저 맛보고, 인하여 병든 군사들에게 먹이니, 그들의 병이 바로 나았다.

 

駈衆軍及戰馬, 臨水快吸 歡動天地, 賊聞之大惧 欲與櫬而降矣.

尙書出師之後 捷書相續, 上嘉之 一日朝太后, 稱楊少游之功曰 :

“少游郭汾陽後一人. 待其還來卽拜丞相. 以酬不世之勳而,

但御妹婚事 尙未窂定, 彼若回心 從命則大善, 若又堅執 則功臣不可罪矣.

其志不可奪矣, 處治之道 實難得當是可憫也.”

구중군급전마 임수쾌흡 환동천지 적문지대구 욕여친이항의

상서출사지후 첩서상속 상가지 일일조태후 칭양소유지공왈

소유곽분양후일인 대기환래즉배승상 이수불세지훈이

단어매혼사 상미로정 피약회심 종명즉대선 약우견집 즉공신불가죄의

기지불가탈의 처치지도 실난득당시가민야

 

모든 군사와 말을 몰고 물에 다가가서 흡족히 마시게 하니, 기꺼워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는다. 적들이 이 소리를 듣고 무척 두려워하여 곧 무리를 지어 항복하고자 하였다.

상서가 출사한 이후로 승전을 알리는 글이 이어 올라오니, 황상께서 이를 가상히 여기사, 하루는 태후께 조회하고 양소유의 공을 칭찬하시기를,

“소유는 곽분양(郭汾陽) 이후의 유일한 사람이로소이다. 소유가 조정에 돌아오길 기다려서 곧 승상을 시켜, 세상에 드문 공을 갚을까 하옵니다.

다만 누이의 혼사를 아직껏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사오니, 그가 마음을 돌리고 명에 따르면 무척 다행이거니와, 만일 또 굳이 고집한다 해도 공신을 죄를 줄 수는 없을 것이옵니다. 그 뜻을 빼앗을 수가 없기 때문에, 마땅히 처치할 도리를 얻기 어려운 것이 민망할 뿐이옵니다.”

 

太后曰 : “我聞鄭家女子誠美, 且與少游曾已相見, 少游豈肯棄之?

吾意則乘少游出外之日, 下詔於鄭家 與他人結婚, 則少游之望絶矣, 君命何可不從乎?”

上久不仰答 黙然而出, 蘭陽公主在太后之側,

乃告於太后曰 :

“娘娘之敎 大違於事軆. 鄭女之婚與不婚, 自是其家之事, 豈朝廷所可指揮者乎?”

태후왈 아문정가녀자성미 차여소유증이상견 소유기긍기지

오의즉승소유출외지일 하조어정가 여타인결혼 즉소유지망절의 군명하가부종호

상구불앙답 묵연이출 난양공주재태후지측

내고어태후왈

낭낭지교 대위어사체 정녀지혼여불혼 자시기가지사 기조정소가지휘자호

 

태후가 이르기를,

“내가 듣기에 정사도의 딸아이가 실로 아름답고, 또한 소유와 더불어 일찍이 서로 본 적이 있다 하니, 소유가 어찌 정녀(鄭女)를 버릴 수가 있으리오. 내 생각으로는 소유가 변방에 나아간 틈을 타서, 정씨 집안에 조서를 내리고, 정녀로 하여금 타인과 결혼케 하면 소유도 소망이 끊어질 터이니, 황제의 명을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으리오.”

황상이 오래도록 대답하지 아니하시더니 아무 말 없이 나가 버렸다.

이때 난양공주가 태후 곁에 있다가 태후께 여쭙기를,

“마마의 하교는 일의 형편에 크게 어긋나옵니다. 정녀가 혼인을 하고 아니하고는 본래 그 집안의 일이요, 어찌 조정에서 지휘할 바이겠나이까?”

 

太后曰 : “此卽汝之重事國之大禮, 我欲與汝相議爾. 尙書楊少游風彩文章, 非獨卓於朝紳之列,

曾以洞簫一曲 卜汝秦樓之緣, 決不可棄楊家 而求他人矣,

少游本與鄭家 情分不泛, 彼此亦不可背矣.

是事極其難處, 少游還軍之後 先行汝之婚禮, 使少游次娶鄭女爲妾, 則少游可無辭矣,

第未知汝意 以是趑趄耳.

태후왈 차즉여지중사국지대례 아욕여여상의이 상서양소유풍채문장 비독탁어조신지열

증이동소일곡 복여진루지연 결불가기양가 이구타인의

소유본여정가 정분불범 피차역불가배의

시사극기난처 소유환군지후 선행여지혼례 사소유차취정녀위첩 즉소유가무사의

제미지여의 이시자저이

 

태후가 이르기를,

“이 일은 곧 너에게는 중한 일이요, 나라의 큰 예절이니, 너와 더불어 상의하고자 하노라. 상서 양소유는 풍채와 문학이 조정의 신하 중 다만 홀로 뛰어날 뿐 아니라, 지난날 퉁소 한 곡조로써 너와 천생연분인 줄 알았도다. 결코 양가(楊家)를 버리고 타인을 구할 수는 없겠지만, 소유가 본디 정사도 집과 더불어 정을 나눔이 범연치 아니하여, 서로 저버릴 수 없는 형편이로다.

이로써 이 일은 극히 난처하게 되었도다. 소유가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온 후에 너의 혼례를 먼저 치르고 다음에, 소유로 하여금 정녀에게 다시 장가들게 하여 첩을 삼게 하면 소유도 사양치 못할 것이라. 다만 너의 의향을 알지 못하기에 이렇듯 망설이고 있느니라.”

 

公主對曰 : “小女一生不識妬忌爲甚事也, 鄭女何可忌乎? 但楊尙書初旣納聘, 後以爲妾非禮也.

鄭司徒累代宰相 國朝大族, 以其女子爲人姬妾 不亦寃乎? 此亦不可也.”

太后曰 : “然則汝意欲何以處之乎?”

공주대왈 소녀일생불식투기위심사야 정녀하가기호 단양상서초기납빙 후이위첩비례야

정사도루대재상 국조대족 이기녀자위인희첩 불역원호 차역불가야

태후왈 연즉여의욕하이처지호

 

공주가 여쭙기를,

“소녀가 일생에 투기가 무엇인 줄을 알지 못하오니, 정녀를 어찌 꺼리겠습니까? 다만 양상서께서 처음에 이미 약혼의 예물을 받았는데, 후에 첩으로 삼는 것은 예가 아니옵니다. 정사도는 여러 대에 걸친 재상이요 명문거족이니, 그의 여식으로서 남의 첩을 삼게 한다면 또한 원통하지 않으리오. 이 또한 합당치 않사옵니다.”

태후가 이르기를,

“그러면 네 뜻에는 어떻게 조처하고자 하느냐?”

 

公主曰 : “國法諸侯三夫人也, 楊尙書成功還朝, 則大可爲王 小不失爲侯,

聘兩夫人實非僣也. 當此之時 亦許娶鄭女 則何如?”

太后曰 : “是則不可 女子勢均軆敵, 則同爲夫人 固無所妨, 女兒先帝之愛女 今上之寵妹,

身固重矣位亦尊矣, 豈可與閭閻小女子, 齊肩而事人乎?”

공주왈 국법제후삼부인야 양상서성공환조 즉대가위왕 소불실위후

빙양부인실비참야 당차지시 역허취정녀 즉하여

태후왈 시즉불가 녀자세균체적 즉동위부인 고무소방 여아선제지애녀 금상지총매

신고중의위역존의 기가여려염소녀자 제견이사인호

 

공주 답하기를,

“국법에 제후는 부인을 셋을 둘 수 있사옵니다. 양상서가 성공하고 돌아오면 크게는 왕(王)이 될 것이요, 적어도 제후는 반드시 될 것이오니, 두 부인을 두는 것이 실로 분수에 넘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이때를 당하여 또한 정녀에게 정실로 장가들도록 허락하시면 어떠하오리까?”

태후가 말씀하기를,

“이는 옳지 않도다. 내 딸의 입장이 다른 여자와 비슷하면, 함께 부인이 되어도 굳이 꺼리는 바가 없으리로다. 하지만 내 딸은 선제(先帝)께서 사랑하셨던 딸이요, 금상께서 총애하시는 누이이니, 몸이 실로 귀중하고 지위 또한 존귀하도다. 어찌 여염집의 지위가 낮은 여자와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 사람을 섬길 수 있겠느냐?”

 

公主曰 : “小女亦知身地之尊重, 而古之聖帝明王, 尊賢敬士 忘身愛德, 以萬乘 而友匹夫者.

小女聞鄭氏女子容貌節行, 雖古今烈女不及也.

誠如是言與彼幷肩, 亦小女之幸也 非小女之辱也.

但傳聞易爽 虛實難副, 小女欲因某條 親見鄭氏 其容貌才德 果出於小女之右,

則小女屈身仰事. 若所見不如所聞, 則爲妾爲僕 惟娘娘矣.”

공주왈 소녀역지신지지존중 이고지성제명왕 존현경사 망신애덕 이만승 이우필부자

소녀문정씨녀자용모절행 수고금렬녀불급야

성여시언여피병견 역소녀지행야 비소녀지욕야

단전문이상 허실난부 소녀욕인모조 친견정씨 기용모재덕 과출어소녀지우

즉소녀굴신앙사 약소견불여소문 즉위첩위복 유낭낭의

 

공주가 답하기를,

“소녀 또한 소녀의 몸이 높고 중한 줄은 잘 아나이다. 옛적에 성스럽고 밝은 제왕들도, 어진 이를 높이고 선비를 공경하여, 몸의 존중함을 잊고 그 덕을 사랑하여, 만승(萬乘)의 천자라도 필부(匹夫)를 벗으로 삼으셨나이다. 소녀는 정씨 댁 딸의 용모와 절행이, 비록 고금의 열녀라도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들었나이다. 진실로 이 말과 같다면 그녀와 함께 어깨를 견줌이 또한 소녀에게는 다행한 일이요, 소녀에게는 욕이 되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러하오나 전하는 말과는 다르기 쉽사오니, 그 허실을 믿기 어렵사옵니다. 소녀가 아무쪼록 친히 정녀를 보아, 그 용모와 재덕이 과연 소녀보다 나으면, 소녀는 몸을 굽혀 우러러 섬기겠나이다. 만일 소견이 소문만 못하면 첩을 삼게 하거나 종을 삼게 하거나, 오직 마마의 뜻에 따르겠나이다.”

 

太后嗟歎曰 : “妬才忌色女子常情, 吾女兒愛人之才若己之有, 敬人之德 如渴求飮,

其爲母者 豈無嘉悅之心哉? 吾欲一見鄭女 明日當下詔於鄭家矣.”

公主曰 : “雖有娘娘之命 鄭女必稱病不來. 然則宰相家女兒 不可脅致,

若分付於道觀尼院, 預知鄭女焚香之日, 則一者逢着 恐不難矣.”

태후차탄왈 투재기색녀자상정 오녀아애인지재약기지유 경인지덕 여갈구음

기위모자 기무가열지심재 오욕일견정녀 명일당하조어정가의

공주왈 수유낭낭지명 정녀필칭병불래연 즉재상가녀아 불가협치

약분부어도관니원 예지정녀분향지일 즉일자봉착 공불난의

 

태후가 탄식하기를,

“재주를 시기하고 아리따움을 질투함은 여자의 상정이리라. 내 딸아이는 남의 재주 사랑하기를 제 몸에 있는 것같이 하고, 남의 덕을 공경하기를 목마른 사람이 물 찾듯이 하니, 그 어미 된 자로서 어찌 기특하고 기쁜 마음이 없으리오. 나도 정녀를 한번 보고 싶으니, 내일 마땅히 정씨 집안에 조서를 보내리로다.”

공주가 여쭙기를,

“비록 마마의 명이 있으시어도 정녀는 필연 병을 칭하고 오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렇다고 재상가의 여자아이를 함부로 협박하여 부르시지는 못할 터이니, 도관(道觀)과 이원(尼院)에 분부를 내리시옵소서. 미리 정녀가 분향하는 날을 알면 한 번 만나 보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을 듯하나이다.”

 

太后是之 卽使小黃門問於近處寺觀 正弊院, 尼姑曰 :

“鄭司徒家本行佛事於吾寺, 而其小姐元不往來於寺觀, 三日前小姐侍婢楊尙書小室,

賈孺人奉小姐之命, 以發願之文納於佛前而去, 願黃門賫去此文, 復命太后娘娘 如何?”

태후시지 즉사소황문문어근처사관 정폐원

니고왈 정사도가본행불사어오사 이기소저원불왕래어사관 삼일전소저시비양상서소실

가유인봉소저지명 이발원지문납어불전이거 원황문재거차문 복명태후낭낭 여하

 

태후께서도 이를 옳게 여겨서, 황문을 시켜 근처의 사관(寺觀) 정폐원(正弊院)에 물으니 여승이 아뢰기를,

“정사도 댁에서 본시 불공을 우리 절에서 올리되, 그 소저는 본디 사관(寺觀)에 왕래하지 아니하옵니다. 삼 일 전에 소저의 시비이며 양상서의 소실인 가춘운(賈春雲)이 소저의 명을 받아 그의 발원하는 글을 불전에 바치고 갔사오니, 황문께서는 이 글을 가지고 가서 태후 마마께 복명하심이 어떠하시나이까?”

 

黃門還來以此奏進太后曰 : “苟如是則見鄭女之面難矣.”

與公主同覽其祝文曰 : “弟子鄭氏瓊貝謹使婢子春雲, 齋沐頓首 敬告于諸佛前.

弟子瓊貝罪惡甚重 業障未除, 生爲女子之身, 且無兄弟之樂,

頃旣受幣於楊家, 將欲終身於楊門矣, 楊郞被揀於錦臠 君命至嚴, 弟子已與楊家絶矣.

황문환래이차주진태후왈 구여시즉견정녀지면난의

여공주동람기축문왈 제자정씨경패근사비자춘운재목돈수 경고우제불전

제자경패죄악심중 업장미제 생위녀자지신 차무형제지락

경기수폐어양가 장욕종신어양문의 양랑피간어금련 군명지엄 제자이여양가절의

 

황문이 돌아와 이대로 아뢰면서 소저의 발원서(發願書)를 올리니, 태후께서 이르시기를,

“진실로 이와 같다면 정녀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우리라.”

공주와 더불어 그 발원서를 함께 보았는데, 그 발원서에 쓰이기를,

“제자 정씨 경패(瓊貝)는 삼가 비자(婢子) 춘운(春雲)을 시켜 목욕재계하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여러 부처님과 보살님의 앞에서 삼가 고하나이다.

제자 경패의 죄악이 심히 중하고 업장(業障)이 없어지지 않아서, 세상에 나매 여자의 몸이 되옵고 또 형제의 즐거움이 없었사옵니다. 근자에 이미 양가(楊家)의 폐백을 받아 장차 몸을 양씨 문중에서 마치고자 하였는데, 양랑께서 부마의 간택에 뽑혀 어명이 지엄하시니, 제자는 이미 양씨 집안과 인연을 끊었나이다.

 

但恨天意人事自相乖戾, 薄命之人 更無所望 而身雖未許,

心旣有屬 則至今二三其德, 非義之所敢出也, 姑欲依存於怙恃膝下, 以送未盡之日月矣.

因此命途之崎嶇, 幸得一身之淸閑故, 乃敢薦誠於佛前, 以告弟子之心誠.

단한천의인사자상괴려 박명지인 갱무소망 이신수미허

심기유속 즉지금이삼기덕 비의지소감출야 고욕의존어호시슬하 이송미진지일월의

인차명도지기구 행득일신지청한고 내감천성어불전 이고제자지심성

 

다만, 하늘의 뜻과 사람의 일이 본시 서로 어긋남을 한탄하옵고, 박명한 사람에게는 다시는 소망이 없사오며, 몸은 비록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나 마음은 이미 붙였사옵니다. 지금에 이르러 두세 가지의 그 덕은, 의리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니, 아직은 부모의 슬하에 의존함으로써, 미진한 세월을 보내고자 하나이다. 이 몹시 기구한 신세로 말미암아 다행히 일신에 맑음과 한가함을 얻었으므로, 이에 감히 정성을 바쳐 부처님 앞에 제자의 심사를 아뢰옵니다

 

伏願僉佛聖之靈, 燭祈懇之忱 垂悲慈之念, 使弟子老父母俱享遐筭 壽與天齊.

令弟子身無疾病災殃, 以盡衣彩 弄雀之歡, 則父母身後誓歸空門, 斷俗緣服戒行,

齋心誦經 潔躬禮佛, 以報諸佛之厚恩矣.

侍婢賈春雲本與瓊貝大有因果, 名雖奴主 實則朋友, 曾以主人之命爲楊家之妾矣,

事與心違 佳緣莫保, 永辭楊家 復歸主人, 死生苦樂誓不異同.

복원첨불성지령 촉기간지침 수비자지념 사제자로부모구향하산 수여천제

영제자신무질병재앙 이진의채 롱작지환 즉부모신후서귀공문 단속연복계행

재심송경 결궁례불 이보제불지후은의

시비가춘운본여경패대유인과 명수노주 실즉붕우 증이주인지명위양가지첩의

사여심위 가연막보 영사양가 복귀주인 사생고락서불이동

 

엎드려 바라옵건대 여러 부처님의 신령들께서는, 이렇듯 지성스러운 정성을 통촉하시어 자비의 마음을 드리우셔서, 제자의 노부모로 하여금 장수를 누리시어 목숨을 하늘과 함께하시도록 해 주시옵소서. 제자에게는 몸에 질병과 재앙이 없게 하여, 곧 부모 앞에서 때때옷을 입고 새 새끼를 희롱하는 즐거움을 다하게 해 주옵소서.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맹세코 불문으로 돌아가, 세속의 인연을 끊고 계율에 복종하여 마음을 재계하고, 경문을 외우며 몸을 정결히 하여, 예불을 드려서 부처님들의 두터운 은혜에 보답하겠나이다.

시비 가춘운은 본디 경패와 더불어 크게 인연이 있사온즉, 명색은 비록 주인과 노비 사이이지만, 실은 붕우의 사이로 일찍이 주인의 명으로 양가(楊家)의 첩이 되었사옵니다. 일이 마음과 달라 아름다운 인연을 보존치 못하고, 길이 양가와 하직하여 다시 주인에게 돌아와, 생사고락을 같이할 것을 맹세하였나이다.

 

伏乞諸佛 俯憐吾兩人之心事, 世世生生俾免爲女子之身,

消前生之罪過 贈後世之福祿, 使之還生於善地, 長享逍遙快活之樂.”

公主見畢慘然曰 : “一人之婚事 誤兩人之身世, 恐有大害於陰德矣.”

太后聽之黙然.

복걸제불 부련오양인지심사 세세생생비면위녀자지신

소전생지죄과 증후세지복록 사지환생어선지 장향소요쾌활지락

공주견필참연왈 일인지혼사 오양인지신세 공유대해어음덕의

태후청지묵연

 

바라옵건대 여러 부처님께서는 우리 두 사람의 심사를 굽이 살피시고, 가련히 여기시어 다시 환생하면 여자의 몸이 되기를 면하게 해 주옵소서. 전생의 죄과를 소멸하고 후세의 복록을 주시어, 좋은 땅에 환생하여 쾌활한 즐거움을 길이 누리게 해 주옵소서.”

공주가 그 글을 다 보고 참연한 마음으로 이르기를,

“한 사람의 혼사로 인하여 두 사람이 신세를 그르치게 하니, 아마도 음덕(陰德)에 크게 해로우리다.”

태후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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